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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풍속사] - 조선사람들 단원의 그림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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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풍속사
강명관 ㅣ푸른역사 ㅣ2010년 6월

 “단원 김홍도”
미술사를 공부하지 않아도 그림에 대해 잘 몰라도 우리에게 친숙한 조선시대의 화가이다. 그 동안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왔고 <씨름도>나 <서당>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익숙한 그림이기에 이러한 그림 이야기겠지 라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그건 큰 오산이다.

이 책의 저자는 한문학자로 『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 나오다』라는 책을 통해 신윤복의 작품을 조선시대 사회상의 구조와 함께 이해하도록 도움을 주었기에 이 책도 뻔한 김홍도의 그림읽기가 아닐 거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이책은 ≪단원풍속도첩≫에 실린 25점의 풍속화를 꼬투리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김홍도, <타작>,《단원풍속도첩》, 국립중앙박물관

농민들이 봄부터 가을까지 노력으로 일군 곡식을 거두고 있다. 돗자리를 깔고 감시하는 듯한 저 사람은 지주이겠거니 생각되어 농민들은 수확의 기쁨과 수탈의 슬픔을 동시에 느끼겠다 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조선시대 서민들은 수확의 기쁨을 누릴 여유 없이 국가에 바칠 세금과 지주에게 바칠 소작료를 고민해야했다. 이러한 근심은 선조시대 문인인 이산해의 시에도 나오는데 세금을 내지 못해 고초를 겪으면서 차라리 유리걸식하다가 구렁에서 죽는 거지를 부러워한다.
이러한 내막을 알게 된 뒤 그림을 다시 돌려보면 그 표정들이 가히 즐겁지만은 않음을 발견하게 된다.

 

 김홍도, <나무화기와 윷놀이(고누)>,                            김준근, <윷놀이> , 소장처 미상
《단원풍속도첩》, 국립중앙박물관

 

                               밤윷, 스튜어트 컬린의 『한국의놀이』에 소래된 삽화와 실제 밤윷                     

이 아이들은 무슨 놀이를 하는것일까?. 초중등학교 교과서에는 고누두는 장면으로 소개된 이 그림 속에서 아이들이 하는 놀이는 윷놀이이다. 이러한 증거로 김준근의<윷놀이>라는 그림과 함께 스튜어트컬린의 『한국의 놀이』라는 책에 소개된 삽화와 실제 밤윷의 사진을 첨부 하였다.

                                    김홍도, <자리짜기>,《단원풍속도첩》, 국립중앙박물관

자리를 짜고 있는 사람을 보니 사방관을 쓰고 있는 모습을 보아 양반인데 양반이 웬일로 노동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대부분 양반은 노동을 기피했기에 토지와 노비가 없음에도 노동을 하려 들지 않았는데 이 그림에서는 수염이 석 자라도 먹어야 양반이라는 속담을 잘 보여주고 있다.

 

           김득신, <병아리 훔치기>, 간송미술관

당시 많은 양반들은 자리짜는 노동으로 생계를 꾸렸다. 사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김득신의 작품에서도 사내는 자리를 짜던 중이었던 것이다.
생각이 트인 양반들은 자리 짜기를 천한일로 여기지 않았다. 장현광의 문집『여헌집』을 통해 조선시대 재상 중에 신망이 높았던 이원익도 자리짜기를 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가난한 양반이 어쩔 수 없이 자리를 짜고 있지만 뒤에 있는 아이의 모습에서 양반의 마지막 자존심을 확인할 수 있다. 입을 옷이 없어 바지를 입지 않았음에도 책을 읽고 있는 것이다.

김홍도, <편자박기>,《단원풍속도첩》, 국립중앙박물관

말 발에 편자를 박고 있는 장면이다. 편자박기를 하는 장면을 그린 여러점의 그림을 통해 조선시대에는 말의 네 발을 묶어 땅바닥에 자빠트리고 편자를 박았음을 알 수 있다.

            

      조영석, <편자박기>, 국립중앙박물관                    필자미상, <편자박기> 국립중앙박물관

 이러한 정황은 이덕무의 에세이집『양엽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네 다리를 묶어 하늘을 보게 눕히고, 칼로 발굽의 바닥을 깍아낸 뒤 못을 박는다. 중국에서는 끌로 서 있는 말의 발굽에서 고르지 않은 부분을 깎아낸 뒤 못을 박는다”

 

             김홍도, <기와이기>,《단원풍속도첩》, 국립중앙박물관                        1904년 서울

기와를 이고 있는 장면을 그린 이 작품은 조선시대 건축노동을 그린 중요한 작품임에도 그 동안 쉽게 지나치지 않았나 싶다. 조선시대 초기인 태종 초년부터 해선스님이 화재의 위험과 중국 사신들의 미관을 위해 기와집을 짓자는 건의가 있었지만 임진왜란 이후에도 기와집은 많지 않았다. 중국에 다녀온 박지원등의 학자들도 기와를 보고 감탄해 마지않았는데 호주의 사진작가가 찍은 사진에서 보면 1904년도까지도 기와집은 몇 집 되지 않고 대부분이 초가집임을 알 수 있다. 기와집이 좋은 점도 있지만 먹고 살 걱정부터 해야 하는 서민들에게는 사치이지 않았나 싶다.

김홍도, <길쌈>,《단원풍속도첩》, 국립중앙박물관

그저 길쌈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 이 그림에도 마음 아픈 시대상이 반영되어 있다.
무명이 군포라는 말로 바뀌는 순간 무명은 한과 눈물의 응집물이 된다. 양반은 면제요 군대안가는 백성들만 한 명당 군포 두 필을 거두었는데, 죽은 사람에게도 물리는 백골징포와 어린아이에게도 받는 황구첨정이 있어 자살하거나 달아나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마을 하나가 없어지는 일도 있었다. 이러한 비극은 정약용의 <애절양>을 통해서도 확인되는데, 죽은 아버지와 갓난아기까지 삼대三代의 이름이 군적에 실리자 소까지 빼앗기지만 해결되지 않자 아기를 낳은 것이 죄라며 스스로 거세를 한다.
이러한 비극은 남성이나 여성 모두를 괴롭혔는데 특히나 여성들은 군포만 짜야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면포를 짜서 가족들의 옷까지 해 입히고 시장에 내다 팔아 돈도 마련해야 헸으니 요즘시대는 꿈에도 없을 일이다.

              

김홍도, <길가는 여인 훔쳐보기>,《단원풍속도첩》, 국립중앙박물관 (좌)
김홍도, <산행길>,《단원풍속도첩》, 국립중앙박물관 (우)

김홍도의 그림에 꼭 마음 아픈 이야기만 담겨있는 것은 아니다. 은밀한 욕망을 드러내어 흥미를 끄는 작품도 있고 그 시대의 결혼식을 보여주는 작품도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적으로 그 그림에 대한 이야기 뿐 아니라 그 시대의 기록을 함께 제공하여 그림에 대한 이해를 높여준다.

풍속화라 하면 서민들의 생활상을 볼 수 있는 그림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동안 김홍도의 풍속화를 통해 생활상을 보기보다 그저 그림을 통해 천재화가였던 김홍도를 이해하려 했지 않았나 싶다.
단원이 그린 25점의 그림을 눈으로 보는 것만이 아니라 그림 속 사람들의 삶 그리고 마음을 읽고 싶다면 이 책을 펼치기 권한다.

편집 스마트K (koreanart21@naver.com)
업데이트 2024.11.18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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