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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제국 황제릉] - 대한 제국의 의지가 깃든 한말의 황제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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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황제릉 
 김이순 지음 ㅣ 소 와 당 ㅣ 2010년7월

대한 제국의 의지가 깃든 한말의 황제릉

왕릉의 분위기는 매력적이다. 서울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 하지만 한적하고 조용한 가운데 범접하기 힘든 위엄과 경건함이 있다. 요즘은 사실 종교시설 조차 위엄경건 보다는 활달명랑한 사교 공간이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조선시대 봉안된 왕릉은 42기이다. 왕위에 오른 27대의 왕과 왕비 그리고 나중에 추존되어왕위에 오른 분까지 포함해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왕권이 강력하고 나라의 곳간이 넉넉했다면 그 무렵 모셔진 왕릉은 정성을 많이 들여서 큼직하게 조성했을 것이다. 조선시대 왕가의 장례는 최소 6개월 이상이 걸렸다고 하며 비용으로 한 해 예산이 전부 소요될 정도의 대역사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의 최후,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한 뒤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그 뒤 1907년 헤이그 밀사사건으로 강제 퇴위당한 고종과 그 뒤를 이은 순종의 경우는 어떠한가.

 
홍릉ㅣ고종황제와 명성황후   유릉ㅣ순종황제와 순명황후 민씨와 계비 순정황후 윤씨

홍릉는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141-1번지에 있다. 비운의 황제 고종과 일본 낭인에게 무참한 최후를 당한 명성황후 민비가 합장된 릉이다.

그 옆의 유릉에는 조선의 마지막 왕이었던 순종과 그의 두 왕비가 합장돼 있다.

이 두 릉은 여느 조선시대 왕릉과 다르다는 것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 이 능들은 한마디로 애초부터 황제릉으로 꾸며졌다. 1907년 대한제국이 선포되어 황제국이 되었으니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조선은 침몰 직전의 배였다. 그런 절박한 시기에 황제 고종이 직접 나서서 황제릉을 조성한 것이다. 그는 당시 청량리 홍릉에 모셔져 있던 비운의 민비와 합장할 묘를 생전에 만들고 있었다.

황제릉의 특징은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능묘 아래에 정자각 대신 제사를 올리는 침전을 따로 두었다는 것. 문인석, 무인석의 쌍을 늘리고 동물석상의 수도 늘렸다는 것. 그래서 이 두 능에는 중국 명나라 황제능처럼 호랑이와 양 이외에 낙타, 코끼리, 기린의 석상이 열석해 있다.

순종 유릉

마지막으로 이 책은 일제가 식민지 정책을 펴면서 왕릉까지 자신의 홍보 수단으로 활용한 내용을 폭로하고 있다. 순종 왕릉인 유릉을 조성하면서 일본인 건축가와 조각가를 동원해 근대적 표현의 석물을 세워 자신들의 문화가 우월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는 것이다.

문화나 미술 속에는 시대가 그대로 나타나 있다고 한다. 왕릉도 우리에게 조용하지만 엄숙하게 그 시대, 그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편집 스마트K (koreanart21@naver.com)
업데이트 2024.11.20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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