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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 그림 이야기] - 이야기를 담는 그림 형식에 관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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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그림 이야기
이종수 지음 ㅣ 돌 베 게 ㅣ 2010년 7월

두루마리, 족자, 병풍에 걸맞는 그림은 따로 있는가?

말꼬리 잇기처럼 조금 낯선 제목이 먼저 눈길을 끈다. 이야기 그림, 그림 이야기. 어느 쪽으로 끊어야할지 망설여진다. 실은 이 책은 두 가지 모두를 다루고 있다. 그림이란 단어를 공통항으로 놓고 이야기가 있는 그림을 골라서 해설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서양도 그렇지만 동양 전통회화 속에서 이야기, 즉 고사(故事)나 일화(逸話)를 다루지 않은 그림이 어디 따로 있었던가. 이 책은 약간 꼬여 있는 제목처럼 좀 색다른 시각을 제시하고자 한다. 옛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릴 때 어떤 형식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가 하는 문제이다. 그 점에서 일반적인 그림 해설서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동양 그림의 대표적 형식에 두루마리라고 하는 권, 족자인 축, 그리고 병풍이 있다. 그리고 서적 보급이 일반화되면서 삽화라는 양식도 등장했다. 이 책도 이런 네 가지 형식을 대상으로 한다.

일반적으로 그림을 설명할 때, 그림의 형식이 되는 족자나 병풍에 대한 할애는 인색한 편이다. 일화나 고사의 해석에 치중하거나 기법이나 양식적 설명에 더 정력을 기울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 반대를 시도하고 있다. 즉 어느 화가가 어떤 일화를 그림으로 그리게 되었을 때 그것이 주문이든 어쨋든 연 어떤 형식을 택했을 것인가 하는 의문에서 시작한다.

정선ㅣ귀거래도 8폭병ㅣ 비단에 수묵ㅣ 각 폭 55.4 x 41cm

여기 귀거래사도가 있다고 하자. 귀거래사는 잘 알려진 것처럼 동진 시대의 도연명이란 문인이 알량한 녹봉에 연연치 않고 향리로 돌아가 동쪽 언덕에 올라 휘파람을 불거나 맑은 물가에서 시를 읊는 생활을 꿈꾼 내용이다.

이 글은 문인들의 이상향을 묘사하고 있어 그 뒤로 수도 없이 많이 글과 그림으로 반복됐다. 그런데 만일 동진에서 1천년이나 뒤인 조선 시대의 겸재 정선에게 귀거래사를 소재로 한 그림, 즉 귀거래사도를 그려야 하는 일이 벌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전통적인 된 귀거래도 형식은 두루마리였다. 벼슬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 어린 자식과 노복의 환대을 받으며 술잔을 기울고 또 그것도 심심하면 동쪽 언덕에 올라 운운 하는 이야기는 그림으로 보자면 내용 전개를 따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펼쳐지는 두루마리 형식이 제격이다.

그런데 겸재가 누구인가. 그는 산수화의 대가이자 진경산수의 창안자가 아니었던가. 그는 귀거래사 내용을 한 눈에 모두 살펴볼 수 있는 병풍을 택해 그 위에 풀어헤쳤다. 그리고 변형된 조건에 맞추기 위해 전통적인 단락에 변형을 가했다.

또 도연명이 됐든 그의 어린 아들이든 등장 인물도 콩알 정도로 그려지는 여는 산수화속의 인물들과 같이 처리해 비중을 확 줄였다. 그래서 분위기는 귀거래사도이지만 어디까지나 그윽한 전원과 산수 속에 펼쳐지는 고아한 생활이란 한 폭의 감상화가 된 것이다. 이것이 겸재의 기량이라고 필자는 말한다.

김흥도ㅣ 서원아집도 ㅣ 비단에 담채 l 122.7x287.4cm

이 책에 등장하는 또다른 조선 그림은 단원 김홍도의 《서원아집도》이다. 서원 아집도란 북송때 국왕 사위인 왕선 집에 이공린, 소식, 미불을 비롯한 당시 쟁쟁한 문사, 승려들이 한데 모인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요즘 말로 하면 레드 카펫 위를 서성이며 열여섯 명이 되는 스타들이 벌이는 근사한 파티 그림인 셈이다. 이 그림 역시 문인들의 고아한 활동, 생활의 모범으로 꼽히며 수없이 되풀이됐다. 김홍도가 그린 《서원아집도》는 이를 리메이크한 것이었다.

김홍도에게 내려진 숙제도 이를 병풍으로 그리라는 것. 파티 참석자 열 여섯에 리셉션과 서빙 인원까지 포함해 스물 여섯명이나 등장하는 인물을 김홍도는 6폭 그림에 담아 넣었다. 사람들이 뭉치고 모일 곳에선 과감히 모아놓고 한가해야 할 곳에서는 듬성 듬성 배치해 이야기 그림의 옹졸함에서 벗어나 한 폭의 멋진 감상화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이 책은 이처럼 고사나 설화를 다룬 그림에서 내용과 형식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이런 특이한 시도는 필자 스스로 던진 물음에 답하는 자문자답 형식으로 전개된다. 가설과 검증이란 점에서 ‘인문학적인 독법’이 셈이다. 그 점에서 흥미롭기도 하지만 약간 부담스럽기도 하다.

덧붙인다면 두루마리 그림의 사례로는 중국의 고개지가 그렸다는 《낙신부도권》과 교중상의《후적벽부도권》가 설명되고 있고 족자 그림에는 명나라 구영의 《춘야연도리원도》와 장대천의 《도원도》가 예시되고 있다.

편집 스마트K (koreanart21@naver.com)
업데이트 2024.10.27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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