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정문에서 바짝 벽을 타고 돌아 좁은 마당길로 이어져서 낮으막한 입구의 언덕길을 내려와 학교 정문을 가로질러 큰길가까지 계속되는 사람들의 줄. 한국미술의 현장에서 드물게 보이는 이 기다란 줄을 부추키는 보이지 않는 현상의 정체는 바로 간송 신드롬이다. 근래 몇 년간 5월과 10월이 되면 이 신드롬은 더욱 선명한 모습을 보였다. 일부 사람들은 이를 두고 몇 년전 연속극 ‘바람의 화원’ 덕분이라고도 적당히 해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눈앞에 보이는 그 무엇이 있어야 믿으려 하는 사람들의 말에 지나지 않는다. 간송 신드롬은 때 늦은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불어야할 바람이 분 것이며 생겨나야할 현상이 생긴 것이기도 하다. 간송 신드롬의 간송이란 말할 것도 없이 간송 전형필 선생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가 이 땅을 떠난 지 50년이 가까우면서 그의 모습을 심하게 풍화되었다. 무엇이든 쉽게 잊어야 하는 압축성장 과정속에 위인 전기나 평전에 인색한 문화 풍토가 겹쳐지며 그 속도를 더욱 재촉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풍화된 간송 전형필을 옆에 두고 간송이란 단어는 성북동, 보화각, 봄 가을의 전시, 최완수 선생의 고집스런 연구, 그의 학맥 등등으로 치환되기도 했다.
이 책 『간송 전형필』은 그의 참모습 일부를 다시 일으켜 세운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간송이 일제 시대에 우리 문화재를 수집하는 일이 자신의 평생 과업이 되리란 사실에 눈을 뜨면서 마치 군자의 修德 행위처럼 묵묵히 위기에 처한 우리 문화재를 수집하는 과정이 자세히 담겨 있다. 고서화, 골동이란 단어가 풍기는 작금의 배덕적이며 동취(銅臭) 풀풀한 금전적 뉘앙스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간송이 보인 이런 수집 과정은 밋밋하고 싱겁게 보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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