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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세기 수장가 김조순, 홍경모, 자하 신위가 남긴 목록과 책거리 그림의 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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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빈, 「19세기 고동(古董) 수집의 실상과 책거리 기물의 간극」, 『미술사와 시각문화』 Vol., 29, 2022, pp.188-243.

19세기 책거리 그림에는 다양한 장식물이 등장한다. 그림을 보면서 그러한 다양한 기물을 사람들이 욕망했던 것일까, 그렇다면 실제 예술을 사랑하던 그 시대 사람들의 수장품 목록에도 그러한 욕망이 반영되어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게 된다. 최근에 나오는 연구 결과들에서는 책거리의 현실적 측면과 허구적 측면을 모두 보여주고 있는데, 책거리 속 기물 중 18세기 후반에 제작된 청대 도자가 많다거나, 원형과는 다른 왜곡과 변형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 등을 증언한다. 초기 책거리 수용이 실제 18세기 수집문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연구도 있다. 


이응록(이형록) 책가도 부분, 종이에 채색, 164.5x356cm, 샌프란시스코 동양미술관


이 논문에서는 다소 제한적이지만 김조순(1765-1832), 홍경모(1774-1851), 신위(1769-1847) 세 사람을 19세기 전반의 대표 수장가로 들어 세 사람이 남긴 수장품 기록을 조사하고, 대표 책거리 작가 이형록(1808-?)이 남긴 11점의 책거리 그림에 등장하는 기물을 비교하고 있다.  

김조순, 홍경모, 신위 세 사람의 소장품 기록에 등장하는 총 70여 점은 집안 가전품, 임금에게 하사 받은 것, 스스로 제작한 물건 등 다양한 출처가 있으며 중국 기물에서 백제와 고려의 유물까지 다양한 범주를 보여준다. 이는 책거리 기물이 대부분 '프롬 차이나'인 것과 다르다. 문인 수장가들이라서 고급 문방구들이 양적으로 다수를 차지하는 반면 책거리 그림 기물은 도자가 절반 정도 된다. 연구자는 수장 목록은 개인적 가치에 우선을 두는데 책거리는 감상과 길상이라는 일반적 목적을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에 나오는 차이라고 보았다. 어쨌든 이러한 간극에도 불구하고 책거리가 19세기 수집 문화를 반영하는 측면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목록과 그림에서 기대한 연관성은 찾을 수 없었어도 옥이나 마노 같은 귀한 재료나 수입목재, 문양 등에 대한 애호 스타일에서 유사성을 찾을 수 있고, 고동기 애호와 고증 지식의 발현 등 시대상을 찾을 수 있다. 

책거리가 다보격에서 기원했다고는 하지만 다보격과 달리 소유하고 있지 않은 물건도 원하는 대로 이미지로 구현할 수 있으니 무엇을 실제로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욕망하느냐를 보여주는 것인데, 실제 수집과 차이가 난다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세 사람의 부분적 기록이 그 시대의 수집 욕망을 대변한다고 가정하기도 어려우니 시작부터 한계가 있다. 수장품 관련 문헌 비교로 그 시대의 수집 문화의 반영을 증명할 수 있으려면 다른 시대의 대조군이 필요하려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논문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유명 집안, 양반 수장가들의 목록의 실제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안동 김씨를 이끈 입지전적 인물 김조순의 수장품은 선대 김창업, 부친 김이중의 서화첩, 정선의 화첩 등이 포함되어 있다. 고동이나 문방구는 자신이 직접 얻거나 구한 것이고 그중 절반이 규장각 근무시 정조로부터 받은 하사품이다. 김조순은 사치품이랄 수 있는 적절한 ‘설’과 ‘명’을 지어 ‘완물상지’의 혐의를 벗는 관료로서의 노련함을 보였다.


그중 자신이 구입한 명품 벼루, 징니연에 대한 묘사와 구입 경로가 쓰여 있는데, 2개에 350전에 샀다는 벼루 중 하나에 「난정서(蘭亭序)」와 임진년(1772)의 건륭제 어제가 새겨져 있었다고 하며 김조순은 이를 청대 황실 소장품일 것으로 감정하였다. 그러나 징니연은 청대에는 기술이 단절된 명대의 명품이다. 이를 2개에 350전에 샀다는 것은 사실상 명대의 진품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 연구자는 건륜 연간의 황실소장 벼루 도감인 『서청연보』를 찾아, 그 속에 있는 난정서와 건륭어제가 있는 <송미불난정연>이 징니연이 아니라 단연이며, 도상을 통해 명문과 모양을 본뜨고, 진흙으로 구워 징니연 행세를 한 위작일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마찬가지로 경화세족 출신인 홍경모의 수집품은 풍산홍씨 집안 수장품에 바탕을 둔 것이다. 홍경모의 조부 홍양호는 두 번의 연행으로 중국 서적과 고동기물을 수집할 수 있었고, 그것을 손자 홍경모가 정리, 기록했다. 자신도 두 차례 연행을 갈 수 있었기에 조부의 서화 수장 취미를 이어받고 발전시켰다. 할아버지 홍양호의 수집의 범주는 다양했지만 수장품 기록은 주로 선대 유묵이나 고비탑본 등 서첩과 금석첩에 집중했는데 홍경모 기록의 특장점은 가문에서 수장하던 문방 기물을 입수순으로 목록화하고 자세히 기록했다는 것이다. 


이 가장품 목록에는 5대째 전해지는 거문고 현학금, 정명공주에게 받은 무소뿔 장식. 홍양호가 함경도에서 근무할 때 수집한 숙신의 돌화살촉과 돌도끼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문방구와 감상용 기물이 주를 이룬다. 명대 선덕 연간의 선덕연, 4대 명품 벼루 중 하나인 단연, 정군방먹 등 이름 자체로 명품임을 알아볼 수 있는 것들, 옥, 마노 등 귀한 재료로 만든 기물도 포함되었다. 김조순의 경우 하사품 외에는 대부분 문방구류였지만 홍씨 집안 기물은 수집 자체를 목적으로 한 장식품이나 동전, 탄환, 술잔 등도 포함되었다는 점이 다르다. 제작지 분포는 중국, 국내, 일본, 서양 등인데, 특이한 점은 홍경모는 자신의 지식을 바탕으로 고동기를 본딴 옥향로를 제작하고 거기에 한유의 「석정연구(石鼎聯句)」를 조윤형에게 써달라고 해서 새겨 넣기도 한 적극성을 보이기도 했다. 다양성, 적극성. 청의 고급 공예품만큼이나 국내산 제작품이 많다. 

앞의 두 사람은 가문의 오랜 수장 내력에 바탕을 둔 것이지만 자하 신위의 경우 그렇지 않다. 1812년 연행에서 옹방강과 교유, 청의 문물에 더 깊이 다가가는 기회를 얻었다. 신위의 경우 고동서화와 관련된 시를 800여 편 남겼지만 연구 대상이 된 자료는 그중 자신의 서재에 놓인 기물 30여점에 대해 읊은 오언절구 「재중영물삼십수」 한 편이다. 30점 중 중국산이 1번~20번, 국내산이 21~27번, 일본 등 기타 외국산이 28~30번이며 그 안에서는 (자신이 비정한) 유물의 시대순으로 나열한다. 


시대는 상대, 한대, 전국시대, 송대 등이 포함되어 있지만 연구자는 그 물건이 그 시대 제작품이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고 (좋게 보아서) 그 작품의 유래에 해당한다고 풀이했다. 신위는 선화박고도, 고고도 등 도판을 수록한 문헌을 참조해 유사한 기명을 찾아내고, 기물과 관련된 문헌 기록에 의거하여 시대와 맥락을 규명하고 있다. 

신위가 그 이름과 시대를 감식하고자 노력한 물건들은 대부분 쓰임이 분명하지 않은 고대 청동기, 장식품이었는데, 그는 흥미롭게도 이를 문방구로 바꾸어 사용했다. 옥으로 된 칼장식을 먹을 올려두는 먹상으로 이용했고, 동으로 만든 잔은 붓을 씻는 필세로 사용했다. 고대 유물은 고동기와 장식품, 명청대는 문방구가 주를 이룬다. 명 선덕 연간에 제작된 향로(선덕로)는 방제품일 가능성이 높고, 벼루에 새겨진 ‘홍옥주인紅玉主人’은 강희제 종손 진국공 영산의 호라서, 유명인의 구장품이니 명품성이 있었고, 매화가 새겨진 목필통은 양봉 나빙의 물건이라고 전해진다. 나빙은 강세황과 교류가 있었고, 옹방강과 나빙의 학연 등을 생각하면 나빙의 물건을 전해받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기타 옥, 침향, 상아 등의 귀한 재료의 물건들이 있고, 대나무 팔걸이 죽비각 등 흔하지 않은 것도 있다. 국내산 수장품들이 흥미를 끄는데 백제 기와로 만든 벼루, 안향의 옛터에서 얻었다는 고려청자 항아리 등이 있다. 한쪽에 끈을 매어가지고 다니게 만든 흑유병에 대해서는 신위가 『고고도』 도판을 근거로 ‘휴병’이라고 판단하며 자신의 소장품과 옛기물을 문학적으로 연결시켰다. 신위는 이밖에도 조선의 재료를 이용해 직접 벼루나 괴석, 여의 등 기물을 만들기도 했다. 

신위 수장품 특징과 수집태도는, 자신의 지식을 동원해 각 유물의 시대를 비정하는 의미 있는 시도를 보인다. 홍경모가 오래 수장된 순서대로 나열해 집안의 수장사에 의미를 둔 것과 비교된다. 신위의 경우 역시 문방구 중심이고 보관하여 전하려고 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문인의 서재를 꾸미는 방식으로 활용했고, 국내에서 제작한 것이 많다는 특징이 있다. 특히 유물의 시대적 지역적 의미를 밝히는 데에 관심을 보이는 고증적 태도는 이후 오경석 등 19세기 후반 수장가들에게 이어졌다고 보았다. 

논문 후반부는 이형록 책거리 11점(책가형 6점, 분산형 5점)에 나타나는 기물을 조사 분류 분석했는데, 한 책거리에 존재하는 기물은 책과 두루마리 제외 대략 40~50개에 이르지만 대부분 돌려막기 식으로 몇 기물이 반복 변형됨을 발견해낸다. 그림을 잘라서 표로 구분해 알아보기 쉽도록 정리했다. 

1) 방정(方鼎), 향로, 합 등 청동기, 옥물고기, 옥벽, 옥경
2) 병, 완, 배, 반 등 도자기 
3) 벼루, 연적, 수승, 붓과 필통, 필세, 인장합 인주함 등 문방구 
4) 찬합, 분향관련 기물, 시계, 가구, 여의 등 일용기
5) 화과 및 자연물



이미 책거리 기물 연구는 많으나 이 연구에서는 분류 기준을 가지고 기물의 수를 세어서 정량적 결론을 도출하는 방향으로 진행했다. 결과는 다음과 같다. 

-전체적으로 가장 많은 수량을 점하는 것은 도자기이다. 
-문구는 수량은 많지 않은데 가장 종류가 많다. 
-고동기와 옥기는 장식 구성이 다양하다. 
-일용기는 10%로 수량은 적지만 새로운 기물의 등장이 잦다. 
-책가형보다는 분산형 책거리에서 기물 수 총량이 많다. 
-분류별 비중은 분산형과 책가형이 유사하다. 
-이형록, 이응록, 이택균 책거리 간에도 분포는 특별히 차별점이 없다. 

비중 분포가 유사하게 유지된다는 점을 중요하게 언급한 것은, 기물 카테고리가 유의미한 기준점으로 작용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기물 선정이 무작위가 아니고 범주별로 분포시켜 특정 기능 성격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의미다. 특히 분향 도구와 문구의 조합은 거의 모든 이형록 필 책거리에 등장하는데 이런 정해진 세트 구성을 통해 기물의 종류와 배치를 기억하고 반복하기가 용이하였을 것이라 추정했다.

결론적으로 이형록 책거리는 고동기, 옥기, 문방구, 화훼과일, 일용기 등이 골고루 비슷하게 분포되는 양상이지만 그에 비해 조선 수장 목록은 문방구에 치우쳐져 있고, 도자기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음을 보였다. 연구자는 수장 목록이 기물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 수장가의 개인적 관심에 의거하여 기물을 선택적으로 수집하고 기록하였던 데 비해, 책거리는 감상과 길상이라는 보편적 목적을 위해 유행하는 기물의 문양과 기형을 일반화시키고 복제해 나갔기 때문이라고 썼다. 

논문에서도 김조순과 홍경모, 신위의 수장 목록이 당시의 일반적인 수집 문화라고 단언하기 어렵다고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목록의 70여 점의 기물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책거리 기물이 없는 이 수장품 목록이) 오히려 책거리 기물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말한다. 

SmartK C.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19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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