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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영회도를 통해 살펴본 16세기 사연용 화준, 주준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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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진, 「조선 16세기 기영연(耆英宴)에 사용된 화준(花樽)․주준(酒樽)의 조형 특징과 진설 방식-<선조조기영회도(宣祖朝耆英會圖)>를 중심으로」, 『동양미술사학』 vol.14, 2022.02, pp.65-93

임금이 내려주는 잔치, 그곳의 음식, 음악, 춤, 장식물, 의복 모두 그 시대 최고 수준의 문화를 담고 있다. 그러하니 그 잔치를 자세히 기록한 그림은 각 분야의 연구 대상이 된다. 16세기의 귀한 기록으로 남게 된 1584년과 1585년 선조 대에 치러진 기영연(耆英宴)을 기록한 그림 중에서 화준과 주준 부분에만 초점을 맞춘 논문이다. 대상으로 삼은 그림은 다섯 점으로, 한 점은 선조 17년(1584) 기영연, 다른 넉 점은 선조 18년(1585)의 기영연 그림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두 종류의 잔치용 항아리, 꽃항아리 화준(花樽), 술항아리 주준(酒樽)을 들여다본다. 



임금이 내려 준 것이니 이 그림에 등장하는 두 종류의 자기 준(樽)은 그에 걸맞는 수준이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 전기 국가 의례서 및 조선 후기 왕실 연향 관련 의궤, 도병 등을 보면 궁중의 의례에서는 백자청화운룡문호(白磁靑畵雲龍文壺)가 사용되는 데 반해, 기영연의 그림에서는 이와 비슷하지만 용문(龍文)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 주목된다. 

기영회도 속 화준
해당 기영회도에 등장하는 화준은 백자이거나 청화백자 항아리이고, 곧게 직립한 구연부, 둥근 양감의 넓은 어깨. 길고 높은 형태의 입호 스타일이다.


이 항아리들은 관요에서 만들어진 것일까? 경기도 광주에 설치된 관요 가운데 16세기에 운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퇴촌면 우산리 9호 가마터, 도마리 1호 가마터, 남한산성면 번천리 9호 가마터 등에서 그림에 묘사된 화준과 같은 기형의 백자호편이 나왔음을 들어 그림 속 화준이 관요 제작물임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전해지는 항아리 중에서는 호림박물관 소장 순백자호와 비슷한 형태일 것으로 추정한다. 다소 풍만하나 국보 백자청화매죽문호(리움 소장) 사례도 유사하다. 1585년 기영회도 속 화준 중앙에 공납된 청화백자 중앙에는 화당초문이 있는데 리움소장 <백자청화보상화당초문호>이 이와 가장 근접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16세기 관요 제작 청화백자 중에서 화훼문 계통 청화 장식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로 1621년에 베풀어진 기영연을 기록한 <기석설연지도(耆碩設宴之圖)> <기로소연회도(耆老所宴會圖)>에 등장하는 화준에 장식된 문양 역시 대나무, 매화로 추정되며, 16~17세기 청화백자에서 두 소재의 청화문이 짝을 이루어 입호에 장식된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이렇듯 문양이 없거나 (용문이 아닌)특정 계통의 소재가 장식된 백자호가 사연용 화준으로 진설된 배경에는 특별한 의미와 분명한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선조 14년 (1581) 병조에 입직한 이들에게 선온(임금이 특별히 내려준 음식)을 하사한 것을 기념한 <기성입직사주도>의 하단에 대나무와 매화 도상을 각각 크게 배치시킨 것을 들었다. 앞서 기영연도에서 백자 항아리에 대나무, 매화, 당초 등의 청화문을 장식한 화준을 쓴 것은 ①노관(老官)의 건강과 장수에 대한 염원 혹은 군신 간의 충의를 치하하는 사연의 목적을 투영하는 동시에 ②궁중연의 용준과는 품격을 구분하기 위한 것이라고 본 것으로, 복합적이고 계획적인 의도를 담았을 가능성 제기하고 있다.


기영회도 속 주준
주준은 화준과 유사하게 높은 형태의 입호에 해당하며, 화준에는 없는 뚜껑이 있는 유개호여서 구별이 된다. 





주준에 있는 뚜껑의 가장자리가 살짝 올라간 것을 연잎 모양으로 보고 연엽형 뚜껑이라 부르고 있다. 이 형태의 연원을 『세종실록』 「오례」가례(빈례)서례에 실린 준작 그림 설명에서 찾았다. ‘백자청화주해’의 뚜껑을 보면 입지름 가장자리가 살짝 올라가고 최상단에 연꽃봉오리 모양의 꼭지가 붙어 있다. 

사연도와 의례서에 있는 이러한 연잎모양 뚜껑과 유사한 것이 출토된 예가 있을까? 
논문에서는 16세기 관요로 추정되는 도마리 1호, 번천리 9호, 번천리 5호, 곤지암리 1호, 3호 가마터의 출토품에 이러한 뚜껑이 있음(관요 제작 가능성 큼)을 확인하고, 구체적 조형 모습을 짚는다. 그리고 여러 박물관이 소장하는 유개호의 모습을 비교해 사연도와 의례서에 묘사된 것, 관요에서 출토된 뚜껑과 유사함을 찾는다. 다만 이런 특정 형태의 백자호와 연엽형뚜껑 사이의 연관성은 가능성만 제시하고 자세히 파고들지는 않고 있다. 


1584년 기영회도에는 조금 다른 형태-삿갓모양-의 주준 뚜껑이 보이는데, 17세기 사연도에서의 주준의 예, 다른 색의 뚜껑이 그려진 예와 함께 뚜껑을 제대로 다시 만들라 했던 광해군 때의 기록 등을 들어 1)번 기영회도와 17세기 사연도와의 연관 가능성을 짚기도 했다.  

화준과 주준의 진설 방식
이밖에 화준과 주준이 놓여진 방식에 대해서도 추가로 논의한다. 대상의 기영회도에서는 공통적으로 화준은 난간이 장식된 붉은 색 주정(酒亭) 1개 위에 화준 2점이 올려져 있는 방식이고 사이에 유개호 주준이 추가되기도 한다. 주준들은 모두 방형 주탁 위에 유개호 2점이 놓이는 방식으로 표현된다. 1560년의 <서총대친림연회도> 등 다른 그림에서는 주정 1개 위에 1점 단독 등 다양한 방식으로 올려진 것과도 비교했다. 18세기 이후로 가면 화준에 대한 진설 방식은 단일화되는데 주준은 보다 다양하고 유연하게 변화된다.

화준․주준의 진설 방식에 있어서 유연함과 경직성이 시대에 따라 다른 이유에 대해서는 정치, 역사, 사회 전반의 상황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라고 이야기한 후, 적어도 화준과 주준이 모두 진설된 잔치는 그렇지 않은 것보다 높은 레벨임이 분명하다고 추론한다.

제한된 그림에서 묘사된 사례만을 대상으로 하여 더 깊이 나아가지 못한 아쉬움은 있다. 16세기 기영연에 좋은 품질의 청화백자로 제작된 화준․주준이 모두 진설되었다는 사실로 기영연이 우대된 잔치였음을 증명할 수 있다고도 했는데, 남겨진 사연 기록화 자체의 수가 적고 모사본과 원본 즉 제작 시기의 불명확성 같은 조건 때문에 그림 속 도자의 표현을 통해 그림 제작 시기나 모임의 성격 같은 외부 조건을 알아낼 수 있을지는 아직 모호하다. 
SmartK C.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19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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