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옥경,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김홍도 <취후간화도醉後看花圖>의 재검토」, 『미술사학연구』Vol.302, 2019.06, pp.173-198.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김홍도(1745-1806)의 《중국고사도8첩 병풍》 중 <취후간화도醉後看花圖>는 매화와 학, 문인이 그려져 있어 그 동안 북송의 임포(林逋 967-1028)가 서호의 고산에 은거하며 매화와 학을 벗삼았다는 고사를 담은 그림으로 소개되어 왔다. 논문 저자는 작품의 배경과 화면상 모티브를 면밀히 검토하여 그림의 고사를 규명하고자 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김홍도(1745-1806)의 《중국고사도8첩 병풍》 중 <취후간화도醉後看花圖>는 매화와 학, 문인이 그려져 있어 그 동안 북송의 임포(林逋 967-1028)가 서호의 고산에 은거하며 매화와 학을 벗삼았다는 고사를 담은 그림으로 소개되어 왔다. 논문 저자는 작품의 배경과 화면상 모티브를 면밀히 검토하여 그림의 고사를 규명하고자 했다.
그림 상단에는 ‘취후간화醉後看花’ 화제가 단원의 관지와 함께 적혀 있다. ‘취후간화’는 북송대 소옹(邵雍, 1011-1077)의 시 「安樂窩中吟」의 제7수 “좋은 술은 취하도록 마시지 말고, 좋은 꽃은 반쯤 피었을 때 보라[美酒飮敎微醉後 好花看到半開時]”고 한 부분에서 찾을 수 있다.
성리학의 대가 주자(朱子, 1130-1200)도 소옹의 ‘취후간화’를 인용한 적이 있고, 조선의 문인 신흠(申欽, 1566-1628)도 “소씨가 말하기를 ‘꽃을 감상하려면 다 피지 않았을 때 보아야 한다’고 하였는데 이는 대체로 개화 속에는 바로 낙화의 이치가 잠재해 있는 까닭에 이미 피고 나면 떨어지게 될 것을 두려워하게 되기 때문이었다”라고 하는 등 사물의 이치를 통해 자연과 인간을 통합적으로 이해했던 소옹에게 수많은 후대 사람들의 공감이 있었다.
취후간화는 주역에서 ‘해가 중천에 이르면 기울기 시작하고, 달이 차면 이지러진다’는 ‘풍괘(豐卦)’와도 연관된다.
저자는 또한 같은 병풍 속에 있는 <운대주면도>에는 진단(871-989)의 고사가 담겨 있으며 진단과 소옹은 사승관계에 있다는 것, 간송미술관 소장 김홍도의 《중국고사도8첩 병풍》 속 <화외소차도>에는 꽃피는 계절 사마광과 소옹이 만나기로 한 내용이 그려져 있다는 것 등을 통해 해당 그림이 소옹을 표현했을 가능성을 높여주는 근거로 보기도 했다.
<취후간화도>에는 초옥 한 채와 인물들, 매화 한 그루, 학 두 마리가 표현되어 있다. 이중 초옥은 소옹이 낙양에서 안빈낙도의 생활을 즐겼던 ‘안락와’의 이미지로, 담소하는 두 명의 인물은 소옹과 사마광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았다. 서안 위에 놓인 책과 술병 구성은 소옹의 「安樂窩中四長吟」에 서술된 내용과 유사함을 밝혀놓았다.
매화의 경우 소옹이 ‘매화역수(梅花易數)’라는 占卜術을 창안했다는 것으로 매화나무가 소옹의 모티브가 될 수 있음을 역설했다. ‘매화역수’는 그가 매화나무를 관찰하던 중 참새들이 날아와 서로 가지를 다투다가 땅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그날의 연월일시를 근거로 수를 뽑아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견한 역수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매화를 통해 태극의 이치를 보여주는 현인 중 한 사람으로 소옹을 들기도 했던 조선후기 김창흡의 기록 등도 소옹과 매화를 이어주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소옹은 ‘학명지사’라고 불려 전해지는 풍모가 학과 닮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었으며 조선시대 시제로 출제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에 학 모티브도 소옹을 가리킨다고 본 것이다. 정선이 임포의 고사를 그린 <고산방학도> 역시 매화와 학이 함께 그려져 있으나 이는 주희가 언급한 ‘무성무취’한 태극의 본체와 연관되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보았다.
저자는 김홍도의 <취후간화>의 화제와 모티브들이 모두 소옹의 안락와의 정신과 연관됨을 밝혀 이 그림이 <소옹안락와도>임을 규명했다. 소옹 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관물’ ‘선천역학’ ‘안락’ 등의 핵심 개념이 투영된 것으로 태평세의 화락한 기상을 드러내는 것임 또한 말하고 있다. 김홍도가 소옹의 ‘안락와’ 내용을 모두 알고 있는 상태에서 표현했을 것으로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