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열의 투호아집도 연구
김용기: 선문대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동양고전연구 제60집 수록(2015년 9월)
조선후기 중 특히 18세기 후반을 가리켜 문예부흥의 시기라고 부른다. 말할 것도 없이 이 시대가 되면 전과는 비교할 수없이 다방면의 문화, 예술, 학문이 꽃을 피운 때문이다. 실제 미술 쪽만 봐도 정선, 심사정, 김홍도, 신윤복가 같은 기라성(綺羅星) 같은 화가들이 이 시대를 배경으로 속출했다.
또 달리 이 시대는 유흥과 레저의 시대였다고도 할 수 있다. 신윤복이 남긴 풍속화는 새로 등장하는 도시의 유흥문화 없이는 그릴 수 없는 것이고 정선의 실경산수가 크게 유행한 것도 이 시대에 인 금강산 여행 붐을 반영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시대 사정을 그림으로 말해주는 이런 사례가 있다고는 하지만 전체로 보면 극소수이다. 그런 판에 조선후기 문인들의 여가 생활을 그린 그림이 새로 발견됐다면 괄목(刮目)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은 화가로서 이름만 전할 뿐 실물은 단 한 점도 알려진 바가 없다면 더더욱 놀랄 수밖에 없다.
그는 1735년 생으로 이름은 김두열(金斗烈 1735-1781)이고 호는 영중(英仲)이다. 서인 노론의 김장생 집안의 후손으로서 조부 김보택은 영조때 이름 높은 문신 김춘택(김춘택)의 동생이다. 당시 문집 등에는 그가 글씨를 잘 썼고 또 그림에도 조예가 깊은 것으로 전하나 실물은 오세창이 모아 편집한 『근묵(槿墨)』(성균관대 소장)에 서간 한 점이 전했을 뿐이었다.
그러던 중이 그가 가깝게 지내던 문인들과 한양서쪽 산자락에서 어느 해 가을날 저녁 투호를 즐긴 내용을 그림으로 그린 <투호아집도>권이 발견된 것이다. 이 논문은 김두열에 관한 행적 조사에서 당시 아집도의 유행 흔적 그리고 이날 모임에 참가한 문인들와 <투호아집도>권의 내용을 소개한 것이다.
무엇보다 관심은 그림으로 문인들이 투호를 즐긴 내용이 그려져 있어 눈길을 끈다. 투호는 조선시대 내내 양반, 귀족의 놀이 문화를 대표하다 이 시대가 되면 시정으로 내려오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림으로 그려진 것은 정선, 신윤복 외에 작자미상 그림이 두어 점 있을 뿐이다.
<투호 아집도>가 괄목상대인 것인 남종화풍 산수를 배경으로 문인들의 아회(雅會)를 수묵으로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투호도는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었다.
그림 속의 인물은 주인공 김두열 외에 정창조(1733-?), 이병모(1742-1806), 홍상간(1745-1777) 그리고 자건(子建, 미상), 계인(季仁 미상) 회숙(晦淑 미상) 등 일곱 사람이다. 이들은 투호를 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조그만 탁자를 사이에 두고 빙 둘러 앉아 시를 짓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이들 사이로 고 있다. 이들 사이로 여섯명의 동자가 투호와 시짓기, 음식 시중을 들고 있다. 배경 한켠으로 누대가 보이기는 하지만 선염을 써서 가을날 저녁 무렵의 어스름한 분위기를 잘 묘사했다.
글을 보면 그림 속 인물은 일곱이지만 이 중 십여 세 연상인 회숙은 술만 마시고 일찍 자리를 떠 정작 투호놀이에는 빠진 것으로 돼있다. 그래서 회숙의 청으로 발문을 적게 된 배와 김상숙(坯窩 金相肅 1717-1792)는 ‘ 늙은이가 쓸모가 없어 젊은 사람들로 배척을 당한 꼴은 그대나 나나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하는 말을 남겼다.
조선후기 문인풍속을 말해주는 자료가 영세한 점을 고려하면 보다 본격적인 조사로 미술사적 가치를 재확인해볼 필요가 있다고도 여겨진다.(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