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ㅣ <동아시아 대중적 도상의 시각 문화론>
기간 | 2015. 8. 21-8.22
장소 | 일본 교토 도시샤(同志社)대학
글 : 권창규. 글 쓰는 사람. 인문학자이자 한국문학 연구자.
《상품의 시대》 외 여러 책을 썼다. slowgyu@daum.net
2015년 8월 21, 22일. 일본 도시샤 대학에서 <동아시아 대중적 도상의 시각 문화론>이라는 주제로 학술 심포지엄이 열렸다(심포지엄의 주체는 일본의 광고레토릭연구회와 대정이미지(다이쇼 이마주리에) 학회). 한국에서는 김상엽 교수와 필자가 참여했고 일본 각지에서 미술사나 디자인 관계자가 참여했다. 이 글은 그 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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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샤. 한국어로 읽으면 동지사(同志社) 대학. 일본 교토(京都)에 위치한 이 대학은 내게 윤동주와 정지용의 대학이었다. 시인 정지용을 흠모했던 윤동주가 1940년대 초 유학을 갔던 곳. 두 시인의 시비가 나란히 서 있다는 곳. 그래서 한국인들의 교토 여행기를 찾아볼라치면 심심찮게 등장하는 도시샤 대학. 정지용이라 하면 누구였더라~ 갸웃할 수 있겠으나 ‘향수’의 시인이라면 대체로 알 테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으로 시작되어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라는 후렴구가 반복되는 가요의 노랫말이 정지용의 〈향수〉(1927년)라는 시다.
<도시샤대학 이마데가와(今出川) 캠퍼스>(사진 제공: 김상엽)
윤동주 시인이 한국인이 사랑하는 시인 중에 손꼽히는 시인이라면 몇몇 일본인들에게도 비슷하다. 일본과 한국의 근대사에 관심이 있는 일부 일본인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문학가를 꼽자면 단연 윤동주다. 그의 정결한 시가 독자를 모았기 때문이고 그의 비극적인 결말(1945년 2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의 죽음)이 화제를 모았기 때문이다.
그런 윤동주 시인이 정지용을 흠모해서 도시샤 대학으로 유학을 갔다는 이야기인데 이건 별로 놀랄 일이 아니다. 윤동주뿐만 아니라 정지용은 당대의 문학가들이 좋아했던 문학가였다. 당시 문인들의 인터뷰를 보면 《정지용 시집》(1935년)이 애장 목록에서 빠지지 않는다. 근대 문학의 전범이 외국 문학(특히 서유럽과 러시아 문학) 일색이었던 상황에서 특기할만한 일이었다.
도시샤 대학(이마데가와 캠퍼스)에 나란히 서있는 두 시인의 시비. 왼쪽이 윤동주 시인, 오른쪽이 정지용 시인이다.
윤동주 시인의 〈서시〉는 검은 대리석 위에 새겨져 있어 시비 앞에 선 이의 모습을 비추어낸다.
윤동주 시비 옆으로는 무궁화가 심어져 있다. (사진 제공: 김상엽)
2015년에 방문한 시비 앞에는 꽃과 방문록, 펜과 음료와 같은 물건들이 놓여있는데 세월호를 기념하는 노란 팔찌도 보인다. 방문록에는 “2014년 한국은 상식이 실종된 나라였습니다”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누군가가 이곳에 여행 와서도 세월호를 떠올린 거다. 옛 시인들 앞에 80여 년이 지나 어떤 한국인들은 사회적인 울분을 무겁게 내놓고 있었다. 정결한 영혼이었던 윤동주나 감각적인 모더니스트였던 정지용, 두 시인들은 필시 부담스러웠을 게다.
한국인에게 이 곳은 기념할만한 공간이지만 도시샤 대학이 한 켠을 내어준 사실은 놀랍다. 놀란 까닭이 일본의 극우 세력을 생각해서 그런 건 아니다. 만약에 한국이라면 그럴 수 있을까. 옛 식민지였던 나라의 시인들의 기념비를 세운 것 말이다. 한국은 식민지를 경영한 역사가 없기에 다른 예를 떠올려봤다. 만약 베트남전에 참여했던 한국 군대가 베트남 문인을 살해했다고 기념비를 세울 수 있을까? 물론 이 가정법은 헐렁하지만 한국의 역사 인식을 돌아보기엔 충분하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한국인 희생자들의 기념비는 세워졌어도 베트남전에 최대 규모의 군대를 파병했던 한국 현대사에 대한 반성의 기념비가 세워지지는 않는다. 베트남전에서 벌였던 만행에 대한 반성적 역사 쓰기가 드문 현실도 마찬가지 이치다.
다시 도시샤로 돌아와서 윤동주 시인의 기념비가 세워질 1990년대 당시엔 이러쿵 저러쿵 말들이 많았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 이 곳은 한국인과 한국인 유학생들에게는 가깝게 여겨지는 곳이 되고 있다. 그래서 전혀 다른 주제의 학술 심포지엄으로 이 곳을 밟았던 내게도 첫 발걸음은 두 시인의 시비 근처다.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