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일본에서 새로 발견된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의 새 자료인 《칠선생 시화첩》의 자세한 내용이 최근 간행된 일본의 동양미술연구 월간지 『국화(國華)』에 실렸다. 일본의 한국미술 연구자인 이시즈키 히로코(石附啓子)씨가 쓴 이 글에는 《칠선생 시화첩》의 체재를 비롯해 다루고 있는 소재의 내용 그리고 제작연대를 추정하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다음은 내용요약.
2011년에 새로 일본에서 발견된 《칠선생 시화첩》은 표지 제첨(題簽)에 소장자이자 이 시화첩을 현재 상태로 표구한 이케가미 고지로(池上幸二郞, 1908-1985)가 쓴 「칠선생 화병시 정겸재화 소화기오십이월첨(七先生畵竝詩 鄭謙齋畵 昭和巳五十二月簽」 라고 쓰여 있다.
이어서 본인이 쓴 병진년 여름에 ‘화칠선생시의(畵七先生詩意)’라는 제목의 서문이 있고 다음장부터 오른쪽에 겸재의 그림 그리고 왼쪽에 원교 이광사(圓嶠 李匡師 1705-1777)의 제시(題詩)가 각각 16면씩 계속된다.
각 그림에는 낙관 ‘謙齋’와 백문방인 ‘鄭’과 ‘敾’이 찍혀 있으며 이광사의 글에는 주문방인 ‘匡師’와 백문방인 ‘도보(道甫)이 찍혀있다. 겸재의 그림에는 낙관 이외에 4자로 된 화제가 적혀있으나 이는 겸재 필치가 아니다.
그림의 구성은 우선 인물화 5면과 산수화 11면으로 이뤄져 있다. 인물화는 <염계애련(濂溪愛蓮)> <강절소동(康節小東)> <명도춘일(明道春日)> <이천사단(伊川謝丹)> <횡거영초(橫渠詠蕉)> 등의 고사인물화 5점이다.
산수화는 무이구곡도를 그린 것으로 처음에 구곡 전체를 조망한 그림인 <도지전체(道之全體)>에 이어 <저각향학(著脚向學)> <도유원색(道由遠色)> <속루개절(俗累皆絶)> <앙고찬견(仰高鑽堅)> <독견맹득(獨見盲得)> <수처충만(隨處充滿)> <온고지신(溫故知新)> <활연관통(豁然貫通)> <무소장애(無所障碍)> 등이다.
그리고 나머지 한 점은 도산서원을 그린 것으로 화제는 ‘도산퇴계(陶山退溪)’이다.
이 그림에는 각각 이광사가 쓴 시가 마주해 있는데 염계애련에는 주돈이의「애련설」, 강절소동에는 소옹의「소동음(小東吟)」, 명도춘일에는 정호의 「춘일우성(春日偶成),」 이천사단에는 정이의
「‘지성통성(至誠通聖)」그리고 횡거영초에는 장재의 「파초」 시가 적혀 있다.
그리고 무이구곡도에는 주자가 무이산에 무이정사를 짓고 후학을 가르칠 때 지은「무이도가(武夷櫂歌)」가 쓰여있다. <도산퇴계>에는 『퇴계선생문집』권3에 나오는 「탁영담(濯纓譚)」이 적혀있다.
칠선생이란 제목은 그림의 내용에서 유래한 것으로 북송 신유학을 대표하는 주돈이, 소강절, 정명도, 정이천, 장재 등 북송오자와 남송의 주자 그리고 퇴계선생을 꼽은 것이다. 겸재의 고사인물도 가운데에는 이들을 다룬 그림이 산발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이처럼 첩으로 한데 묶인 것은 이번이 처음에 처음 소개됐다.
이시즈키씨가 이 시화첩의 제작년도를 추정하는 데 쓴 근거는 그림 속에 빈번하게 보이는 거칠고 강한 수직준과 추상화 경향이 드러나는 모습으로서 이를 통해 그녀는 이 기법이 본격적으로 보이는 <내연산 삼추도>(1733-1735년 무렵) 제작시기에서 추상화된 묘사가 눈에 뜨이는 《사공도 시화첩》(1749년) 의 제작이전 사이로 이 화첩의 제작시기를 추정했다. 이때는 겸재의 진경산수화 기량이 원숙기에 도달한 시기로서 구체적으로 보면 1730년대에서 1940년대 전반의 어느 때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