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03(토)
김노암(아트스페이스 휴 관장, 기획자)
임연숙(세종문화회관 전시기획팀장)
소육영(S2A 디렉터)
피지혜(독립 큐레이터)
윤철규, 최문선(스마트K)
아시아의 첫 진출 도시로 서울을 택한 프리즈. 거대 미술 장터가 한국 최대 장터 키아프와 함께 열렸던 지난 주말 코엑스 인근은 미술에 대한 다양한 고객의 방문으로 들썩거렸습니다. 스마트K는 현장에서 활동하는 큐레이터, 기획자, 갤러리스트, 전직 옥션에 근무했던 미술인들이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를 방문하고 나서 이를 어떻게 보았는지, 전망과 우려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볼거리, 즐거운 관객들
다양한 볼거리, 즐거운 관객들
최 두 아트 페어 모두 보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먼저 보신 소감이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윤 제 기억에 아마도 93년 휘트니 비엔날레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때 이후로, 거의 30년 만에 한국 현대미술현장에 외국 미술 관계자들이 가장 많이 방문한 행사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 때는 백남준 선생의 파워가 있었고 국가차원의 지원이 있었다면 이번은 완전히 비즈니스 차원이라는 것이 다르기도 하고, 파급력도 클 것 같습니다. 외국 대형 아트페어 느낌이 물씬 나는 대규모 행사네요.
소 저도 어제와 오늘 이틀 다녀왔는데, 오늘은 특히 일반 관람객들이 많아서 놀라웠어요. 한국인들의 미술과 미술시장에 대한 열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진 촬영이 자유롭다보니 작품 앞에 인파가 많이 몰리는 건 좀 조심스럽더라고요.
김 놀라긴 하겠죠. 그게 BTS 배출한 한국 문화다, 해줘야겠네요(웃음).
소 근데 관객들이 아주 좋아하는 것이 느껴져요. 기대도 많이들 했었고.
최 작품 위주로 보기도 하겠지만 해외 유명 갤러리 이름을 보고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은 듯했습니다. 어, 여기는 뭐 보여주나 하면서요.
임 약도를 보고 그 갤러리를 찾아가기도 하고.
김 저는 난독증인지 읽기가 부담스러워져서 작품제목, 작가, 갤러리 이름 안 보고 그림과 작품만 죽 보면서 돌았어요. 그거 보기에도 너무 벅차가지고. 숙제하듯이 하나하나 체크하면서 봐야겠다, 그래서는 안 되겠더라구요.
임 어쨌든 정부기관이나 미술관 등의 기관 초대 행사가 아니라 사업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와서 이런 큰 행사를 치르고 주목받게 되었다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만큼 한국 시장이 인정받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 기존에 밀레니엄 이후 우리나라 미술 문화를 주도한 게 공공기관들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거든요. 정책적으로, 아르코라든지 예술경영지원센터라든지 그런 기관들도 있고 심지어 키아프도 지원금을 받았었어요. 결국 경제라는 게 정책적 지원 영역은 아닌 거잖아요. 경제적 이윤을 바탕으로 한 욕망들이 뒤섞이고 그 안에서 투쟁하고, 거기서 관계를 맺으면서 생생한 일들이 벌어지는 거죠. 문화정책가가 주도하는 방식은 좋지 않기도 하고 어렵기도 합니다. 그러니 어떤 면에서 보면 시장 자체의 니즈에 의해 이런 일들이 벌어졌다는 것 자체가 좋은 것입니다.
임 키아프 같은 국내 아트페어를 방문하면 어느 한 해는 누구누구 그림들 비슷한 것 죽 나오고, 몇몇 갤러리는 유명 작가 죽 다루고 했었는데, 이번에는 키아프만 논해본다고 하더라도 그런 분위기가 훨씬 줄어들고 다양해졌습니다. 프리즈와 함께 보니 시대도 몇 세기를 아우르고 다양한 예술품들을 볼 수 있었어요.
김 예전에 우리 미대 입시할 때 보면 학원 마다 그림이 달라서 어떤 해는 a학원 출신 애들이 합격이 많이 되고 어떤 해는 b학원 출신들이 합격이 다 돼요. 발표장에서 “우리 다 붙었다!” 그러고 한쪽에서는 “에이~” 그러는 코메디가 연출됐단 말이에요. 좀 아까 임 팀장님이 말씀하신 시장의 쏠림, 이런 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이제는 그런 것들의 의미가 없어진 거죠. 아서 단토의 예술의 종말 이후라는 책 서문에서 모더니즘 이후에 ‘이제 어떤 것도 배제되지 않는다’라고 말하거든요. 해석의 기준이 없고 권위가 있고 없고도 없고, 뭐든지 해도 된다는 얘기인데, 우리 미술 시장에서는 이제서야 조금 그런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거 아닌가 싶어요.
임 그리고 긍정적인 면이, 현대미술 하면 갤러리든 미술관이든 일반 관객한테 뭔가 가르쳐야 된다는 인식 비슷한 게 항상 있었잖아요. 그림을 설명해야 되고 교육적으로 현대 미술 맥락을 알고 감상해야되고, 그랬는데 지금 여기 분위기는 그렇지는 않아요. 자신이 해석하고 자기가 취향껏 보겠다는 것, 이런 분위기가 몇 년 사이에 확 바뀐 느낌이에요. 디지털 발전 덕분인지 접근할 수 있는 정보가 많아져서 그런 건지. .
김 종합적인 원인이겠지요.
임 미술 전공자들이 우월한 입장에서 옆에서 설명하고 하는 장면이 별로 안 보이고. 대중 앞에 겸손하게, 대중이 끌고 갈 수 있는 시대가 된 것도 같아요.
최 페어가 어쨌든 미술시장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인데, 올라오는 그림 흐름의 변화 같은 것이 보이셨는지요?
피 저는 프리즈에서 에곤 실레의 작품들을 실제로 본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해외에서도 실물을 보지는 못했었는데, 아무래도 대가의 드로잉은 남다르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국제적으로 유명한 갤러리들이 많이 참여해서인지 확실히 좋은 작품들 구성이 많이 돋보였습니다. 시장에서 거래가 잘 되는 작품들, 예를 들어 알렉스 카츠, 데이비드 호크니 등의 작품들이 겹쳐 나오는 것들이 보였습니다. 키아프에서는 국내 갤러리들이 박서보, 이배, 이우환 등 유명세 있는 작가들 뿐만아니라 신진 작가의 작품도 볼 수 있어 예전보다 작가군의 다양성이 꽤 있었던 것이 가장 큰 변화로 느껴졌습니다.
30년 넘게 컬렉팅을 하신 분께서 어제와 오늘 이틀 관람을 하셨는데, 개인적인 소회로 이렇게 미술을 즐기는 관람객이 많아졌다니 너무 신기하다고 말씀하시더라구요. 이번에는 특히 그림을 구매하러 오는 분들 외에도 그냥 정말 축제같이 즐기러 가족 단위로도 오는 분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우리나라 미술시장이 더 활성화될 수 있겠구나 싶었고, 선순환의 효과로 우리나라 미술이 앞으로 더 발전할 가능성이 높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판매보다는 새로운 시장, 작가 개척에 중점
소 제 입장에서는 이번 키아프와 함께하는 프리즈가 좀 기대됐던 것이 사실입니다. 미술품을 구입할 기회나 정보가 모두에게 공평한 것은 아니지만 한꺼번에 외국의 메이저 화랑들이 싹 들어오니까, 기본적으로 전속 작가들을 데리고 들어올 테니 보는 재미는 아주 많았습니다. 보도되기도 한 내용인데 이미 가지고 들어온 작품의 대부분이 판매가 확정된 것들이라고 하니 한국 사람들에게 얼마나 돌아갈지 그런 것들도 좀 궁금합니다. 어떤 갤러리의 경우는 작품에 관심이 있는 사람, 그러니까 구매의사를 밝힌 사람 리스트를 받아서 자신들이 고른다고 해요. 작품을 오래 가지고 있을 사람인지, 기존의 포지션이 뭔지 등등. 정황상 그 작가에 대한 웨이팅 리스트를 가지고 홍보 개념으로 고객 확보를 하는 것 같습니다.
최 아, 그럴 수 있겠네요. 페어 자체의 판매량 보다는 그 이후의 시장 진출이 중요하겠지요. 말하자면 플래그샵 같은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겠습니다.
임 저 많은 관람객 중에 작품을 실제로 구매하는 비율은 낮을 것 같습니다.
소 화랑과 전속작가 혹은 다룰 수 있는 작품들을 홍보하고, 우리와 관계를 맺으면 때가 됐을 때 작품을 구매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 이런 면도 있겠고요.
김 고객 관리. 마케팅이죠.
윤 이제 1회가 열렸을 뿐이지만 기대감이 커지긴 합니다. 한국이 문화적으로 이슈가 되는 일이 많아지고 최근에는 해외 미술기사에서도 한국 이야기들을 많이 보게됩니다. 컬렉터도 소개하고 말이죠. 외국 갤러리나 페어 입장에서는 한 번쯤 두드려보고 싶은 시장이었을 것 같습니다. 홍콩은 정치적인 문제 등으로 어려워졌고, 일본 나름대로 완고한 부분이 있고, 싱가포르보다는 이쪽이 시장이 더 크지 않나요?
최 그런데 세계 몇 대 컬렉터 리스트 같은 곳을 보면 싱가포르나 홍콩 컬렉터는 많이 올라와도 한국계를 포함해도 한국 사람은 몇 명 눈에 띄지 않습니다. 아직은.
소 아마 한국 컬렉터들은 공개적으로 오픈하지 않은 까닭도 있을 거예요.
김 싱가포르는 컬렉터는 그렇다치고 자체 아트 신, 그러니까 작가 층이 두껍지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미술시장 면에서는 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죠.
최 작품의 구매력과 더불어서 많은 잠재적 자원이 있는 것이 화랑들 입장에서는 매력적인 시장이겠지요.
소 홍콩이 허브 역할을 했었잖아요. 정치적으로도 그렇고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미술 비지니스 환경이 어려워져서 많은 곳들이 철수했어요. 그래서 서울이 여러 모로 기대를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사이에 한국시장은 커졌고, 일본은 세금 문제가 까다롭다고 하고.
최 기사에서 보기로는 일본이 면세 지역을 만들어서 작품 거래를 용이하게 하겠다고는 했는데 진행됐는지 모르겠네요.
임 한국에서 미술품 거래에 세금이 없지 않나요?
최 양도세는 6천만원 이하는 면제고, 부가세나 관세는 없는데 외환거래에 제약이 많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윤 미술품은 세금이 없는데 공예나 프린트 같은 경우는 또 다르다고도 합니다. 여하간 내일이나 월요일에도 많은 사람들이 몰리겠죠? 정확하게 통계가 나올까요?
임 디지털로 출입 관객을 정확하게 체크하고 있으니 관객 수만큼은 정확하게 나올 것 같아요.
윤 전시는 아니지만 작품의 질이나 규모로 봤을 때 블록버스터 전시 몇 개에 해당할 것 같은데, 교육적 측면에서 봤을 때 그 효과도 크지 않을까요?
최 일반 미술 전시는 관람자의 입장에서 세심하게 기획된 거니까 편하게 볼 수 있는데, 아트페어는 그런 감상의 자세로 볼 수는 없는 듯합니다. 아트페어에서 작품을 보고자 할 때는 자신만의 전략을 가지고 입장해야 해요. 전체를 샅샅이 습득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유명한 작품이나 좋아하는 작가나 스타일을 찾는다든가, 갤러리들이 어떤 전망을 가지고 여기 참여했는지 눈여겨 보겠다든가. 대중들이 여기에 기획전 보는 느낌으로 입장하면 수많은 이미지의 난타에 멘붕에 빠질 것 같습니다.
프리즈와 키아프의 파티, 위너는 누구?
김 각론보다는 총론을, 전체적인 분위기를 봐야겠죠. 다니면서 사진을 찍어보면 키아프와 프리즈의 부스, 관객들 이런 것들의 차이를 볼 수 있었어요.
소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모시고 갔던 분 중에 컬렉션을 하지 않으시고 미술 쪽을 잘 모르시는 분꼐서는 본인 눈에 다 똑같아보인다고 하시더라구요. 기사를 읽고 관심이 생겨 온 일반 관람객들에게는 오긴 했는데 뭐가 뭔지 비슷비슷해 보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 유명한 작가들 말고는 명제표를 들여다보지 않으면 국내 작가와 해외 작가도 구분이 잘 안 되는 경우 많았어요.
임 그렇죠. 그것도 많은 변화 중에 하나입니다.
소 뉴욕의 한 갤러리 부스에 피카소의 여인상 한 점이 있었는데, 인파가 굉장하던데요. 대미언 허스트 나비 앞은 완전히 포토존이에요.
김 저는 시계 좋아해서 브레게 대형 부스가 좋았어요. 시계 하이엔드 브랜드로 전 세계 6개 중에 하나인데 역사적으로 제일 오래됐어요.
윤 이집트 미라, 상형문자가 있는 점토판, 중세 필사본 같은 것들도 있어서 놀랐습니다.
소 로마 시대 흉상도 있었고 고지도 전문 화랑도 있었어요.
윤 그런 작품들도 가지고 들어왔다는 건, 그런 유물 시장도 국내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겠죠?
김 고지도 같은 경우 박물관 같은 기관에서만 거의 콜렉션을 해요. 개인 컬렉터도 몇 명 있지만 컬렉터라기보다 딜러 역할을 하는 거지 실제로 모으는 건 아니니까요. 기관 구매자가 나올까. 삼청동 바라캇에서 동서양 유물들 괜찮은 것들 많이 들여오고 전시하곤 하는데, 잘 팔리는지는...
소 프리즈 서울 참여 화랑 중에 성공적인 결과를 보이는 화랑도 있겠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해외 많은 곳에서 서울에 진출하고 있지만 프리즈를 통해 구분이 확실하게 될 거예요. 한국 시장은 특정 작가에 대한 선호가 치우치는 경향이 조금 있으니까...
김 그런 인식이 좀 있죠.
소 이런 한국 시장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한국 시장이 잘 될 거라고 보고 들어오는 곳은 실패할 수 있을 듯합니다. 어제 가서 보니 몇 군데가 보이더라고요. 작품은 좋은데, 세일에 실패해서다음에는 불참할까봐 또 염려가 돼요. 다양하게 보고 싶은데 다시 점점 좁아지게 될 거 아녜요. 쓸데없는 오지랖일지도 모르지만요.
최 미술애호가, 구입하는 사람들의 취향이 아직 다양하게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또 유행이 빨리빨리 바뀌는 그런 경향도 있는 것 같고요.
김 그런데 그거는 어쩔 수가 없는 거죠. 우리나라가 인구가 적어서 그렇습니다. 인구가 1억은 넘어야 되는데 인구가 적으니까 취향도 적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최 프리즈와 키아프 모두 조금 눈여겨서 찾으려고 해도 동양적인 느낌이 나는 것이나 한국화 계열은 거의 없다시피 한 것 같아요.
윤 그러고 보니 유명한 중국화가들도 잘 안 보였어요. 도자 같은 것도 드물고.
소 위에민준 등 몇 점 외에는 드문 것 같긴 하네요.
윤 기자 출신으로 얘기하자면 언론 입장에서는 이 프리즈가 진짜 엄청난 이벤트예요. 특히 지난 2년 동안에 코로나 때문에 미술 행사가 거의 없었고,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였는데, 크게 이렇게 터지니까 기사가 계속 올라오고 있죠. 그 중에는 CJ 이미경 부회장이 리움미술관에서 프리즈 전야제 파티를 크게 열었다는 기사도 있었습니다. 300명을 모았다고 하는데 소위 말해서 한국 현대 미술의 인사들 아닌가요. 컬렉터, 갤러리스트, 큐레이터, 영화배우, 감독들까지.
김 모 관장이 거기 가서 밤 샜다는 이야기 들었어요.
윤 해외 유명 미술관이나 화랑에서도 오고, 이렇게 부글부글하면 뭐라도 만들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최 아트페어에서의 판매, 서울 시장에 업장 진출 같은 직접적인 효과 말고도 사람들이 모이면서 또 이 네트워크가 생겨나 또다른 관계와 이벤트, 일이 파생되는 거겠죠. 잘 살렸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 작가들이 이 붐을 타고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인가, 젊은 작가들한테 꿈과 희망과 무대를 마련해 줄 수 있는 조언을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김 제 20대를 돌이켜보면 인터넷도 없고 유튜브도 없고 심지어 뭐 조금 이상한 작업을 하면 선생님들이 싫어하고 그랬단 말입니다. 지금 작가들은 그 때에 비하면 지금 키아프나 프리즈 같은 쇼를 통해서 아, 어디 가도 다 이 정도구나. 외국 가도 마찬가지겠구나 느끼게 되고, 그렇다면 이런 분위기에서 내가 이런 작업을 하면 되겠구나라는 자기 자신에 대한 어떤 확신, 분명한 노선을 세울 계기를 줄 수 있어요. 그게 긍정적인 면입니다. 이거 이래도 돼나, 망하는 거 아닌가 늘 갈등하고 조언을 구하러 다니는데 솔직한 조언 듣기 쉽지 않단 말이에요. 작가한테 제일 중요한 건 내 세계관을 구축하는 거고, 내 중심에 대한 믿음 확신이 있어야 되는데, 이건 남이 줄 수는 없고 스스로 부여해야 되는 것이에요. 내 생각 괜찮아, 내 작업 좋아, 이렇게 되기 위해 결국 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수밖에 없어요. 많은 것들을 한꺼번에 보여 주니 작가 입장에서는 이런 큰 쇼들이 아주 긍정적이죠.
자신의 작업을 영국의 다른 작가와 비교하고, 그것도 책에서 보는 과거의 미술사가 아니라 불과 5년, 10년 전의 대가들의 작업을 보면서 자신의 가능성과 해답을 찾을 수 있다면 계기로서 충분한 거죠. 나머지 것들은 다 주변적인 문제들입니다.
임 작가 입장에서 사실 그동안 우리나라 시장이라는 게 갤러리나 시장에서 선호하는 작가에 쏠린다고 느껴질 수 있는데, 이런 기회들로 미술시장에 등장하는 작품들이 다양해지기 때문에 전체적인 민도 이해도도 올라가면서 기존 화랑들도 변화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저 같은 경우에 작업을 하는 사람과 같이 사는 입장에서 보면(웃음) 시장에 들어가지 않은 작가로서 본인의 작업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국 시장에 대해 답답해 하는 면이 있었는데, 화랑들이 더 다양한 것을 다루고자 하게 되고 컬렉터들의 눈에 더 많이 띌 수 있는 기회를 주면, 우리 세대는 그렇게 지나갔지만 다음 세대는 조금 더 기회가 열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학벌 위주라거나 유행이라거나 하는 것에 좌우되는 일이 줄고 이런 분위기라면 개인의 취향으로 골라질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사실 저는 이 행사를 긍정적 기대를 가지고 오지는 않았는데, 막상 보고 나니까 후배 작가들에게 좋은 환경으로 변화할 수도 있겠다는 긍정적인 생각이 좀더 많아졌습니다. 물론 부정적인 면도 없진 않겠지만요.
윤 갤러리나 페어 등 1차 시장이 넓고 깊게 변화하면 2차 시장인 경매 시장도 그에 따라 서서히 변화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경매에 나오는 작품들이 뻔하다고 하는 분들이 많은데 몇 년 지나고 나서 오늘 본 다양한 작품들이 다시 경매에 나오게 될 테니까 분명히 영양제는 될 겁니다.
김 부정적인 부분도 있겠죠. 변화하기 위해서는 고통이 없을 수는 없죠. 점심 먹으면서 한국 피자 얘기했는데 한국 피자가 전세계에서 최고로 맛있게 된 이유가 있잖아요. 살아남기 위해 경쟁해야 하고 연구 개발도 많이 해야 하고. 결국은 작가들이든 콜렉터든 딜러 갤러리스트든 기획자가 됐든 과감하게 자기 식으로 풀어내고 제시하고 도태될 수도 있고 살아남으면 정상이 되는 거죠. 지갑을 열어야 되는 사람, 컬렉터 입장에서는 나이브한 우리보다 훨씬 더 절실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내가 지금 몇 억을 가지고 사야 되는데 도대체 뭘 사야 되나. 하면서 작품을 보기 시작하면 피가 말리는 거죠. 우리는 사실 편안하게 보는 거죠.
임 관람객들을 보니 젊은 사람들도 많았지만 손을 꼭 잡고 다니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도 많이 보이 더라구요. 원로 작가선생님들도 부부동반으로 나오신 분들도 만났는데, 이런 아트페어가 어른들의 놀이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컬렉터 층이 젊어진 만큼 노년층 역시 새로운 미술축제에 관심을 가질 만큼 젊은 노년층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 아닌가 싶어요. 마치 클래식 공연장에 늘 공연을 보러 오는 어른들이 있는 것 처럼요.
소 해외 갤러리들이 자기네 작가들을 한국에 소개하고 팔러 오기도 하지만 아트 페어를 통해서 새로운 작가를 찾는 목적도 있잖아요. 특히나 요즘은 한국에 지점을 두려고 하는 해외 갤러리들이 많습니다. 작가 스튜디오를 방문하고 교류한다고 하고, 키아프도 돌아보면서 젊은 작가들도 분명 볼 겁니다. 그런데 한국의 젊은 작가들을 새로 발굴되는 기회가 많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아트페어에 참여한 젊은 작가들이 한정되어 있으니까요. 열심히 작업하고 있는데 접촉이 없는 분들은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피 프리즈 관계자를 포함한 해외 전문가 20여 분들이 한국 작가 13명의 작업실과 전시장을 방문했다고 해요. 박서보, 김용익, 서용선, 신미경, 문경원&전준호, 김아영, 이예승, 이동기, 최우람, 김나영&그레고리마스 등. 이 작가분들에 대한 책자도 따로 제작되었다고 해서 한국 미술에 대한 실질적인 홍보 효과가 클 것 같습니다.
김 당장 어떤 수익을 내기 위한 목적의 갤러리도 해외에 많죠. 그런데 단단한 구조를 가진 유서깊은 갤러리들은 비즈니스라기보다 즐기는 느낌이거든요. 좋은 작가와 작업을 발굴하는 것 자체가 이들에게는 큰 즐거움이란 말이죠. 꼭 돈이 돼서만이 아니라 갤러리스트, 딜러가 예술가들과 관계를 맺고 자극하고 작업이 확산이 되고. 그런 놓쳐서는 안 되는 본질적인 일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영리든 비영리든 네트워킹과 커뮤니티가 활성화되면 자연스럽게 미술 문화 전체가 좋아지고 재미있어지잖아요.
소 파티들이 엄청 많아졌어요.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그곳에서 만나면서 많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겠죠.
윤 작가가 하는 일 중에 파티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는 일도 있다고들 하죠. 컬렉터나 딜러나 그림만 보는 게 아니라 작가를 만나서 직접 얘기를 듣고 그다음에 평론가도 옆자리에 서서 같이 얘기를 하고 서로 이해가 깊어지고.
소 저도 파티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데, 좀 더 있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게 트렌드 같습니다. 그 문화를 익혀야 할 것 같아서요.
윤 이제 메트로폴리탄이나 LACMA 처럼 갈라쇼, 후원 파티 같은 것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하는 일도 쉽게 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김 강익중 선생님도 백남준 선생님이 함께 다니면서 프로모트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누군가 그런 프로모션의 역할을 해야 하고, 그런 사람이 많으면 좋은 것이죠.
윤 키아프는 프리즈 서울에 조금 비교되는 면이 있었나요? 관람객 수는 아무래도 좀 적어보였습니다. 당연한 것이 프리즈가 프리미엄 리그라면 키아프는 K-리그라 할 수 있으니까요. 역사와 규모 면에서 차이가 나고. 키아프도 화랑협회 직접 운영이 아니라 출자해서 독립된 주식회사를 만들어야 성공적인 아트페어로 발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최 화랑들의 모임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키아프 아트페어만을 생각했을 때는 프리즈와 같이 개최한 이번 전략이 절대 손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프리즈를 의식한 국내 화랑들의 라인업 변화도 있는 것 같고, 외국 화랑의 키아프 부스 유치도 상대적으로 더 쉽지 않았을까 생각되요.
임 키아프는 예전보다 부스 통로 구성도 좀 시원한 느낌이 들고 좋아진 듯해요. 아트페어 자체를 좀더 잘 기획할 필요도 있는 것 같습니다.
김 그런 연출도 중요한데 아까 말씀하셨듯이 시스템, 구조를 선순환되게끔 설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지금의 화랑들의 모임에서는 잘 나가든 못 나가든 화랑 하나가 하나의 의견을 가지고 모이게 되는데, 각자의 이해관계가 있으니 쉽게 과감한 결정은 하지 못하죠. 독립된 키아프라면 비즈니스를 위한 적극적인 마케팅을 할 수 있게 될 겁니다.
소 뭔가 계획이 있지 않으실까요. 예전에는 그냥 키아프라고 했는데, 이번에는 정식 명칭이 ‘키아프 서울’입니다.
김 계획이 있을 것 같긴 합니다.
프리즈 서울 키드, K-아트의 주인공이 될까
임 젊은 사람들이 문화를 다양하게 즐기고, 한국의 예술 인프라도 좋아진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윤 한국의 18세기가 르네상스라고 하지만 일본과 한국의 18세기 미술사를 비교해 보면 작품 수로만 비교해도 우리의 한 스무 배 정도가 됩니다. 일본 에도 시기 화집이 50만 권이라고 합니다. 중국은 100배도 넘을 거예요. 그림을 감상하고 구매하고 하는 일 자체가 적으니 미술 문화의 발달이 점점 차이가 나게 되요. 조선 후기에 그나마 감상문화가 다시 생겨난 것도 자제 군관으로 중국에 따라갔던 젊은 사람들이 다양한 문화적 자극을 받은 영향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아까 얘기한 것처럼 이 시대의 사람들이 어릴 때부터 그림을 보고 훈련을 하면 전체적으로 예술이 풍부해지고 힘이 생기는 거죠.
최 2002년에 월드컵을 어릴 때 본 애들이 지금 자라서 세계적인 선수가 되듯, 이 분위기에서 많은 것을 보고 자란 친구들이 위대한 예술가가 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내가 미대 다니고 있었는데 그때 프리즈가 서울에 와서 가서 봤는데’ 이러면서요. 이들이 받는 문화적 충격은 중년 이상이 느끼는 어지러움과는 다른 거죠.
김 그렇죠. 걔네들은 안 어지럽죠(웃음). 그러니까 저의 20대를 돌아보면 너무 불쌍하게 큰 것 같고(웃음).
임 만약에 작품을 한 점만 산다고 하면 무엇을 고르시겠어요?
저는 하인두 선생님 거 사고 싶었어요. 예전에는 많이 주목받았는데 오랜만에 본 듯해서 반가웠어요.
윤 저는 유심히 보고 하나 찍었는데 얼마냐고 물어보니 7500만 원이라고...
김 저는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 그린 앤디 워홀 작품 너무 좋더라고요.
피 현실적인 여건상 구매할 수는 없겠지만, 아들과 아버지를 그린 호크니의 작품 가격을 물어봤어요. 그중에서 아들을 그린 종이 드로잉 작업이 처음에는 5천만 원인 줄 알았는데 잘못 들은거더라구요. 다시 한화로 계산해보니 5억이더라구요...(웃음) 그리고 아라리오에서 전시했던 안지산 작가의 회화 작품이 좋았습니다.
김 그런데 기본적으로 키아프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약간 창백한 느낌이었어요. 작품도 그렇고 조명 때문인가... 프리즈는 전반적인 분위기가 뭔가 색채감 있고 입체적이라고 해야 될까. 제가 예전에, 2007년에 바젤 아트페어 갔을 때 1층에는 역사가 깊은 갤러리들이 있고 2층에는 비즈니스 잘 하는 기업적 갤러리, 신생 갤러리들이 있었어요. 1층에는 미술사 책에 나오는 작품들이 있고, 사람들의 패션도 다르고, 팔고 싶은 욕망이 보이지도 않고, 이런 거 보여줄게 좋지? 하는 느낌이랄까 그런 느낌이었죠. 2층이 적극적으로 고객에게 설명하는 것과 완전히 달랐어요. 지금 키아프와 프리즈를 보면서 느낀 것이 그 때와 비슷해요. 그 문화적 역량 차이를 무시할 수는 없는 거구나. 자연스럽고 편안한 것과 의식적인 쇼.
최 다양한 작품들이 있어서 누구나 자기 취향에 맞는 것을 찾을 수는 있을 것 같았는데, 아쉬운 점은 동양쪽 미술이 많지 않았다는 것 정도예요.
윤 이번 프리즈에서 고서나 고지도, 채색 사본, 이집트 유물 같은 것을 보면서 더 흥미롭게 즐길 수 있었잖아요. 그런 다양한 부스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좀 했으면 좋겠어요. 조선시대 추사나, 수묵화나 도자, 고미술도 충분히 부스를 만들 수 있는데 말이죠. 건의해도 통하지 않았다는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요.
임 동양화가 작품이 있긴 했어요.
김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존재감이 없었죠. 한국화, 수묵화 뭐 이런 작품들이 실종됐다, 시장은 역시 냉정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최 키아프에서 기획 코너를 내놓는다면 전통적인 회화나 도자 같은 것을 특색있게 꾸며 여러 화랑들이 협력해서 진행하면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소 내년에 프리즈가 기획부스를 만들면 어떨까요. 이런 분위기라면 해외로 소개가 가능할 것 같아요.
김 저도 수묵화를 좀 봤으면 좋겠어요. 하늘에 계신 우리 저 송 선생님이 땅을 치고 계실 듯해요. 여러 가지로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한국화 작가에 대해 글쓸 사람도 많지 않고 어려운 상황입니다.
임 소산 박대성 선생님 뉴욕에서 히트쳤고, 순회전시하고 계시고. 가능성은 있는데 너무 기본적인 토대가 안 돼 있구나 느끼게 되네요.
김 마무리로 얘기하자면, 지금 당장은 키아프가 좀 휘청하는 인상을 줄지 몰라도 제가 볼 때는 약은 쓰다, 건강하게 성장하는 데 있어서 이번 프리즈와 함께한 거는 굉장히 좋은 약이 될 거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윤 네, 맞습니다. 올해 결과가 어떻게 나오고 분석되는지, 또 내년 행사를 기대하면서 즐겁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