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 속의 한국
국가관의 김윤철 외에도 베니스는 한국작가 전시로 성시를 이루었다. 단색조 화가 1세대라 할 하종현(b.1935)은 팔라제토 티토(Palazzetto Tito)에서 화업 60년을 총정리한 작은 회고전을 열어 단색조 회화로의 여정을 드러냈다. 다만 시기별로 비중이 비슷해 그의 주요 화력이라 할 단색조 특히 전성기의 작품에 비중을 좀 더 두었다면 그의 단색조 회화에 있어서의 역할과 화업이 더 분명해졌을 것이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하종현 전시 전경
한지라는 물성을 이용해 작품을 해온 전광영(b.1944)의 팔라초 콘타리니 폴리냑(Palazzo Contarini Polignac)에서 연 ‘시간의 재창조’란 제목의 개인전은 매우 역동적이며 작가의 예술적 의지가 강하게 드러나는 전시였다. 한지라는 부드럽고 약한 독특한 전통소재를 활용해 힘이 넘치고 역동적인 평면 또는 반 입체 또는 입체작품으로 시선을 잡아끌었다. 한지로 세운 건축물도 눈길을 끌었지만, 베니스의 습기를 예상치 못해 한지 자체를 살리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건용 전시 전경
이건용(b.1942)은 카스텔로 공원과 아르세날레 사이의 팔라초 카보토(Palazzo Caboto)에서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바디 스케이프’ 전을 열고 있다. 그의 신체항을 바탕으로 한 회화는 회화라기보다는 개념적인 행위의 결과물이란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소나무로 알려진 사진작가 배병우(b.1950)는 베니스의 자연을 포착한 흑백 사진으로 빌모트 재단 전시장을 채웠다. 마치 흑백의 수묵화로 담아낸 듯한 베니스의 풍경이 낯설지 않다, 도예 회화로 작가로서 입지를 다진 이승희(1958~ )도 지난 2020년 베니스 건축비엔날레 당시 산 클레멘테(San Clemente) 섬의 팰리스 캠핀스키(Palace Kempinski) 정원에 설치한 붉고 검은 도자 대나무 작품이 여전히 꼿꼿하게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서 있다. 욕심 같아서는 더 규모가 컸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배병우 전시 전경
박서보, 이사무 노구치, 단 보
베니스의 모더니즘 건축을 대표하는 폰타지오네 퀘리니 스탐팔리아(Fondazione Querini Stampalia)에서는 한국단색조 회화의 선두 박서보(b.1931)가 베트남의 단보(Danh Vo, b.1975)와 이사무 노구치(Isamu Noguchi, 1904~1988)과 함께 3인전을 열고 있다. 다른 이의 작품을 자신의 것으로 치환하는 능력을 가진 단보의 큐레이팅이 눈에 띈다. 스탐팔리아를 모던하게 바꾼 건축가 카를로 스카르파(Carlo Scarpa, 1906~78)가 리디자인한 바로크와 현대가 교차하는 공간, 여기에 박서보의 은은하면서 아우라가 넘치는 평면과 화지를 이용한 노구치의 온후한 아카리 램프(Akari Lamp)의 빛이 조화를 이루도록 하여 공간을 가득 채웠다. 특히 바로크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적인 걸작들과 공간을 공유하며 수 세기의 시간과 동서 간의 대륙을 아우르는 예술적인 대화는 울림이 되었다. 『관계미학(Relational Aesthetics)』의 저자 프랑스의 니콜라 부리요(Nicolas Bourriaud, b.1965)가 큐레이팅하여 볼라니 궁(Palazzo Bollani)에서 연 《B행성, 기후변화 그리고 새로운 숭고(Planet B, Climate Change and the New Sublime)》에는 양혜규(b.1971)가 참여해 디지털 방식의 인쇄된 신작 <주문-엮임(Incantations Entwinement>(2022)으로 함께하고 있다
초현실적인 아쉬움은 왜?
코로나 19로 인해 모든 것이 정지되고 연기된 지난 2년 반은 사람들도 얼굴의 반 이상을 가리고 생활하는 초현실적인 시간이었다. 따라서 2022년 베니스 비엔날레를 초현실주의와 접목시켜 시대와 시대정신을 읽어보려는 노력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초현실주의를 통해 여성주의-페미니즘을 재고하려는 의도는, 초현실주의자들이 본래 성에 대한 인식이 매우 마초적이었음을 고려하면 좀 의외다.
사실 초현실주의자들은 가족과 일부일처제의 답답한 제도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하면서도 ‘성의 해방’을 주장했지만, 그들은 규범적으로 남성적이고 이질적인 용어로 해방을 추구했고 따라서 여성들을 부수적인 존재로 여겼던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초현실주의자들의 양성평등에 관한 인식은 남성 중심의 매우 편의적인 경향을 띈다. 초현실주의 교주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 1896~1966)이 보여주는 재구성되지 않은 동성애에 관한 공포증은 초현실주의가 에로틱한 예절에 대한 도전으로 동성의 욕망을 배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초현실주의 운동에는 많은 수많은 여성 예술가들이 합류해 중심에 서서 활동했지만 이 운동의 지속적인 남성 우월주의적 성향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실제로 이들 내부에서 ‘여성’의 미학적 범주과 ‘여자’의 역할은 부수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특히 여성은 합리주의적인 지성보다는 원시적이고 구체화된 직관을 부여받은, 길들여지지 않은 자연에 가깝다고 가정했다는 점에서 ‘원시적’이라고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또 이들은 여성뿐만 아니라 타 인종이나 지역에 관한 우월감으로 무장된 제국주의적인 시각을 여전히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타자와 타문화를 ‘원시’라 규정하고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이상한 것, 또는 새로운 것, 아니면 기이한 수집품으로 인식했다. 또 여성 초현실주의자는 남성 초현실주의자보다 더 높은 정신적, 미학적 능력을 보여주고 초현실주의의 선봉에서 뛰어 나갔지만, 결코 남성의 사회적 또는 직업적 권력을 얻을 수는 없었다, 따라서 브르통의 성에 대한 전복적인 혁명은 실은 위선에 가까운 것이었다. 대부분의 백인 남성 초현실주의자들은 성차별, 부르주아 관습, 민족주의적 신화, 종교적 독단을 조장하며 ‘원시주의적’이며 야만적인 것들을 선호하는 “같잖은 부르주아”였다. 그들의 도발적인 주장과 혁명적인 생각에도 불구하고 남성 초현실주의자들은 여전히 여성들이 작가이기 이전에 음식을 대접하고 남편과 가족에게 봉사하는, 전형적인 여성의 가사노동을 가장 우선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Leonora Carrington Chiki, Your Country (1944)
이들은 예술이 의식을 탐색하는 주요한 도구라는 전근대적 생각에 뿌리를 두고 있었으며, 우리가 인간의 이성 너머에 있는 슬픔, 기억, 영역과 접촉할 것이라고 믿었다. 브르통의 임무는 초현실주의의 규칙을 제안한 뒤 모두가 따르도록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성적, 도덕적, 미학적 검증 없이, 무의식적으로 마음 가는대로 어떤 규칙도 없이 자유롭게 작품을 만들라고 요구하면서 구성원들에게 다시 엄격한 규칙을 따르라고 하는 스스로의 모순에 빠졌다. 따라서 이런 모순을 가진 초현실주의를 오늘로 소환해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 초현실주의자들이 원시적인 수집품으로 여긴 대상의- 인종 갈등, 빈부의 격차, 난민의 문제, 종교 갈등, 민족문제, 과학의 발달과 자연파괴, 환경문제, 전쟁과 기아 등등의 상호모순적인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지, 그것을 이용해 ‘공생’과 ‘공존’을 통해 ‘상생’의 길을 모색하려는 시도가 타당한 것인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이런 시도는 의도가 선하면 결과도 좋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하게 되는 도전이지만 작품의 동기나 발상 그리고 소재가 좋으면 작품도 좋다는 전제가 항상 참은 아니라는 점이 의문의 답이기도 하다. 게다가 초현실주의자들이 애써 여성을 부정한 것과 마찬가지로 ‘동양’은 없다는 점 또한 중요하다. 미술과 미술사 속에서 여성을 오롯이 되살려내려는 의도는 좋았지만 동양이 소외된 상황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참여 작가 213명 중 일부, 생존 작가 중 10여 명이 동양 즉 아시아권 작가들이지만, 전체적으로 아시아를 비롯한 아프리카, 남미의 작가 중 소위 네이티브 한 작가들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은 주제가 연역적인 ‘꿈의 우유’가 아닌 귀납적인 ‘우유의 꿈’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 많은 여성 작가들의 면면을 피부색이나 출생 국가로 따져 유색인종에 해당한다 하더라도 유럽이나 미주에서 태어난 이들이 대부분이다. 동양, 아시아권의 작가 중 작고 작가로는 일본 남성으로 쿠도 테츠미(Kudo Tetsumi, 1935~90)와 이케다 타츠오(Tatsuo Ikeda,1928~ 2020) 등 2인에 불과하다.
20세기 미술의 한 갈래인 초현실주의의 개념과 거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초현실주의의 근간인 오컬트, 신화, 전설, 괴담, 초자연 등 동양적인 초현실주의적 요소를 근간으로 하는 동양의 전통회화와 작가에 관한 관심과 연구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으로 베니스를 떠나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여자는 천재가 될 수 있고, 내가 소중히 여기는 모든 정신적 자질을 구현할 수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것은 나의 모든 흥미를 잃게 하는 신체적 차이”라는 앙드레 브르통의 생각처럼 여전히 서구와 비서구라는 인식도 아직 강고하다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