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준모(큐레이터,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베니스로 향하는 길은 멀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상공을 비켜가면서, 항로가 길어져 평소보다 2시간을 더 날아간 후 밤늦게 베니스의 마르코폴로 공항에 닿았다. 13번째의 비엔날레 방문이었지만 어느 때나 마찬가지로 새로운 작가와 작품들을 만날 기대와 흥분으로 설렜다. 2년 반 만에 국제선에 올랐지만, 비행기 안은 모든 승객이 마스크를 써서 얼굴을 반 이상 가린 초현실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사실 현대미술을 만나는 일은 재미있지만 곤혹스럽고 난처해지는 일이다. 더욱이 오늘날의 현대미술이 단순하게 미술 또는 미학적 실천보다는 정치, 사회, 인종, 성, 종교 등등의 세상 모든 일에 간섭(?)하려 드는 오지랖 넓은 행보 때문이다. 미리 살펴본 비엔날레에 관한 정보를 토대로 시간이 없는 이방인은 언제나처럼 주어진 시간 안에 많은 전시회를 보아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보고 싶은 전시를 지역별로 지도에 표시해서 동선을 미리 짜두었다. 하지만 골목을 돌아설 때마다 만나는 크고 작은 전시에 눈과 마음을 뺏기다 보니 시간은 모자랐고 여전히 갈 길은 바빴다.
게다가 역시 베니스는 베니스였다. 팬데믹으로 관광객이 적을 것이란 예상은 여지없이 깨졌다. 의외로 많은 관광객으로 바포레토 즉 수상버스는 만원이라 탈 수가 없어 두어 대를 그냥 보내야 했다. 길에서 빤히 수상버스를 보면서 탈 수 없는 상황은 객지에서 온 여행자에게는 길(?)에 시간을 버려야 하는 속수무책의 시간이었다. 나중에 호텔로 돌아와 뉴스를 보니 올해 부활절 주말 동안 베니스를 방문한 여행자가 16일 120,000명, 17일 158,000명으로 급증했다는 것이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카스텔로 공원(Giardini di Castello)과 아르세날레(Arsenale)에서 열리는 본전시와 참여국이 자신의 국가관에서 펼치는 국가관 전시 그리고 비엔날레 측의 승인을 받고 약 20,000유로 가량의 참가비를 내야하는 병행전시(Collateral Events) 외에도 베니스 전역에는 숫자를 파악할 수 없을 만큼의 크고 작은 전시가 홍수(?)를 이룬다. 우선 체류 일정상 월, 화에 문을 닫는 시내에 펼쳐지는 병행전시와 비엔날레를 계기로 마련된 수많은 전시를 먼저 보고, 월, 화요일에 국가관 전시와 본전시를 보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다. 나름 작전(?)을 세워 2022년 59번째 베니스 비엔날레를 공략하기로 한 것이다. 국가관이 위치한 나폴레옹 시절에 조성되었다는 카스텔로 공원의 러시아관은 최근 우크라이나를 침공 이후 큐레이터와 작가들의 보이콧으로 굳게 문이 닫혀있고 중앙관 앞에는 우크라이나 광장(Piazza Ucraina)이 펼쳐져 있다.
꿈의 우유,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여성의 비엔날레
카스텔로 공원에 자리한 중앙관 입구에 우뚝 선 녹색 코끼리 상이 이번 비엔날레의 모든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최초의 이탈리아 출신의 여성 감독인 체실리아 알레마니(Cecilia Alemani, 1977~ )의 의도를 명징하게 드러낸다. 이번 비엔날레의 황금사자상 평생공로상(Golden Lion for Lifetime Achievement)을 수상한 녹색의 완벽한 카타리나 프리츠(Katharina Fritsch, 1956~ )의 ‘코끼리 상’은 여성 중심사회였던 과거를 암시한다. 늙은 암코끼리가 항상 무리를 이끈다는 코끼리 사회의 모계중심의 질서를 통해 이번 비엔날레의 공식 주제인 ‘꿈의 우유(Dream of Milk)’의 속내는 ‘여성’이란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그리고 다시 본전시가 이어지는 아르세날레 입구에서 ‘여성’을 상기시키고자 쿠바 출신 벨키스 아욘(Belkis Ayón, 1967~99)의 가상의 모계 공동체를 표현한 흑백판화에 둘러싸인 시몬 리(Simone Leigh, 1967~ )의 눈이 문질러진 거대한 여성 반신상 ‘벽돌집(Blick House)’이 관객을 맞았다.
Katharina Fritsch, Elephant, 1989
전시는 평생 예술 분야에서 일했지만, 미술사에서는 가십 거리로 또는 잊혀진 모든 여성작가를 소환해 한풀이를 해주고 있다는 느낌이다. 본 전시 ‘꿈의 우유’에는 58개국 213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그 중 180명의 작가가 비엔날레에 처음 참여하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작가다. 또 213인 중 여성이 192명으로 거의 90%를 차지하며 남성은 고작 21명, 10%에 불과하다. 또 작고 작가가 어느 비엔날레보다 비중이 높아 95명으로 44%를 차지하며 작고 작가 95명 중 여성은 88인, 남성은 7인이다. 2002년 퐁피두에서 열렸던 <초현실주의 혁명>(La Révolution surréaliste)전에 참여한 60여 명의 작가 중 21명이 여성이었던 점을 기억하면 특히 이번 전시는 여성들의 초현실주의 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전시는 근대 이후 여성 미술사의 맥락을 정리하듯 역사적 즉 박물관학적인 전시로 구성되었다. 그래서 과학적 세밀함과 예술적 아름다움으로 식물과 곤충을 그렸던 독일의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Maria Sibylla Merian, 1647~1717)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그러나 전시가 지나간 시간만 집중한 것은 아니다. 오늘도 내일의 역사라는 점을 고려해 대략 1980~95년에 태어난 M세대가 60명에 달하며, 1965년에서 79년에 태어난 Z세대에 속하는 작가도 30명에 달해 이미 작가로서 자리매김한 이들에게는 쇼케이스가, 신진작가에게는 도약대가, 미술사에서 잊혀진 작가들에게는 재활의 기회를 주는 비엔날레의 책무를 성실하고 균형있게 반영했다.
Sandra Mujinga, Sentinels of Change 2021, Venetian Arsenale의 The Milk Of Dreams 전시회, 설치
영국에서 태어난 멕시코화가 레오노라 캐링턴(Leonora Carrington, 1917~2011)의 동화책의 제목에서 빌어온 전시의 주제는 아이리쉬인 유모가 들려주던 켈트 신화와 신비로운 마법에서 비롯된 그녀의 생각을 빌어 오늘의 인간 또는 남성 중심주의의 종말을 상상하며, 인간이 아닌 것과 동물, 그리고 지구와 새로운 교감을 희구한다. 종과 종 사이, 유기물과 무기물, 생물과 무생물간의 친족감으로 새로운 공생의 그물망을 통해 모두를 묶어내는 상호의존성을 지향한다. 같은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란 형제도 성격과 몸집에서 차이가 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본전시는 이런 각기 다른 세계에서 온 생물과 무생물, 종과 종, 동물과 식물, 사람과 식물 또는 동물이 결합해서 나타나는 다양한 변종들을 만나는 상상의 여행 속으로 관객들을 이끌고 간다. 따라서 이 전시는 1. 신체와 그 변형의 표현, 2. 개인과 기술 간의 관계 3. 신체와 지구 사이의 관계란 대주제 아래 ‘5개의 캡슐’을 통해 시간을 초월해 주제를 중심으로 전시의 서사를 이끌어간다. 첫 장은 ‘마녀의 요람(The witch’s cradle)’이다. 초현실주의, 미래파, 바우하우스, 할렘 르네상스 운동과 같은 20세기 아방가르드를 다루는 이 장에서는 레오놀 피니(Leonor Fini, 1907~1996)의 작품처럼 초현실주의의 진부한 표현을 전복시키는 변태적이고 모호한 여성상이 등장한다. 캐롤 라마(Carol Rama, 1918 ~2015)와 현대작가 크리스티나 퀄레스(Christina Quarles) 처럼 고전적인 여성상 표현에 반항하는 몸, 자신의 몸의 일부를 캐스팅해서 일상적인 물건과 결합하는 안드라 우르스타(Andra Ursuta)의 하이브리드 조각부터 사라 엔리코(Sara Enrico)의 소프트한 조각, 키아라 엔조(Chiara Enzo)의 초현실적인 작은 작품에서 인체와 그 변형에 대한 정교한 성찰을 통해 다르지만 같은 매개로서의 신체를 다루고 있다.
두 번째 캡슐은 ‘매혹의 기술(The technologies of enchantment)’로 신체와 기술의 관계를 무대로 끌어낸다. 추상적이고 사이버네틱한 언어를 통해 추상과 신체를 자각하고 기술에 대한 오늘의 우려를 담아낸다. 빛과 움직임을 통해 인식을 바꾸는 난다 비고(Nanda Vigo, 1936~2020), 지각이론에 기반한 기하학적인 컴퓨터 작업의 그라치아 바리스코(Grazia Varisco, 1937~ ), 고도의 기술적인 컴퓨터 기술로 제작한 울라 위겐(Ulla Wiggen, 1942~ )의 작품이 등장한다.
세 번째는 ‘괘도를 선회하는 몸(Orbiting Body)’에서는 신체와 언어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 작가와 지식인들은 ‘언어’를 해방의 도구로 쓴다. 이 캡슐에는 포르투갈의 동화와 자전적 삶을 결합해 관계의 갈등과 억압의 세계에서 여성의 경험을 조각과 회화로 말하는 폴라 레고(Paula Rego, 1935~ ), 언어, 기억, 해체, 멸종, 망명을 주제로 작업하며 생태적 파괴, 문화적 균질화, 경제적 격차가 낳은 가난한 이들의 권리를 박탈하는 정치에 주목해온 바 있고, 이번 비엔날레에서 카타리나 프리츠와 함께 황금사자상 평생공로상을 공동으로 수상한 세실리아 비쿠냐(Cecilia Vincuña, 1948~ ), 퍼포먼스로 개인들 간의 공생과 기생의 문제를 탐구하는 알렉산드라 피리치(Alexandra Pirici, 1982~ )등이 참여하고 있다.
네 번째는 ‘개인과 대지(Between individuals and land)’로 인류문명의 근간이 되는 자질구레한 잎, 표주박, 조개껍질, 그물, 박쥐, 어깨끈, 자루, 병, 냄비, 상자, 용기 등으로 섬세하고 작은 수공예적인 작품들로 구성된다. 아름다운 곡선을 취한 형태와 몽환적인 분위기의 철사로 짠 조각으로 수공예적 조각을 완성한 루츠 아사와(Ruth Asawa, 1926~2013)의 자궁과 같은 의인화 된 조각과 콜롬비아의 델시 모렐로스(Delcy Morelos, 1967~ )의 “지상낙원”(2022)은 안데스의 우주론과 아마존 문화에 공감해서 인간과 주변 환경 사이의 관계에 대한 관찰, 폭력의 근원을 찾는 절박함이 흙으로 만든 미로로 나타난다. 그 흙에는 꿀과 계피, 카카오 가루, 향신료가 섞여 대지의 힘과 자연 그대로의 재료를 동시에 보여주는 어머니의 자궁 같은 공간으로 만든다. 마지막 다섯 번째 캡슐은 ‘사이보그의 유혹(Seduction of the Cyborg)’이다. 전시는 포스트 휴먼, 포스터 젠더, 인간과 인공의 융합과 그 관계, 권한의 부여와 억압의 도구로서의 미디어의 역할, 기술 발전의 도덕적 문제 등을 다루며, 미디어아트에 디지털 아트의 형식을 도입한 린 허쉬맨 리슨(Lynn Hershman Leeson, 1941~ )의 1994년 제작한 작품 제목에서 빌어왔다. 린은 기술의 도덕적, 윤리적 문제를 탐구해 왔다. 구글타임즈의 인디아나 존스를 자처하는 마르게리트 위모(Marguerite Humeau, 1986~ )의 조각과 삶에 관한 생각과 경험, 죽음과 시간을 탐구하면서 자연의 정원을 재현한 오코요몬(Precious Okoyomon, 1993~ )의 엔트로피 정원은 그의 “지구의 씨앗은 어디에나 이식될 수 있으며 적응을 통해 생존할 것”이라는 신념을 드러낸다. 영화감독 디에고 마르콘(Diego Marcon, 1985~ )의 “부모의 방”(2021)은 한 가족의 죽음을 마치 남의 일처럼 반추하는 애니메이션이다. 이 캡슐에는 한국의 해부된 신체 일부를 연상시키는 불편한 종말론적 인조 생물체의 이미래(1988~ )와 사람과 기계 사이에서 서로 어떻게든 조립이 되는 기이한 관계 즉 불편하지만 감내해야 하는 상황을 추적하는 정금향(1980~ )이 포함된다.
Tau Lewis, Angelus Mortem (2021) at the Venice Biennale
두 번째 캡슐은 ‘매혹의 기술(The technologies of enchantment)’로 신체와 기술의 관계를 무대로 끌어낸다. 추상적이고 사이버네틱한 언어를 통해 추상과 신체를 자각하고 기술에 대한 오늘의 우려를 담아낸다. 빛과 움직임을 통해 인식을 바꾸는 난다 비고(Nanda Vigo, 1936~2020), 지각이론에 기반한 기하학적인 컴퓨터 작업의 그라치아 바리스코(Grazia Varisco, 1937~ ), 고도의 기술적인 컴퓨터 기술로 제작한 울라 위겐(Ulla Wiggen, 1942~ )의 작품이 등장한다.
세 번째는 ‘괘도를 선회하는 몸(Orbiting Body)’에서는 신체와 언어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 작가와 지식인들은 ‘언어’를 해방의 도구로 쓴다. 이 캡슐에는 포르투갈의 동화와 자전적 삶을 결합해 관계의 갈등과 억압의 세계에서 여성의 경험을 조각과 회화로 말하는 폴라 레고(Paula Rego, 1935~ ), 언어, 기억, 해체, 멸종, 망명을 주제로 작업하며 생태적 파괴, 문화적 균질화, 경제적 격차가 낳은 가난한 이들의 권리를 박탈하는 정치에 주목해온 바 있고, 이번 비엔날레에서 카타리나 프리츠와 함께 황금사자상 평생공로상을 공동으로 수상한 세실리아 비쿠냐(Cecilia Vincuña, 1948~ ), 퍼포먼스로 개인들 간의 공생과 기생의 문제를 탐구하는 알렉산드라 피리치(Alexandra Pirici, 1982~ )등이 참여하고 있다.
네 번째는 ‘개인과 대지(Between individuals and land)’로 인류문명의 근간이 되는 자질구레한 잎, 표주박, 조개껍질, 그물, 박쥐, 어깨끈, 자루, 병, 냄비, 상자, 용기 등으로 섬세하고 작은 수공예적인 작품들로 구성된다. 아름다운 곡선을 취한 형태와 몽환적인 분위기의 철사로 짠 조각으로 수공예적 조각을 완성한 루츠 아사와(Ruth Asawa, 1926~2013)의 자궁과 같은 의인화 된 조각과 콜롬비아의 델시 모렐로스(Delcy Morelos, 1967~ )의 “지상낙원”(2022)은 안데스의 우주론과 아마존 문화에 공감해서 인간과 주변 환경 사이의 관계에 대한 관찰, 폭력의 근원을 찾는 절박함이 흙으로 만든 미로로 나타난다. 그 흙에는 꿀과 계피, 카카오 가루, 향신료가 섞여 대지의 힘과 자연 그대로의 재료를 동시에 보여주는 어머니의 자궁 같은 공간으로 만든다. 마지막 다섯 번째 캡슐은 ‘사이보그의 유혹(Seduction of the Cyborg)’이다. 전시는 포스트 휴먼, 포스터 젠더, 인간과 인공의 융합과 그 관계, 권한의 부여와 억압의 도구로서의 미디어의 역할, 기술 발전의 도덕적 문제 등을 다루며, 미디어아트에 디지털 아트의 형식을 도입한 린 허쉬맨 리슨(Lynn Hershman Leeson, 1941~ )의 1994년 제작한 작품 제목에서 빌어왔다. 린은 기술의 도덕적, 윤리적 문제를 탐구해 왔다. 구글타임즈의 인디아나 존스를 자처하는 마르게리트 위모(Marguerite Humeau, 1986~ )의 조각과 삶에 관한 생각과 경험, 죽음과 시간을 탐구하면서 자연의 정원을 재현한 오코요몬(Precious Okoyomon, 1993~ )의 엔트로피 정원은 그의 “지구의 씨앗은 어디에나 이식될 수 있으며 적응을 통해 생존할 것”이라는 신념을 드러낸다. 영화감독 디에고 마르콘(Diego Marcon, 1985~ )의 “부모의 방”(2021)은 한 가족의 죽음을 마치 남의 일처럼 반추하는 애니메이션이다. 이 캡슐에는 한국의 해부된 신체 일부를 연상시키는 불편한 종말론적 인조 생물체의 이미래(1988~ )와 사람과 기계 사이에서 서로 어떻게든 조립이 되는 기이한 관계 즉 불편하지만 감내해야 하는 상황을 추적하는 정금향(1980~ )이 포함된다.
델시 모렐로스(Delcy Morelos), 2022, 지상낙원
본전시의 원전 같은 느낌의 페기 구겐하임의 전시 ‘초현실주의와 마술: 마법에 걸린 모더니티(Surrealism and Magic: Enchanted Modernity)’은 40여개 해외미술관에서 대여한 60여점과 자체소장품 30여 점으로 구성된 초자연적(Occult)이며 강령술(Necromancy)적 요소가 짙은 신비한 또는 신비주의적인 요소가 강조된 여성작가 중심의 초현실주의 전시다. 억압된 충동과 욕망을 실처럼 연결하고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