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박 작가는 사람과 반려 식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복합적인 문제를 작품화한다. 반려 식물은 자연을 떠나 인간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생명체이자 병들면 치유해 줘야 하는 대상이다. 김이박 작가는 식물과 관련된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제시하는 작품 외에도 죽어가거나 병든 식물을 치유하는 작업도 병행한다. 작가는 병든 식물을 치유하기 위해 증상과 식물이 자라는 환경을 체크하고 식물의 보호자에게 해결책과 개선점을 제시한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살릴 수 없으니 버려라”라며 쓴소리도 하고 한때 ‘욕’을 주제로 작업하던 것이 이해될 만큼 냉소적인 유머를 던지거나 진지하게 식물 하나하나 증명사진을 찍고 그들에게 ‘격’을 부여하여 아연하게도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런 그의 말과 행동에서는 따뜻함이 느껴진다.
김이박,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들을 사랑하는 이유>, 피그먼트 프린트, 조화, 가변크기, 2020
꽃 장식이나 화환을 축하 또는 위로의 의미로 사용하곤 했기 때문일까? 작품에 기록된 내용은 자연스레 기념을 위한 의례나 추도의식과 연결된다. 합정지구 윈도에 크게 걸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들을 사랑하는 이유>는 거대 선인장 사진 주변에 꽃 장식을 한 작품이다. 작가는 원래 사진 주변에 국화를 장식하려고 했지만 코로나 상황에 죽음의 이미지를 피하기 위해 국화 대신 거베라와 백합으로 화려하게 장식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애도보다는 축제처럼 느껴진다. 한편 문화비축기지에 흩날리는 <그동안 정말 고생하셨습니다>의 리본들은 마을 입구 당산나무나 성황당에 걸어 놓던 오방색 띠를 연상케 한다. 어쩐지 리본에서는 죽음이 연상되지만 이 리본들에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이름과 염원을 담은 내용으로 차 있다. 이렇게 꽃 장식과 화환은 죽음이 아닌 살아있는 자들을 위한 위로이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개체이다.
김이박, <그 동안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리본,현수막,조화, 가변크기, 2020
김이박 작가는 식물을 작품의 미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소재’가 아닌 인간 삶을 반영하는 ‘주제’로 사용하여 식물이 자라는 일련의 과정들을 담기도 하고, 자신의 성장과정과 식물의 모습을 오버랩하기도 한다. 식물에게 쏟는 애정과 나의 삶의 과정이 반려 식물에게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식물의 상태는 나의 삶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이박 작가의 작품이 때로는 냉소적이고 생로병사라는 삶의 어두운 부분을 담고 있음에도 작품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병든 식물을 치료하면서 그 안에 깃든 나의 병과 아픔까지 위로받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