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에 어떻게 변화하는 실제의 시공간을 옮길 수 있을까? 2차원 평면에 3차원 공간을 담는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회화적 평면 속 그림을 공간으로 느낄 수 있는 건 시각적 경험과 회화적 상징이 상호작용하기 때문이다. 명암법속에서 입체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은 하나의 태양 아래서 원통을 본 경험과 관련이 있다. 실제 공간에서도 빛의 위치에 따라 형상이 모호하게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전형적인 명암법은 고대의 철학자들이 생각했듯이 이데아에서 온 전형적인 형상이 아니라, 형상을 가장 인식하기 쉬운 빛의 위치를 상정하여 그린 것이다. 20세기 동안 회화적 환영에 대한 비판의 시기를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원근법과 명암법은 유효하며 이러한 기법들은 나름의 자기-완성적 논리를 가지고 회화적 관념의 세계를 지탱한다.
Dialogue, 97 x 97cm, Oil on Canvas, Plexiglass, 2018
최은혜 작가는 이런 회화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을 미학적이고 감각적으로 풀어간다. 작가는 감각으로는 느낄 수 있지만 개념적으로 표본화할 수 없는 것들을 포착하여 실재와 가상, 물질과 비물질, 있음과 없음 등 모순적인 것들을 그것을 인식하는 방식의 차원에서 연결한다. 시각적 사유에서는 고정된 개념보다는 시간 속에서 변화하는 것들의 일관성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작가는 이를 위해 <Dialogue>시리즈에서는 회화적 세계에서 존재하지만 실제 세계에는 존재할 수 없는 것들과 실제 세계에만 존재하는 것을 그림자로 연결한다. <Dialogue>시리즈에서 회화적 평면에 돌출된 나무막대가 그림자를 드리우며 환영과 실제 사물 사이를 오간다. 그림자는 그림 속에 그려진 유사 그림자들 속에서 이미지의 일부가 되기도 하고, 막대로 만든 큐브로 연결되기도 하면서 관념으로 해석할 수 있는 2차원 이미지와 3차원적 구조물이 하나가 된다.
Dialogue, 97 x 97cm, Oil on Canvas, Plexiglass, 2019
Dialogue, 130 x 130cm, Oil on Canvas, Colored stick, 2017
정제되고 섬세한 작품의 외관과 달리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에서 작가적 고민의 깊이와 스케일을 엿볼 수 있다. 고정된 회화 이미지를 변화하는 실제 세계와 진동하게 하여 회화적 세계와 삶을 연결하려는 시도는 회화의 근원에 대한 질문이자 한계에 대한 도전이다. 최은혜 작가의 회화적 난제들에 대한 야심찬 도전이 어떤 해답을 만들어 나갈지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