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세린
연적은 문자를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 먹을 갈아내는 벼루나 안료를 갈아둔 도자기*에 물을 붓는 용도로 사용된 그릇이다. 먹이나 안료의 농도를 조절해가며 물을 부어야 하기에 연적은 사용자가 필요한 만큼 붓는 양을 조절할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이에 물이 나오는 주구(注口)가 좁고 동체에 두 개의 구멍을 내어 공기를 조절할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도1. <청자거북이모양연적>, 고려 12세기, 개성출토, 국립중앙박물관
우리나라에서는 최소 삼국시대부터 벼루와 먹이 사용된 흔적이 보이므로 연적 또한 비슷한 시기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고려시대 청자에서 거북이, 표주박, 오리 등 다양한 형태와 조형을 갖춘 유려한 장식의 연적들이 전해진다.
도2. <철제은입사연적>, 조선후기,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도 마찬가지로 청화, 철화, 양각 등으로 표면이 장식된 도자 연적과 입사, 도금 등 금속 연적, 곱돌이나 연석 등 여러 재료로 만들어진 다채로운 연적들이 확인된다.
현전하는 연적 유물들은 조형과 장식은 물론 용도에 맞춰 구조와 각 요소들을 지니고 있어 본래의 쓰임을 놓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연적의 개성이 다채로운 이유는 조선시대까지의 사회에서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문방구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만큼 각 용처에 맞게 제작이 이루어졌고, 개인적으로 사용하거나 휴대하는 경우도 빈번해서 개인의 신분과 개성이 반영되었다.
현재 전해지는 연적 유물은 그 수가 매우 많다. 연적의 용도와 용례에 대한 문헌기록을 통해 연적의 용처 범위를 파악할 수 있으나 유적이나 인물과 결부시켜 구체적으로 용처를 밝힐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다만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왕실용 연적들은 연적의 용처들이 비교적 분명하게 확인되는 편이다.
도3. <청화백자국화문연적>, 조선, 국립고궁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에는 금속, 도자, 석재로 제작된 유물들이 전해지고 있다. 유물은 창덕궁과 종묘에서 입수된 유물과 묘지 출토품으로 나누어진다. 창덕궁에서 입수된 유물들은 은제 연적과 청화백자 연적이 다수인데, 대부분 조선 후기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집무실, 서가, 생활공간 등 일상에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원빈홍씨묘에서 출토된 비슷한 형태와 기법의 화장호 장식을 생각해보면 부장용으로 사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도4. <은제연적>, 조선후기, 국립고궁박물관
도5. <은제연적>, 조선후기, 국립고궁박물관
특히 은제 연적의 경우 칠보(법랑)으로 장식된 유물들이 눈에 띈다. 칠보는 조선 18세기 경종 대부터 중국에서의 유입 및 제작 관련 기록들이 확인된다. 기록에는 화려한 색채의 액체 장식재를 기물 표면에 흡착시킨 기법을 칠보가 아닌 법랑(琺瑯)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 기법과 관련해서는 앞으로 연구가 필요하다.
은으로 만들어진 연적의 표면에는 수복강녕(壽福康寧), 원수문(圓壽文) 등 동시대 공예품에서 빈번하게 확인되는 장수와 평안을 기원하는 문양들이 배치되기도 하고, 꽃이나 박쥐 등으로 장식하기도 했다.
도6. <은제연적>, 조선, 국립고궁박물관
형태는 원통형이나 항아리 형태가 확인되는데, 원통형 위에 꼭지를 붙여 수구를 만들어 물을 따르기 편리하게 만들어진 것도 있다. 또 원통형 중에는 원통의 가운데가 도넛처럼 완전히 뚫린 것도 있고, 합처럼 막혀진 상태에서 위에 수구 또는 공기조절용 구멍이 뚫려 있는 것도 있다.
도7. <동제연적>, 조선후기, 종묘, 국립고궁박물관
또 국립고궁박물관에는 왕실의 제사를 지내는 종묘에서 입수된 여러 제기와 관련 유물들이 있다. 여기에는 동(銅, 구리Cu)으로 제작된 연적도 있다. 이 연적은 제문 작성 등 제례와 종묘의 기타 실무에서 문자를 쓸 때 사용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복숭아 형태를 하고 있는 이 연적은 제기 등 종묘에서 입수된 다른 금속기물과 마찬가지로 복잡한 장식이나 문양이 거의 없다.
도8. <휘녹석연적>, 18세기, 화유공주와 황인점 합장묘 출토, 국립고궁박물관
한편 석재 유물 중에는 연한 물성을 가진 돌인 휘녹석으로 제작된 연적이 확인된다. 이 연적은 경기도 부천에 있는 영조의 딸 화유옹주(和柔翁主: 1740-1777)와 그 남편인 창성위 황인점(黃仁點: 1732-1802)의 합장묘에서 출토된 것이다. 즉, 부장품으로 제작된 연적으로 비녀, 도자기 등 30여점이 넘는 유물들과 함께 출토되었다. 전체적으로 화려한 장식은 없지만 상면에 파도가 치는 모양인 수파문(水波文)을 돋을새김하였고, 주구와 공기의 양을 조절하는 기공이 뚫려 있어 연적의 기본 구성요소를 갖추고 있다.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된 일부 연적 유물을 통해 살펴보았지만, 조선시대까지의 생활에서 필수적으로 사용되었던 문방구류인 연적은 본래의 용도를 바탕으로 다양한 용처에서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고유의 용도와 용처가 정해진 공예품들이 있으나, 공예가 일상에서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물건을 제작하는 '행위'를 포괄한다고 생각하면 한 기종 내에서도 다채로운 소비-향유 문화와 제작 기술, 제작자를 담은 제작 문화를 흥미롭게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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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료용 그릇은 대부분 완(碗). 의궤를 살펴보면 화원에게 지급되는 안료용 그릇으로 완이 지급되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