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입사로 장식된 문방구류는 당시 사회에서 장식재인 은의 가치를 생각해 봤을 때 주로 사대부계층과 부를 축적한 상인 등 부유층을 중심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재와 그 외 생활공간에서의 비치용과 휴대용 유물이 모두 전해지고 있다. 관공서에서 사용된 것도 있지만 입사로 장식된 문방구류들은 주로 개인이 사용했던 유물들이 많아 장식에 있어서도 최대한 신분적인 위계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개인의 취향이 우선적으로 반영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전해지는 입사기법으로 장식된 문방구 유물의 수는 많지 않지만 통(필통과 지통), 연적, 벼루, 필묵통, 문진 등 다양한 기종이 확인된다. 이러한 다양한 기종 양상은 입사장식 문방구가 조선시대 생활 및 완상기물로 비교적 폭넓게 사용되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우선 통은 원통형, 육각형을 지닌 통이 확인된다. 조선시대 사용된 필통과 지통은 형태적으로 구분하기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는 구연과 저부가 수직으로 이어진 형태를 필통이라 칭하고 구연부로 올라갈수록 너비가 넓어져 몸체가 사선을 이루는 형태를 지통으로 구분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학계에서 확실한 개념의 정의가 세위지지 않았고 세로로 긴 물체를 꽂아서 보관하는 기능의 유사성으로 인해 서로 혼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현재 입사로 시문된 문방구 통에 대한 각 소장처의 유물명도 필통, 지통, 통 등 다양하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문방구 용도로 사용된 이 기물을 통으로 지칭하고자 한다.
조선시대 문방구용 통(이하 통)은 금속은 물론 도자기, 목칠기, 화각공예품, 죽세공품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루 제작되었다. 이는 조선사회 내에서 문방구로 활용된 통의 사용이 그만큼 폭넓었음을 의미한다. 조선 후기 책가도 등 회화작품에서도 붓은 물론 종이, 연적 등 각종 문방구류를 담아 넣는 일상적인 문방구 중 하나였던 통의 용례가 확인된다.
<철제은입사용문통>, 19세기, 영국 빅토리아&알버트뮤지엄. 원통형 통
현재 전해지는 입사기법으로 장식된 금속제 통은 높이가 12-17cm 사이, 너비가 7.5-10.4cm 사이로 생활공간의 서안(書案) 등 가구 위에 비치되기 용이한 크기이다. 철로 기물을 제작한 후 은입사를 한 경우가 일반적이며, 중심문양에 끼움입사를 한 일부 유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쪼음입사로 문양을 시문했다. 형태는 육각면체, 원통형, 화병형이 전해진다. 통의 맨 아래에는 다리가 있는 경우도 있고 없는 경우도 있어서 다리는 필수적인 구성요소는 아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철제은입사통>, 18-19세기, 국립중앙박물관, 화병형 통
문양의 배치와 시문은 통의 형태에 따라 차이가 있다. 원통형과 화병형은 원통을 사면으로 나누어 동물문, 문자문, 용문 등 중심문양을 시문하고 중심문양의 주변에 각 중심문양들을 마치 액자처럼 구획하는 구획문양을 시문했다. 그리고 남은 공간은 기하학문이나 운문 등을 빽빽하게 쪼음입사했다. 육각면체 통은 각 면을 하나의 화폭처럼 사용했다. 각 면에 액자와 같은 선을 입사시문한 후 그 안에 중심문양만을 배치하거나 또는 중심문과 보조문을 같이 배치해 마치 한 폭의 병풍과 같은 효과를 주었다. 현전하는 육각면체 통의 문양소재는 십장생문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장식적인 성격과 기복적인 성격을 동시에 가미한 것으로 보인다.
문양이 이층으로 배치되고 다리가 있는 필통 사례
좌) <철제은입사통>, 18-19세기, 국립중앙박물관 / 우) <철제은입사육각통>, 19세기, 영국 빅토리아&알버트 뮤지엄
그 외에 통의 문양 배치에서 특징적인 것은 각 면의 공간을 둘로 나누어 2층 형태로 문양을 시문한 유물들이다. 문양의 기본 구성은 위의 유물들과 동일하나 층으로 나누어 표현함으로써 한 통 안에서 8-12면의 문양구성을 갖췄다. 이는 세로로 긴 통의 면을 최대한 활용해 문양을 장식하려는 의도와 십장생과 같이 구성요소가 많은 문양소재를 한 기물 안에 모두 넣어 장식에 활용하려는 의도가 동시에 반영된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