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세린
조선시대 조총, 화승총 등 개인화기와 화포 등 각종 총포류의 심지 및 총신부분에 입사기법이 활용되었다. 용도는 실용적, 장식적, 표식적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조총(鳥銃)은 불을 붙이는 심지인 화승(火繩)을 이용해 점화해 발사하는 총으로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사용했다. 이후 조선의 중앙군과 지방군에 도입되어 주력병기 가운데 하나로 활용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전인 1589년(선조 22) 황윤길과 김성일이 일본에서 이미 접한 기록과 황윤길 일행이 돌아오는 길에 쓰시마도주에게 몇 자루 받아온 사실이 확인되어, 17세기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이전부터 조선 조정에 조총에 대한 인식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은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1534-1582) 집권기인 아즈치‧모모야마시대에 화포와 조총 등의 도입 및 연구에 집중했다. 여기에는 네덜란드를 통해 들여온 화승총도 포함되었다. 화승총은 15세기 후반 유럽에서 발명되어 17-18세기까지 사용되었는데, 총구로부터 흑색화약과 탄환을 총신 내에 장전한 다음 불이 붙어 있는 화승을 총신의 후부, 상부, 측방에 있는 점화구에 가져다 대면 총신 내의 화약(발사약)이 점화되어 탄환을 발사하는 원리를 가진 무기이다. 일본은 아즈치‧모모야마 시기 본격적으로 연구 및 실전사용을 시작하여 일본 오다노부나가의 후임이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 1536-1598)가 전국 통일전쟁에서 주력무기로 화포(火砲)와 함께 사용해 기술력을 더욱 높였다. 임진왜란 당시에 일본군이 사용한 조총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완성된 것이고, 중국의 조총 역시 이자성의 난 이후 중국 내 여러 혼란한 과정 속에서 실전배치를 통한 기술 강화를 한 뒤에 16세기 말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조선의 조총 실전 배치는 임진왜란이 개전된 후인 1593년 이순신(李舜臣, 1545-1598)이 휘하 훈련주부인 정사준(鄭思竣, 1553-?)을 시켜 조총과 기존의 개인 화포인 승자총(勝字銃)을 절충해 만든 소승자총(小勝字銃)을 전쟁에 투입한 것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후 1624년(인조 2년) 일본에서 조총 수천 자루를 구입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훈련도감에서 1653년(효종 4년) 제주도에 표착한 네덜란드인 하멜을 훈련도감에 배속시켜 새로운 조총 제조에 참여하게 하는 등 끊임없는 기술 개발을 거쳐 조선식 조총을 완성했다. 따라서 조선의 조총은 조총과 동시에 화승총(火繩銃)이란 명칭을 같이 사용한다.
<玄자문 화승총>, 조선 19세기, 독일 라이프치히그라시민속박물관
입사된 玄자문 세부
라이프치히그라시민속박물관 소장 <화승총>은 조선후기 사용된 조총의 전형적인 형태를 지니고 있으며, 철과 나무로 제작되었다. 총구의 윗부분 가늠자에 황동으로 '현(玄)'을 시문했다. 총신을 철로 제작했으나 ‘현’자는 끼움입사를 사용해 감입했다. 이 문양은 격발장치의 우측면 동판에도 동일하게 시문했다. 또 총열 하단에는 ‘병인삼별우○입부선(丙寅三別宇○仅先)’이라는 명문도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