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스턴 처칠이 그랬다던가, "누울 수 있으면 절대 앉지 말라"고.
이 말은 물론 게으름을 찬양하는 말이 아니라 에너지를 비축해 더 많은 일을 하라는 의미였겠지만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아진 요즘에는 엄청난 유혹이 된다. 기왕 누워서 빈둥빈둥할 거면 조금이라도 인생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해야 될 터. 바이러스 터널의 끝이 보이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이때 좀 더 칩거에 도움이 될 누워서 볼 책들을 골라보았다. 읽어서 다 아는 책, 읽었는데 기억이 안 나는 책, 사두었으나 안 읽은 책, 들어본 적은 있으나 읽지 못한 책, 처음 듣는 책 등으로 구분해서 체크해 볼 수 있을 듯하다.
아래에 소개되는 책들은 많은 분들이 이미 보거나 알고 있는 것들일 것이다. 그렇지만 의외로 다 읽어본 사람들은 많지 않은 듯하다. 한국 회화사를 다룬 중요 도서목록 중에 전공자들도 '처음처럼‘ 리마인드할 수 있고, 그냥 관심이 조금 있는 정도인 사람이면 새로운 것을 알게 되고 즐길 수 있게 되는 책을 중심으로 골라보았다. 다만 도서관이 아직 문을 안 연 곳이 많아 온라인 서점이나 헌책방, 중고서점 등에서 구매가 불가능한 것은 제외했고 2년 이내 출간된 신간들은 다음 기회가 있을 듯하여 논외로 했다.
한국미술 스테디셀러
최순우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학고재 (2008)
유홍준 『화인열전』 1, 2 역사비평사 (2001)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3 : 조선 그림과 글씨』눌와 (2013)
오주석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솔 (2000)
『한국의 미 특강』솔 (2003)
『그림 속에 노닐다』 솔 (2008)
2000년 무렵, 베스트셀러 목록에 한국의 미술과 문화재를 에세이처럼 풀어 쓴 책이 하나 둘씩 등장하는 현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미술에 관심이 전혀 없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사서 보고 방송에도 종종 등장하는 일이 생기면서 대중들의 ‘소양’의 한 카테고리에 옛 그림이 들어가게 됐다. 아직까지도 서점의 매대에서 꾸준히 팔리고 있는 책들이다. 난이도는 중.
한국미술의 정체성 - 레전드가 된 저자들
이동주, 『한국회화소사』 범우사 (1996) 초판 1972
이동주, 『우리나라의 옛 그림』 학고재
고유섭, 『구수한 큰맛』 다할미디어 (2005)
야나기 무네요시, 『조선과 그 예술』신구문화사 (2006)
동아시아 미술 안에서 한국미술이란 과연 어떤 것인가 그 정체성을 찾는 데에 골몰하던 시기가 있었다. 중국 문화의 그늘 아래에 있었던 오랜 세월, 그리고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잃어간 때가 있었기 때문에 그 반작용으로 생긴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한국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근대기 외국인들의 시선이 영향을 미친 것도 사실이다. 우리 미술의 특징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자긍심을 가져도 될 만한가? 라는 질문을 품었던 사람들의 기록을 되돌아보면 ‘과연 우리가 선진국인지’ 자문하는 요즘 사람들의 모습이 겹쳐지기도 한다.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읽어볼 수 있다. 읽기에 다소 까다로울 수 있다.
돌베개 테마한국문화사 시리즈
고연희,『조선시대 산수화, 아름다운 필묵의 정신사』(2007)
김정희,『불화, 찬란한 불교 미술의 세계』(2009)
이선옥,『사군자, 매란국죽으로 피어난 선비의 마음』(2011)
정병모,『민화, 가장 대중적인 그리고 한국적인』(2012)
이선옥,『우봉 조희룡, 19세기 묵장의 영수』(2017)
출판사의 설명에 의하면 “전통 문화와 민속·예술 등 한국 문화사의 진수를 테마별로 선정”, “컬러 도판과 전문적 해설”, “21세기를 맞아(!) 한국의 새로운 문화 교양 시리즈로 만들겠다는 다짐” 하에서 나온 시리즈다. 2002년 3월에 시작하여 꾸준히 선을 보이고 있다. 난이도는 책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으나 대략 중상 정도이다.
18세기를 이해하기 위하여
한국학연구소, 『18세기 조선지식인의 문화의식』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한국학학술총서01) 한양대학교출판부 (2001)
18세기는 조선시대 미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볼 수 있다. 경제적 사회적 변화. ‘근대’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해서 서민의 문화 양반문화의 세속화, 실학의 발달, 실천적인, 성리학에서 점차 벗어나게 되는 시기이자 서학의 유입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책의 집필진을 살펴보면, 사학과, 한문사학과, 국문학과, 한문학과, 미술사학과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진의 참여로 홍대용, 박지원, 이덕무, 작제가, 이용휴, 이가환, 서유구 등 7명의 18세기 조선 지식인을 선정, 이야기를 풀어냈다. 난이도 상.
문학과 그림
정민, 『한시 속의 새, 그림 속의 새』(전2권) 효형출판 (2003. 06)
고연희, 『그림, 문학에 취하다 - 문학작품으로 본 옛 그림 감상법』아트북스 (2011. 01)
조정육, 『좋은 그림 좋은 생각』아트북스(2011),『옛그림, 불교에 빠지다』아트북스 (2014)
국문학을 전공한 저자, 한시 전문가, 옛그림을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이야기꾼 선생님들의 그림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난이도 중.
규장각 교양총서
이영경,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그림으로 본 조선 - 규장각 교양총서 10』 글항아리 (2014)
규장각 교양총서 시리즈는 글을 통해 역사를 배우는 것보다 이미지와 더불어 이야기를 풀어내어 역사를 공부하도록 해 준다. 『그림으로 본 조선』외에도 (제목에 ‘그림’이 없어도) 조선시대 그림을 활용해서 그 시대의 모습을 흥미롭게 보여주는 내용이 많이 들어 있다. 조선 국왕의 일생, 조선 양반의 일생, 조선 사람의 세계여행 등 총서의 다른 책들 중에도 그림이 많이 등장한다.
인물 / 작품 탐구
오주석 『단원 김홍도』솔 (2015)
오주석 『이인문의 강산무진도』 신구문화사 (2006)
안휘준 외, 『한국의 미술가(인물로 보는 한국미술사)』사회평론 (2006)
최완수 『겸재를 따라가는 금강산 여행』대원사 (1999)
최완수 『겸재의 한양 진경』현암사 (2018)
다카사키 소지, 김순희 역 『아사카와 다쿠미 평전 - 조선의 흙이 되다』 효형출판 (2005)
이 책들은 인물이나 작품에 대해 깊이 있게 다룬 책들이다. 쉽지 않지만 관심 분야라면 도전해 볼 만한다. 난이도 상.
컬렉터 이야기
이우복, 『옛 그림의 마음씨 - 애호가 이우복의 내 삶에 정든 미술』학고재 (2006. 08)
이우복 前대우그룹 회장의 컬렉터 인생을 다룬 책. 1998년 외환위기 때 은퇴 후 미술품 수집가로서의 제2의 인생을 살며 겪은 일들을 풀어놓았다. 조선시대 미술을 다룬 2장에서는 정선을 비롯해 이인상 강세황 심사정 김홍도 장승업 최북 작품 이야기, 3장은 그림으로 만난 이중섭과 김환기의 예술적인 삶을 비롯해 검여 유희강,청명 임창순,여초 김응현 등 위대한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작품과 함께 실었다. 난이도 중.
하루 한 챕터씩 - 자습서
윤철규 『조선 시대 회화-오늘 만나는 우리 옛 그림』 마로니에북스 (2018)
강민기 『클릭 한국미술사』 예경 (2011)
이것만 알면 된다, 같은 총정리 자습서형의 책들은 침대 맡에 두고 매일 조금씩 읽으면서 감상하고 익히는 방식의 읽기도 나쁘지 않다. 난이도 중.
정독은 힘들지만 - 교재용 저서 도전
안휘준 『한국 미술사 연구』 사회평론아카데미 2015
안휘준 『청출어람의 한국미술』 사회평론아카데미 2010
홍선표 『알기 쉬운 한국미술사』 미진사 2016
진홍섭 『한국미술사』문예출판사 2006
가볍게 읽다보면 좀더 깊이 있고 전문적인 부분에 대한 욕심이 나고 맥락을 이해하고 싶어질 수 있다. 그럴 때는 학계 선생님들이 쓰신 교재용 저서들 중에 조금 부담이 덜한 것을 골라 읽어볼 수 있다. 난이도라기보다는 흥미도가 좀 낮을 수 있다.
기타
기타
강관식 외, 『진경문화』현암사 (2014)
박정혜 『왕의 화가들』돌베개 (2012)
조선미 『왕의 얼굴』사회평론 (2012)
이태호 『옛 화가들은 우리 땅을 어떻게 그렸나』생각의나무 (2010)
송희경 『조선후기 아회도』 다할미디어 (2008)
백인산 『조선의 묵죽』대원사 (2007)
이성미 『조선왕실의 미술문화』대원사 (2005)
이구열 『우리 근대미술 뒷이야기』돌베개 (2005)
예술, 미술 분야의 책이 생각보다 많이 출간되지만 실기 관련이나 이론서 전공서적, 번역서 같은 것들을 제외하고 나면 그다지 많지 않음을 발견한다. 인문학이 유행처럼 읽혀지고 미술사 명작이라고 일컫는 작품과 화가에 대한 이야기를 궁금해 하는 일반인들은 많지만 읽기 편한 시대와 미술 관련 이야기는 대개 서양미술사와 관련된 것들이다. 일부러 찾지 않으면 한국미술사를 위한 쉽고 재밌고 유익한 책 같아 보이는 것이 눈에 잘 띄지 않을지도 모른다. 좋은 책이 많지만 고르다보니 사실 재미있기보다는 진지한 나머지 너무 딱딱한 책이 훨씬 많아 안타까움이 크다.
일본의 극작가 이노우에 히사시 (井上廈)는 자신의 서재에 스스로와 경쟁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이 적어 놓았다고 한다.
“어려운 것을 쉽게, 쉬운 것을 깊게, 깊은 것을 재밌게, 재밌는 것을 진지하게, 진지한 것을 유쾌하게, 그리고 유쾌한 것을 어디까지나 유쾌하게.”
전문서와 대중서 사이의 어딘가에 있는, 좀 더 말랑말랑한 책들이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 하지만 누워서 읽다가 잠이 올 만큼 약간 전문적인 내용이면 어떤가. 잠이라도 잘 자면 되지.
전문서와 대중서 사이의 어딘가에 있는, 좀 더 말랑말랑한 책들이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 하지만 누워서 읽다가 잠이 올 만큼 약간 전문적인 내용이면 어떤가. 잠이라도 잘 자면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