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세린
조선의 왕실에서 사용된 가마에는 철로 제작된 다양한 형태의 경첩과 장식물이 부착되었다. 이 장식물 표면에는 복과 장수를 기원하는 수복문(壽福紋)이나 꽃과 넝쿨이 가미된 문양들이 입사기법으로 시문되었다. 실제 가마에 장식되는 철제입사장식편은 조선시대 의궤 기록에서도 가장 많이 나오는 금속장식품 중 하나이다.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조선시대 가마와 가교에도 입사로 장식된 감잡이와 고리, 경첩이 남아있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조선후기 왕실 가마와 입사장식(필자촬영)
가마 경첩과 장식물의 입사장식은 조선 초부터 법식에 근거해 한 것임이 확인된다. 『세종실록』 오례의에는 의례에 사용된 각종 가마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이 중 가례(嘉禮)와 흉례(凶禮)에 사용된 가마의 장식에서 금을 입사기법으로 쪼아 넣어 문양을 장식한 경첩과 장식물에 대한 내용이 확인된다. 사용한 가마의 종류는 왕이 사용하는 큰 가마(大輦), 왕비가 사용하는 큰 가마(中宮大輦), 작은 가마(中宮小輦)이다. 조선 초 의례에서 사용한 각종 기물들과 기물의 장식들은 고려에서 온 것이 많았는데, 고려 후기에도 입사공예품이 성행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가마의 장식 전통이 고려에서 왔을 가능성도 있다.
『세종실록』 오례, 가례 서례에 수록된 왕의 큰가마. 여기에는 장식은 철에 금을 감입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후 조선 말까지 의궤와 그 외 문헌기록에는 입사로 장식한 가마장식물, 경첩에 대한 내용과 관련 법제가 꾸준히 등장한다. 이처럼 조선시대 왕실의 의례에서 사용되는 가마는 당시의 제도와 법식에 의거해 만들어져야 했기 때문에, 현재의 설계도와 도안과 실물 샘플과 같은 역할을 한 화본(畫本: 조선시대 기물 전체의 도안과 문양의 도안을 그림으로 그린 것, 현재의 평면도안 역할)과 견양(見樣: 동일한 크기와 형태로 실물제작을 한 샘플 또는 화본과 동일하게 그림을 그려 평면도안을 그린 것)을 수차례 제작하며 철저한 설계를 거쳤다. 입사장식이 들어간 철제 경첩과 장식물 역시 의궤,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 관련 기록을 살펴보면 화본이나 견양을 통한 설계를 거쳐 제작이 이루어졌음이 확인된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조선후기 왕실 가교와 입사장식(필자촬영)
입사로 장식된 철제 장식물이 부착된 가마의 사용자는 왕, 대비, 왕비, 세자, 세자빈으로 왕실에서도 최고위층이었다. 이 가마들은 혼인(嘉禮)과 장례(凶禮), 종묘에 위패를 봉안하는 부묘(祔廟), 시호나 존호를 바치는 존숭(尊崇) 등 다양한 성격의 의례를 위해 제작, 사용되었다. 가마의 금속장식은 가마 요소요소에 들어가기 때문에 의궤에 각 장식의 위치와 이름을 세부적으로 기록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대신 가마의 장식물 재료의 이름을 따서 정철장식(正鐵粧飾: 순도가 높은 국내산 철로 제작된 장식물), 두석장식(豆錫粧飾) 등으로 하거나, 문양 장식에 들어가는 재료의 명칭을 따서 은장식(銀粧飾), 금은장식(金銀粧飾)이라고 했다. 그리고 많지는 않지만 장식물의 재료와 장식기법의 명칭을 합해 정철입사장식(正鐵入絲粧飾)이라고 명명한 사례도 의궤에서 확인된다.
입사장식물의 제작은 입사기법을 담당하는 장인인 입사장(入絲匠)이 장식물의 제작과 문양장식을 모두 담당하기도 하고, 철을 다루는 주장(鑄匠)이나 세공을 담당하는 조각장(雕刻匠)과 입사장이 협업을 해 제작하기도 했다. 조선시대 의례용 왕실 공예품의 제작에서 이러한 분업은 짧은 시간 내에 많은 공예품을 제작해야 하는 특성상 통상적으로 이루어진 작업방식이었다. 이에 장식물은 물론 가마 자체도 다양한 분야의 많은 장인들이 투입돼 완성되었다.
현재 문헌과 유물을 통해 전해지는 입사장식물의 종류는 가마의 부분 부분을 연결하고 보강하는 감잡이, 꽃과 꽃술, 꽃의 잎맥, 넝쿨 등을 입사로 장식한 장식편, 가마에 부착하는 고리까지 다양하다. 기록에서의 문양은 꽃과 넝쿨무늬, 왕실을 상징하는 용과 봉황문이 많지만, 현재 전해지는 유물은 꽃과 넝쿨 그리고 앞서 언급한 복과 장수를 상징하는 수복문이 많다. 이 유물들은 왕실의 의례와 일상에서 사용했기 때문에 입사로 시문한 문양 역시 왕실의 상징성과 표상성을 담보했다. 이를 위해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화원(畫員)이나 입사장이 제작한 화본과 견양을 적극 활용해 문양의 정교함과 균일화를 더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또, 장인 간의 협업을 통해 기물의 제작과 꾸밈이 이뤄졌기 때문에 장식 전반의 유기성도 함께 갖추고 있었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가마의 입사장식(필자촬영)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가교의 입사장식(필자촬영)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된 조선 후기 왕실의 가마(輦)와 가교(駕轎) 입사 장식물과 그 외 장식의 구성을 살펴보면 이러한 유기적이고 상징성을 갖춘 장식의 특성을 더욱 명확하게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