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도는 조선시대 왕실에서 종묘 제사에서 사용한 칼이다. 종묘에서 제사를 지낼 때 올리는 짐승을 죽이는 용도로 사용했는데, 태뢰(太牢) 또는 대뢰(大牢)라 하여 소, 양, 돼지 세 가지 짐승을 제례의 법식에 맞춰 잡을 때 썼다. 칼 날과 칼 끝에는 작은 방울을 달아 신령스러운 의미를 더하였다.
짐승을 올리는 제례는 먼 옛날 불이 없는 시대, 조상이 고기를 생식했을 것이라 믿었던 것에서 유래했다. 이에 먼 옛날의 조상에게 바친다는 의미로 칼로 산 짐승을 죽여 그 고기를 각각 날 것으로 그릇에 담아 제물로 바쳤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조선 전 시대에 걸쳐 종묘, 환구단, 태묘 등에서 제사를 지낼 때 난도로 가축을 죽여 제물로 바치는 기록들이 있다. 이 기록에는 공통적으로 “전사관(典祀官)이 재인(宰人)을 거느리고 난도(鑾刀)로써 희생할 제물을 벤다.” 라는 말을 의식의 하나처럼 사용했다. 이를 통해 난도로 가축을 베는 행위 자체가 의식의 중요한 단계 중 하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의식에 사용하는 鑾刀가 의식의 주요 의물이었음이 확인된다.
<난도>, 종묘 보관품,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현전하는 조선시대 난도는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 종묘에서 전해내려오던 난도를 국립고궁박물관이 입수한 것이다. 이러한 입수 경로는 현재 전해지는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난도가 조선 왕실의 종묘제례에 사용했던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전체 길이는 51.5cm로 제법 큰 편이며, 가축을 잡고 그 고기를 써는데 사용한 만큼 날의 폭도 7.4cm로 넓은 편이다. 음식을 할 때 사용되는 식칼과는 날의 형태가 다르며, 조금 더 넓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난도>의 입사 양상
난도 전체는 철로 제작되었으며, 손잡이와 칼날과 손잡이가 만나는 부분은 넝쿨과 꽃의 이파리, 연기, 번개 등의 문양소재를 쪼음입사기법으로 금과 은으로 입사했다. 또 은으로 손잡이의 전체 윤곽을 두줄로 쪼음입사해 전체 칼의 형태를 보다 명확하게 부각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