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포검(菖蒲劍)은 조선시대 도검의 일종으로, 지팡이나 막대기처럼 만들어 칼처럼 무기처럼 보이지 않게 위장해 휴대할 수 있게 제작된 전투 및 암살용 검이다. 칼에 코등이가 없으며, 칼집이 일직선으로 되어있어 칼을 칼집에 넣으면 지팡이로 위장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인 대표적인 암장검(闇障劍)이다. 창포검은 유물이 많이 남아있지 않고, 사용한 사례도 암살, 전투시 침투 등 은밀한 목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다른 검들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며, 조선 16세기 이후 문헌에서 기록이 소수 확인된다. 지팡이칼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이런 검은 비단 우리나라 뿐 아니라 일본(しらさや[白鞘]), 서양(Swordstick, Sword Cane)에서도 사용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남아있는 기록은 없지만, 『만기요람(萬機要覽)』에서 금위영(禁衛營)이 군기(軍器)로 군사들에게 지급, 사용했음이 확인된다. 또 지방군에게도 지급된 기록도 있어 군사기관에서 사용하는 무기의 일종임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이 기록에는 은입사(銀入絲)검 70자루를 금위영 군사들에게 지급하라고도 적혀있는데, 일반 무기용 검만인지 창포검까지 포함되어 있는지는 세부 목록이 기록되지 않아 알 수 없다. 하지만 다른 기록과 비교해 볼 때 창포검도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1763년(영조 39) 조엄이 일본 통신정사로 다녀오면서 사행내용을 기록한 문헌인 『해사일기(海槎日記)』에는 조엄이 본 암장검에 대한 내용이 있다. 여기에는 일본인들이 공격할 때 조선의 창포검 또는 창포검과 비슷한 검을 사용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일본의 암장검인 시라사야(しらさや)를 가리킨다.
도1. <창포검>, 18세기, 육군박물관.
도2. <창포검> 검신에 새겨진 명문의 은입사부분 세부.
창포검은 검의 용도 특성상 장식을 거의 하지 않는다. 하지만 명문 등을 새기는 경우도 존재하는데, 현재 전해지는 유물 중 입사기법으로 명문을 시문한 사례는 육군박물관 소장 <창포검>이 있다. 전장 103.7cm로 장검에 속하며, 검을 넣는 검집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나 현재는 소실된 상태이다. 전체적인 형태로 봤을 때 지팡이로 위장할 수 있었던 검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검의 몸에 명문과 글자, 글자를 감싼 원형에 은입사가 되어있으며, 암장용 검인 만큼 이 외에 다른 화려한 장식은 더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