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검(寅劍)은 용맹함, 즉 무(武)의 기운이 가장 강한 호랑이를 의미하는 간지인 인년(寅年), 인월(寅月), 인일(寅日), 인시(寅時)가 합해지는 때에 쇳물을 부어 제작했다고 전해지는 검이다. 이는 간사함을 없애고 무의 기운을 충만하게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인검은 실전용 무기라기보다는 악귀와 재앙을 물리치고 용맹함을 담는 주술적이고 벽사적 성격이 강하다.
인검은 인년이나 호랑이 간지 때가 3개 이상 합쳐질 때마다 왕의 명령으로 제작이 이루어졌다. 그만큼 왕실의 상징용 또는 왕실의 구성원이나 신하에게 내리는 하사용 성격이 강하다. 조선 개국 이래 인년(寅年)만 되면 인검을 제작했다는 기록이 있다. 실제 조선 개국 이후 첫 인년인 태조 7년(1398) 무인년(戊寅年)에 첫 제작이 확인되며, 이후 관련 기록이 지속적으로 확인된다. 보통은 정기적으로 제작이 되었으나, 제작해야할 때에 흉년이나 홍수 등 재해가 발생해 백성의 생활이 어려울 때는 중단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매해 제작이 아닌 12년에 한번 인년(寅年)에만 제작하는 물품이라는 명분으로 왕에 의해 강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인검의 제작수량은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연산군 12년(1506)에는 200여 자루를 만들기도 했다.
<사인검>, 조선후기, 육군박물관
인검은 대개 네 간지를 모두 충족하는 사인검(四寅劍; 四寅斬邪劍), 세 간지만을 충족하는 삼인검(三寅劍) 두 종류로 제작되었다. 『조선왕조실록』과 그 외 조선시대 문헌기록을 통해 보면 4가지 항목을 모두 충족하는 사인검을 더 높은 급으로 쳐 줬고, 삼인검은 年이 없다는 이유로 격하 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또 주술적, 벽사적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삼인검을 굳이 제작한다고 하더라도 될 수 있으면 年까지 지키게 했다. 그러나 나라의 평안, 흉년 등 재해 등 주술 및 기복, 벽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시에는 寅年과 관계없이 三寅劍을 제작하기도 했다.
『숙종실록』의 삼인검(三寅劍) 제작 관련 기사에는 “인년, 인월, 인일에 쇳물을 붓고 쇠를 두들겨 제작하는 검으로 아귀(邪鬼)를 물리칠 수 있다.” 라고 적고 있어, 제작법과 제작시점, 제작 의미 등을 파악할 수 있다. 현재 전해지는 유물은 칼날이나 자루에 삼인검(三寅劍), 사인검(四寅劍), 사인참사검(四寅斬邪劍) 등으로 명칭이 음각 혹은 입사되어있어 이를 통해 구분한다.
<삼인검>, 조선 14-16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삼인검은 쇳물을 뽑아낸 뒤 쇠를 두들겨 형태를 잡고 강도를 단단하게 만드는 타조법(打造法)로 만들어진다. 검의 강도가 단단해야하고 북두칠성을 비롯한 28수 별자리문, 명문이 함께 들어가야하기 때문에 인력과 공력이 많이 들어갔다. 특히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흥선대원군초상>에 등장하는 것과 같은 왕실 구성원 또는 왕실에서 하사하는 인검 대부분은 중앙관청에 소속된 장인들에 의해 정교하게 제작되었다.
이한철, 유숙, <흥선대원군 초상>(19세기 말, 서울역사박물관) 속 입사장식 인검
그리고 벽사, 무기, 위세, 무속 등 다양한 목적으로 민간에서 제작된 사대부 및 무속인들이 사용했던 인검 대다수는 민간의 장인들에 의해 제작되었다. 정교한 입사의 상태와 검의 견고함으로 볼 때 민간에서 제작한 인검 역시 높은 기술력을 지닌 장인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인참사검>, 조선후기, 국립고궁박물관
현재 전해지는 유물을 보면 보통은 실제 전투용으로 사용하는 검이 아니기 때문에 칼날을 세우지 않았다. 칼 몸 전체에는 별자리 24수를 모두 새기거나 칠성문을 입사로 장식했다. 그리고 칼날에는 전서체로 각종 명문 및 사인검, 사인참사검, 삼인검 등 검의 종류가 적혀있다. 입사로 장식된 검은 금, 은이 장식에 고루 사용되었다. 검신에만 입사 장식한 경우도 있고 코등이, 손잡이까지 모두 입사로 장식한 사례도 있다. 손잡이와 코등이부분까지 장식이 될 경우 손잡이에는 명문 혹은 희문(囍文)과 같은 길상문, 별자리문 등이 시문되었다.
손에 쥐기 편하게 하기 위해 끈을 동여매기도 하지만, 대다수가 검을 쥘 때 올록볼록한 질감으로 인해 사용감이 불편한 타출이나 양각은 사용하지 않아, 환두대도 등 조선 이전의 실용적이면서도 장식효과가 명확한 장식 기법을 사용하는 전통을 기본적으로 따르는 양상이 확인된다. 입사의 세부기법은 쪼음입사가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끼움입사가 병용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