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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미술을 이끈 전시] 2. 한국미술이천년(韓國美術二千年)전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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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4월17일-6월17일 국립중앙박물관


 윤두서 <자화상> 지본수묵 38x20.5cm 윤영선씨 소장 

일반 공예품은 금속은 물론 석기나 나무로 만든 것들도 포함돼, 앞서 소개한 호우총 출토의 청동 호를 시작으로 신라 백제의 금제 장신구들이 대거 소개됐다. 전시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였던 금관은 신라 금관 2점에 가야 금관 1점 등 3점이나 소개됐다. 또 1971년 발굴돼 세상을 놀라게 한 부여 무령왕릉 출토품으로서 왕과 왕비의 족좌(足座)를 비롯한 부장품들이 나왔다.

토기와 와전(瓦塼)는 신라 시대의 토우가 대거 선보여 일반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기회가 됐다. 이 중에는 현존하는 기마인물형 토기가 3점이 모두 나란히 소개됐다. 그 외 배(舟)형 토기, 신발형 토기, 그리고 백제의 산수문 전(塼)과 귀면(鬼面)전이 나란히 진열됐다. 
모두 129점이 소개된 고려청자는 박물관의 일품, 명품 중심으로 구성됐다. 그중에서 인조장릉 출토의 일괄 유물을 비롯해 청자투각 칠보향로, 청자상감 모란문항아리. 청자상감 모란운학문 두침, 청자상감 모란문진사채 매병 등은 특별히 인기가 높았다.
개인 컬렉션으로는 간송미술관을 대표하는 청자상감운학문 매병과 오리와 원숭이 연적 그리고 이병철 컬렉션의 대표작 청자진사 연판문표형주전자, 윤장섭 컬렉션의 명품 청자상감운학문 주전자, 선우인순 소장의 청자철채퇴화점나한좌상 등이 관람객의 눈길을 끌었다. 그외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백자로 유명한 순화4년명 호과 청자 투각돈 2점(모두 이화여대 박물관)도 관심의 대상이었다. 


이요 <탁목조도(啄木鳥圖)> 견본담채 47.7x134.8cm 정무묵씨 소장 

조선왕조자기는 수적으로 가장 많은 157점이 소개됐다. 이는 분청사기 35점이 본격적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숫자가 늘어났다. 분청사기 명품으로는 커다란 물고기가 새겨져 있는 분청사기 인화철회어문호와 분청사기 인화문태호와 같은 대형 기물에서 궁중의 소용처의 이름을 적은 각 종 대접, 완 등이 다수 들어갔다.
그리고 백자는 초기 백자에서 조선후기 분원의 문방구까지 빠짐없이 망라됐다. 초기 백자로는 별모양의 손잡이가 달린 잔에서 백자 접시, 백자 태호가 소개됐다. 그리고 김윤씨 소장의 백자 대호와 차명호씨 소장의 달 항아리 등 백자 항아리 대표작이 망라됐으며 청화백자는 동국대박물관의 홍치2년명 송죽문호와 ‘죽계월냉도령취(竹溪月冷陶令醉)’라는 시귀가 든 청화백자 시문명접시, 동원미술관 소장의 청화백자 초화문각병과 청화백자 용문호, 이병철 컬렉션의 청화백자 산수문떡메병, 박병래 소장의 청화백자 누각산수문 호 등 당시 세간에 명품으로 이름난 걸작들이 대거 선을 보였다.
회화 파트에 들어간 서예는 추사 작품 3점만 소개했는데 부산 강덕인 소장의 선면 행서 한 점과 전형필 소장의 ‘화법유장강만리(畵法有長江萬里)’과 차호명월성삼문(且呼明月成三文)‘라는 구절로 유명한 대련 2점이 나왔다.

윤두서 자화상 최초로 일반에 공개
 
회화는 고려와 조선을 별도로 나누지 않았다. 고려 회화로서는 당시만 해도 일본에 전하는 고려불화가 알려지기 이전이어서 변상도와 탱화 등 6점만이 소개되는데 그쳤다. 조선 회화는 초기의 안견에서 말기의 장승업까지 각 시대를 대표하는 명수들의 그림이 대거 출품됐다. 
이 전시에는 당시만 해도 일반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이 다수 공개돼 관심을 끌었는데 그중 대표적인 작품이 윤두서의 자화상이었다. 자화상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이 전시가 처음인데 이 작품은 그간 해남의 윤두서 종가에서 소장해오다 후손인 윤영선(尹泳善 작고)씨가 출품을 해주어 일반이 비로소 실물을 보게 됐다.
또 신윤복의 아버지로 역시 화원이였던 신한평이 그린 <화조도>도 이 전시때 처음 일반에 소개됐다.  


김홍도 <탄금음시도(일명 단원도)> 지본담채 78.5x135.3cm 서울 개인 소장
   

미술사 연구자들에 사이에 관심이 가장 관심이 높았던 그림은 <단원도>이다.(출품당시에는 <탄금음시도>로 소개됐다) 이는 풍속화의 대가 김홍도가 선배 화가인 강희언 등과 함께 연 흥취 있는 모임을 그린 것이다. 이 그림은 출품 당시에도 소장처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다만 ‘서울개인’이라고만 했다. <단원도>가 세상에 공개된 것은 이때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이 그림은 그 이후 어느 전시에도 공개된 적이 없다. 인조의 셋째아들이면서 그림을 잘 그렸던 이요가 그린 대작 <탁목조도>도 역시 이때 소개된 뒤로 다시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다.

전시의 규모가 규모였던 만큼 박물관 제작의 도록으로는 당시로서 매우 파격적인 두께가 됐다. 그래서 컬러 도판 10여점에 출품작 551점을 모두 망라한 본 도록 이외에 내용을 줄여서 일반이 쉽게 구입할 수 있도록 보급판이 별도로 제작됐다. 또 전시에 소개된 유물, 작품 대부분이 한국의 미술을 대표하고 있어 권미에 모든 작품의 영문 제목을 실어 외국인들도 참고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모든 것이 부족하고 시간에 쫓기는 작업이어서 실수도 있었다. 표암 강세화의 화제가 있는 겸재 정선의 대작 <산수화>는 인쇄상의 착오로 흑백이 역전됐다. 그래서 도록에는 마치 니금 산수화를 보는 것처럼 돼 버렸다. 

 
정선 <산수도> 견본담채 97.3x179.7cm 국립중앙박물관

도록의 제목 글씨는 「한국명화근오백전」때와 마찬가지로 철농 이기우 씨가 썼으며 글임은 신윤복 화첩 중의 <주유청강>이 쓰였다. 그런데 정작 이 그림이 전시에 소개되지 않아 도록에는 화첩의 다른 신윤복 그림 4점이 실렸다. 

이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신축 이전해 야심차게 기획한 전시이자 한국미술 각 분야의 명품을 한 자리에 망라해 선보인 특별한 전시였다. 또한 한국미술의 자랑인 국보, 보물급 미술품의 대거 출품돼 일반 국민에게 한국미술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준 뜻 깊은 전시였다.
이 전시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매우 높아 두 달 동안 25만242명이나 되는 관람객이 방문한 대성황을 이뤘다. 그 중에 외국인 관람객도 3만1830명이나 찾아왔다. 박물관 측에서 밝힌 입장료 수입은 1천만 원에서 조금 모자라는 999만1880원이었다.
전시가 한창이던 6월12일 한국은행은 한국 최초로 1만원권을 발행했다. 앞면에는 김기창 화백이 그린 세종대왕 그림이 들어가 있고 뒷면은 경복궁 근정전 그림이 있는 화폐로 지금처럼 배추색이 아니라 갈색 계통의 색조를 띠었다. 전시가 열린 73년의 1만원은 요즘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16만1970원에 해당한다.(한국은행 자료)
전시는 이렇게 대성황을 이뤘으나 전시를 마치고 한 달이 채 안 돼 세상은 다른 일로 화제가 옮겨갔다. 8월8일 일본에서 납치된 김대중 씨가 동교동 자택에서 기자회견을 열면서 납치사건을 밝힌 것이다. 그리고 그해 10월에 제4차 중동전쟁이 터져 산유국들이 석유 값이 단번에 4배 가까이 올린 오일쇼크가 일어났다. 정부는 에너지 절약을 위해 이 해 12월초부터 KBS 등 3개 TV방송국의 아침방송을 전면 중단시켰다.(*)
            


글/이원복, 윤철규 관리자
업데이트 2024.12.02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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