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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미술을 이끈 전시] 1. 한국명화 근오백년전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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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인 필 <초충도>(병풍) 지본담채 34x28.3cm 정해영씨 소장


이들 작품 중에는 극소수 애호가들에게만 알려진 채 세상에 처음 공개된 그림들이 수두룩했다. 대표적인 것이 신사임당이 그린 <초충도>이다. 전시에는 10폭 가운데 <원추리와 개구리> <양귀비와 도마뱀> <수박과 들쥐> <맨드라미와 쇠똥벌레> 등 4점이 나왔는데 당시 정해영 씨 소장품이었다. 이 그림은 나중에 청와대에 기증됐다가 청와대에서 1978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함으로서 현재는 박물관 소장품이 됐다. 

이렇게 구성된 188점의 그림은 특별 전시실과 회화실에 나누어 전시됐다. 당시 신축 박물관에는 10개 전시실에 특별전시실 하나가 있었다. 현관을 들어가 마주 보이는 전시실이 불교공예실(9실)과 금속공예실(10실)이고 그 건너편에 불교조각실(8실)이 있었다. 

그리고 청운교 백운교의 바로 뒤편에 해당하는 곳에 선사실(1실), 삼국실 1(2실-고구려, 백제), 삼국실 2(3실-신라), 통일신라실(4실)이 있었다. 사간동 길 쪽으로 튀어나온 부분에 고려청자실(5실)과 이조도자실(6실) 그리고 길다란 복도처럼 된 회화실(7실)이 있었다. 특별전시실은 삼국실의 한 가운데 공간이 쓰였다. 

전시는 성황을 이뤘는데 아쉽게도 당시 관람객 수에 대한 기록 등은 남아 있지 않다. 유홍준 교수는 어느 글에서 당시 군에 있으면서 이 전시를 보려 휴가를 연기했다고 쓰기도 했다. 미술평론가 최열도 당시 고등학생이었으나 이 전시 기사에 대한 기억이 분명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전시 막바지쯤 학술강연회도 열렸다. 12월9일 열린 강연회에는 국제정치학자이면서 미술사가이기도 한 이용희 교수가 산수화를 중심으로 본 한국명화 오백년전을 해설했다. 그는 미술사가로서 활동할 때에는 이동주라는 필명을 썼는데 이 해 봄에 이미, 지금도 한국미술에 관한 필독서로 손꼽히는 『한국회화소사』(서문당)을 간행했다. 이 책에 컬러로 실린 강희안의 <인왕산도>, 강세황의 <벽오청서도> 김석신 <도봉도> 등은 전시에도 소개됐다. 이 교수의 강의 내용은 정리돼 나중에 『우리나라의 옛 그림』(1975년 박영사)에 수록됐다. 

이때 강연에는 박물관에서도 정양모 당시 학예연구관이 발표를 해 ‘이조 전기의 화론’을 강연했다. 조선시대 전기의 화론은 당시만 해도 처음 다룬 내용이었다. 이 역시 정리돼 1980년에 나온 중앙일보사의 『한국의 미』 시리즈 『산수화-상』편에 수록됐다. 

참고로 박물관이 경복궁으로 이전해갔을 때 경복궁 건춘문 안쪽에 있던 서양식 건물에는 1969년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이 자리 잡고 있었다. 국립현대미술관 건물은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가 열리면서 세워진 것으로 당시로서는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었다. 조선총독부는 행사 뒤에 이곳에 총독부박물관을 설립했고 해방된 뒤 이는 신설된 국립박물관으로 계승됐다. 여기서 덕수궁으로 옮긴 것은 수복 이후의 1954년의 일이다. 


김수철 필 <산수도> 지본담채 150.4x45.5cm 故전형필씨 수집품 


그래서 1972년에 국립중앙박물관이 신축됐을 때 한동안 경복궁 안에는 국립의 박물관과 미술관이 나란히 있게 됐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듬해 비어있는 덕수궁 석조전으로 이전해 과천으로 이전하기까지 덕수궁에서 활동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대해 한마디 더 언급하면 박물관에서 『한국명화 근오백년전』을 개최하던 그해 여름 국립현대미술관으로서도 역사에 남을 『한국근대미술 60년전』을 열어 큰 관심을 끌었다. 6월27일에서 7월27일까지 열린 이 전시는 1900년부터 1960년까지의 한국 근대미술을 되돌아보는 전시로서 생존 작가 147명의 작품을 포함해 동양화 188점, 서양화 252점, 조각 29점 그리고 서예 57점이 소개됐다. 김응원의 <석난도>에서 시작된 전시에는 지금 거장의 명작이라고 불리는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등 작품도 대다수 나와 전시됐다.

이러고 보면 1972년은 사회 전체가 어수선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박물관뿐만 아니라 국립현대미술관도 착실하게 의미 깊은 시기를 보낸 한 해였다고 말할 수 있다.(*)
 




글/이원복, 윤철규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13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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