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주변에 존재하며 우리가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폭넓게 사용된다. 집에서 일상의 무료함을 달래거나 집안일을 할 때, 하루의 감정을 흡수할 때, 일을 하거나 운전을 할 때도 음악과 함께 한다. 또 각종 공적인 의식이나 제례 등에도 음악이 사용되기 마련이다. 음악의 음률을 만드는 악기는 본연의 기능과 용도에 맞춰 효율적으로 형태와 부품이 갖춰진다. 여기에 연주자 또는 사용처의 정체성을 반영하기 위해 다채로운 꾸밈이 활용되었다.
이는 조선시대도 마찬가지였다. 일상 전반과 농사, 대장간 등에서 일을 할 때, 제례 및 의례 등 다양한 곳에 음악이 사용되었고 여러 악기들이 적재적소에 활용되었으며 지금처럼 폭넓은 악기의 형태와 꾸밈이 갖춰졌다.
금속이나 나무로 제작된 악기 표면에 금, 은 등을 입혀 장식이나 상징을 넣는 경우, 그리고 음을 짚는 등 악기로서의 기능을 보다 부각하기 위한 용도로 입사 기법이 사용되었다.
도1. <철제금은입사대금>, 조선 18-19세기, 국립고궁박물관
도2. <철제금은입사대금> 입사 세부
현재 입사로 장식된 악기 중 대표적인 것은 18-19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국립고궁박물관 소장의 <철제금은입사대금>을 꼽을 수 있다. 철로 제작된 이 대금은 전체 표면이 입사기법으로 장식되었다. 사용된 입사기법은 '쪼음입사'로 대금의 소리를 낼 때 바람을 불어 넣는 취구(吹口), 각 음을 짚어 음률을 표현하는 청공(淸孔) 주변에 꽃잎을 넣어 대금 본연의 기능을 강조했다.
대금 표면 전체에 이파리 및 줄기를 표현하여 전체적으로 하나의 화당초문을 구성해 장식성을 높였다. 또한 꽃 주변을 노니는 학이 대금 끝에 표현되어 있는데 학은 대금이 지닌 공간의 면적상 간결하게 패턴화했다.
전반적인 장식은 은(銀) 위주지만 이파리나 꽃, 새 등 문양의 주요 요소들은 금(金)으로 시문했다.
이와 유사한 유물로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철제은입사산조대금>(조선 후기)이 있는데, 역시 취공과 청공 등 음을 내는 주요 부분에 입사시문이 되어 있다. 현재는 대부분의 문양이 손상되어 시문 흔적만 확인할 수 있다.
<철제금은입사대금>은 왕실 의례에서 사용된 악기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왕실의례에 사용되는 악기는 조선 초에는 악기도감(樂器都監), 관습도감(慣習都監)에서 제작되었다. 하지만 16세기에 이 관청들이 공식적으로 폐지되면서 왕실 악곡 작곡 및 악보 편찬, 연주자 양성 등을 담당했던 장악원(掌樂院)에서 제작했다. 또 상황에 따라 기존과 마찬가지로 악기도감을 구성하거나 또는 각 의례시 설치되는 임시도감에서 필요한 악기를 제작했다.
도3. <철제금입사피리>, 청 건륭제 연간(18세기), 북경고궁박물원 청대궁정일괄품 중
이와 같이 왕실에서 사용하는 악기에 입사장식을 하는 것은 동시대 비단 조선 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빈번하게 이뤄졌다. 북경고궁박물원에 소장된 청대 궁정 소장 일괄품 중에는 <철제금상감피리>(청 건륭 연간), <동금상감금>(명대 제작, 건륭대 어제 시문)과 같이 악기의 음을 짚는 부분, 기면에 악기들이 다수 전해지고 있다. 이를 통해 당대 중국과 조선에서 악기의 입사시문이 이뤄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악기의 장식경향 중 하나임을 짐작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