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5. 12
김노암, 김진녕, 윤철규
윤철규(이하 윤) 귀중한 시간 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가 열릴 예정이라는 소식이 전해진 이후,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계신 줄은 알았지만 기대보다도 전시가 호황인 것 같네요. 저도 평일 오전에 가 보았는데 아주 혼잡할 정도는 아니지만 줄을 서서 작품을 봐야 할 정도로 관람객이 많았습니다. 고미술 쪽에 관심이 더 많은 저로서는 부러울 정도라고 해야 할까요. 그동안에도 서양미술 블록버스터 전시가 꽤 많았지만 호크니 전시는 조금 다른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기회에 국내의 현대미술 전시와 관객의 분위기에 대해 얘기하는 자리를 마련해 봤습니다. 전시 기획 쪽에서 꾸준히 성과를 내고 계신 김노암 선생님과 다양한 전시를 꾸준히 챙겨보시는 김진녕 편집위원 모시고 편하게 얘기해 보고 싶어서요.
김노암(이하 N) 저는 주로 공공기금으로 전시를 기획하고 있으니 다른 기관들의 전시를 분석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은 편입니다. 인구에 회자되고 관심이 모아지는 성공 사례와 명확하게 실패한 사례가 주로 관심 대상이 됩니다. 이 호크니 전은 ‘시월’이라는 전시기획사가 들여온 것으로 테이트 소장품이 대부분입니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 세계를 총망라한 것은 아니지만 초기와 중기 국제적으로 알려진 작품들이 포함됐습니다. 누군가는 만오천원 내고 가기는 좀 그렇지 않냐 그런 말도 하는데, 사실 이러한 전시는 ‘행사’라는 관점, 사업적 이벤트라는 관점에서 봐야 합니다. 공연 보듯이. 사실 미술 전시는 문화산업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작은 시장이죠. 얼마 전 뒤샹 전에 꽤 많은 관객이 왔다고 하는데, 호크니 전은 그보다 많아서 한 달 사이 8만 이상의 관객이 왔다고 합니다. 기간동안 두 세 배는 오겠죠. 그런데 이런 이벤트 전시는 수익이 나기 위해서는 20만은 넘어야 합니다. 10만, 15만 들었다고 하면 대관료나 보험료, 운송비 등 비용을 감안하면 손해를 보는 겁니다. 기호나 트렌드의 관점에서 보면 트렌드의 관점에서 보면. 2013년 겨울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렸던 팀버튼 전 이후 가장 핫한 전시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김진녕(이하 J) 서울시립의 외부기획 빅 이벤트로 2015년 빅뱅의 지드래곤 전시와 스탠리 큐브릭 전시, 2016년 드림웍스 등이 있었죠. 팀버튼 전이 가장 성공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N 팀 버튼 전은 40만이 훌쩍 넘는 관객이 왔다고 합니다. 팀 버튼 전시가 중요한 것이, 그 이전에는 인상파 등의 근대미술이나 최근으로 내려온다고 해도 마그리트 정도까지만 왔지 동시대 미술이 외부기획 빅 이벤트로 오고 성공을 거둔 것은 처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관객 트렌드가 변화한 시점이 그 지점이라고 보여집니다. 그런 전시들이 쌓이면서 뒤샹이나 호크니 같은 전시가 들어오는 징검다리가 된 듯해요. 팀 버튼이 대중문화 영역이긴 하지만 감상에 있어서 나름대로의 전문적 지식을 요하는 부분이 있어요. 뭘 좀 알아야 즐길 수 있는 것, 학습을 필요로 합니다.
J 마치 현대미술처럼 말이죠. 또, 팀 버튼 같은 경우는 부모와 함께 온 아이들, 가족 단위의 관객들이 많이 왔었어요. 팀 버튼을 즐기던 젊은이들이 이제 젊은 부모가 되어서 아이들과 함께 감상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N 메인스트림 아닌 비주류의 문화에 대해 돈을 쓰는 세대가 부모가 됐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뒤샹 같은 경우 되게 어려운 사람인데도 많이들 왔잖아요. 그에 비하면 호크니는 컬러풀하고 말랑말랑해서 일차적으로 접근하기는 쉽습니다. 본격적 주제로 들어가면 만만치 않지만. 만약 요셉 보이스라면? 장사 안 될 거예요. 그에 비해 뒤샹은 유머와 에로티시즘이 있죠.
J 요셉 보이스는 어렵고 그저 무당 같아 보일 거예요.(웃음)
N 상당히 단기간에, 불과 7년 정도 사이에 관객들이 학습을 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를 SNS에서 찾을 수 있을 거 같은데요, 호크니 전에 대한 인스타 포스팅을 살펴보면 이런 내용들이 많아요. “영국 여행갔을 때 봤었던 거, 우리나라에서도 한대.” 같은. 그러면서 나름대로의 비평도 곁들입니다. 몇 년 전에 내가 즐겼던 것. 그게 중요한 거죠. 자기 과시를 할 수 있다는 것, 내가 잘 살고 있음을 나와 다른 사람에게 확인하는 장치라고 할까요.
윤 사실 예술 감상은 그것을 소비한다고 하는 과시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습니다. 그런 그림들이 1000억에 팔리는 것이 과시 부분이 없다면 가능할까요? 그렇지 않죠. 속물적이라고만 말할 수 없는 부분이죠.
N 개인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행위니까, 비즈니스 마인드로 보자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J 그 또래의 하위 집단에서 일어나는 일이긴 하지만 맥락이 조금 의문스러운 D미술관의 산업디자인이나 상업디자인 전시들도 젊은 세대의 인스타그램을 중심으로 소비되고 소위 ‘힙’한 것처럼 개인 브랜딩에 소비됩니다. 호크니 같은 경우 한동안 맥이 끊겼던 서양 근대의 그림들, 밀레, 반 고흐 전시 같은 것에 이어서 세대를 막론하고 회자되는 모양새에요.
N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주류 거장들을 넘어서 로스코나 뒤샹 같은 전시가 진행되는 양상을 보면, 우리 관객들이 전시를 소비하고 내면화하는 방식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명품 소비 안하던 사람들이 명품을 들고 나서려면 머쓱한 것처럼 사실 현대미술을 소비하는 행위에 대해 머쓱할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심리적인 갭이 상당히 많이 없어지고 편해졌어요.
윤 과거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획된 문화상품을 수동적으로 소비했다면 이제는 자유의지로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고 봅니다. 시각적으로 눈에 들어오지만 미술사적으로 쉽지만은 않은 작품들, 영미권 메인스트림에서 가장 핫한 작가들도 국내에 실시간으로 소개될 수 있을 정도로요.
J 단지 현대미술을 소비하는 방식에 있어서 조금 특이한 점은 있어요. 뒤샹, 호크니가 외국과 국내에서 비슷한 포인트로 마케팅되긴 하지만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터부시되는 부분은 수용했다기 보다는 없는 듯이 이야기하지 않는 부분이 있어요. 퀴어 코드라든가... 비슷한 시기 흥행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와도 유사하죠. 호크니를 이야기할 때 퀴어 코드를 빼면 온전히 볼 수 없는데 말입니다.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 소비 방식은 마치 ‘추억 상품’ 같아졌고.... 호크니까지 가세하고 보니 더 드러나네요.
N 예전에 강변 그라피티 성지 관련해서 그라피티를 방송에서 소개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던 생각이 납니다. 사실 그라피티는 미국의 하위문화로 독자적으로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랩이나 브레이킹 댄스, 인종차별 등 사회비판 등이 함께 있는 문화인 건데, 다 빠지고 그라피티, 힙합 다 쪼개져서 먹기 좋게 소비하는 문화로 바뀌어버렸습니다.
윤 우리 문화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변방성은 인정해야겠죠. 빠질 건 빠지고 취사 선택해서 중앙의 것과는 다른 식으로 소비하는.
N 맞습니다. 특별히 잘못됐다고 말할 수는 없고 모든 문화가 원류에서 아웃사이드로 전파되고 환원되고 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한국인들이 취사선택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권리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현재 메인스트림 문화를 소비하는 관객들을 보면 선배 세대들에 비해 별나라에 온 만큼 달라진 건 분명합니다.
윤 좋은 지적입니다. 예전에는 동시대 미술을 일부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 직접 눈으로 볼 기회가 거의 없었죠. 리얼타임으로 전해지는 것이 없다시피 했는데 불과 10년 사이에 많은 부분이 바뀌었습니다.
J 그런데 사실 동시대 미술을 감상하는 데에도 여전히 한국적 기준이랄까요. 그런 것이 존재합니다. 얼마 전 시립미술관에서 한 <이스트빌리지>전 같은 경우도 동시대 미술의 강렬한 모습을 보여준 전시인데 대중적으로 화제는 못 되었죠. 여러 스펙트럼 중에서 ‘외국에서 유명하다고 하는데 한번 볼까?’ 하는 부분이 강한 듯해요.
윤 전반적으로 상층 문화부터 하위문화까지 다양한 것을 다루는 미디어가 적어졌다는 것도 그 이유가 될 수 있을까요?
N 전통적 관점에서는 미디어가 부족하다고 하겠지만 요즘 친구들 관점에서는 정보가 전달되는 미디어가 많죠. 우리는 사실 중앙집중식 일방적 미디어에 익숙하지만 지금 성장하는 십대 이십대들은 SNS 유튜브 같은 것들이 그들의 미디어입니다.
J 그 새로운 미디어가 영향력이 이제 어마어마합니다. ‘먹방’이라는 단어가 신문 방송에서 만들어진 말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이게 세계 표준어가 됐고, 먹방 콘텐츠를 전 세계의 사람들이 생산하고 있습니다.
N 팝아트 하는 강 모 작가는 예전 박근혜 정부 때, ‘형, 우리 사회의 희망은 아이돌인 거 같아’ 라는 말을 했었어요. 지식인은 정부에서 통제할 수 있지만 정규 교육과정의 사회화를 겪지 않고 연습생을 거치는 아이돌들은 국가가 통제할 수 없다는 거죠. 승리 같은 경우 한국의 정서로 이해할 수 없는 도덕 개념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데, 어쩌면 승리는 정서적으로는 한국인이 아니라 글로벌한 코스모폴리탄 같은 사람일 뿐이죠. 이들은 돈과 나름대로의 권력으로 주류 사회와 화해하지 않아도 되는 세계를 살고 있어요.
J 국가 권력이 그들을 따라가는 상황이죠. 예전에 재벌들에게는 보통 사람들과 다른 기준이 있었던 것처럼 이들에게도 다른 기준이 적용되었다가 이런 사단이...
N 빅뱅 같은 경우 이들이 현대미술 컬렉터이기도 해요. 이 새로운 영웅들의 기호가 현대미술로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따라들 갑니다.
윤 과거에는 총칼이 권력을 좌우했다면 지금은 경제적인 것을 따라갈 수밖에 없고, 미술은 당연히 돈의 흐름을 따라갑니다. 이런 면이 우리 사회에서 컬렉션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만들기도 했구요.
J 서양에서도 운동선수나 배우, 가수가 수퍼스타이고 그들의 행동을 따라하는 이들이 있잖아요. 이를테면 조지 마이클 사망 후에 그의 소장품이 경매에 나왔었는데, 목록을 보면 트레이시 에민, yBA 인기 작가들이 있었고 이것이 보도되면서 반향이 꽤 있었어요.
N 딜러들 중 가고시안 같은 대형 갤러리는 갤러리라기보다 금융사로 봅니다. 투자하고 돈 빌려주고... 소장 개념은 이제 전통적인 것을 벗어나 투자 개념으로 바뀌었죠. 한국이 경제 규모에 있어서 전세계 7위 국가라고 하는데, 우리 사회가 고급 상품을 찾고 사고 하게 되는 것은 정상적인 궤도라고 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윤 그런데 아직도 부정적인 시각이 많아서.
J 사치품이나 당대 컨템포러리 상품들은 시장 조성기간이 조금 필요하죠.
윤 이런 배경에서 지금부터 우리 화가들이 해야 하는 일이 있잖아요. 이러한 문화적 토양을 바탕으로 창조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 등의.
N 2차대전이나 태평양전쟁 같은 비극적인 일들이 지나고 나면 좋은 작가와 작품이 나오는 경우가 많죠. 말하자면 딜레마 같은 것인데, 사회적 트라우마가 깊을수록 역동적이고 좋은 예술작품이 많이 나옵니다. 우리 사회는 다른 어떤 곳보다도 트라우마가 많은 곳이고 작가로 성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을 겁니다.
J 재난 지역을 찾아가서 ‘학습한 트라우마’는 사기 같아요. 자기가 굶어보고 불행했던 경험이 작품에 도움이 되는 것이지...
N 우리 사회가 단적으로 몸은 비대하고 풍요로워졌지만 정신은 가난하고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호크니 전에서 한 달만에 8만이 들었다는 사실은 분석의 대상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뭔가 교집합이 있을 겁니다. 추억팔이로서 기능했을 수도 있고.
J 백남준 선생이 작가란 관심 끌만한 일을 해야 한다고 했죠. 자기의 얘기를 풀어내야 합니다. 호크니의 경우 여러 사람에게 먹힐 건덕지가 있건 없건 자기 얘기 풀어낸 것이 좋은 결과를 얻은 것이죠.
N 작가 스스로가 얼마나 자신의 세계를 잘 만들어가는지에 대한 교본이 될 모범적인 작가라고 할 수 있겠어요. 호크니가 37년생인니 67년작인 <더 큰 첨벙>은 30대 초반의 작품이에요. 그런데 물이 튀기는 그 부분만 2주를 그렸다고 합니다. 이런 사실들은 실제 작가들한테 영감을 주죠. 저렇게 훌륭한 작가들도 저렇게 고생하면서 그려야 되는구나. 작품을 대하고 제작 과정을 알면서 자극받기도 하고 안정되기도 합니다.
윤 남송 마원이라는 화가의 수도(水圖)라는 그림이 있는데, 물결치는 모습을 열 장면으로 그린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일차적으로 엄청나게 관찰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죠. 다른 정경은 정적인데 물방울만 운동감을 보이는 그림으로, 그의 젊은 시절 고민을 짐작할 수 있어요.
J <더 큰 첨벙> 같은 작품의 배경인 60년대 후반 케네디 시절의 캘리포니아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웠던 때죠. 아직 월남전의 비극이 시작되기 전이고. 할렘가의 게이들과는 다른 부유한 게이의 생활이라고 할까요. 그런 모든 상황이 압축되어 그림 안에 드러나게 합니다. 그런데 후반기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을 보면 완전히 색감이 달라진 것을 보여줍니다. 좋은 작가구나 느꼈어요.
N 호크니는 드로잉을 많이 하기로 유명한데, 이것이 미술사에서 중요 자리를 차지한 작가들의 전형적인 태도예요. 하늘이 내려준 재능만으로, 또는 요행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거죠. 관찰에 집중하려면 기본적으로 드로잉을 많이 할 수밖에 없어요. 창작 과정의 전통을 잘 따른 작가라고 해야겠죠. 한마디로 잘 그려요.
프로이드나 베이컨 같은 작가들도 철학적으로 정신분석학적으로 많이 이야기되지만, 직접 작품을 보니 그런 코멘트 다 의미 없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잘 그렸다는 느낌이 압도적이었어요. 유화 재료를 다루는 인간문화재랄까요(웃음). 영미권에서 painter는 일단 잘 그리는 사람들이고 감각적으로 감동을 줍니다.
윤 덧붙여서, 전시장 건물과 전시 내용이 잘 어울리는 느낌을 오랜만에 받아서 좋았습니다. 너무 벙벙하거나 촘촘하거나 너무 과장되지도 않고. 잘 어울리는 내용과 형식.
N 시월이라는 회사가 여러 가지로 경험이 많아 노하우도 많이 있었을 겁니다. 장소성에 걸맞는 디자인을 했고, 세부 디자인은 ‘슬기와 민’이 맡아서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작년에 있었던 유명 서양 현대 조각 전시를 보면서는 ‘시민들을 도대체 어떻게 보길래...’하는 생각마저 들었어요.
J 같은 기획사가 진행했던 모 현대미술 전시도 관객을 소몰이하듯이 한 쪽으로 몰아 감상을 강요하는 바람에 인상이 찌푸려졌습니다.
N 그 조각전은 특히 증권가 찌라시도 아니고 스캔들이나 설명하는 불필요한 텍스트들이 전시장에 잔뜩 있었습니다. 그에 비해 호크니 전은 호크니의 전모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 단점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가능한 콘텐츠를 가지고 잘 연출했다고 생각합니다.
J 이번 기획 전시가 주어진 조건에서 잘 되었다는 것에 동의하는데 다만 내부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한 건 좀 아쉬워요. 외국에서 들여온 전시들이 많이 그런데 더 많이 홍보될 기회도 놓치는 것 같고, 본 외국 미술관보다 더 빡빡하다는 느낌입니다.
윤 대표작을 모두 갈무리하는 것도 아닌데 도록이 45,000원인 것도 아쉬운 점 중 하나죠. 소도록도 안 나오고.
N 저는 직업적 전시기획자 입장에서, 이벤트 회사가 더 전시를 세련되게 잘하면 저 같은 곳은 설 자리가 없어서 별로예요(웃음). 사실 그 사람들은 세세한 곳까지 챙길 여지가 없을 정도로 빡빡할 겁니다. 공공지원 없는 비즈니스니까 도록이나 입장료 같은 부분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을 겁니다. 아까의 그 나쁜 기획전 예와 비교하면 성공적인 전시입니다. 근대 이후로 내려오기 힘든 해외 작가 수입전을 이렇게 본격적으로 안착시켰으니까요.
윤 가격이 더 낮춰지고 좋은 수입 조건이 되기 위해서라도 많은 사람들이 전시를 찾아 보는 게 좋겠네요.
J 영화쪽은 일주일 만에 800만이 넘는 관객이 몰리기도 하는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의 전시에 20만명 왔다고 기뻐하는 거 왠지 부끄러운 일인 것 같습니다.
N 얼마 전의 통계를 보니 글로벌 미술시장이 76조 내외인데, 그 중 우리나라가 차지 비중 0.5% 정도라고 해요. 경제규모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수치죠. 이는 무슨 말이냐 하면 미개척 분야여서 투자하면 벌 가능성이 아주 크다는 것입니다. 작년 말 문화역서울284의 <커피사회> 전시에 30만이 넘는 관객이 왔었어요. 무료이긴 했지만 우리나라 미술전시에서 10만 이상 집객 전시는 수입 전시거나 작고 작가인데 활동중인 작가들의 아트 컨텐츠로 30만 넘게 온 것은 자랑할 만한 일인 것 같아요. 가능성을 볼 수 있지 않은가요?
J 저도 그 전시 아주 재미있게 봤습니다. 지나가던 할머니 아저씨 등 여러 층의 관객을 편하게 끌어들일 수 있던 전시였어요. 문화역서울 옆 7017의 설치 작품이 4억 들었다고 하는데 커피사회가 예술적 체험을 훨씬 더 많이 깊게 할 수 있었습니다.
윤 미술에 대한 수요는 잠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N 천만 도시 서울에서 10만 20만명을 끌어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시민들이 충분히 시각예술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도 됩니다. 더 다양하고 깊이 있는 전시가 많이 열려서 변화하는 관객과 호응하고 예술에 더 많은 영감을 불어넣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전시 기획자가 할 일이 많습니다.
윤 앞으로 더 좋은 기획으로 참신한 전시들을 많이 만나게 되기를 관객으로서 기대해 봅니다. 한국 고미술 쪽에도 20, 30만이 쉽게 들어오는 그런 분위기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수고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