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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세린의 전통공예 이야기] 5. 입사공예품 - 여의(如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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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如意)는 불교 사원에서 승려가 불경을 읽거나 설법을 할 때 지니는 도구로 ‘모든 것이 뜻과 같이 된다’는 뜻을 갖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기물이지만, 강론하는 스님이 글을 쓸 때 옆에 두거나 책을 누를 때 쓰기도 하고 또 가려운 부분을 긁을 때도 사용하는 등 실용적으로도 쓰였다.


<유동제 은입사 여의> 조선 국립중앙박물관

동아시아에 불교 전래되었을 때 인도에서 유입됐다. 조선시대의 유물 형태는 유입 당시인 3-4세기 동아시아의 도교 유행으로 인해 영지, 구름 등 상징적인 사물의 형태가 첨가되면서 완성됐다. 이후 여의는 우리나라에 불교가 국교로 자리했던 8-10세기 왕실 및 불교사원을 중심으로 단어의 의미를 그대로의 상징물로 정착했다.



<철제은입사 여의> 조선 18-19세기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
 

여의의 일반적인 크기는 길이 30-90cm이다. 형태는 영지 또는 구름처럼 생긴 머리 부분의 여의두와 긴 막대기처럼 생긴 자루로 돼있다. 현재 전하는 조선시대 입사여의는 유동, 철로 제작됐다. 유동제(鍮銅製) 여의는 은을 기면에 문양을 따라 끼워 넣는 끼움 입사로, 철제 여의는 기물 전체에 흠집을 내고 문양 모양으로 은을 쪼아 넣는 쪼음 입사로 정교하게 장식됐다.


<철제 금은입사 여의>, 청 18세기, 중국 북경고궁박물원

여의두 중심에는 기린, 꽃과 새, 문자 등이 장식되었고 주변은 형태를 따라 구획선만 시문하거나 촘촘하게 사선을 교차하는 삿자리문으로 여백을 채웠다. 자루부분은 전체를 삿자리문으로 시문한 뒤 중간에 여의두와 동일하게 새와 꽃을 시문하기도 하고 명문, 북두칠성, 번개, 해와 달, 당초문 등을 장식하기도 했다. 유물의 전반적인 입사장식이 화려해 왕실 및 상류층에서 향유하던 기물이었음이 확인된다.


<청옥제 여의> 청 19세기 북경고궁박물원

조선시대 여의는 불교 사원 뿐만 아니라 왕실 및 사대부 서재에 비치하는 장식품 그리고 권위를 상징하는 상징물로 사회 전반에 확산됐다. 이는 중국과 일본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동과 철로 제작된 입사여의는 물론 옥, 나무, 금 등을 쓴 황실용 여의도 제작했다. 그리고 조선을 비롯한 주변국에 여의를 조공품으로 바치게 하거나 반대로 여의를 선물로 보내기도 했다.
실제로 조선에서 철로 제작된 입사여의를 중국에 조공품으로 여러 차례 진상하고 또 하사받은 사례가 사서에서 확인된다. 이는 당시 동아시아의 왕실 및 상류층을 중심으로 여의 장식물의 유행했고 또 입사장식의 여의가 넓은 계층에서 쓰였음을 말해준다.(*)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13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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