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30 이원복, 김상엽, 최경현, 윤철규
윤철규(이하 윤) 미술사학계에 대한 소식이나 동향을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아 바쁘신 분들을 모셨습니다. 이원복 관장님, 김상엽 팀장님, 최경현 선생님 어려운 발걸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스마트K는 한국미술을 다루는 사이트로서 고미술 관련 학회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최근에 고미술 쪽의 전시도 많고 관련된 책도 많이 쏟아지고 하는데 최근 경향이 어떠한지 이야기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미술계 원로 소식
김상엽(이하 김) 요즘 공부를 못 해서 최근 동향을 잘 모르는데...(웃음)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윤 다 마찬가지니까 부담 없이 얘기해 주시면 될 것 같아요. 먼저, 고미술 학계의 원로 선생님들 계신데 어찌 지내시는지요? 정양모 선생님은 최근 내신 낙관 책(『조선시대 화가총람』, 시공사)이 재판을 찍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원복(이하 이) 정 선생님의 우리 회화사 관계 첫 번째 논문이 조선시대 화론입니다. 저는 대학에서 1970년대 초 한국미술사 강의를 정양모 관장님께 들었어요. 대규모 특별전 기획과 사찰, 불화와 개인 소장 서화조사, 도요지 발굴 등 도자뿐만 아니라 회화, 불화, 공예 분야도 다양하고 깊이 있게 연구해 오셨죠.
김 가끔 휠체어 타고 다니실 때도 있으신데 사무실서 뵈면 거동에 불편함이 없으세요. 번뜩함이 남아 있으시고 기억력도 대단하십니다. 재단에서 책이 나와 보여드리러 갔는데, 유물에 대해 책을 제작하면서 고민되었던 부분들을 정확히 콕 짚어서 얘기하셔서 다들 깜짝 놀랐습니다. 도자, 회화, 문방 등 각 분야를 아울러 작품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종합적으로 말씀하실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세대의 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정 선생님 첫 번째 논문이 조선시대 화론입니다. 저는 1972년에 한국미술사 강의를 정양모 관장님께 들었어요. 도자 뿐만 아니라 회화, 공예 분야도 다양하고 깊이있게 연구해 오셨죠.
윤 최근 안휘준 선생님은 어떠신지요?
김 안 선생님께선 요즘도 정력적으로 일하시고 원고도 계속 쓰시고 계십니다. 최근 『미술자료』에 ‘천수국 만다라 수장’관계 논문을 발표하셨고, 작년이 안평대군 탄생 600주년인데 아무런 행사도 없는 것에 안타까워하시기도 했구요. 논문 등 저술은 물론 여러모로 활발한 활동을 하시고 계십니다.
이 최완수 선생님은 2017년에 추사를 정리해서 내셨죠.(『추사 명품』, 현암사) 또, 간송미술관에 고교시절부터 오랜 세월 최 선생 밑에서 공부해온 김민규 씨의 논문을 최완수 선생님이 많이 도와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김민규, 「朝鮮時代 陵墓碑 硏究」, 동국대학교 대학원(박사학위 논문), 2019) 이 논문은 묘지석과 관련해서 양식부터 해서 조선시대 전체를 망라하고 있어요.
김 문인 중 최고는 시인. 연구하는 사람 중 최고는 사전 만드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전체를 망라하는 사전적 연구가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 정 선생님도 사전을 만들고자 하는 의욕과 열망이 크셨습니다.
윤 이성미 선생님, 김리나 선생님 등은 어떻게 지내시나요?
윤 이성미 선생님, 김리나 선생님 등은 어떻게 지내시나요?
최경현(이하 최) 저는 문화재감정관실에 근무를 하다 보니 학회 참석도 어려워 선생님들의 근황에 관한 소식은 잘 알지 못합니다. 다만 이성미 선생님께서는 여전히 한남동에 위치한 연구실에 출퇴근하시면서 한국 미술을 영어로 해외에 널리 알리는 작업을 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김 김리나 선생님 건강이 조금 좋지 못하시다는 얘기 들었고...
이 조선미 선생님이 어진 책을 새로 내시기도 했습니다.(『어진, 왕의 초상화』,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9)
윤 원로 선생님들께서 공부를 더 열심히 하고 계신 것 같네요.
김 조 선생님은 오로지 초상화로만 깊게 파들어가시는데 그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윤 초상화 분야 연구를 중국, 일본으로 더 넓히기도 하시지만, 몇 십년 전에 번역서도 내시고 90년대에 서양 화가를 포함해서 자화상 책도 내시고 했었죠. (『화가와 자화상』, 예경)
이 조 선생님은 학회에선 뵙긴 어려워도 요즘도 개인 사무실에 나가서 매일 공부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강우방 선생님은 민화에 대한 깊은 관심과 천작으로 새로운 해석 등 이 분야 연구에 새장을 여실 것으로 기대됩니다. 문명대 선생님도 열심히 공부하고, 발표도 하시고.
김 선생님들께서 나이를 드시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김양동 선생님을 최근에 모실 일이 있었는데 계속 소주를 시키셔서 참석한 세 명이 각 2병씩을 마셨습니다. 더 드시려했지만 제가 체력이 안 되서 술자리가 끝이 났습니다.
윤 선생님들께서 그렇게 활동 많이 하시니 저희가 분발해야겠네요.(웃음)
아까 김민규 씨 논문 이야기 잠시 나왔었는데, 최근 주목할 만한, 또는 재미있는 연구 논문 있으면 말씀부탁드려요.
주목되는 연구, 저서들
윤 최근 연구서로는 한정희 선생님과 최경현 선생님이 함께 쓰신 이 책(『사상으로 읽는 동아시아의 미술』, 돌베개, 2018)이 좋죠.(웃음) 한국미술 연구가 작가 연구에서는 어느 정도 벗어났죠. 이처럼 주제라든가 이제는 더 다양하게 뻗어나가야 될 것 같아요.
이 작년에 소동파 논문이 하나 나왔는데 한번 보시면 좋을 것 같네요. 국립중앙박물관 김울림 학예연구관(현재는국립춘천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이 쓴 것으로 주목됩니다(김울림, 「18.19세기 동아시아의 소동파상 연구: 청조 고증학과 관련을 증심으로」, 홍익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18).
최 청대 옹방강을 중심으로 한 중국의 소동파상에 대한 고증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와 일본의 소동파상(像)까지 두루 조사해서 비교 분석한 논문입니다.
윤 근래에는 작가 단일 연구보다는 흐름, 주제를 관통하는 주변 연구를 많이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최선생님 19세기 후반 해상화파에 관한 논문을 쓰지 않으셨나요?
최 시간이 어찌나 빠른 지 벌써 10년도 더 되었어요. 교류사는 한국미술사에서 중요한 테마로 19세기 후반 이후에 양국의 화가들과 인쇄매체를 통한 회화적 영향 관계를 다룬 것입니다. 이때 상해 지역에는 서양의 석판 인쇄술이 도입되면서 들어선 출판사에서 화첩을 다량으로 인쇄 판매한 것이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화첩 사이즈가 A4 반 정도로 아주 작아서 두루마기 소매에 넣고 다닐 수 있었으니까요. 더구나 상해에 위치한 출판사들은 태평천국의 난 이후에 유실된 여러 서적들을 재간하였고, 비용만 지불하면 어디든지 서적과 화보를 보내준다는 광고가 출판사마다 정리한 도서목록에 실려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윤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2차 자료가 아니라 직접적인 자료들을 수입해 올 수 있었죠. 중요한 연구입니다.
이 2017년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서 동주 전집(『동주 이용희 전집(7. 한국회화소사, 8. 우리나라의 옛 그림, 9. 한국회화사론, 10 우리 옛 그림의 아름다움)』 전 10권. 연암서가, 2018)이 나왔던 이야기도 해야 되겠네요.
윤 출판사가 낯선데 책이 참 잘 나온 것 같습니다.
김 4-5년 전까지만 해도 인문학의 화두가 ‘통섭’ 이어서 다른 전공의 연구자들도 미술 쪽 이야기를 한다든가 하는 일들이 많아졌었습니다. 미술사 쪽에서도 예전 같으면 작가나 영향관계를 주로 연구하다가 시야가 넓어졌구요. 90년대부터 보이던 조짐이 최근에는 크게 늘어났어요. 한편으로는 이제 작가론이 나올 게 별로 없기도 하고(웃음). 미술사학과가 많아지다 보니..
최 2000-2010년의 논문들은 특정 주제의 작품이나 문양을 다룬 세부적인 주제들을 다룬 경우가 많아지면서 개인적으로 연구 수준이 낮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시기별로 보면 18세기보다는 19세기와 관련한 작가들이나 기명절지도, 백납병 등 특정 주제를 다룬 논고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은 연구 시기의 확장으로 긍정적이라 할 수 있죠. 특히 박정혜 교수의 ‘낙화(烙畵)’ 연구(박정혜, 「19세기와 20세기 전반의 낙화 연구」, 『미술사연구』 33, 2017)는 회화의 새로운 영역 개척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 한자 교육을 거의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근현대로 연구자가 몰리는 것도 최근의 두드러진 현상 중 하나입니다. 홍대의 경우는 근현대로 논문이 집중되면서 생존 작가의 석사학위 논문이 나오고 있으니까요.
작가론, 다시 시작해야
이 작가 연구의 경우 이미 다 건드려 더 할 게 없다고 하지만, 이제 작가론도 다시 연구해야 된다고 봅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실물을 통한 작품에 대한 깊은 이해나 분석 없이 도판으로만 확인하고, 깊숙한 천착이 보이지 않는 논문들이 대부분이니 말입니다. 얼마 전 한중일 미인도를 비교해 살핀 논문 심사에 참가했는데 미인도들에 대한 실사과정이 약해 안타까웠습니다. 최근 우리나라 학위논문은 작가론이라고 해도 자료 모음 정도이지 구체적으로 밝힌 것은 없어 아쉽습니다. 이인상에 대한 기존의 학위논문이 있었으나, 이를 심화시킨 유홍준 선생의 석사논문은 좋은 선례가 됩니다.
최 몇 년 전 번역 출판된 이인상의 능호집(『능호집』돌베개, 2016)은 그에 관한 연구를 새로운 방향에서 접근할 수 있겠죠.
윤 말씀 나온김에 얘기하자면, 여기 책장 이 부분이 예전에 나온 한국 고미술 작가론 단행본들인데 읽기가 어렵기도 해서 새로운 서술이 필요해 보입니다.
이 그 중에 강세황 책은 수정, 보완된 단행본을 새로 내셨습니다(변영섭, 『표암 강세황 회화 연구』, 사회평론아카데미, 2016). 학자로서 양식과 계속된 관심 같아서 참 좋아 보입니다.
김 소치 다시 낸 것(김상엽, 『소치 허련』, 돌베개, 2008)도 보내드리겠습니다.(웃음)
이 작가에 대한 논문 쓸거리가 없는 게 아니라, 고쳐야 할 게 한둘이 아니라서 불안하다고 해야 할까요. 초기, 중기 그림은 영성하여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윤 정보화가 진행되면서 연구자들이 접할 수 있는 자료 양이 많아졌죠. 환경이 달라졌으니 처음부터 다시 검토할 때가 되었다는 말씀 같습니다. 박물관 사이트 같은 곳에서 작품 이미지 자료 제공도 많이 되고 있구요.
최 요즘은 한국 미술사 연구에 필요한 기초자료를 잘 제공해주는 기관들도 많습니다. 국립민속박물관 같은 경우 홈페이지를 통해 좋은 주제의 논문들을 쓸 수 있는 자료들을 발견할 수 있어요. 때문에 석사 과정 중인 학생들에게 국립민속박물관 홈페이지를 소개시켜주곤 합니다. 상대적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의 자료제공 서비스가 원활하지 못한 편인 것 같습니다.
이 국박 자료제공 얘기를 잠시 하자면, 제가 안에 있을 때 총목집을 내자는 이야기를 했었어요. 작업을 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서화 유물 이미지와 도록 pdf 화도 논의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전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도록은 10권부터 컬러 도판이고 그 이전은 흑백이지만 디테일이 잘 나와 있는 책은 이것이 유일합니다. 故 오주석 선생이 시작한 일인데 큰 일을 한 것이죠. 그 이인문 연구도 그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구요. 하지만 비어있는 부분 아슬아슬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윤 학생들이 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일을 구하기 어렵다고 하는데, 그렇게 보면 기초작업이 이뤄져야 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잖아요. 가까이는 고유섭의 『조선화론집성』도 그렇고 19세기 초 남공철의 『금릉집』, 조귀명의 『동계집』 같은 것도 대학원생들이 읽기 좋게 번역해야 하구요. 진홍섭 선생님이 쓰신 책들도 번역을 해야 됩니다. 미술사관계 번역원 역할을 하는 기관을 만들어서.
최 그렇게 되기만 한다면 많은 미술사를 전공하는 대학원생들이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새로운 연구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요즘 친구들이 원전을 안 보고 다른 곳에서 참고하고서는 재인용 표시를 안 하더군요.
최 수업시간의 주제 발표나 석사 학위논문에서도 고전번역원의 원문을 그대로 드래그하면서 방점까지 옮기기도 합니다. 최소한의 원문 대조작업을 거쳐야 하는데 그러한 과정을 놓치고 있어 매우 안타깝습니다.
김 홍선표 선생님의 한국미술연구소에서 출간한 근대 관계 책들은 이 방면 인식의 지평을 넓힌 중요한 성과입니다.(『한국근대미술 시각이미지 총서』(전 3권 1. 모던 경성의 시각문화와 창작, 2.모던 경성의 시각문화와 관중, 3. 모던 경성의 시각문화와 일상), 한국미술연구소, 2018)
최 한국미술연구소에서 진행한 프로젝트 작업의 결과물이죠. 근대와 관련한 엄청난 연구 성과이며, 행간을 자세히 읽으면 여러 편의 논문이 나올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자료와 정보가 실려 있습니다.
김 젊은 친구들... 이라고 말하게 되었는데(웃음), 요즘 친구들이 소소한 것, 그러니까 빨리 학위를 딴다거나 하는 데에 관심이 있지 좀 더 큰 지향점 또는 넓은 시야를 가지고 학문을 이어나가려는 힘이 잘 보이지 않는 듯합니다. 논문 내고 후속 작업들이 순차적으로 나오고 그러면 동학으로서 기쁨을 느낄 수 있는데, 논문도 왜 그런 것을 썼는지 이해가 안 되는데 그 이후에 별다른 연결도 없어서 실망하게 됩니다.
최 대학원생들을 지도하며 실망할 때가 적지 않은데요, 열심히 주제와 관련한 자료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이나 관련 서적들이 주요 공공기관을 알려주지만, 그러한 접근은 하지 않은 채 쉽게 인터넷에 의존하는 거예요. 심지어 도서관에서 관련 도록을 찾아 이미지를 스캔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에서 다운받은 이미지를 사용해요.
김 대학원의 수준이 많이 떨어진 것이 사실이에요. 석사논문을 쓰고 있는 학생이 할 만한 질문이 아닌 질문을 하면서도 그걸 잘 모르고, 쓰고자 하는 주제의 논문이 이미 있으니 변별성 있게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을 해도 별로 달라지지 않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개인의 태도 문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최 책장에 유복렬의 『한국회화대관』이 보이는데요, 저런 1차 사료라고 할 수 있는 기초적인 책부터 보는 자세가 안 되어 있습니다. 대개 연구자들의 논문을 읽는 것에서 시작을 하기 때문에 새로운 내용이나 해석을 이끌어낸다는 것 자체가 어렵죠.
이 유럽 쪽에서 공부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박사 논문을 쓰고 바로 그것을 책으로 내는 일이 없다고 해요. 몇 년 객관화 작업을 거친 후에 책을 낸다고 하는데 미국을 본보기로 해서인지 우리나라는 박사논문을 바로 단행본으로 만드는 것이 관행같이 이뤄지고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윤 일본도 박사학위 논문이 그대로 책이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요즘 조선시대의 미술을 다룬 것으로 오인받는 책들이 많이 나와요. 역사 전공자, 문학 전공자들이 조선시대의 책을 내면서 미술 자료를 적극적으로 가져다 쓰기 때문이죠. 알기 쉽게 잘 설명해 놓아 일반인이 접근하기 쉽습니다. 미술사 하는 분들이 이런 것을 배워서 일반인이 접근 가능한 책도 많이 냈으면 좋겠어요. 논문도 재미있었으면 좋겠구요.
이 김영나 관장께서 예전에 모 일간지에 연재한 글을 모아 단행본으로 출간했는데 반응이 좋습니다(『김영나의 서양미술사 100』효형출판,2017). 김 선생은 나이 들어서는 평이한, 일반인을 위한 책을 써야 한다는 말씀이 여러 가지 생각을 갖게 합니다.
김 “나이 들어서”는 빼시는 것이 좋겠어요.(웃음) 그런 책은 그런 책대로, 연구서는 연구서대로 쓰면 좋지요.
이 제가 국립박물관에서 9년 가까이 모신 최순우 선생님의 길지 아니한 글도 다시 읽어도 놀라게 됩니다. 작품이건 작가이건 핵심과 본질에 닿아있기 때문이죠. 일반인들이 쉽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내용이 깊이 있고.
김 20년 전 쯤에 회화의 음악성, 문학과 회화의 연결성 같은 주제의 연구가 처음 시작될 즈음에는 사실 실망스러울 때가 많았습니다. 문학하는 사람들은 회화를 모르고 회화는 문학을 몰라서 그랬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논문들은 각주로 달면 안 된다고 까지 생각했습니다만 시간이 지나 연구가 축적되니 이젠 과거의 일이 되었습니다. 오히려 지금 연구는 폭넓게 진행되기보다는 분과로 깊게 들어가 자기 분야만 아는 것이 자랑처럼 느껴질 경우가 있습니다. 이제는 분과적 관심을 넘어서 다른 학문 분야와 종합, 교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윤 전문가들은 그런 책들 읽는 것 시간 아깝다고 하지만. 일반인은 재미있어 하죠.
김 정확한 사실에 기반하지 않고 얄팍한 글재주로 혹세무민하는 몇몇 사람들의 책이 많이 팔리는 현상을 보면 어처구니없기도 합니다.
이 구본주, 백인산 선생님이 받으신 바 있는 최순우상 같은 경우, 학문적인 업적보다는 얼마나 일반에 기여했는가를 봅니다. 그런 이들이 많이 격려받는 것이 좋겠습니다.
미술사학과 전망
윤 미술사학과 졸업 후에 진로 전망은 어떤가요?
최 요즘 대학원을 졸업한 학생들은 전국구로 취업에 도전하고 있어요. 지방 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기관의 학예사를 지원하는 거죠. 그나마 자리를 잡은 사람들은 다행이지만, 지금 어설프게 석사 마치고 박사에 있는 사람은 딜레마에 있습니다. 2000년대까지는 강의라도 많았지만 지금은 박사학위를 받아도 초빙교수나 겸임교수가 되지 않는 한 강의도 어려운 형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 미술사를 시작하는 학생들은 앞으로 15년 정도 지난 뒤에는 비전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현재는 학예사도 거의 막혀 있으니까요.
김 제 경우는 92년부터 강의를 했는데, 당시에는 전업 강사로 뛰어야 할까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였어요. 너무 많은 강의 제의가 와서 거절하기 힘들 정도였으니까요. 그 무렵 미술사 강좌가 대폭 늘어나고 해서 그랬을 텐데, 몇몇 요일에 집중적으로 강의하고 방학이나 나머지 시간에 연구하면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낭만적인(?) 생각을 했었지요.
최 그렇지만 요즘은 거의 모든 대학에서 미술사 관련 과목을 통폐합되면서 강의도 많이 없어졌어요. 홍대의 경우 미술대학의 거의 모든 과에 개설되었던 한국미술사와 동양미술사가 이제는 교양과목이 되면서 학생들이 들어도 되고 안 들어도 되는 강좌로 바뀌면서 상황이 많이 달라졌어요.
윤 할 일은 많은데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은 것일까요. 오늘은 이 정도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한 분씩 정리 멘트를 부탁드립니다.
이 근대미술의 경우 그림 값도 너무나 떨어진 침체 상황이죠. 19세기의 그림이 그렇게 싸질 줄은 몰랐습니다. 버블이 있었던 것은 빠지는 게 당연하니 그 부분을 인정하더라도 너무 씁쓸한 일입니다. 초심으로 돌아가서 하나씩 점검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모든 것이 성쇠가 있으니 낮아지는 시기라 보더라도 이때 다지고 재정비하는 단계를 밟지 못하면 사라질 겁니다.
김 미술사를 공부하는 이들이 회화, 조각, 공예든, 근대와 전통 분야든 근본을 잊을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왜 이런 공부를 하는지, 그냥 좋아해서 하는지 사명감 또는 지향점이 무엇인지 등에 대한 심각한 의문과 제대로 된 답변을 구하는 과정이 없다면 학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학위 하나 따는 것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아직도 학문에 천착하시는 원로 선생님들, 노력하는 신진 연구자들의 응축된 결과물이 존경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흔들릴수록 고전으로 가게 된다는 말도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고전으로 간다는 건 문제가 있습니다. 기존의 경향과 다른 관점 또는 시야를 가지고 접근했으면 한다는 말씀입니다. 최근 논문쓰는 후배들과 얘기해보면 시야와 사고의 폭이 작아서 안타까울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꼭 미술사에만 국한된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최 미술사는 확실히 매력적인 학문임에 틀림없죠. 나이가 지긋하신 선생님들은 아직까지도 의욕을 불태우고 새록새록 의미를 찾아가시는 데 비해 젊은 후배들은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생활에서 향유하고 누렸던 사람들의 미술사와 전혀 그것에 대한 경험이 없이 공상적으로 접근하는 미술사의 차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실제적으로 생활 속에서 전통 미술과 관계를 가지며 교감이 있는 상태에서 방법론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서의 개념적 학문에 머물면서 괴리감이 커진다고 할까요. 근본적인 원인은 한국의 미술품을 향유하지 못하는 세대가 미술사를 공부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고등학교 수업에서 역사라는 기본 소양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거의 불가능한 것이 한국미술사 강의예요. 고등학교에서 국영수 위주의 입시 공부만 친구들은 역사의식은 물론 기본적인 지식마저 부족해서 아예 ‘사(史)’자가 들어간 수업 자체를 기피하거나, 수강을 신청을 했더라도 역사적 배경이나 사실을 이야기 하다 보면 눈을 감고 있는 학생들을 종종 발견합니다. 그리고 ‘자 어디 한번 저를 설득해 보세요’라는 태도로 무심히 앉아있는 학생들의 관심을 이끌어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미술사를 전공하기 위해 대학원을 노크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며,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위안이 됩니다.
윤 최근 고미술 전시도 크게 열리고 책들도 많이 나오지만 내부적으로 많은 고민이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문제의식이 커지다보면 해결책도 드러나게 되겠지요. 가끔 학계 소식도 전해주시고 일반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이 들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주말, 늦은 시간까지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