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측메뉴타이틀
  • 한국미술 전시리뷰
  • 공예 전시리뷰
  • 한국미술 도서리뷰
  • 미술계 이야기
  • On View
  • 학술논문 브리핑
타이틀
  • [김세린의 전통공예 이야기 ] 3. 입사마구의 세계 - 재갈과 굴레
  • 1833      

말은 근대 이전 인간의 삶에서 가장 밀접한 존재이다. 이서(李曙, 1590-1637)의 『마경초집언해馬經抄集諺解』(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와 같이 말의 신체구조와 질병, 대한 심도 있는 연구와 관련 장비들을 연구한 서적들이 있을 정도이다.


<마경초집언해>, 조선,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 소장

말은 운송수단으로서의 성격이 강했는데 말의 신체 구조와 말을 타는 사람의 편의를 고려한 다양한 종류의 기물(이하 마구)들이 존재했다. 마구는 동이나 철로 제작되는 경우가 많았다. 입사는 기물의 표면에 금이나 은을 감입해 사용하는 이들의 신분을 상징하거나 그 외 장식적으로 꾸미는 문양들을 표현하는데 사용되었다. 
마구 중 기수의 발을 걸치는 등자나 앉을 때 쓰는 안장은 비교적 잘 알려진 편이다. 반면 굴레와 재갈은 전해지거나 출토되는 유물의 수가 많은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굴레와 재갈은 말을 타고 이동할 때 말의 움직임이나 방향을 제어하기 위해 사용되는 장비이다. 크기가 작고 파편으로 발견되는 경우가 많아 보통은 말 장식으로 분류되지만, 이 중 상당수는 재갈 또는 굴레이거나 이들의 조각이다. 재갈은 말과 고삐의 연결고리로 말을 부리기 위해 말의 입에 가로 물리는 기물을 말한다. 가운데에 긴 막대가 있으며 좌우에 동그란 고리가 있어 재갈과 연결할 수 있게 한다. 삼국 및 가야의 유적에서부터 출토되고 있어 오랜 시간 사용된 마구임을 알 수 있다.(도 2)


<재갈과 굴레>, 가야 5세기, 경남 합천군 옥전고분군 출토, 경상대학교 박물관 소장

현재 전해지고 있는 입사장식을 지니고 있는 재갈과 굴레는 고려, 조선시대 유물이 대다수이며, 굴레가 좀 더 많은 편이다. 대체적으로 동, 철로 제작되었고, 말의 입에 물리는 부분에는 장식이 없으며 고삐를 연결하는 고리 부분에 시문이 이뤄졌다. 기물면의 폭이 좁고 기능적인 부분이 강조되는 기종이기 때문에 실용도 및 재료 수급의 용이성, 내구성을 위한 강도 등을 고려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장식수법은 철로 제작된 비중이 높기 때문에 쪼음입사가 많다. 기물면 폭이 좁기 때문에 크기가 큰 중심문양이 있는 경우는 드물며 대부분 기물 전체를 감싸는 당초문, 운문, 기하학문이 선으로 반복적으로 표현되었다. 
굴레는 고삐를 말머리에 부착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말머리에 씌우는 가죽끈과 고삐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가운데 연결고리를 중심으로 양 옆에 가죽끈과 고리를 연결할 수 있도록 걸쇠 2개가 달려있다. 굴레는 실용적인 성격에 마구의 장식구적 성격도 겸하고 있어 기본적인 굴레의 구조를 지니되 형태에서 유물에 따라 약간 차이를 보인다. 원형의 고리에 걸쇠를 걸기도 하고, 사각의 판 양쪽에 구멍을 뚫어 걸쇠를 걸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기면이 좁기 때문에 쪼음입사로 기하학문이나 선이나 回, ∧∧ 형태의 문양이 많이 장식됐다. 그리고 중심에 복이나 장수를 상징하는 문자문인 수복문(壽福紋)이 있는 유물도 있다. 수복문은 사각판형 고리를 지닌 굴레에 주로 나타나는데, 사각판의 가운데에 작은 원형 철제판을 부착하고 수복문을 시문했다. 장식재는 금, 은이 각각 단독으로 사용되어 이 역시 사용층에 따라 나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시대 재갈과 굴레들


<철제은입사당초문재갈>, 조선후기, 한국마사회 말박물관 소장



<철제은입사굴레>, 18-19세기,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 소장


<철제은입사굴레>, 18-19세기,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 소장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13 07:51

  

SNS 댓글

최근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