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원(고원재 대표)
정대영(동인방 대표)
김영복(K옥션 고문)
최윤석(서울옥션 상무이사)
윤철규(한국미술정보개발원 대표)
윤철규(이하 윤) 아시다시피 스마트K는 한국미술 중에서도 특히 고미술 컨텐츠를 주로 다루는데, 전통 문화가 생각보다 널리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항상 가져 왔습니다. 최근 외국에서 K팝, 화장품 등이 붐을 일으킨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생산품이 아니라 오래 다져진 문화가 응축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문화는 적어도 2~300년 전의 예술과는 상관이 있을 것이구요. 그런데 근래에 고미술의 가치는 좀처럼 오르지 않고 오히려 계속 위축되고 있는 모습을 보입니다. 특히 고미술시장에서 잘 드러나죠. 오늘은 고미술의 위상에 대해서, 그리고 현재 상황을 만든 원인 진단과 그 개선점에 대해 자유롭게 얘기해 보고자 인사동과 장한평(답십리)의 미술상인 두 분과 메이저 미술품경매사를 대표해서 두 분을 모셨습니다.
2005년 12월에 어떤 상징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서울옥션 경매 도록을 펼치면 고미술부터 등장했는데, 역전되어 현대미술 섹션이 앞쪽으로 이동한 것입니다. 시장이라는 곳은 무서워서 현실을 냉정하게 반영하기 마련이죠. 최근에는 분책이 되어 현대미술과 고미술파트가 구분되어 그나마 좋은 현상이라고 보여지기도 하지만, 여전히 매출만으로 봐도 현대미술의 절반도 안 됩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그 업계에서 오랜 기간 일을 하시고 여전히 현직으로 열심히 뛰고 계신 분들이니 그 분위기를 먼저 좀 전해주셨으면 합니다.
최윤석(이하 최) 고미술시장 규모가 어느 정도나 될까요? 경매시장에서만 본다면 2018년 전체 경매시장 매출 규모는 2000억 원이고, 서울옥션 매출 1000억 원 중에서 고미술이 120억 원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고미술시장은 전체 미술시장의 15% 정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되는데요.
김영복(이하 김) 아마 10~15퍼센트 정도가 될 거예요. 아주 잘 되었을 때 20% 정도. 고미술의 시장 가능성이 없는 것은 분명 아닌데, 일반 고미술상에서 매매 거래가 거의 되지 않게 됐다는 게 문제지요.
정대영(이하 정) 장한평 쪽의 분위기는 상당히 누추하고 수준도 낮습니다. 문제를 짚어 본다면 상인들의 지식 결핍 부분이 크다고 봅니다. 고미술을 사고 팔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지식이 절대적으로 많이 필요하죠. 예술성이 있는 물건을 거래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잘 표현할 테크닉이 필요한데, “너 보기 좋으면 사라” 그 수준 정도입니다. 미술품을 소장하고 싶은 사람이 오는 것이 아니라 상인들이 오거나 실내장식용으로 싸고 옛것과 비슷한 것을 찾는 사람들이 옵니다. 이러니 한국 물건이 자리 잡지 못하고 저렴한 중국 물건들이 치고들어와 잠식하고 수준을 저하시키고 있죠.
김 답십리 쪽은 그런 상황이 이해가 가긴 하는데, 인사동 쪽도 마찬가지예요. 말씀하신 지식 부족도 절대적으로 문제이구요.
윤 고미술품의 거래에서 가장 큰 비중은 경매를 통한 것이 됐죠. 두 번째가 인사동이고, 장한평 쪽은 장식적 인테리어 수요가 많고...
정 액수가 싸니까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물건을 찾는 손님들이 모이죠.
윤 저렴한 앤틱 상품 시장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프랑스 같은 경우도 골동 시장에서 1차로 걸러져 갤러리로 가고, 좋은 물건들은 다시 경매로 가는 경로를 취하곤 합니다.
정 과거에는 지방 소상에서 대상으로, 다시 서울로 가는 골동 유통과정이 있었는데, 그때 장한평은 괜찮았습니다. 인사동도 그곳을 통해 물건을 공급받았구요. 지금은 그 패턴이 완전히 깨졌습니다. 대신 옥션이 고미술시장을 지배한다고 보는 시각이 많죠.
김 그것도 그렇지만 매스컴과 인터넷 때문에 환경이 완전히 달라진 부분이 크다고 봅니다.
임종원(이하 임) 서울에서 나오는 물건도 있지만 지방에서도 고급 물건이 꽤 많이 나왔었죠. 그런데 지금은 현실적으로 거간이라고 하는 중간상인이 없어진 상태입니다. 시골에서 좋은 물건 있으면 거간꾼이 지방 상인에게 넘겨 주고, 서울의 거간꾼이 이를 지방에서 서울의 상인에게 연결해줬었죠. 말씀하셨듯이 텔레비전을 통해 경매를 중계하고 인터넷으로 물건값을 알아보고 핸드폰으로 사진찍어 전송하는 시대니까 그런 거간들이 존재하기 어렵게 된 겁니다.
김 핸드폰으로 사진 찍어서 바로 문의하고 사고 팔아버리니까....
임 일 때문에 일본을 자주 다니는데, 예전에는 일본 거래를 통해 꽤 재미를 봤지만 요즘은 다릅니다. 일본 고미술상에 갔더니 사무실에 앉아 서울옥션 케이옥션 경매를 생중계로 지켜보더군요. 예를 들어 한국의 경매에서 100만원에 낙찰된 물건과 비슷한 물건이 있으면 20% 빼고 80만원에 팔겠다고 합니다. 똑같은 물건은 없으니까 경매 물건보다 조금 좋다고 생각하면 그에 준해서 조금 더 부르거나 하는 거죠. 그러니 차비나 벌면 다행이지 장사하기 힘듭니다.
김 지금은 옥션이 거간 역할을 하는 것이죠.
임 거간이라기엔 옥션 회사들이 너무 세요.
최 해외도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미술시장 상인들 패턴은 지식 정보의 차를 이용해서 이득을 취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환경이 변해서, 여기서 팔든 뉴욕에서 팔든 다 오픈되어 버립니다. 예전에는 발품을 팔아 부지런히 다녀 정보의 격차를 이용해서 수익을 만들었지만 불가하게 된 거죠. 그러니 공급하는 쪽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가격 경쟁력이 아니라 세련된 지식을 겸비해서 접근해야 고미술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김 인사동 사람들이 이 말을 들으면 나를 욕할지도 모르지만... 인사동에 오랜 시간 있던 사람으로서 얘기하자면 인사동 사람들이 공부를 참 안 해요.
임 그건 사실이죠.
임 예를 들어 유명한 컬렉터 한 분이 와서 도자기를 사려고 하잖아요? 상인이 생각할 때 저 분이 이 분야 컬렉터니까 나보다 더 잘 알 테지 하는 생각이 들고 사실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 때가 많습니다. 상인은 물건을 저렴하게 산 다음 다시 팔아서 이익을 남기면 되는 사람이고, 컬렉터는 애착을 가지는 물건들을 수집하려고 그 분야를 오래 조사한 사람이니 지식이 상인보다 더 낫게 마련이니까요. 상인이 열심히 노력하지 않으면 인터넷을 두드려 웬만한 것을 알고 오는 손님들을 상대하기 어렵습니다.
정 조선 것을 연구하다 보니 양반 사회가 지식을 상당히 선호하고 깊은 전문적 지식을 소유했었던 것을 많이 느끼는데, 그 못지 않게 예의도 상당히 중요시했었죠. 우리 고미술도 지식의 빈곤 속에서 지식을 득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게 아니라 작품을 사고파는 데 있어서 성실함을 갖추는 ‘예의’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퇴보하게 되죠.
임 정 사장님은 그야말로 어떤 사람이 찾아와도, 대통령이 와도 거지가 와도 똑같이 정중하게 대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얼마 전 어떤 분이 감정 기구를 만들었다면서 탄소연대측정기를 샀다고 합니다. 이런 부분에 오해가 많은데, 기껏해야 조선시대 목가구에 붙은 장식 같은 곳에 측정기를 들이대면 600-700년 되었다는 측정치가 나오기도 해요. 몇 백 년의 오차가 있는 기계와 방식이라면 몇 백 년 된 물건을 측정할 수는 없는 거죠. 감정에는 무엇보다도 경륜과 연륜이 필요한데, 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김 중국의 감정 서적을 살펴보면 첫 번째가 안목 감정이에요. 아무리 과학적 감정 기술이 발달해도 그렇습니다. 장비로 측정하는 것은 보조적인 장치에 불과해요. 몇 천 년 된 유물이라면 모를까 오차 범위가 큰 것으로 섬세한 시대 감정은 의미가 없죠.
윤 자꾸 객관적인 장치 이야기가 거론되는 것은 현대미술과는 달리 작자가 분명치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감정의 문제를 작가론에 기대기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현대미술과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어요. 감정에 있어서 신뢰할 수 없는 부분들이 반복되고 그렇다면 공정한 게 뭐냐. 기계를 가져오자, 그렇게 되는 거죠. 그러나 이건 축구 게임에 야구 심판 데려오는 격이어서 공정할지는 모르지만 정확하지는 않은 판단을 내리니 문제가 됩니다. 사람들이 고미술을 구매하기 위해 옥션을 많이 찾는 이유도 그 점에 있죠. 일관성을 유지하는 심판이 있기 때문에.
김 그것도 그렇고. 물건을 사는 사람이 자신의 판단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죠.
정 고미술협회 쪽에서 보면 감정하는 내용이 정직하지 않다는 생각, 신뢰성이 없다는 사실이 존재합니다. 그에 비해 옥션은 문서 등으로 책임을 지고 경매 장면과 낙찰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해서 신뢰성을 높이죠.
김 정 사장님이 얘기하신 성실성, 예의가 신뢰회복을 위해 필요한 가장 중요한 덕목이죠. 격조 있게 바꿔 말씀하신 것인데 바로 진위 감정문제가 신뢰성과 직결됩니다. 신뢰성 확보가 없으면 고미술 시장의 진전이 있을 수 없습니다. 경매 회사에서 제일 어려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끊임없이 문제가 발생하니까요. 예전에 청명 임창순 선생 같은 분이 작품에 대해 평가하면 아무도 그에 대해 반박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지금은 그런 권위 있는 선생님들이 계시질 않죠. 전문적 안목을 갖추고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겨나야 합니다.
임 권위가 있어야죠.
김 신뢰성을 바탕으로 권위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하고, 어려운 것은 주위 사람들과 상의하고 그 과정에서 점점 권위가 높아가고 하는 거죠. 그런데 자신의 안목이 최고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서로 배워가면서 안목을 높이려고 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윤 고미술시장은 인문학, 역사와 관련되어 있어서 시장 뿐 아니라 학자들도 어느 정도 연관이 되는 경우가 많죠. 그런데 감정 문제에 있어서는 해당 분야의 전공 학자들이 발을 빼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고미술을 자신의 연구 테마로 삼고 공부를 하고 있다면 고미술 시장을 책임감을 가지고 대해야 합니다.
김 상인과 마찰이 있었던 과거 때문에 박물관에 상인들이 드나들지 못하게 된지 오래됐어요. 일본은 이와 달라서 시장과 학계 공조가 잘 되는 편입니다. 감정을 할 때도 학자들 외에 상인 대표가 포함되구요. 우리나라는 어떤 경우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황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끼리 감정 테이블에 모여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 개선되고 바뀌어가고 있기는 합니다. 얼마만큼 신뢰성을 확보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정 생존해 있는 사람들은 고미술계에 있어서 과거에 좋고 아름답고 유용한 것들을 취합해서 다음 세대에게 보여줘야 하는 소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철학을 깊숙이 가지고 있다면 거짓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자식에게 보여주고 전달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요.(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