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24.
최열, 정준모, 김진녕, 캐슬린 E. 김, 윤철규
윤철규(이하 윤) 연초에는 대개 문화계 이슈가 별로 없는데, 금년 1월은 나전으로 뒤집어졌네요. 전통 공예와 관련되어서도 어떤 문제가 드러날지 걱정되지만 오늘은 또 하나 걸리는 문제가 있어서 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작년부터 계속 조금씩 이야기가 나왔던 것이지만 미술 창작 대가기준 시범도입을 추진하겠다는 안이 문체부에서 다시 나왔습니다.1) 이것이 어떤 제도인지 관심있는 일반에게 알리고 이 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를 짚어보고자 합니다.
정준모(이하 정) 쉽게 말해 미술 작가들이 전시를 할 때 출품에 대한 대가를 주라는 얘기인데...
김진녕(이하 J.김) 구작이든 신작이든 관계없이.
최열(이하 최) 일반 상품이라고 생각을 하면, 백화점에 내 상품이 납품 들어가는데 백화점으로부터 납품 대가를 받는 셈이라고 할까요. 상품처럼 매물로서 판매가 될 수 있는 것이면 다양한 방식으로 그 판매 이익을 배분하면 됩니다. 미술 전시의 경우라도 매물인 경우에 일반 상품의 룰을 따르면 되는 것이어서 전시 대가가 필요하지는 않죠. 하물며 법으로 그 비용을 규정하면 안 되는 겁니다. 판매와 관계없는 국공립미술관이라면 적용할 수 있겠지만요. 공공성을 갖고 있는 곳이더라도 사적인 매물로서 상품의 의미를 띠게 되는 곳이라면 이런 창작 대가가 적용되어선 안 됩니다. 국공립미술관의 경우 기관의 행사를 가능하게 해주는 요소로서 출품자에게 그 대가를 지불할 필요는 있죠. 즉 작가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소장자 등 출품한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지만 당연히 이뤄지는 일을 굳이 법으로 규정해둬야 할 필요도 없고.
J.김 공공 미술관이라면 지적재산권과 관련해서 작품 대여료를 지불하고 있죠. 작가나 컬렉터에게.
윤 보수제도의 내용을 보면 ‘창작에 대한 대가 기준’을 제공한다는 것인데, 그 주체가 되는 것은 작가, 평론가. 큐레이터 셋이 있습니다. 작가에 대해서는 앞에서 최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셨고, 평론가나 큐레이터는 이미 원고료와 기획료 등으로 대가를 받고 있습니다. 작가에게도 보통 어떤 전시에 출품을 의뢰할 경우 제작료가 있는데 이를 공식화하는 게 아닌가 싶네요.
정 아티스트 피(artist fee)가 나오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창작자도 노동자라는 개념입니다. 사회통념상 예술가들을 노동시간으로 그 가치를 비례해서 환산하는 노동자로 볼 수 있을지.... 물론 한스 하케나 칼 안드레 등 예술가를 노동자로 표현한 작가들이 있긴 했었지만, 청년일 때 얘기고 나중에는 쏙 들어갔어요. 젊은 작가들을 창작 노동자로 여기고 인건비로 상정하다보면 최저임금에 준해서 해야 되나요? 노동 시간은 어떻게 계산해야 될까요?
윤 이재경 교수의 연구 보고서2)를 보면 산출 근거가 최저임금이긴 합니다. 창작자가 제대로된 보수를 못 받는 경우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지만 미술이라는 틀을 벗어나 일반적인 노동의 대가 인건비로 적용하기는 어렵습니다. 작가들이 살기 어렵다면 기존의 사회안전망을 보완하는 방향도 있을 수 있죠. 창작에 있어서는 자유경쟁을 해야 장기적으로 바른 선택이 될 겁니다.
정 실제로 예술인복지법도 있어서 예술인들이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게끔 하고 있기도 합니다.
최 여기서 전제가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전시’를 기본 조건으로 설정해 놓고 법제화 해 놓은 것인데, 전시에 출품하는 주체는 작가인 것만은 아니에요. 한다고 하면 출품자에게 적용되어야 하겠죠.
정 소장가가 따로 있고 작가가 생존해 있거나 저작권이 후손에게 남아 있는 경우 작품을 출품하면서 작가나 그 후손에게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추급권과도 연결되는 문제죠.
최 팔았으므로 권리가 양도된 것인데... 작가가 관련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요.
김 소유권과 저작권, 이미지 사용권 등 다 다르잖아요.
정 저작권과 소유권이 다르기 때문에 도록을 만들 때도 소장자와 별도로 작가들에게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김 이 제도가 실상은 배급권이 포인트라고 해야 할 것 같아요.
정 국공립미술관과 정부가 보조금을 주는 전시는 작가 수수료를 지급하라는 겁니다.
최 전시를 위한 것이니 소장가, 즉 출품자에게 준다고 해야 하지 않나요.
캐슬린 E. 김(이하 K.김) 출품자가 아닌 창작자에게 지급하는 대가 기준입니다.
정 어떻게 작품이 생산되고 전시가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모르는, 법만 아는 연구자들이 만든 제도인 듯 싶어요. 작가들에게 작가료를 줄 수 있는 경우는 보조금 사업, 국공립미술관의 전시, 현역 작가-컨템퍼러리, 비영리전시공간에만 해당될 겁니다.
비영리공간도 전속작가를 두면 지원하겠다는 판이죠. 비영리기관에서 무슨 수로 아티스트 피를 마련합니까. 결국 정부 보조금에 기댈 수밖에 없는데...
윤 공공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비영리기관 외에 상당히 넓은 상업 공간이 존재합니다. 국공립 기관에서 전시할 때는 돈 받고, 상업 갤러리나 사립미술관의 전시는 돈 안 받고? 불균형이 생길 여지가 보이죠.
정 국공립미술관은 비영리 기관이지만 한번 그곳에서 전시를 하면 작가 그레이드가 올라가는데 거기에 아티스트 피까지 준다면 혜택이 더 커지겠죠. 아티스트 피를 줄 때도 등급을 매기도록 되어 있는데. 단체전 몇 번 개인전 몇 번 했느냐 등으로 등급 매기겠다는 것이죠. 전시의 질과는 상관없이 물리적 카운트만 하게 되겠죠. 그러면 결국 모마에서 전시해도 한 번이고 동네 관공서 로비에서 전시해도 똑같이 한 번으로 세어지는데 누가 동의할까요?
윤 시범도입이라는 것은 문제가 많으면 이 법을 시행하지 않는 것이죠. 개선의 여지가 있다면 반영할 것이구요. 어떻게 수량화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마련될까요.
정 월 기준단가 놓고 그림 그리는 데 며칠 썼냐, 구상한 기간은 창작기간에 넣을 거냐 말 거냐, 일지 적어야 할 판입니다.
윤 그리고 그림은 주 52시간 이상 그리면 안 되겠네요.(웃음)
지금까지 국공립미술관을 위해 작품 지원할 때 하는 것처럼 응분한 보상을 하기만 하면 된다고 봅니다. 작가가 계약을 잘 할 수 있도록 안내하면 되구요. 국내에서 비엔날레 할 때 외국작가 초정 계약을 하면 커미션 비용이 있잖아요. 그런 계약을 하듯이..
정 금액 기준을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문제인 거죠.
J. 김 아르코, 인사미술공간, 국현의 원로 회고전 등의 경우에나 해당될까 싶네요. 몇 건이나 될지. 소수를 위한 지나친 디테일 같습니다.
윤 작가 지원의 대의명분이니 선의로 시작된 것인데, 시행안 자체의 문제가 너무 많습니다.
정 대한민국 문화부가 정작 해야 할 일은 안하고 참 쓸 데 없는 디테일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최 소수 젊은 작가들 가운데 공공기관에서 주최하는 큰 이벤트에 출품할 때 돈을 당당하게 받고 싶다는 욕망에서 시작된 일입니다. 필요에 따라 이미 하고 있는 일을 굳이 시행령을 만들어서 터무니없이 저작권법을 가져다 낭비하고 있습니다.
J. 김 행정낭비라고 해야할 듯요.
윤 지금 미술계에서 사적인 계약관계에 의해 계약을 이미 하고 있는데 소수 젊은 작가들이 이를 제대로 받아내지 못하고 있다면 이를 어필할 방법을 찾으면 될 거 같습니다.
정 청년 유니온 등의 작가 모임이 활동할 수 있겠죠.
K.김 현재의 ‘창작대가기준안’ 보다 앞서 2014년 경 미술인보수제도에 대한 연구3)가 나오게 된 배경은 공공 창작이 늘어나면서 정부 산하 기관이나 공공기관 및 지차제 등에서 창작자들을 상대로 공공연히 재능기부를 유도하곤 했던 일이 많아진 데 있습니다. 젊은 작가들이 창작대가에 대한 보수를 받기는커녕 교통비나 숙박비 등 오히려 자비가 더 들기까지 했죠. 공공기관이나 지자체에서 재능기부라는 그럴듯한 말로 창작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는 관행이 확산되다 보니 창작자들 사이에 불만이 터져나오기 시작한 것이죠. 하기 싫으면 안하면 되지 않느냐는 반론도 있겠지만 젊은 작가들은 그런 식으로라도 기회를 잡아 활동해야 하는 사정이니 울며 겨자먹기로 하는 측면이 많았어요. 창작 및 전시 공간을 확보하고 싶은 작가들을 위해 최소한의 비용을 보전해 주고자 한 것이 보수제도 연구의 출발점입니다.
보수 기준을 정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각자 계약에 의해 이뤄져야 하죠. 다만, 2014년 연구는 국공립미술관이나 공공기관 등에서 전시를 할 때 아티스트피라는 항목을 만들어 예산을 확보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다는 차원에서 시작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예를 들어 국립현대미술관의 기획전이라고 한다면 작가들이 모이게 될 때 최소한의 교통비, 일비, 기획비 등은 당연히 지급되어야 한다는 개념이 자리잡아야 한다는 겁니다. 기획자들 입장에서는 작가들을 잘 대접해주고 싶으니까 제대로 지급하고 싶지만 그러자니 별도의 예산항목조차 없어서 예산을 배정할 수가 없으니 기재부에 이러한 지급이 가능한 예산 항목을 만들어주는 것 정도는 만들어 놓자는 것이었죠. 그런데 지금 상황은 너무 나간 듯 보입니다. 굳이 작가들을 등급을 나누어 창작대가기준을 만들어 배포해야 할까요. 출발점 자체, 공정 기준을 만들자 까지는 좋은데 그 이후에 너무 과도한 기준으로 문제가 야기됩니다.
모 대학 재능기부 활동. 기사와 관계없음.
윤 산출방식이 부적절하고 전제 또한 잘못되었죠. 보수지급체계가 없지 않았고, 문제가 되는 부분은 보완할 여지가 있습니다.
최 이미 잘 되고 있고 개선하고 있는데 들쑤셔서 문제가 돼요.
정 미술계에 진짜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미술계의 일을 다른 영역의 사람들 말만으로 결정하지 말았으면 좋겠고 말이죠.
윤 작가들이 적절한 보수를 받을 수 있고 또 계약서 작성 등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찾는 관행이 정착됐으면 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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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술 창작 대가기준 시범도입 추진계획」, 2018.12.27
2) 이재경, 「미술계 작가보수제도에 대한 법률적 접근과 정책적 제언」, 『法學論叢』, 제22권 제2호, 2015년 8월. pp.8-39
3) 한국문화관광연구원(김혜인 외), 「미술인 보수지급제도 도입방안 연구」, 문화체육관광부, 20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