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28일 정준모, 최열, 조은정, 김진녕, 캐슬린 E.김, 윤철규
윤철규(이하 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 1년 2개월이 되어가네요. 문화예술계에서는 나름대로 새로운 것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많았는데, 아직도 새로워진 무언가가 보이지 않습니다. 정책기조에 대한 이야기를 이 자리에서도 몇 차례 했는데 성과는 여전히 보이지 않네요. 장관은 요즘 무얼 하고 있는지도 궁금하고 말입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이제 중반으로 넘어서는 이 정부의 문화 예술 정책에 바라는 바를 서둘러 전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문 정부 1/4을 넘어가는 현재
대한민국의 문화예술 정책은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
정준모(이하 정) 우리가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장관의 말이 시적이라 잘 못 알아듣는 건지도 모르겠어요(웃음). 지난번 발표했던 문화비전에서도 문화를 기능적으로 이해한 바를 썼을 뿐 어떻게 이끌어가겠다는 정책의 기조가 뚜렷하게 다가오질 않아요.
* 정부는 5월16일 에 ‘문화비전 2030’을 발표했다. 여기서 문화비전은 '사람이 있는 문화'라는 가치를 근간으로, '개인별 자율성 보장', '공동체의 다양성 실현', '사회적 창의성 확산' 3대 방향의 제시와 '개인의 문화권리 확대, 문화예술인 종사자 지위와 권리보장, 성평등 문화의 실현, 문화다양성의 보호와 확산, 공정하고 다양한 문화생태계 조성, 지역문화분권 실현, 문화자원의 융합역량 강화, 미래와 평화를 위한 문화협력 확대, 문화를 통한 창의적 사회혁신' 등 9대 의제를 담고 있다.
정 제 생각으로는 언제나처럼 정권의 입맛에 맞는 워딩만 있습니다. 이번에도 ‘사람이 있는 문화’라고 캐치 프레레이즈는 있는데 ‘사람이 있는 문화’의 목표. 지향점. 그리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전략과 전술이 없는 구호는 새로워 보이지 않습니다. 행동은 늘 똑 같게 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특히 문화에 대한 의미와 이해 없이 말만 문화라고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윤 새 정부의 메인은 금감원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금감원 기사가 많고, 문화부 기사는 적폐 청산과 블랙리스트 후속 작업이 주를 이루는 듯합니다.
최열(이하 최) 블랙리스트 건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문화부를 대상으로 감사해야 하는 일을 총리실이나 중립적인 곳이 아닌 문화부 산하 위원회에 맡겼어요. 위원회에 참여하시는 분들, 송경동 시인 등 존경하고, 130여 명의 명단 중에 경찰에 몇 십 명 고발한 일 등은 잘 된 것이지만 당사자가 당사자를 조사하는 꼴이 아쉬웠습니다.
조은정(이하 조) 장관은 바뀌었지만 블랙리스트를 주도한 공무원들은 그대로 있는데, 그분들이 자신과 연계된 일을 감사할 때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기 어렵겠죠. 절차가 잘못된 부분도 있고, 사실 전 정권 뒤처리에 너무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 새로운 목표를 세우는 것에 늦어진 점도 있습니다.
윤 기업이라면 잘못된 부분이 발견되었을 때는 그 적폐 청산은 한 부서의 일로 떼내어 진행하고. 어디로 갈지 디렉션이 빨리 주어져야 아, 바뀌었구나 하겠죠. 적폐청산이 너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정책이 없다고 보이는 것 같습니다.
적폐 청산이 문화 정책은 아니다
정 적폐 청산이면 모든 게 잘 되는 건가요. 적폐는 청산해야 하지만 무엇을 하기 위한 건지 목표 없이 한다면 정치적 보복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윤 그렇다고 적폐가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어디선가 전화가 와서 인사를 좌지우지 한다는 말이 들리기도 하고.
조 얼마 전 한 지방 국립박물관에 갔는데 학예직부터 해서 오랜 기간 그곳에서 일하시고 내년에 퇴임하시는 관장님이 짐을 싸고 계셨어요. 갑작스런 일이어서 당황해 하고 계셨습니다. 그간 그런 일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중앙에서 막아주었을 텐데... 이전 정부에서 중앙 기관장이 뉴스보고 자신의 해임을 알았다고 하더니, 이 경우는 더 나쁜 것 같습니다.
최 박근혜 정부 때 문화부가 마름 역할을 하고 최순실을 비롯한 세력들이 유럽의 보석 전시회를 들여오려고 했었죠. 국립현대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이를 거부하니 두 관장 모두 자리에서 쫓겨나게 됐죠. 갑작스런 해임이어서 국립중앙박물관의 경우 내부에서 승진된 이영훈 관장이 이어받았는데, 내부 승진은 최순우 관장 이후 수십 년만이고 사실 결과적으로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문 정부 들어서면서 캠프 출신 경남고 동문 배 관장이 임명되는 과정에서 이 관장도 급작스레 해임됐어요. 정무직이니 정권이 바뀌면 해임될 수 있지만 큰 잘못을 한 일도 없는데 새 장관 임명을 뉴스보고 알았다니까 황당할 만도 하죠.
정 그 지방 관장님의 경우는 명예퇴직을 제안받으신 걸 겁니다. 버티기엔 치사하고, 소용도 없고, 쉬고 싶으셨을 수도 있고 그렇죠. 내 얘긴 아닙니다(웃음).
김진녕(이하 J.김) 폭압적인 상황은 아니지만 좋은 인사라고 보긴 어렵네요.
정 지금까지 문화부나 그 산하기관에 이런저런 일들이 있을 때, 그 일을 지휘 감독했던 문화부 관료들이 책임진 적 있나요? 이번에 진에어 조현민 등기이사 건에 대한 것도 국토부의 승인을 받은 것일 텐데, 그 일을 지휘감독했던 공무원은 무슨 책임을 지게 되는지 궁금하네요.
최 그 일은 정치적 연관 없으면 불가능했겠죠. 정치권 커넥션도 조사해서 책임지도록 해야 되는데...
조 적폐의 작동방식을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정 책임자들이 대개 그렇죠. 성과는 가져가고 책임은 안 지려고 하고. 칭찬만 들으려하고 욕은 안 먹으려하고.
최 대한민국 공무원 모두가 자신들이 대한민국을 지휘 감독한다는 환상과 착각에서 벗어나야 해요. 이 부분 특히 강조해서 써주세요(웃음). 모든 문서와 법령에 ‘지휘 감독’ 이렇게 쓰는데 그 부분을 폐기하고, 봉사와 헌신으로 바꿔야 합니다!
캐슬린 E. 김(이하 K.김) 공무, 퍼블릭 서비스니까 공공에 봉사하는 임무가 맞죠.
윤 우리도 예전에 공무원을 공복公僕, 심부름꾼이라고 배웠어요. 정책도 다양화하는 사회에 일임하고 도움주는 방향으로 고민해야 합니다.
조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죠. 문화재위원회를 예로 들면, 예전에는 문화재위원 선생님들은 어마어마한 권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교수라고 문화재위원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각 분야의 전문가로서 국가적 최종 결정이 이뤄지는 곳이었어요. 문화재위원회에서 거부하면 개발도 취소되는 등 효력이 막강했는데, 10여년 전 부터인가 위원회 위원 자격으로 교수로 묶으면서 권위가 저하됐습니다. 교수는 자격이 아니라 직업군이죠. 65세를 정년으로 하는. 그러니까 각 분야의 최고 권위자가 아닐 수 있는 게 당연해요. 교수 직업 자체도 교육자적인 입장이 강하고 오히려 연구 시간은 부족할 수도 있구요. 문제는 문화재에 대한 전문적 식견이 아닌 어떤 직업군을 자격 요건으로 하는 데다 공무원들이 위원을 정하게 되면서 문화재위원회의 권한이 현저히 축소됐습니다. 결국은 그 권위를 누가 갖느냐. 그걸 선택하는 공무원이 갖는 거죠.
최 문화재위원회의 의견을 무시하죠, 요즘은.
정 신망 받는 어른이 없다는 이야기예요.
조 원로를 인정하지 않아서 그렇지 계시지 않는 게 아니라고 봅니다.
정 자기 소신과 학문적 양심에 비췄을 때 잘못된 결정이 이뤄지면 ‘그렇다면 나는 그만두겠다’는 소신을 가진 사람들은 위원회에 있을 수 없게 되고, 입맛 맞는 사람들만 남게 되는... 소신은 오히려 결격사유가 됩니다. 예술원 회장 등 원로들 모시고 가면 장관급 예우를 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얼마 전에는 차관급 기재부 공무원은 상석에 앉고 예술원 원로들은 옆에 앉히더군요. 싸구려 나라가 되어가는구나 생각했어요.
윤 국가에서 미술품감정연구소를 만든다고 하는데, 마찬가지로 대학교수들이 들어가게 되겠죠. 각 분야의 전문가이지만 학위가 없거나 교수가 아닌 사람들을 뽑으면 감사에 걸릴 테니까요. 이건 심각한 문제입니다.
시장 중심 미술 정책의 문제들
원하는 방향대로의 연구 보고서
원하는 방향대로의 연구 보고서
정 새 정부 문화 정책이 노무현 정부를 계승한다? 글쎄요. 정책을 내세우기보다 일을 만들어 내기 바쁜 듯 보입니다. 해외 미술시장을 개척한다? 뮤지엄 급의 전시를 통해 해외의 한국미술 저변을 확대한 다음에 차례로 시장을 개척해야 되는데, 무조건 시장에 들이민다고 성공할 수 없어요. 단색화의 경우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것도, 작품 수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연구 및 전시가 부족한 때문이 큽니다. 엉뚱한 곳에 정부예산 들이부어 봐야 10년을 해도 효과가 없습니다. 당장 효과 나타나는 것만 하려고 하면 결과를 얻을 수 없어요.
시장 중심의 정책으로 가면서 외국의 2-300개 비엔날레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한국 작가 이름을 찾기 힘들어요. 있다고 해봐야 50대 몇 명 정도... 젊은 한국의 미술가들, 30~40대에 글로벌한 작가가 나와야 하는데 말입니다.
윤 외국 시장 겨냥을 위해 하면 문화부 산하 정책연구 기관에서 이런저런 방법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일을 하는 곳이 정책연구원이니까요.
조 한국 근현대미술을 연구하는 입장에 얘기하자면, 학술적 활동의 결과마저도 정부 정책에 의한 결과물 형태로 되고 있어요. 학계 내부에서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들조차 정부에서 기획을 하고 용역 형태로 결과물을 내는 거죠. 용어사전을 만든다든가. 역사를 정리한다든가 하는 것들. 용역 공화국, 보고서 공화국이 되어버렸습니다.
정 보고서의 결론은 이미 착수보고서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세팅이 되도록 만듭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대로 말이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연구보고서도 같은 연구원에서 역사박물관 건립이 타당하다는 보고서도 나왔어요.
K.김 그것이 제일 문제라고 생각해요. 원하는 방향으로 연구하게 하는 것 말입니다.
조 학자들 개개인의 지향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학자들이라고 연구도 제대로 안 하니 자신들이 지도해서 해야 할 일을 하게 만들어야겠다는 식으로, 학문의 영역마저 지도하려고 하니 놀라울 뿐이에요. 학자들도 이렇게 느끼는데. 시장 거래 통제 등은 더 심각하지 않을까 생각되는 거죠.
J.김 이번 모임 정해지고 나서 문화부의 보도자료를 죽 살펴봤어요. 문재인 정부 들어와서 블랙리스트, 화이트리스트 진행한 거 말고는 한 게 별로 없습니다. 외국인인 마리 관장이 국립현대미술관이 새로운 50년을 맞는 중장기계획 운영 혁신안을 내 놓았고....
조 우리도 가서 스페인 국립미술관의 50년 중장기 계획을 해 주고 오고 싶네요(웃음).
문화예술 예산 부족? 인프라 부족?
정 월드컵 조별리그 독일과의 축구가 예상치 않게 2대0 승리 결과를 얻었죠. 외국 평론가들 도박사들이 이길 확률 1~2%라고 했던 경기고 우리도 순순히 인정했었구요. 과도하게 외국에게 의존하고 있는지 매번 생각해 봐야 됩니다. 마리 관장은 한국 미술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미술관 운영에 대해서도 전문가라고 볼 수 없어요. 스페인에서 어떤 한 분야의 큐레이터로 커리어를 쌓았던 것뿐입니다. 필요한 곳에 전문가를 잘 찾아와 써야 하는데...
J.김 감독이 선수들을 모르는 상태죠. 다 유명하다고 하는 기성룡 구자철 김신욱을 쓰게 되지만, 신뢰감 없다하는 K리그 선수들 위주로 뛰게 해도 결과 좋잖아요. 토종들이 더 잘할 수 있는데... 감독도 선수 기량을 모르고....
윤 우리가 환경이 부족하다 부족하다 하지만, 문화예술 예산이 결코 적은 편이 아닙니다. 어딘가 잘못 사용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정 체육과 관광을 빼도 사실 일본보다 예산이 많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작품구입비가 MoMA보다 많더라구요. 우리는 기부 없이 다 사야 해서 미술관 작품 소장 리스트가 빈약할 뿐이에요.
J.김 2017년 문화체육관광부 예산이 5조2천억 원, 그 중에 문화예술이 1조6천억 원, 관광이 1조4천억 원, 체육이 1조8천억 원, 콘텐츠 분야가 7천억 원이네요.
조 사립미술관에 2년간 인건비를 지원하는 정책을 하고 있는데, 2년 지나면 미술관 자체예산으로 정식 채용해야 맞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계약해지 해버려요. 자르고 새 사람을 쓰는 거죠. 계속 돈을 줘야 한다는 식으로 오히려 불평하죠.
정 국립현대미술관도 법인화다 하네 마네 하면서 십여년 공중에 띄우고 낭비된 예산에 인력도 붕 떠버렸습니다. 이것도 누가 책임 져야되죠. 블랙리스트도 그렇고 소급해서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을까요.
K.김 법인화 추진 자체는 나쁜 의도가 아니었어요. 결과가 잘못되었다고 해서 소급해서 책임 물으면 정책 추진 자체가 어려워집니다. 이번 정책 폐기까지 잃은 것이 많다고 해도 어쩔 수 없어요.
윤 전문가를 모셔와서 생각한다고 하고 공청회도 할 만큼 했는데도 제대로 된 해결책이 안 나왔으니...
조 공청회는 하지만, 의도에 맞게 결론이 나도록 하잖아요.
정 정책입안자들이 정확하게 상황을 진단하고 적절한 전문가를 찾아가야 하는데, 대학교수만 찾으니...
제대로 된 전문가를 찾아, 제대로 된 해결책을
윤 어느 정도 인문 분야에 축적된 전문가가 있으니 공정한 눈을 가지고 필요한 사람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화부에는 늘 불려다니는 사람만 불려다녀요.
최 더 중요한 것은 아까 말했던 것처럼 “지휘 감독”하려는 태도죠. 관료들은 자신들이 무지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조선 500년의 공직자 태도도 그러했어요. 부분적으로 나쁜 점도 있었지만 500년을 버틴 힘은 거기에서 나온 거죠. 고시를 막 보고 들어온 젊은 친구들, 젊은 분야를 잘 모르는데 직급이 높다보니 다들 아랫것으로 봅니다. 이러한 것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의 유연화와 연결시킨다면, 문화예술의 여러 층위를 수직과 수평 연결하고자 해야 하고, 전문적인, 고전적인 부분과 일반 대중의 문화예술 향유 분야를 분리해 생각해야 합니다. 민주정부라고 해서 모두 한 통에 넣고 얼버무려서는 안 돼요. 지금 발표된 비전은 이전 정부의 것들을 얼버무려서 한 것이죠. 어느 장관이든 어느 관장이든 바뀔 때 마다 할 수 있는 보편적인 말들은 무의미합니다. 문 정부, 도 장관의 문화 예술에 대한 가치, 이념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지휘감독하며 군림해 온 문화부 공무원 재교육 프로그램을 발표했으면 좋겠어요.
정 미술 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실제 화랑들이 거래할 실체 있는 그림 자체가 부족하다는 것이에요. 10년, 20년 뒤에도 사고 팔 수 있는 그런 그림이 드물어요. 개념 미술, 커뮤니티 아트와 미술시장에서 거래하는 그림들 모두 공존해야 시너지를 내는데 한쪽으로 몰리다가 균형을 잃었어요.
최 2-30년 동안 문화부 정책은 미술 장사하는 사람들을 계속 도와준 셈인데 그래서 결국은 무너지고 있는 거죠.
일자리 창출, 공정 거래에 꿰맞춰진 문화정책
K.김 문재인 정부 문화정책의 전반적 기조가 문화에 집중한다기보다 일자리 창출과 공정거래. 두 테마에 묶여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부가 오로지 이 두 과제에 관심을 두다보니 산하기관도 결국은 청년일자리와 관련된 사업들을 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박근혜 정부 때 컨텐츠진흥원은 테크놀러지 지원사업 등으로 기술은 있는데 자본이 없어 도약 못 하는 곳, 이제 조금만 도와주면 되는 업체들을 지원하면서 좋은 반응을 얻었었는데, 정권이 바뀌면서 청년들 지원 사업으로 선회하게 됐어요. 그런데 이런 사업들은 밑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맥락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두 가지 모두 아주 중요한 과제지만 모든 것이 블랙홀처럼 여기로 빠져드는 것은 잘못된 듯합니다.
정 일자리 창출로 비정규직을 양산하기도 했고, 서울시도 재래시장 지원하면서 지원 끝나면 문을 다 닫아버린 경우도 많이 봤습니다. 공정 거래 좋지만 문화예술은 시장경제 차원의 공정으로 해결되지 않는 분야잖아요. 기호와 취미가 바탕이 되는 건데... 일자리는 수단이지 정책 목표가 될 수는 없어요.
윤 미술계 전체로 놓고 보면 정의가 구현되어야 하는 것은 맞지요. 그러나 소금이 중요하다고 소금으로 밥을 지어 먹을 수는 없죠. 근본적으로 경쟁을 통한 창의적인 생산들을 유도하기 위해 어떤 장기적인 정책이 중요할지 생각해야죠. 경쟁을 무너뜨리고 다들 좁쌀 알갱이로 만드는 거예요.
K.김 청년일자리 지원이라고 해야 1-2년이니 임시직을 너무 많이 양산하게 됩니다.
J.김 일자리 늘리고 경제 가치 살리는 거, 지엽적으로 여론 마사지용일 뿐이고 임시적 성격이 강합니다. 5월에 발표된 문화비전 2030을 보면 중장기 계획에는 좋은말 대잔치이고,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돈을 이쪽에 써줄 테니 개량화하자는 것이었어요. 미술품 감정이 대표적인 거. 그런데 이런 식으로 추진하다 보면 결국 작가는 소외되고 브로커만 판치거나 지원금 따먹기 경쟁에서 벗어나기 힘들 거라는 예상이 됩니다. 문화 진흥과 아무 상관 없는 일자리 창출. 정권의 국정과제와 맞춰야 한다는 강박이 그대로 드러나요. 중장기 비전을 제시하랬더니 대학생 취업대책을... 이런저런 게 다 섞인 느낌이에요. 문화 진흥이 파우치와 수당으로 되는 게 아닌 거 다 알지 않나요. 결국 패러다임 제시는 실패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정 이 정부 문화예술은 과연 뭔가. 몇몇 사람의 취향이나 관심사로 좌지우지 하는 걸 보여주는 게 다인가요.
K.김 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 임시직을 뽑는데, 석사 이상에 외국어 능통자를 6개월 한정직으로 원하면서 월급이 140만원이라고 해요. 미래가 안 보입니다.
정 이력서에 국현 학예사라고 쓰면 지방에 가면 좋은 스펙이 되죠.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해도 전문가로 발돋움할 수 있고.
조 공정한 채용이라고 하면서 요즘 블라인드 채용 방식을 쓰는데...
K.김 블라인드 채용을 해결책으로 가져왔지만 결국 좋은 방식은 아닌 겁니다. 각각의 경우에 맞는 해결책이 있는데 다 똑같은 방식으로 하는 기계적 균형만을 중요시해서 그런가봅니다.
조 미술계 경력자라도 각기 세분화된 전공이 있지요. 근대미술사를 예로 들자면, 조선후기부터 1950년대까지 시간의 간격에 따라 세계관이나 미술의 양상이 다릅니다. 그런데 블라인드 채용에서는 질문할 수 없는 항목들이 있습니다. 따라서 면접관이 이 미술관이 이런 유형의 전문가를 원하는데 저 사람이 맞다라고 잘 알고 있어야만 하는 정도로 이 분야의 전문가여야만 하는 거지요. 그렇지 않은 경우 제시된 피상적인 질문에 의해 결정해야 하는 경우에 이르게 됩니다.
정 일이 밀려있는데 퇴근할래, 남아서 할래? 그런 것들을 면접에서 기본적으로 물어봅니다.
J.김 대통령님께서 저녁이 있는 삶을 말씀하셨는데....(웃음)
K.김 기회는 균등해야 하지만 결과를 균등하도록 하면 안 됩니다. 더 노력하고 더 재능있는 사람에게 일이 주어져야 하는 거죠. 루저와 약자를 구분하지 않는 것은 공정이 아닙니다. 나태하고 도덕적으로 해이한 사람에게 공정한 결과를 주면 안 되죠.
윤 리더가 나와서 의미 있는 캐치 프레이즈를 내면 완전히 새로운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화는 삶에서 점점 중요해지고 있는데, 비전과 방향 제시는 기능적인 면에서 그쳐 아쉽네요.
J.김 비전 제시도 그렇고, 아직 적폐도 남아 있으니... 야만스럽게 사람 자르고 하는 일 하지 말죠. 화이트리스트나 블랙리스트나 똑같은 거고요.
K.김 적폐 시스템을 청산해야지 인적 청산을 하면 안 됩니다. 열심히 일한 사람은 잘리고 아무것도 안 한 사람들은 살아남고. 책임을 피하려고 교묘한 방법으로 지시하고 하는 일들이 없어져야겠죠.
최 장관, 정권이 바뀌어도 관료들은 계속 남아 있으니, 장관에게 말하는 바는 무의미 한 거 같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신들이 권력이라고 믿는 관료들이 공복임을 깨닫도록 남은 기간동안 열심히 설득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윤 정부는 개개인이나 단체에서 할 수 없는 것을 제시해야 하죠.
국내에 많아진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잘 조합시켜 쓰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