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모, 최열, 김진녕, 캐슬린 E.김, 윤철규
2018년 4월 16일 오후 3시
윤철규(이하 윤) 오랜만에 뵙네요. 새 벌써 목련, 개나리, 매화, 벚꽃 다 지고 라일락이 펴기 시작합니다. 꽃 구경도 좋지만 미술 하는 사람들은 좋은 전시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한데, 오늘은 지난 겨울이나 올 봄에 좋았던 전시나 볼 만한 전시 이야기를 가볍게 해 보면 어떨까 해서 모셨어요.
정현 전 (금호미술관, 2018. 4.10~5.22)
최열(이하 최) 조각가 정현(1956-) 전시 먼저 이야기를 해야 될 것 같네요.
윤 자기 세계를 꾸준히 보여주는 진정한 의미의 작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의 미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작품들이죠.
정준모(이하 정) 꾸준하다는 거, 가장 좋은 거죠. 큰 변화를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한 작가의 뚝심을 보여주고 있달까요.
윤 조각이 미술에서 차지하는 부분은 상당히 크죠. 퍼블릭한 공간에 설치되기 쉽고, 일반과 가장 가까워지기 쉬운 장르예요. 잘 지켜보고 정현 이후의 세대가 어떻게 발전해나가는지 지켜보아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정 조각이라는 분야가 ‘조형물’이라는 개념으로 최근에는 디자인이나 미디어, 설치와 결합되는 아주 다양한 형태로 진화했기 때문에, 좁은 의미에서 이 시대의 마지막 ‘조각가’가 아닐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최 정현 전시를 보면서 작가가 ‘덩어리’를 오랜 세월 일관되게 추구했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되었고, 두 번째로는 공공성을 강조하는 미술관이 아니라면 이런 작품을 수용하고 전시해서 시민들에게 공유하도록 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되었어요. 이런 작업을 지속하는 작가 유형도 거의 없지만 돈이 나오는 일들만 해 온 관행이 오래 되었기 때문에, 20세기에 높이 평가할 조각가가 드뭅니다.
정 한국 조각사에서 사실적 조각의 계보는 김종영(1915-1982), 김세중(1928-1986)에 이어 70년대 엄태정(1938-), 조성묵(1940-2016), 박석원(1942-) 심문섭(1943-), 전국광(1945-1990)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어요. 정현 같은 경우 벌써 60대가 되었는데, 그 아래인 40대 조각가 중에 저렇게 할 수 있는 작가가 많이 떠오르지 않네요. 구본주(1967-2003) 이후에 말입니다. 시대가 바뀌고 다양해져서 그렇지는 않지만 기본기가 분명한 조각의 본령을 다루는 일은 이어져야 하는 건데 쉽지 않아 보입니다. 금호미술관 정현 전시의 경우, 재단의 공공성과 경제적 이득을 추구하지 않는 작가의 소명의식이 잘 맞아 떨어진 사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캐슬린 E. 김(이하 K.김) 정현 작가에 대해 선생님들께서 조각의 본령을 다루는 조각가의 정형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저는 이번 전시가 오히려 조각이라는 정형성을 벗어난 작업이었다고 생각해요. 매스한 조형물이 주였지만 3층에는 바닥에 커다란 하얀 면을 깔고 그 위에 숯덩이를 하나하나 길게 쌓으셨지요. 설치하시는데 닷새가 걸리셨다고 해요. 벽면 역시 위아래로 길고 커다란 하얀 종이 위에 동일 소재를 이용하여 회화적 작업을 하셨고요. 저는 이 작업들이 조형물이기도 하고 설치이기도 하고 회화이기도 한 그 사이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정통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가장 현대적, 동시대적이라고 느꼈어요.
윤 고미술 금년 봄에는 전시가 거의 안 보이네요.
옥션하우스의 프리뷰 전시들
제 147회 서울옥션 미술품 경매 Preview 2018.2.28-3.7 / 케이옥션 2018년 3월 경매 Preview 2018.3.6-3.21 / 제 28회 마이아트옥션 메인 경매 Preview 2018.3.8-3.14 / 제 40회 아이옥션 봄경매 Preview 2018.3.7-2018.3.12 / 칸옥션 제6회 미술품 경매 Preview 2018.3.12-3.21
최 고미술 쪽 말이 나와서 말씀인데, 옥션회사 경매 프리뷰에서 좋은 것들을 많이 볼 수 있었어요. 사실 경매 회사의 프리뷰는 최근 10년 동안 19세기 이전의 고전 미술을 볼 수 있는 최고의 공간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두 메이저는 좋은 것들이 나오는데 오히려 다소 패턴화된 느낌이고, 바로 아래 단계의 경매 회사들에 귀하고 좋은 것들이 많이 나옵니다. 이건 미술사의 편향된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는 거예요. 권력과 명예가 예술적 가치와 동등한 것인 양 하는 것 말이죠. 메이저 옥션에서는 돈이 되는 것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기는 하겠죠. 2, 3진의 옥션들이 명성과 권력으로부터 소외되었던 작가의 작품을 가격을 하향해서 대부분 수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미술사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가격이 비싼 작가와 큰 차이가 없는 경우가 많죠. 서열화된 작가 구조를 옥션 회사들이 같은 모습으로 나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그림값이 내일을 결정하지는 않죠.
정 옥션 프리뷰가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씁쓸하네요.
윤 꼭 그렇게 볼 것만은 아닙니다. 최근 메이저 경매와 마이너 경매의 격차는 점점 커지고 있어요. 최 선생께서 얘기한 부분도 있지만 메이저 경매에 고미술에서 중요한 것들이 나오고 있긴 합니다. 중요한 물건들은 이제 개인적으로 거래되어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경매를 통해 구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재 심사정, 표암 강세황 그림은 박물관에서 볼 수가 없는데, 일품은 아니라도 메이저 경매에는 현재, 표암 그림이 많이 나오고 있죠.
최 윤대표 께서 메이저에 계셨기 때문에 아무래도(웃음).. 제가 최근에 우리 미술사에서 사라져 버린 여성과 지사, 두 범주의 작가에 대해 조사연구 중인데, 메이저 경매에서는 보기 어려워요. 미술사에서 지워져버렸기 때문이죠. 이 점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예를 들어 이회영의 석란도 같은 경우 얼마 전 칸옥션에 나왔었는데, 메이저 경매에서는 아마 돈이 안 되어 제외되었거나 소장가에게 문턱이 높아 나가지 못했을 수 있다고 봅니다. 이회영은 중국에서 암살단을 운영하면서 묵란 그림을 남겼기 때문에 국내에는 드물죠. 이러한 것은 메이저 경매에서 다뤄지지 않습니다.
윤 옷을 사고 팔더라도 동대문에서 백화점까지 다양한 시장이 있잖아요. 미술시장도 수요자, 가치평가, 가격에 따라 다양하게 존재하는 것이 당연하고 건강한 일입니다. 메이저 경매의 역할이 있고, 그 아래 경매사, 또 지방의 하우스 경매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존재합니다.
김진녕(이하 J.김) 미술품이라는 것은 물질적 특색만 따져 말하자면 ‘중고품’이잖아요. 이 중고품들은 시장에서 돌다가 여러 루트로 팔려지게 되는 거죠. 작은 경매에서 시작해서 점차 인지도를 얻게 되면 점점 큰 경매로 갈 수도 있게 되고 말입니다.
윤 최 선생께서는 미술품들을 경매를 통해 보게 되는 것의 순기능을 얘기하셨는데, 정 선생 말씀처럼 미술관에서 해야 하는 일을 안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되긴 합니다.
K.김 옥션하우스의 순기능에 대해서는 저도 긍정적으로 봅니다. 뮤지엄의 기획전이라는 것은 필요한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큐레이터가 개인소장품의 출처를 찾아내야 하고 개인 컬렉터들과 관계를 맺고 설득해야 가능한 경우가 많은데, 옥션을 통해서는 숨어 있던 작품이 자발적으로 세상에 나올 수 있죠. 수 십 년 동안 세상에 드러나지 않던 작품이나 뜻밖의 작품들이 나오기도 하죠. 그리고 이 작품들은 경매가 끝나면 또 누군간의 개인소장품으로 숨어들어가겠죠. 이런 작품들을 한 자리에 모아 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저는 크리스티나 소더비 메이저 경매의 프리뷰 전시 보러가는 걸 좋아합니다. 소장가들을 설득해서 수면 아래 있던 작품들을 꺼내 세상에 소개하는 작업이라 할 수도 있겠죠. 이제는 옥션하우스가 단순한 입찰을 통한 매매를 넘어 어느 정도 전시 기능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홍콩 소더비 프리뷰에서 조지 콘도와 파블로 피카소를 ‘페이스 오프’(face-off)라는 제목으로 다뤘고, 근방 뮤지엄에서도 조지 콘도의 개인전이 열렸는데, 개인적으로는 둘 중 소더비 전시가 더 좋았습니다. 조지 콘도는 “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는 피카소의 말을 가장 충실히, 그것도 피카소를 대상으로, 실천하는 예술가거든요. 뮤지엄이 해야 할 일들을 경매회사가 대체해 가는 걸까요?
정 아직도 지자체에서 뮤지엄 짓는 일에 몰두하는 곳이 많은데, 짓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말 우리 참 많이 했죠. 인천시, 서울시, 세종시 다 마찬가지에요. 컨텐츠가, 소프트웨어가 없는데 짓는 데 돈을 쓰는 일을 제발 멈췄으면 좋겠어요.
J.김 대한민국 역사박물관도 그렇고, 청계천박물관도 그렇고 정부나 지자체의 프로파간다를 보여주는 기념관 역할을 하고 있죠.
정 정부와 지자체의 예산 시행이 치적 위주로 되다보니... 옛날 탐관오리는 부임하자마자 공덕비부터 세웠다고 하더니 말입니다. 떠나면 안 세워주니까.
윤 생각을 바꿔야할 때가 됐어요. 외국에서 좋은 것들을 많아 봤고, 일반 대중들 수준도 굉장히 높아졌잖아요. 여건은 좋지 않더라도 노력해야겠죠. 리더라면 잘하는 사람은 상주고 못하는 사람 내치고.
정 사람이 결국은 문제인데 사람을 키우는 분위기가 못 돼서 그래요.
K.김 자발적으로 크고 있는, 뛰어난 분들도 많지만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구요.
정 도전과 실패를 해야 선수가 되는데, 그런 기회가 없어요. 30대에서 50대 나이의 큐레이터 중에 규모 있는 제대로 된 전람회를 이끌어서 성공한 경험있는 선수가 많지 않아요.
윤 예전에 메이저 화랑들에서도 좋고 큰 전시 많이 했었는데 요즘 그런 경우도 적어졌죠.
정 당시 유명한 화랑들의 경우 실제 전시는 유준상, 이일 선생 같은 유명한 분들의 어드바이스를 받아 진행됐어요. 당시 화랑 주인들은 안목과 실력을 갖추지 못한 곳이 많았으니까.
윤 지금은 화랑 주인이 2세들로 이어져 공부한 사람들이 넘겨 받은 경우가 많은데도, 특별한 역할을 못 하고 있는 건가요.
최 예전에는 미술관이 거의 없어 메이저 화랑 몇 개가 주요 전시 통로가 될 수 밖에 없었죠. 시장이 지금처럼 다변화한 것도 아니어서 가능했구요.
박장년 1963-2009 실재와 환영의 경계에서 (성곡미술관, 2018.3.22.-5.13)
정 아, 이번에 성곡미술관에서 박장년(1938-2009) 전시를 하고 있는데 볼 만할 겁니다. 단색주의 회화로 넘어가기 전 중간 단계라고 할까요. 극사실적이면서 미니멀한 느낌을 주어 또다른 일면을 보여줍니다. 단색화도 상업적 관심으로만 여길 게 아니라 이를 계기로 전후 좌우 맥락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일본의 경우 구타이그룹이나 모노하 등도 세계 미술사 틈바구니에서 미술의 한 유파로 인정 받는 것은 작가들과 그 주변에 대한 연구가 다양하고 깊이 있게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최 단색화 뿐만 아니라 채색화 전통에 대해서도 해야겠죠(웃음).
정 뒷심 없이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무던하게 화롯불같은 연구가 되어야 해요. 박장년 뿐 아니라 동시대 활동 작가에 대한 연구가 더 많이 필요합니다.
모더니스트 장성순, 삶은 추상이어라(단원미술관, 2017.12.12.-2018.3.11.)
모던, 혼성 1920-1938/ 피란수도 부산, 절망 속에 핀 꽃(부산시립미술관 2018.3.16-7.29)
최 안산의 단원미술관에서 장성순 전을 했었죠. 이 화가가 무슨 연고로 안산에서 전시가 이뤄졌는지 궁금했어요. 알고 보니 안산시에 작품을 기증했더군요. 국립이든 사립이든 각각의 자리에서 의미가 있는 전시를 해내는 고민을 해야 합니다. 현재 시장에서 잘 팔리는 작가만 과도하게 이뤄지는 모습이 너무 많아요. 국립현대미술관이 30년 기념전을 미술관의 역사와 전혀 관계없는 것으로 채워 너무 낮은 수준을 보여줬어요.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부산시립미술관 개관 20주년 기념전의 경우 주제와 내용을 보았을 때 기본적인 것을 다루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부산 미술, 모던과 혼성의 20세기 전람회, 피란수도 부산. 기획을 잘 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윤 국공립 미술관들 뿐만 아니라 사립미술관도 나라의 지원을 받는 건 마찬가지이니 책임감을 좀 가지면 좋겠어요.
아모레퍼시픽미술관 개관전 2.23~3.25
K.김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개관기념 소장품전 좋았습니다. 대규모 컬렉션은 리움 정도였는데 다른 컬러의 소장품을 보게 되어 색달랐어요.
정 그렇죠. 다만 비싼 조명을 해서 그림의 아우라를 죽인 감이 있어요. 동선도 불편하고 거리를 두고 보기 어려운 경우도 많고. 좋은 재료로 만든 요리를 좋은 새 그릇에 담았는데 지나치게 상차림이 화려했달까요.
K.김 그림이 주인공이 아니라 공간과 조명이 주인공 자리를 차지한 느낌이 강하긴 했습니다. 조명이나 공간이 그림을 잡아먹는다는 느낌이 좀 들었어요. 그래도 나름의 매력이 있어서 조명 속에서 드라마틱한 효과를 보여주는 분위기였어요.
정 고미술 현대미술 컬렉션 섞여 있는 것이라 나름 고충이 있었겠다고는 생각합니다.
제3회 서예명적법첩 발간기념展 : 전통이 미래다(세화미술관, 2018.2.28-4.29)
윤 태광그룹에서 우리나라 서예명적법첩을 발간하면서 그 기념으로 서예전 <전통이 미래다>를 열고 있는데 흥미롭습니다. 옛 글씨에서 영감을 받아 현대 서예가 작가들이 그 고전을 재해석해서 작품을 낸 겁니다. 회화는 일반에게 오랜 과정 축적된 지식이 그래도 있지만, 서예는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장르라서 새로운 접근법이 자꾸 나와서 그걸 설명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J.김 <진흥왕순수비>의 노상동 작가의 것 재미있었어요.
정 예전에 포스코에서 저희가 기획했던 전시, <글자, 그림이 되다>도 비근한 예라고 할 수 있겠죠. 민간 재단에서 그런 것들이 오히려 잘 이뤄지는 느낌이네요. 전북도 서예비엔날레 같은 것 하고 있는데, 예산을 슬기롭게 잘 쓰는 방법을 고민하면 더 나은 결과가 나올 거 같습니다. 민간으로 넘기는 방향으로.
손기환 전(나무화랑, 2018.4.4~5.6)
전국광 회고전 <0.419㎡의 물상> (가나아트센터, 2018.3.13.-4.8)
J.김 개인적으로 나무화랑의 손기환(1956-) 개인전이 좋았어요. 주제의식보다 애니메이션 색채가 강해 보였습니다.
정 손기환은 민중미술이라고 보기 어렵죠. 모더니즘 류의 작품을 하다가 민중미술 쪽으로 갔다가 상명여대 애니메이션 교수가 되면서 만화적 기법을 많이 쓰게 됐습니다.
J.김 가나아트에서 한 전국광 전시도 좋았습니다.
최 한국 조각사에서 전국광은 덩어리를 해체하는 데 성공한, 조각사를 바꾼 사람으로 굉장히 중요합니다.
정 전국광과 조성묵, 두 사람이 조각을 조금 다르게 해석했죠. 전통적인 구상 조각에서 현대미술로 오면서 매스 중심의 조각에서 얄팍한 것 등 다양한 형태를 조각으로 끌어들였어요.
J.김 살아계시면 70대 정도 되시는 분들에 대한 회고전을 가나아트에서 많이 잘 하는 것 같아요.
최 장사하는 사람들이지만 미술사의 맥락과 잘 연결시킨 전시를 잘 만들어내고 있는 거죠. 아주 잘 해요. 미술사 맥락을 헤아려서 많은 작가들을 연결하고 발굴하는 작업을 시장에서보다 미술관에서 먼저 하면 좋겠어요.
바람을 그리다 : 신윤복, 정선 展(DDP)과 故 전성우 선생님
최 민간 이야기를 하다보니 지난 주 세상을 떠나신 故 전성우(1938-2018) 선생님과 간송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네요.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지금 <바람을 그리다>라는 전시를 DDP에서 하고 있기는 하지만 전성우 선생은 간송 전형필 선생으로부터 엄청난 우리 미술의 컬렉션을 물려받아 수 십년 이어 오시면서 고전적인 개인 미술관의 풍모를 지켜 왔습니다. 간송미술관이 사립미술관 등록을 하지 않은 것은, 입장료도 안 받지만 정부지원금도 안 받겠다는 태도와 자세라고 볼 수 있죠. 장기간에 걸쳐 이를 유지해 오면서 앞뒤로 없을 훌륭한 미술관을 연출했죠. 재단이 만들어지고, 간송미술관이 수년째 폐관 상태인 것, 서울시와 협약을 맺고 DDP에서 다양한 전시를 해 오는 것을 지켜보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거대한 유산과 시민의 만남이 어떻게 바뀌게 되었는가도 생각하게 하구요.
J.김 간송 PHASE 2 단계가 온 거라고 봐야죠. 좋은 가르침과 좋은 구경거리를 긴 세월 제공해 주었던 간송미술관은 저에게도 많은 것을 주었습니다. 우리가 해준 건 없고 받기만 했지만 공공재 같은 느낌이 듭니다.
윤 5월, 11월 줄 서는 맛이 없어져 아쉬워들 하지요.
정 간송미술관에 1원 한 푼 보탠 일이 없지만 마음으로 응원합니다. 잘 이어갔으면 하고 바라고 바랍니다. 다음 세대로 넘어갈 때 우리가 도와서 튼실하게 잘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의무감도 듭니다.
J.김 어쨌거나 리움, 호림 등 열심히 해 주시는 곳, 레지던시 두고 지속적으로 투자하는 곳 등에 대해 관람자 입장에서는 고마울 따름이죠. 앞으로도 더 잘 되었으면 합니다.
K.김 저도 어렸을 때부터 추억이 많은 곳이에요. 서울 한복판에 숨겨놓은 보물같은 곳이죠. 일 년에 두 번 볕 좋은 날 골목길을 따라 긴 줄을 서는 것조차 즐거움이었죠. 전형필 선생님이나 최근에 작고하신 전성우 선생님이나 한 번도 뵌 적은 없지만 늘 정겹고 고마운 마음입니다.
정 故전성우 선생님에 대해 아버지가 이룬 가업에 묻혀 화가로서의 활동이 주목되지 않았는데, 이제 그 화업을 돌이켜보는 일도 우리가 해야 할 일 중 하나입니다.
J.김 작년 서울대미술관 전시에서 전성우 선생님의 만다라 작품을 보긴 했어요.
윤 우리보다 한 세대 위에서 문화 예술계에 후원자로서 정신적 지주로서 역할을 많이 하셨어요. 제자도 많고.
최 가나 있을 때 전성우 개인전을 진행해서 그때 그분을 조금 알게 된 적이 있죠.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닌 기억도 나네요. 먼저 아버님의 유산을 물려받아 정말 훌륭하게 지속시킨 업적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수장가 당대, 2세들의 몰락이 정말 흔한 일인데 말입니다. 두 번째로는 화가로서의 업적인데. 당신은 앞의 업적에 뒤의 것이 묻히는 것이 불만스러우셨죠. 전후 세대로 일찍 유학을 가서 한국미술사에 누구보다 앞선 동양적인 색채추상을 선보였죠. 김환기, 유영국 다음 세대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로 하인두(1939-1980), 전성우 얘기 안 하고 단색으로 갑자기 건너 뛴 느낌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색채에 관한 따뜻한 감성이 서양의 것과 겹쳐진 작품들... 두 분의 만다라 시리즈 같은 작품들을 해당 연구자들이 좀더 진지하게 연구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두 분이 행복해 하실 것 같네요.
J.김 전성우 선생님 돌아가신 후 미디어에서 보도를 보기 어려웠어요. 생각보다 인색해서 놀랐습니다.
윤 저도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어요. 신문 전면에 특집기사를 낼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
간송의 유산에 대해 최완수 선생님도 같이 이야기 되어야 하지요. 전성우 선생님 같이 점잖은 가족분들과 최완수 선생님 같이 독한(?) 분이 계셔서 이렇게 잘 유지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오랜만에 만났더니 할 이야기가 많네요. 다음 번에도 오늘처럼 좋은 이야기 많이 했으면 좋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