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19일(화)
최열 정준모 조은정 김진녕 캐슬린 E.김 윤철규
지난 12월13일, 문화체육관광부 주체의 '미술 정책 종합 토론회' 등을 통해 '미술품 유통 및 감정에 관한 법률'의 추진 현황이 발표되었고, 이 글은 19일, 그 법안의 추진과 관련해서 미술계雜담 자리에서 있었던 열띤 토의의 기록입니다. 이후 26일 정부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상황임을 알려드립니다.(편집자 주) |
윤철규(이하 윤) 지난 13일, 미술정책 종합토론회에서 다시금 현재 ‘미술품의 유통 및 감정에 관한 법률’ 추진 상황이 보고됐습니다. 우리 모임에서 2017년 초부터 이 법안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제기해 왔는데요. 그간 조금씩 수정된 부분도 있기는 한데, 현재 상황에 대해 어떻게 보시는지 점검을 하기 위해 자리에 모셨습니다.
위작 미술품의 수거,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정준모(이하 정) 이 법안의 문제를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부분 중 하나는 “위작 미술품의 수거 → 폐기 삭제” 부분입니다. 작품의 진위문제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되는데 위험한 발상이에요.
조은정(이하 조) 법안을 보면서 예전 표준영정 지정 건이 다시 떠오릅니다. 충무공과 세종대왕의 영정이 여러 곳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숭앙되는 것이 문제로 지적되었습니다. 그래서 세종대왕의 초상화가 어떤 모습인지 각 지역 공무원들에게 일정 기간 조사하여 수집하도록 했습니다. 근 1개월 정도 걸렸는데요, 그렇게 파악한 그림들을 A B C D 등급으로 나누고 C, D 등급으로 매겨진 초상들은 폐기하도록 했죠. 결론적으로는 표준 영정을 지정해서 그것을 복사해서 모시도록 했습니다. 국가가 세종대왕은 이렇게 생겼다고 결정해서 배포한 것입니다. 공산품을 표준화하는 것처럼 초상화라는 미술의 영역을 표준화 할 생각을 하는 것에 대해 당시 지식인들이 많은 비판을 했었지만 결국은 교육적 목적이라는 근거로 결정됐습니다. 국가가 이미지를 규제한다는 것인데 이런 식의 발상이 아직도 가능한지 의문입니다.
정 표준영정 같은 경우는 성군의 이미지 등을 최대화하기 위한 것이겠지요.
조 다분히 정치적 목적을 가진 것이죠. 이미지의 힘에 대해서는 굳이 재론할 이유는 없을 것 같고요, 국민의 의식을 의도적으로 몰아가고자 한 것인데 사실 옳지 않습니다. 한석봉 초상화를 보게 되면 쌍꺼풀 짙고 만화처럼 생긴 것을 보고 놀라는 사람이 많아요. 아무도 보지 못한 사람인 선현의 이미지를 누군가 상상하고 그것을 나타낼 수 있지요. 그런데 그 인물의 생김새를 아무도 상상할 수 없으며 국가가 제공하는 것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죠. 반드시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고 이미지대로 고정하여 배포한다면? 옳지 않은 일이죠.
어떤 작품이 위작이냐 아니냐를 따져서 위작으로 결론나면 폐기하겠다는 것 자체가 끔찍한 생각입니다. 압류도 마찬가지구요. 미술을 연구하는 과정에서는 ‘모사’라는 전통이 있고 이는 예술 창작에서 어디든 있는 현상입니다. 르누와르도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그림을 모사해준 경우가 많았습니다. 똑같이 생긴 작품이 나올 여지가 많이 있는데, 원작 이외의 것을 모두 위작으로 결론짓는다면 다 폐기해야 한다? 예술 작품에 대한 이해가 특허권을 인정받는 상품처럼 일반화시킬 수는 없는 일이지요.
윤 법안이 계속 수정되면서 조금 기이해진 부분도 있는 듯합니다. 첫발을 잘못 디뎌서 어긋났다면 원점으로 돌아와 법안을 버리는 것도 방법이지 않을까요. 정부의 에너지를 좋은 곳에 썼으면 좋겠습니다. 시스템의 어느 부분을 제도적으로 정비해야 하는지 살펴보면 할 수 있는 일들 해야 할 일들이 많을 겁니다. 일부의 문제를 확대해서 규제하려 하자니 적절치 않은 부분이 드러납니다.
정 화랑업을 따로 등록하도록 하는 것도 과도합니다. 유통경로 파악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어려운 대로 파악할 수 있는 한 하면 되지, 행정 편의를 위해서 등록을 필수 조건으로 해야 한다는 것은 사회주의 법도 아니고 전체주의 법이라고 해야 되나요. 또, 실제로도 미술품이라는 범위도 제한하기 상당히 어려워서 인쇄물, 공예품, 몇 만 원짜리부터 다양한데 이러한 것도 다 등록된 화랑업으로만 가능하게 할 건가요? 공예든 미술이든 산업 진흥과 유통을 위한다는 취지나 다른 법안과도 상충됩니다.
조 미술품에 크게 투자해서 작품을 사고자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눈을 믿지 못하는 경우 나름대로 어드바이저를 통해 구매하게 됩니다. 분명히 시장에 어드바이저, 컨설턴트 들이 있고 나름의 제도로 돌아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책상에 앉아서 생각만으로 미술품 유통에 구매자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너무나 큰 문제를 안고 있는 제도를 심으려고 하는 겁니다.
정 싸게 사려고 하는 사람들, 어드바이저의 도움 같은 최소한의 비용도 절감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위험을 안게 되는 것이죠.
조 자신의 자산이니 쓰는 사람이 리스크 관리를 해야 하는 것이지, 국가가 나서서 관리해주어야 하는 문제는 아니니까요. 이러다보니 이 법안을 통해 무엇을 보호하고자 한 것인지 모호해보입니다. 속아서 사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사람들인가요? 10만원, 20만원짜리 그림들을 사는 사람? 그런 사람을 보호해주기 위한 법인가요?
최열(이하 최) 화랑을 등록하도록 하고 정부가 우수화랑을 지정, 육성한다고 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은 사회주의 전체주의 하기 전에 왕조 시대 발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예술이라는 것은 자유로운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는 것인데, 육성이라고 한다면 시장을 북돋워주는 것 정도여야 하죠. 시장 속에서 경쟁하고 있는 화랑들 중에 한 두 곳을 국가가 골라 육성한다는 것이 시장 발전을 얼마나 저해할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수화랑을 육성하기에 앞서 화랑을 국가가 통제할 수 있게 될 텐데, 과거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제도예요.
정 정부 성향이나 이데올로기에 따라 우수화랑이 어디일지가 변할 수도 있죠. 어떤 이념에 봉사하는 예술로 끌고 갈 수 있다는 것, 굉장히 위험합니다. 최초의 법안 아이디어는 화랑업으로 등록된 화랑들이 최소한의 미술품 거래 관련 서류를 갖추도록 하는 것 등이 중요한 것이었는데 그것보다 정부가 미술품 유통을 콘트롤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으로 변해 버렸어요. 정부가 정한 대로 열심히 하는 화랑이 재정지원까지도 받을 수 있다? 이 법이 말하고 있는 화랑은 문화예술계에서 그간 통칭했던 그림을 사고파는 갤러리가 아닌 것 같은, 다른 개념인 듯합니다.
최 화랑업으로 등록된 유통업자의 3대 의무를 지정한 부분도 코미디입니다. 차라리 통합해서 국영 화랑을 만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정 선의로, 위작일 가능성을 모르고 팔았는데 나중에 위작 문제 제기가 되는 경우, 유통업자가 어떻게 책임을 지게 할 건가요. 법을 위한 법인 것 같습니다.
캐슬린 E. 김(이하 K.김) 이 같은 전례가 유사한 입법 예조차 어느 자유민주주의 국가에도 없습니다. 그레고리 헨더슨 전 주한 미 대사가 <소용돌이의 한국정치>라는 책에서 “자율적 부문 없이 그저 중앙정치권력으로 모든 게 휘감겨 돌아가는 소용돌이 사회”라고 한국사회를 평했던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보입니다. 처음 문제제기하셨을 때는 일부 화랑의 독과점 구조를 문제 삼았었죠.
정 한국 미술시장보고 독과점이라고 하면 다른 나라들은 어떡하게요. 전 세계 미술시장을 한 열 개 대표적인 화랑들이 다 거래할 텐데.
K.김 소위 국내시장의 독과점이라 거론되는 화랑이나 경매회사들이 시장에서 경쟁력을 얻게 된 것은 계약서를 쓰고, 보증서를 첨부하고, 위작 거래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상대적으로 신뢰를 얻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물론 충분히 완전하지는 않겠지만요. 거래 중에 법적 분쟁이 발생하기도 하고 피소도 되고 언론에도 노출되고 하다 보니 점차 리스크를 줄여나가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죠. 그게 시장이고요. 한국 작가 해외 진출시키고, 국제 사업 열심히 하려고 애쓰고 있구요. 정부 계획대로라면 결국 이런 화랑들을 우수 화랑으로 지정할 수밖에 없는데, 독과점 화랑을 문제라고 했던 것과 모순된 결과를 얻게 되는 것이죠. ‘소위 나까마를 양성화하겠다’고 하는 것도 가능한 일인지 의문입니다. 편법, 탈법, 때로는 위법적 방법으로 미술품 유통 거래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기타 미술품 판매업’으로 자발적 신고를 할까요?
조 ‘나까마’라는 용어를 정부 자료에서 썼다는 것도 놀랍네요. 비속어를.
최 경매업도 정부에서 정하는 시설과 규모를 갖춘 곳만 등록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국영 경매회사를 바라는 걸까요.
왜 '미술품 경매'만 특정해서 입법해야 하나?
K.김 정부 설명자료를 보면 미국, 유럽 등에는 경매일반법이 있지만 우리는 없다는 근거를 들기도 하는데-미국, 유럽에는 전부 경매일반법이 있는 것도 사실은 아니지만- 그렇다면 우리도 차라리 경매일반법을 만들면 되지 않겠습니까. 매일 무수한 경매가 벌어지는데 유독 그중에서 규모가 작은 편에 속하는 미술품 경매만 특정해서 입법하는 것은 조금 이상합니다.
윤 중국의 경우 1995년 무렵부터 경매회사가 수백 개 우후죽순 생겨서 1997년 경매법을 만들기는 했지만, 그 경매법은 단순한 것이고 세세한 규정은 없습니다.
K.김 미국도 마찬가지예요. 일부 주에서 시행하는 경매법을 보면, 동산 및 부동산을 모두 포괄한 일반 경매를 대상으로 하고 있고 대체로 상법상 거래 규정, 대리인법상 대리인의 의무, 계약서 교부 등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정 국내에 경매 일반법이 없다고는 하지만 다 상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것이고 충분합니다. 미술품만 굳이 경매법을 넣을 이유가 없습니다.
윤 경매사라는 제도가 필요하다면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경매하시는 분들부터 해서, 내부적으로 양성해 온 부분을 인정해서 라이센스를 발행하도록 하면 됩니다.
정 거래 금액으로 보면 노량진이나 부산 공동어시장 금액의 백분의 일도 안 되는 미술품 경매에서, 미술품 경매사만 별도의 법으로 관리하겠다는 것일까요.
윤 우리나라에서 경매가 열릴 때 경매 자체 진행할 수 있는 경매사를 꼽는다면 경매사별로 다섯 명 안쪽, 다 합쳐야 스무 명 정도 될까말까 하는데, 굳이 그들을 관리하고자 법안을 만들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수많은 지방의 소규모 경매업자들, 몇 만원짜리 물품 그림 파는 곳들을 “미술품 유통”이라는 이름으로 규제해야 할까요, 고물상을 규제하는 게 낫지.
최 상법 등 일반적인 법으로 잘못된 것들을 규제할 수 있는데, 미술 분야를 특수한 법으로 특별관리한다는 것은 마치 일반 형법으로 다룰 수 있는 죄들을 국가보안법이나 반공법 같은 특수법으로 불공평하게 다루자고 하는 것과 비슷한 일입니다. 유엔에서도 폐기를 권고하는 그러한 법의 미술 쪽 버전이에요. 문재인 정부에서 그런 걸 하고 있다는 것이 더욱 이상한 것이죠.
조 이베이나 아마존 같은 경우 미술품이 올라와 있어 국내에서도 직접 사들일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어떻게 제어하나요? 사실 이베이에서 미술품을 사는 것이 믿을 만하지 못한 경우들이 꽤 있으니까 어드바이저가 대상 작품에 대한 글을 올려서 경고하기도 하죠.
윤 그런 곳에서는 보증 자체를 하지 않죠.
조 맞습니다. 일종의 벼룩시장이니까요. 어차피 보기 좋아서 아니면 요행을 바란 거니까요. 자신의 눈을 시험하는 재미도 있는 거지요. 하지만 이상한 작품을 속여서 올리거나 낙찰을 해놓고도 작품을 내놓지 않거나 자꾸 같은 것을 이상하게 내놓거나 하면 이 사태를 주시한 어드바이저가 현명한 구매를 돕는 역할을 하는 거죠.
윤 외국의 경우도 경매나 인터넷 판매 같은 경우 보증이 없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국내 모 옥션의 경우도 보증을 할 수 없는 물품의 경우 따로 표시가 되어 있습니다. 구매하는 사람이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거죠.
K.김 음성적 거래를 하는 거간꾼(나까마)에게서 그림을 싸게 사는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는 전제로 이들을 신고하도록 유도하여 양성화한다고 하고 있습니다만 실효성이 지극히 낮아 보입니다. 사채시장을 양성화한다고 저축은행제도를 도입했지만 사채시장이 사라졌을까요? 또한, 정상적인 유통 과정에서 구입을 하지 않고, 오로지 싸다는 이유만으로 신뢰할 수 없는 거간꾼에게 구입한 소비자도 책임을 져야 하는 게 맞습니다.
윤 프랑스에서 동네마다 벼룩시장이 열릴 때 가 보면 위에민준 펑리준 같은 유명 그림들을 10유로, 20유로에 팔고 있기도 합니다. 가짜인 것이 뻔하지만 그걸 사고 싶을 수도 있죠. 그건 개인의 자유니까요.
정 비싼 그림을 살 형편은 못되지만 이미테이션이라도 사서 걸고자 하는 사람이 있죠. 그런 거야 기호의 문제니까.
미술품 감정을 정부가 통제할 경우의 위험성
최 법안에서 위작 미술품 유통 금지에 초점을 맞춘다고 했지만, 미술품 감정업의 등록 관련 부분으로 넘어가면 정부가 경매와 화랑업을 관장하면서 미술품 감정 분야를 장악하겠다는 의도가 보입니다. 미술품의 진위나 가치를 평가하고 감정서를 발급하는 업종을 문체부에서 엄격하게 관리하겠다는 건 심각한 침해예요. 대한민국 문체부는 전지전능한가요?
정 감정이라는 것이 고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국가 공인으로 이뤄지는 곳은 프랑스만, 그것도 허가증 형식이 아니라 경력이 쌓인 사람들에 한해 ‘qualified’ 되었다는 것을 인정해 주는 부분적인 제도예요. 자격이 있는 사람들만 모아놓는다고 위작 시비가 없어질까요? 전문가들도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가짜다 진짜다 주장하고 의견이 갈리게 마련이죠.
K.김 “현재 국내 감정이 독과점체제이고 소수 감정인에 의해 좌우된다”는 전제도 옳지 않습니다.
정 실제 국내에서 감정이나 경매가 이뤄지는 곳을 모두 합하면 백여 개에 이를 겁니다. 독과점이라고 하기 어렵죠. 특정 단체와 경매사 두 곳이 드러나니 지적되는 것인데... 한국미술품감정협회 같은 경우, 상대적으로 신뢰를 받는 입장이어서 감정 건들이 몰리게 되는 것이니 당연한 것입니다. 감정위원 명단이 제시되지 않아서 문제이다? 사실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공개적으로 발표하지 못하는 이유는 감정 위원에게 로비나 협박이 들어올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감정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근거를 제시하는 일은 조심스럽습니다. 오히려 위작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유의사항을 제공해줄 수 있기 때문이에요.
조 맞습니다. 실제로 화가 보테로 같은 경우 크리스티에서 위작이 나왔을 때 ‘이건 내 작품이 아니다. 이유는 나는 유화물감을 세 번 칠하는데 이것은 한 번밖에 칠하지 않았다’라고 밝혔습니다. 물론 이후에 완전히 같은 재료와 기법을 사용하는 위작들이 나왔고 이후에는 감정이 불가해질 것임을 예견하는 것이 어렵지 않지요.
또한 미술품 감정을 편협하게 본다면, 어떤 연구자가 한 작가와 작품을 많이 보고 연구하고 그 특정 작가에 대해서는 그 사람만큼 많이 알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전반적으로 감정 자격을 받을 수 없으면 그 연구자는 해당 작품과 작가에 대해서 진위 여부를 말할 수 없는 상황도 생기게 됩니다.
K.김 ‘미술품 위작범’의 정의를 신설하는 부분도 문제가 있습니다. ‘위작 미술품’ 정의를 삭제하라는 권고를 받았거든요. 위작 미술품의 정의가 없으니 위작 미술품을 만드는 자인 위작범도 정의할 수 없는 것이죠.
정 위작범의 정의에서 ‘위작 미술품을 유통시킬 의도로 보관, 소지한 자’라고 하는데 어떻게 법에서 이것을 특정할 수 있을까요?
기존의 법보다 오히려 낮은 처벌 기준
K.김 특별 규제법 없이도 기존의 상법이나 형법, 공정거래법, 약관법 등으로 충분히 규율이 가능합니다. 그동안 미흡했다면 집행의 문제이지 법이 없어서가 절대 아닙니다. 이우환의 위작범도 최근 형법상 사기죄로 7년 징역형을 선고받지 않았습니까? 오히려 미술품 유통법안을 보면 위작범 처벌이 최대 5년 이하로 최대 10년 이하의 사기죄보다 낮은 수준입니다. 정부 설명자료를 보면 위작범들이 통상 집행유예로 빠져나온다든가 한다던데 이는 특별 규제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법부, 즉 판사의 재량인 것이죠.
정 미술품에서 이렇게 위작에 대한 범주가 불분명하면 동양화에서 임모작이나 현대미술에서 패러디나 키치도 문제 삼을 수 있습니다.
김진녕(이하 J.김) 국가 지정의 미술품감정연구센터 지정 부분에도 의문점이 있습니다. 미술품의 거래와 같은 사인간의 거래에 국가 권력이 독점적인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는 것 아닌가요?
윤 여러 감정 업체가 있을 수 있는데, 국가가 나서서 한 곳에 감정 업무를 몰아주겠다는 발상 자체가 크게 불공정한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J.김 특정기관에 몰아줄 수 있게 되면, 정부, 집권세력에 의해서 그 방향이 좌우될 수 있고. 정치권력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는 업자들이 생겨나겠죠.
조 법안을 소개하는 공적 문서에 ‘나까마’라는 비속어가 들어있다는 것부터 조금 충격이에요. 미술시장에 대한 개념 설정과 접근 방식에서부터 잘못된 것 같습니다. 세금조차 내지 않는 거간꾼들의 거래에 신경쓰자고 법안을 만들어서 오히려 시장의 자립성을 해치고 과도한 개입을 초래할 위험한 법안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요.
정 미술품 위작범 처벌 안을 보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되어 있는데, 이우환 위작범은 7년형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법을 새로 만들어서 오히려 위작범에 대한 처벌이 약화되는 건가요. 지금 처벌 가능한 현행법보다 최고 형량이 낮다니 법안을 만드는 목적에 비춰봤을 때 말이 안 됩니다. 미술품에 대한 전제와 이해가 틀렸고, 미술시장 조사 분석이 제대로 안 되어 있는 상태에서 막연히 항간에 떠도는 말들을 근거로 대한민국의 법을 만들어서는 안 되죠.
최 형법상 반란수괴의 목적만 갖고 있어도 체포, 처벌할 수 있는데, 국가보안법 등을 만들어 특정법을 만들겠다는 아이디어와 유사한 지점이 많습니다. 다양한 목적을 가진 원작 이외의 작품이 만들어지는 다양한 경우를 모두 생각하고 있지 못하고...
J.김 임모하면서 동양화 공부하는 사람이 있는데, 주변에서 나쁜 맘 먹고 신고하면 걸리는 건가요. 정적을 제거하는 데 사용할 수도 있겠네요.
문체부의 임무는 문화를 진흥하고 고양시키는 것에 있어야
최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를 진흥, 고양 시켜야할 임무를 가진 정부기관임을 인지해야 합니다. 미술계를 통제, 장악하고 처벌하려는 의도를 가진 법안을 만들겠다는 사고에서 벗어났으면 해요.
J.김 이를테면 학교 농구팀이라고 해 봅시다. 운영이나 교육 방식에 있어서 어떻게 가르치고 훈련하는지 디테일하게 법에서 정해주고 그 밖의 것은 법에 저촉되는지 따지지는 않잖아요. 상황에 따라, 시간적 공간적 환경에 따라 변할 수 있는 무한한 조건들을 모두 생각해 낼 수는 없습니다. 미술 작가가 양성되고 미술품이 만들어지고 거래되고 하는 방식이 수없이 다양할 텐데 이런 제재방법을 거론하는 것은 특정 단체나 기관을 밀어주기 위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을 끊어내기 힘듭니다. 지속적으로 얘기해 왔지만 법이 없어서 처벌하지 못하는 게 아닌데, 수많은 부작용이 예상되는데 왜 법제화 방침을 지속하는지, 그 저의는 무엇인지 자꾸 생각하게 됩니다.
K.김 법안의 취지에서 ‘구매자 보호’가 계속 언급되는데, 근대 이후 시민은 합리성을 바탕으로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 기본 원칙입니다. 국제 상거래에서는 매수인책임원칙이 통용됩니다. 미술품을 구입할 때도 스스로 조사하고, 신뢰할 만한 유통업자를 통하고, 스스로 판단이 어려우면 전문가의 도움을 구할 수 있습니다. 문제되는 위작 거래는 속아서 사는 경우도 있겠지만 턱없이 낮은 가격이고 뭔가 의심을 품고 있으면서도 구입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불투명한 거래를 일삼거나 위작을 유통시키는 음성 시장이 비대한 이유도 그런 곳을 계속 찾는 구매자들이 있기 때문이죠. 계약서와 영수증을 교부하고 정상적 거래를 하는 국내외 화랑이나 경매회사들이 넘치는데도 말이죠. 유통업자를 통제하고, 규제 일변도의 법을 만든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은 아닙니다.
윤 일단, 한국 미술품 시장이 이미 우리만의 것이 아닙니다. 한 미술품 경매에서 20% 이상은 외국의 미술품이 거래되고 있어요. 이런 상태에서 국내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한국 미술의 육성과 보호 취지에 합당한가요? 문화부가 가져야 할 스탠스의 정 반대라고 할 수 있죠. 또, 책임 있는 단체를 지정해서 감정 업무를 맡긴다? 지금 운영중인 민간기업들의 생업 조건을 인위적으로 박탈하고 재분배하겠다는, 굉장히 위험한 발상입니다. 적어도 이 부분은 반드시 제거되어야 해요.
그동안 많은 분들이 법안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문제점을 고치려다보니 법안이 처음 취지와 많은 부분 달라진 모습을 하게 된 듯합니다. 처음의 아이디어로 돌아가서 미술품과 미술시장의 개념과 현황 분석을 엄밀하게 돌아보고 법안이 그 해결책으로 적당하지 않은지 검토해 주기를 희망합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