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07. 06
최열, 정준모, 조은정, 김진녕, 캐슬린 김, 윤철규
윤철규(이하 윤) 작년하반기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입법예고한 “미술품 유통에 관한 법률안”에 대해 지난 3월 미술계잡담에서 다룬 적이 있었죠. 슬슬 입법에 발동이 걸리고 있는 것 같은데, 미술계 내에서 아직 의견이 분분한 이 법에 대해 시급히 문제점을 분석해야 될 때가 아닌가 해서 모셨습니다.
캐슬린 E.김(이하 K) 최근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문화체육관광부와 같은 논점의 글을 국회입법조사처 소식지 격인 《이슈와 논점》에 게재했습니다. 문체부는 8월에 법안을 국회에 상정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정준모(이하 정) 먼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왜 이 법을 만들려고 하는가를 짚어보아야 할 텐데, 최초의 동기와 지금의 모습이 다르다는 것부터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애당초 미술품 유통을 투명하게 하기위한 제도를 만들면 어떻겠느냐는 의견 제시에서 시작된 것이었죠. 예를 들어 공인미술품중개사 같은 제도 말입니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몇몇 위작 사건이 크게 부각되면서 한국 사회의 미술품 위작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필요한 법인 것으로 논점이 바뀌었죠. 이 법이 시행되면 마치 위작 논란이 없어지고 소위 나까마, 중간 판매상들도 근절되고, 독과점도 깨지고, 게다가 선진국도 이런 법제가 있다, 그런 논리인데, 사실이 아닌 측면이 많습니다. 문제는 과연 이 법이 시행이 되면 이 문제점들이 사라질 수 있을까 하는 것이고, 제가 느끼는 또 다른 큰 문제는 사실과 달리 문제를 확대해서 미술시장 자체를 범죄가 횡행하는 곳으로 단정하는 분위기입니다. 이런 생각이 확산되면 한국미술에 대한 이미지가 더 나빠질 수밖에 없어요.
최열(이하 최) 효과를 떠나서 국가 공인의 미술품감정사, 미술품 등록제 같은 제도는 그 말만 들어도 심각하게 민주주의를 훼손할 수 있는 위험한 법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 모든 미술품을 등록하는 일은 어떻게 할지, 누가 책임을 질지, 감정사 자격은 누구에게 어떤 기준으로 질지 그 감정사의 감정 내용에 대해서 정부가 책임을 질 수 있을지.
윤 미술품 유통에 대한 관리를 일원화시킨다는 것인데, 사실 위작 해결을 위한 최선의 방법은 단순합니다. 거래할 때 계약서 작성 의무를 잘 지키도록 하고 거기에 작품을 인증하는 서류를 반드시 첨부하도록 하면 됩니다. 그리고 계약서가 없는 경우 상업이나 민법 등으로 부터 보호를 받을 수 없도록 하는 것이지요. 텔레비전 하나를 사도 보증서가 따라오는데, 당연히 지켜야 할 일이죠.
최 미술품 등록제가 위작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입니다. 등록제 해서 위작을 막을 수 있었다면 전 세계 수 천 년 동안 위작을 막지 못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강력범죄나 인권 문제 같은 것에 대해서는 국가가 사전에 시스템으로 막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게 맞지요. 이런 일에 법률로 범죄를 가정하고 행위를 통제하는 것은 인권에도 어긋납니다. 기존의 법들을 통해서 위작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말입니다. 범죄를 예방하는 법이라는 것은 신중해야 합니다.
윤 일본에 생긴다는 공모죄와 같은 거네요.
최 국가보안법과도 일맥상통하고.
정 문화예술계의 국가보안법이라고 해야 되나요.
K 미술 유통업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것이죠.
최 이렇게 되면 작가도 모두 등록을 해야 하고. 미술이론가도 등록해야 하고.... 등록하지 않은 사람은 작품활동도 못하고.. 한국전쟁 때 있었던 문화인등록법이 떠오르네요. 사상통제를 위해 문화인등록을 법제화했었고, 각 분야의 예술가들이 국가에 자신이 예술가임을 등록해야 했었죠. 문화인 등록제가 가지고 있었던 심각한 폐해가 있었죠. 국가의 의도는 빨갱이를 색출하고 사상을 통제하겠다는 것이죠. 결국 문화인등록제가 예술원 등 예술계 권력으로 작동을 했고, 문화예술계를 국가가 통제하는 법으로 작동했습니다. 4.19 혁명 즈음에 폐지되었으나 유산으로 예술원이 남아 오랜 기간 문화계 권력이 되었죠. 그 어두운 흑역사를 연상시킵니다. 결국에는 작가가 작품을 완성하는 순간 국가에 미술품을 등록해야 한다는 얘기로 발전할 겁니다.
조은정(이하 조) 국가의 권력이 미술작품에 미친 경우 그것은 대개 부당한 권력, 과한 정치가의 의욕 등에 의해서였습니다. 인간의 가장 창조적인 영역인 예술 그것도 시각문화인 미술에 권력이 작동하는 순간 그것은 인간의 감정 통제와 인식의 제어를 의미합니다. 미술계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관찰의 대상, 억압의 대상이 되는 거지요. 그래서 문화인등록도 해야 하는 것이었고요.
K 문체부 논리대로 법과 제도를 통해 시장에서 위작을 원천봉쇄하려면 작가도 평론가도 등록하지 않으면 활동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 밖에 없겠죠. 국가가 식별가능한 개인정보를 담은 주민등록번호를 발급해 관리하겠다는 발상이 고스란히 미술품 유통 시장에 차용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시민들을 등록해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 시장 원리에 따라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작동하고 있는 시장마저 국가에서 컨트롤하겠다는 생각, 그 자체가 문제입니다.
정 이 유통법에서의 등록제도는 작품 매매시 해당 작품들을 등록하자는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매매되지 않는 작품들은 어떻게 관리할 수 있을까요? 또 첫 매매이후에 등록이 되는데 그럼 처음 거래되는 작품의 경우 이 법안의 처벌규정으로는 처벌할 수 없을 텐데요. 작가나 소장자가 양도하거나 직접 개인간 거래하는 경우 등록하지 않으면 불법인가요.
K 결국은 어떤 작품을 누가 가지고 있는지를 모두 들여다보겠다는 것 아닌가하는 의심이 듭니다. 안 그래도 한국사회에서는 예술품을 수집하거나 고가의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탈세나 돈세탁, 뇌물수수 등 위법적인 좋지 않은 의도로 사용할 거라는 오해를 많이 받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미술품을 소장하고자 하는 요구, 예술을 소비하고자 하는 욕구는 더 낮아질 겁니다. 최근 국회의원 등 공직자 재산신고 목록을 보니 미술품 목록이 거의 없거나 아주 적습니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신고해야 하지만 컬렉션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 의심의 눈초리를 받을 일이 걱정되어서 아닐까 싶었습니다. 소장자가 미술품을 구매하거나 소장하는 것만으로 의심을 받고 조사의 대상이 된다면 누가 예술을 소비하고 나누고 기증할까요. 공직자들이 불필요한 오해를 살까 두려워 예술품을 구매하지 않는 것도 문제고, 아예 오해나 편견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자발적 공개를 하지 않는다면 더더욱 문제겠죠. 국가가 미술시장을 들여다보고 컨트롤한다면 미술품 거래는 더더욱 어두운 곳으로 숨어들고, 미술품 거래와 소장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편견은 더더욱 견고해 지지 않겠습니까.
정 사실 미술품 소장이라는 것은 아주 개인적인 것이죠. 성적 취향만큼이나 개인적인 것이 소장품 취향인데 대명천지에 이걸 반드시 밝혀야 한다? 바른 방향은 아니겠죠. 법 제정 논리는 현재 외국 사례를 벤치마킹 한 것으로 주장하고 있는데, 사실 미국이나 영국이나 프랑스 등의 경우는 민간이 자발적으로 하는 내용들이라 인용한 내용이 사실과 조금 다르고,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은 중국의 경우와만 거의 같은데 중국은 사회주의국가라는 점이 다르지요.
조 개인이 어떤 물건을 사는데 국가에 등록하는 것은 총포류가 대표적인 것 같은데요. 물론 총만큼이나 미술작품이 어떤 경우 사람들에게 치명적이고 또 정치적 도구로 사용될 수도 있지만 그러한 이유에서는 아닌 것 같긴 하네요.
윤 위작을 방지하는 법을 만든다면 그 필요성을 따질 때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전체 미술품 유통에 있어서 위작이 어느 정도가 되는지겠죠. 사회적으로는 가격이 비싼 유명작가의 작품 위작 문제가 이슈가 많이 되긴 했지만, 전체에서 위작 거래의 비율이 시급하게 국민적 합의 없이 법을 만들어야 할 정도인지는 의심스럽습니다.
K 국회입법조사처 글에서 미술품 위작이 미술시장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는 위험요소라는 근거로 제시한 것이 “(주)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의 2015년 전체 감정 의뢰품(588점)의 40%가 위작으로 판정되었다”는 것인데, 의심이 되는 것 중에 위작이라는 것이지 전체 거래에서의 위작거래 비율이 아니니 위작이 많다는 근거도, 중요한 발전 저해 요소라는 근거도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위작에 대한 의뢰 건수가 많고, 감정 결과에 대한 불복으로 재판도 많아지고 하는 것은, 국가의 개입 없이도 시장에서 어느 정도 위작이 걸러지고 있다는, 그래서 미술품 유통 시장이 작동하고 있다는 반증도 될 수 있겠죠.
정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이 위작을 잘 걸러내고 있다는 근거가 될 수는 있겠지요. 감정결과의 공신력은 있나봅니다(웃음). 문제로 지적되는 점이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이 화랑들끼리 출자한 회사이기 때문에 객관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인데 말입니다.
미술시장 일 년 거래를 대개 4000억으로 보는데, 1년에 위작으로 문제가 되는 그림은 가격으로도 건으로도 얼마 되지 않습니다. 천경자 작품도 하나로 25년을 끌어 온 것일 뿐이지 매년 위작문제가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후 이우환 단일 사건으로 퍼센트가 커진 면이 있지요.
K 이미 이우환 위작 사건에 대해서는 수사가 진행되었고, 위작범들이 실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유통법 없이 기존의 법과 제도가 제대로 작동되고 있다는 증거가 되겠지요.
정 애초에 싹을 자르겠다는 것이죠. 자유나 권리가 조금 제한되더라도 범죄의 여지는 없애겠다는.
K 상표법이 있고, 검거도 처벌도 하지만 짝퉁 명품가방의 거래가 완전히 근절되지는 않죠. 어느 품목이든 돈 되는 곳에 사기꾼은 있기 마련입니다.
윤 민간에서 한다고 공신력이 없다고 하는데, 미국감정가협회(AAA)도 사실 자신들끼리 유통질서를 바로잡기 위해서 거래 종목별로 규범을 두고 있는 셈인 것이죠. 우리도 그 직전 단계까지 온 것으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최 4000억 시장이 전부인 업계에만 적용되는 이런 법을 만든다는 것이 공력을 너무 낭비하는 일이죠.
정 필요한 면이 있다고 전제하더라도 완전하지가 못합니다. 겸재 정선 그림, 김홍도 그림도 미술품인데, 그 거래에 대해서는 이 법으로 제한하지 못합니다. 문화재라는 다른 범주로 제외되어서요. 미술품 유통에 대해 적절하고 균형있는 제도를 만든다면 더 고려할 점이 많을 것 같습니다.
윤 고미술은 상당부분 문화재에 해당하고 현재 일반 화랑과 달리 허가제로 등록된 화랑만 거래할 수 있게 되어 있는데도 끊임없이 진위문제가 불거지고 있습니다. 여기에서의 문제는 천만원 이상의 도자기를 팔면서도 계약서나 보증서, 컨디션 페이퍼가 첨부되는 거래가 많지 않습니다. 신용으로 통하게 되어 있어 법적인 책임을 묻기가 어렵죠.
정 최초 제안의 동기에 따라 미술품 거래시 계약서 등의 서류를 남겨야 한다는 것만 제도화하자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미술품중개사 정도만.
K 기본적인 표준 계약서와 보증서 양식이나 가이드라인만 있으면 필요한 서식을 만들어 쓰도록 하면 되죠. 특별히 중개사가 필요하다고 여겨지진 않습니다. 특수상황에는 변호사 고용하면 되구요.
정 90년대에 화랑협회에서 계약서 등의 서류 양식을 만들어 놓았지만 권상릉 회장 퇴임 후 유야무야 되었지요. 화랑협회도 나름대로의 자정 노력을 했습니다.
K 여전히 계약서 사용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긴 하죠.
정 미술품 거래가 투명하게 되려면, 기본적으로 그림을 구입하고 소장하는 것이 자랑스러운 세상이 되면 되지요. 미술품이 탈세로 쓰인다고 하는데, 제가 아는 큰 컬렉터 중 그런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 제도가 오히려 미술시장에 해악이 될 것이 걱정입니다. 저수지에 배스의 씨를 말리겠다고 농약을 치면 미꾸라지도 죽는 거죠. 왜 일부 범법자들의 행위를 일반화해서 모든 미술시장이란 바다에 농약을 풀려고 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조 상속세를 면하기 위해 미술품을 이용한다는 게, 서양이라면 모를까, 그 가격의 1/100도 되지 않는, 국내 거래되는 작품들의 가격을 생각하면 가능성이 낮은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상속에 이용하기에는 너무 단위가 작아요.
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유통의 합리화, 미술시장과 미술계의 발전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발전을 위한 포지티브한 방안을 생각하는 것이 먼저이고, 통제하고 제한하는 일은 최소화해야죠.
K 콘텐츠진흥법, 예술인복지법 등 문화예술 분야 관련법에는 계약서의 사용 의무 등을 명시하고 있는 조항이 있는데 실제 사용 여부는 당사자들의 몫이죠. 정부가 계도할 수는 있어도 강제할 수는 없는 부분입니다. 계약서나 거래 서류가 없으면 구매자도 보호받기 어렵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알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조 어제 어떤 자리에서 미술품 유통법에 관련한 이야기를 나눈 일이 있었습니다. 대부분 그에 반대하며 국회에서 통과될 거라고 생각되지 않는다고 하더라구요. 그렇지만 그런 법이 필요하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문화체육관광부를 압박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반대가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통법 제정을 계속 주장하게 될 거라고.
윤 미술에 대해 편견이 심해서 바로 잡기 위해 유통법을 만드는 것도 한 방안일 수는 있겠지만 공적인 기능을 강화해서 서서히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생각하는 게 더 좋은 방법이겠지요. 미술관을 활용해서 더 많은 소장품 구매를 하도록 하여 거래를 선도하게 한다든가. 국민들이 미술을 더 잘 향유하고 한국의 미술과 미술시장이 발전할 수 있는 정책들이 법보다 선행되어야 하겠지요.
정 그건 어려운 방법이고, 법 제정은 빠르고 쉬운 방법이죠. 공무원들은 실적, 실체가 바로 보이지 않는 정책을 시행하느니 그나마 ‘법’이라는 확실한 실적이 보이는 일을 추구하게 되죠.
최 미술 인구에 비해 위작 논란이 우리만큼 적은 나라가 없습니다. 화랑협회, 감정가협회 자료를 보아도 논란 자체가 적습니다. 우리나라 경제가 세계 12위라고 하는데, 그림값은 또 터무니없이 싸고. 상대적으로는 사기꾼이 적은 나라인데 통제하고 억압하려고 쓸데없는 소모를 하고 있습니다. 계약서라는 이미 나온 대안 먼저 시행해야죠. 국가가 해야 될 일은 추상적이긴 하지만 경쟁, 자유시장 체제 하에서 육성할 대안을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국공립미술관 작품구입비를 1천억씩만 책정해도 놀랍게 많은 자정기능이 형성되고 위작시비는 잦아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K 위작 논란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시장에서 가치가 적다고 해석할 수도 있죠. 비싸게 팔리지 않을 작품이라면 굳이 리스크를 가지고 위작을 만들어 유통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조 말씀하신 것처럼 위작은 사실 미술사 전체에서 없을 수 없는 것이죠. 인류 역사와 함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위작인지를 가려내는 눈을 만들게 되기도 하고 미술사에 작품으로 편입되기도 하는 등 위작 자체가 미술사의 일부인데 그것을 진짜와 가짜 이분법으로 보는 것은 작품을 상품으로만 보기 때문이죠. 미술품 자체에 대한 모독이라고 볼 수도 있구요. 작품의 거래가 투명하지 않다고 하는데, 옥션 같은 곳에 작품을 내면 소장자 이력을 밝히지 않으면 높은 가격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처음 위작이 거래될 때 싼 것을 알면서도 사는 것이 사실은 옳지 못한 일이죠.
K 법 제정의 취지를 읽어 보면 논리 비약이 심해 보입니다. 위작 때문에 미술시장이 크지 못한다? 거대 화랑들이 독점하는 것이 문제다? 한국 미술시장의 모든 문제가 위작에서 비롯된 것처럼 말하지만 대단한 논리의 비약입니다. 우리는 미술시장 규모도 작지만 위작 유통 퍼센트도 작습니다. 위작이 제일 많은 곳은 미국, 영국, 프랑스이고, 그곳의 거대 화랑이나 경매회사가 시장에서 차지하는 규모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논리가 빈약하죠. 거대화랑과 군소화랑은 서로 경쟁한다기 보다 다른 영역에서 다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삼성전자와 중소기업이 경쟁 구도라고 보기 어려운 것처럼요. 물론 누구나 시장원리에 따라 경쟁을 통해 투자하고 성장하면 거대화랑이 될 수 있고, 삼성전자가 될 수 있겠지만요. 그 때문에 시장이 죽어간다기보다, 미술품을 사람들이 사지 않기 때문에 화랑이 죽어가고 미술시장 전체가 활성화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마치 미술시장을 범죄의 온상처럼 호도하고, 공직자나 부유층의 미술품 거래나 수집을 편견으로 바라보는데 누가 투명하게 미술품 구매를 하고 공개하겠어요. 규제를 통해서 해결하겠다? 규제, 규제 하면 사라고 해도 안 살 듯한데요.
정 한국미술의 세계화에 돈을 많이 쓰잖아요. 외국 미술시장 진출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야 진출이 되죠. 표준계약서 통용되지 않으면 외국과의 거래도 어렵고...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미술 세계화, 국제화에 역행하게 됩니다.
K 글로벌하게 미술시장을 키우고 싶으면 사고 싶은 작품을 많이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작품이 더 잘 거래될 수 있어야 작품이 많이 만들어질 것인데, 있지도 않은 시장을 규제부터 한다고 하니 답답할 따름이에요.
정 붕괴미연방지법이라고 할까...
조 생길 수 있는 모든 문제를 다 생각해서 모든 항목을 다 만들어야 하겠네요.
윤 미술계를 잘 모르는 일반 대중들을 설득하고 미술시장에 대한 오해와 갭을 넘어서야 합니다.
K 구매자의 책임을 간과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소위 나까마에서 구매하는 사람들은 문제가 있는 줄 알고도 사는 건데, 구매자 자기의 책임인 거죠. 비정상적으로 싸다는 것은, 그리고 정상적 유통망에서 거래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리스크를 지고 있다는 것이고, 그 리스크는 구매자 스스로 지는 것이 맞습니다.
조 길거리에서 명품가방 사면서 짝퉁이라고 항의하는 셈이죠.
K 화랑, 갤러리에서 작품을 구매하면서 계약서나 보증서, 인보이스 등 서류를 챙기지 않는 것은 구매자 본인의 책임이라고 봐야 합니다.
정 그러니, 가짜를 사는 사람도 사기의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겁니다. 시가 20억짜리 2억에 사겠다? 정당하지 않은 이익을 보려고 사는 거니까 그거야말로 잠재적 범죄자죠. 가짜를 판 사람도 잡아들여야 하지만.
K 규제개혁위원회에서도 이 법안 중 유통업자의 보증책임의 부인 및 제한 무효 규정에 대하여 삭제 권고하고, 유통 및 감정업자의 위작 유통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 및 입증책임 전환 의무 부과 규정에 대하여 삭제를 권고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조 문화부가 미술품 유통을 위해 이런 것 말고 무엇을 할 것인가를 더 적극적으로 고민해 주길 바랍니다.
K 화랑협회가 자체적으로 강력하고 실효성 있는 윤리강령 등을 제정하여 실행하도록 권고하여야 하고, 윤리강령에서 벗어난 행위를 하여 화랑업계 전체의 신뢰를 하락시키는 회원사들은 퇴출시켜 자정 작용을 하도록 요구해야겠지요.
정 이 법을 제정한다고 하기 전에 이 법안의 일차 당사자인 화랑협회와 국민들에게 납득할 수 있는 방향에 대한 진지한 토론 등, 고민이 부족했다고 봅니다. 감정협회에 대한 오해들, 전화하면 진짜를 가짜로 만들어 준다는 얘기도 있다던데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면 범죄입니다. 사법당국에 고소 고발해서 조사를 받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렇게 이야기만 하지 말고 저는 고소 고발하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어요. 또 감정위원 명단 발표 안한다고 신뢰성 없다는데 누군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고 봐야하니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구요.
조 진위감정을 할 수 있는 사람 자체가 극소수이구요. 그 사람들의 면면은 이미 미술 동네에서 다 알고 있는 사람들 아닌가요?
K 안목(진위)감정과 시가감정을 헷갈리고 있는 듯해요. 안목감정은 학문적 연구와 가능성에 대한 의견의 영역인데 화랑업자의 감정 자체를 문제가 있는 것으로 바라봅니다.
최 그동안의 진행 과정이 화랑들이 만든 단체의 감정 역할은 주류로 살아남고 다른 쪽이 죽은 면이 있죠. 그래서 외부에서 보기에 근본적으로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는 봅니다.
정 화랑협회가 감정에 직접 관여하게 된 것은 위작 문제로 장사하기 어려워서라고 봐야겠죠. 이후 80년대 중반 감정가협회가 생겼죠. 한 동안 화랑협회와 감정가협회가 모두 감정을 한 적이 있었고 이후 감정가협회의 신뢰도가 인정되어 화랑협회가 감정을 하는 일이 줄어들게 된 것이죠.
최 형식논리는 그런데 내용적으로는 다를 수 있죠. 감정가협회와 화랑과의 관계가 아주 독립적이라고 보여지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화랑이라고 정확하게 작품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들의 돈이 달린 문젠데 더 정밀하게 보고자 하겠죠. 감정가협회도 경쟁체제가 있으면 매우 훌륭해질 수 있고.
김진녕(이하 진) 감정평가원은 주식회사로 되어 있고, 감정연구소가 있어서 그 감정연구소가 감정을 하는데 그 비용을 주식회사에서 지원받는 형태인 거죠.
조 작가별로 전문적인 기관이 감정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많은 부분이 개선될 겁니다. 유영국의 작품은 유영국 재단이 하도록 하는 등.
정 실제로 그렇게 이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내에 작품 감정하는 개인이나 단체가 많이 있어요. 다들 미술품 감정하면 한국감정평가원을 이야기하는데 사실은 인터넷에 검색만 해봐도 감정을 해주는 기관이나 사업체, 개인은 허다합니다. 왜 그런 곳은 문제를 삼지 않는지 그것도 궁금합니다.
윤 권위있는 복수의 감정 체제로 갈 만큼 시장이 크다고 보여지지는 않아요. 독과점의 구조나 화랑주인이 들어가 있는 감정가협회 등 일반인 오해의 소지는 있습니다.
조 국립현대미술관에 작품을 넣을 때 감정평가원의 감정서류를 필수로 요구하는 상황이라는 것도 문제예요.
정 미술관 소장품은 미술관이 결정해야지 평가원에 의지할 일이 아닌데 말이죠.
윤 나 말고 제3자가 도장 찍기를 바라는 것, 책임회피이죠.
최 경매회사나 화랑도 본인들 나름대로 검증절차를 밟고 있는데 국립현대미술관이 그러고 있다면 국가 기관 자격 미달이라고 봐야겠네요. 어찌 되었든, 법안 관련해서 위작 논란이나 시장 규모가 적은 나라에서 너무 거창한 것이 사실이고, 사상을 통제하는 후진적인 법입니다. 빠른 속도로 폐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조 위작 문제가 이 법률안 제정 동기의 발단이 되었는데, 미술사 전체에서는 위작 얘기가 제일 재미있어요. 진작을 능가하는 위작들, 위작이 진작에 포함되면서 시간이 지나 화파처럼 흡수되기도 합니다. 실질적으로 위작 스캔들이 큰 것일까요? ‘내로남불’이라고 미술계 밖에서 보면 이 위작 얘기가 가십거리로서 흥미가 증폭될 가능성이 크죠. 연예인 얘기보다 교양 있어 보이고 하니까요. 미술계 내에서 문제의 분석과 해결책이 다뤄져야 하는데 과하게 사회와 정책 쪽으로 확대재생산된 부분이 큽니다. 문화부 입장에서는 순수예술 영역에서 재화가치로 드러나는 건 유일하게 미술품이니까, 재화처럼 다루는 과정에서 삐걱거림이 나타난 것 같아요. 미술품은 문화로서 봐야 합니다. 직접적으로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미술 작품에 대한 개념이 어긋나 있기 때문에 저런 식의 해결 방식이 자꾸 등장하는 거 아닐까요.
진 시행체계가 부족하니 준거틀을 마련하려고 공인 감정사를 만들려고 하고, 기존 화랑의 안목감정 못 믿어서 나온 얘기들인데, 국가주도로 한다고 해서 이런 전문성 있는 분야에서 바로 객관성이 확보된다고 볼 수 없습니다. 실상에 맞는 것 같지는 않아요. 한국시장에서 선택한 방식, 감정가협회 등등 기존의 관행에서 조금씩 발전해 나가도록 문화부에서 생각을 더 해야 되지 않나 싶습니다.
K 정부가 뭔가 할 때 쉬운 방법을 택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법만능주의라고 해야 할까요. 신임 문화부장관이 문화인들과 대화하면서 ‘필요하다면 블랙리스트방지법을 만들겠다’고 하시던데... 이미 직권남용으로 처벌 다 받고 있는데 자꾸 특별법 같은 것을 만들면 그걸로 책임을 놓아버리는 것과 다름없어요. 자격증 남발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시장이 제대로 공정하게 작동하도록 하면 됩니다. 제도를 과잉하면 그것이 남기는 것은 불신이고, 부정적 시그널을 사회에 보내게 됩니다. 외국의 사례는 정확히 말하자면 자발적으로 공정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지켜보고 소극적으로 개입할 뿐이고, 징계 처벌을 위한 것들은 일부일 뿐입니다. 등록한다고 해서 다 관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완벽한 산업적 영역이 아니니 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모두 시장원리 원칙을 따르고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원칙을 분명히 하고 있어요. 거래는 각자의 책임이고, 과도한 규제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윤 긴 시간 말씀 감사합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네거티브 정책이 아닌, 규제 아닌 지원 방향으로, 내부의 이야기를 듣고 신중히 개입하는 방향의 리액션을 취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