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15일
조은정, 김진녕, 캐슬린 E. 김, 윤철규
윤철규(이하 윤) 대선 모드로 전격 전환되면서 대선 후보나 정당의 문화 정책에 대해 점검하는 시간을 가지고자 했는데, 아직 문화 정책이 정리되어 보도된 바가 없어서 아직 그건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오늘은 ‘다음 정부의 문화 정책이 이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방향이 되어야 할 것 같네요. 일정상 공약 자체가 정책으로 흘러들어갈 가능성이 많다고 하던데 공약을 보다 철저히 점검하기 위해서도 지난 정부의 문화 정책이나 공약 등을 돌이켜보고 이후 새로운 시대의 문화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어떤 것들이 담겨야 할지, 현안 중심으로 느끼시는 대로 이야기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조은정(이하 조) 문화를 무엇으로 보는가가 정책을 좌우합니다. 김영삼 문민정부 시절 한 영화의 전 세계에서 벌어들인 수익이 우리나라가 자동차 백오십만 대를 수출해야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과 같다며 이를 비교했었죠. 이런 식의 논리가 퍼지고 결국 문화 콘텐츠가 자동차처럼 수출 가능한 주력 상품으로 여겨지게 됐구요. 공업을 국가가 후원하여 수출 효자 종목으로 만들었던 것처럼 문화 쪽도 국가가 후원해서 판매를 많이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생각, 내부의 함의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점차 국내 제작 영화, 드라마, 가요 등이 아시아에서 인기를 끌며 한류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으로 판매되고, 정부에서는 방송과 영화 등에서 활용될 문화콘텐츠 개발 등에 많은 예산을 쏟았습니다. 그 덕택이든 아니든 그 분야의 성장이 있었고 또 관광 등 기타 분야에 파급되어 경제적인 효과가 증명되기도 했고... 이렇게 되면서 마치 국가 주도의 경제 개발처럼 ‘문화융성’이라는 이름하에 정부가 밀어주는 시도가 정당화된 것이죠. 이 때 문화의 자생성이라든가 문화와 예술의 사회성 등에 대한 고려는 상대적으로 고려되지 못했던 데다가, 관 주도의 발전은 주도하는 측의 취향이 반영되게 마련이라 부작용이 나타날 수밖에 없죠.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의 세미나실이 공연 쪽에서 사용되며 세미나 장소를 찾아 헤매던 일을 겪은 적이 있어요. 다양한 문화 영역이 있는데 잘 밀어주는 분야와 그렇지 못한 분야가 있어 발생하는 부조화의 한 면이 아닌가 싶기도 했어요. 문화나 예술은 일반적인 상품의 생산과는 다른 것이죠. 그에 대한 이해가 정책에 드러나는데, 블랙리스트도 그런 몰이해를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죠. 정부비판적인 예술가들이 만드는 상품은 좋은 상품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나온 결과라고나 할까.
캐슬린 E. 김(이하 K.김) 문화를 상품으로만 바라로는 시각에서 나온 결과라는 데에 동의합니다. 문화는 특정 정권이나국가권력 주도해서 만들어 지는 것이 안이라, 정치나 경제 등 다른 모든 분야의 상위에 있는, 동시대 사람들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단기간에는 더더욱 의도대로 만들어질 수 없고 성공하기도 어렵습니다. 자생적인 문화를 국가가 주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문화예술과 관련된 특별법도 너무 많고 ‘진흥’이라는 말 자체도 어떤 면에서는 불편합니다. 융성시키겠다, 진흥하겠다라고 하는데, 단기적인 성과를 목표로 돈을 준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융성하고 진흥되는 게 아닙니다. ‘한류’를 예를 들자면, 그 표현도 좀 그렇지만 그 한류를 정부 주도로 만들었다고 생각하시는 공무원들도 계신데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홍콩문화, 일본문화, 미국문화 등을 향유하다가 서로 모방과 복제의 과정을 거쳐 그 위에 우리의 창작성을 하나씩 얹어가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다 보니, 어느새 우리 것이 시류에 맞게 공유될 만한 문화로 만들어졌을 뿐인 것이죠. 우리 정부가 해외에 나가 부스를 만들어서 외국에 팔렸고, 게임진흥법이 만들어져서 게임 강국이 되고 그런 게 아닙니다.
김진녕(이하 J.김) 진흥위원회가 만들어지면 그 분야가 침체되는 듯요(웃음).
K.김 외국인들에게 ‘한국 음식 먹어보세요, 맛있어요’하는 것도 우스워요. 뉴욕타임즈, 타임스퀘어에 비빔밥 광고하고 하는 것들, 서양인들의 입장에서는 ‘저게 뭐지’ 하는, 조금 이상한 행위로 비쳐질 수 있습니다.
(편집자)
대한민국 문화정책은 1990년대 이후 민주화의 진전으로 문화예술에 대한 국가 검열과 통제가 폐지되었고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팔길이 원칙’을 기초로 해 왔습니다. 1999년 문화산업진흥기본법이 제정되고, 김대중 정부 시절 처음으로 문화예산이 정부 예산의 1%를 돌파했습니다. 2001년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 설립되면서 문화콘텐츠가 경제 성장동력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2013년 2월 25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취임식 연설을 통해 4대 국정기조 중 ‘문화융성’을 제시했습니다. 대선 당시 공약 중에는 없는 내용이었고, 당선 후 인수위원회가 발표한 국정 과제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문화정책의 특징은 ‘국가 주도 문화예술 진흥’과 ‘산업적 가치로의 전환’ 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박정희 정권 시절의 정부주도 문화정책과 유사한 부분이 많습니다. 다음 시기별 문화정책의 변화와 주요 사건을 참조.
문화정책 시기별 분석
1945-1960 |
문화정책 부재 |
문교부와 공보처의 문화행정 전담 일제강점기 문화기관 재정비 |
1961~1989 |
국가 중심 문화예술 진흥 정책 |
공연법(1961) 문화재보호법(1962) 영화법(1966) 문화예술진흥법(1972) 1968 문화공보부 (문화행정 일원화) 1973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설립 1974 제1차 문예중흥 5개년 계획(1974~1978) 1985 문화 발전 장기 정책 구상(1986~2000) |
1990~ |
백화점식 문화정책 남발과 문화향유권 확대 |
1990 문화부 설치 2001년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설립 200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출범 2011년 예술인복지법 제정 2013년 문화기본법 제정 2015년 국민여가활성화기본법 제정 |
출처 : 박영정 "역사를 통해 본 한국 문화정책의 현재와 미래“
J.김 지난 정부의 문화 정책이 어땠나를 생각해봤습니다. 정부 3.0이라고 하면서 ‘문화융성’이 박근혜 정부의 슬로건이었죠. 생각해 보니 DJ 때는 문화개방 등의 노력이 있었고 대중문화 쪽이 살아나고 한국산 콘텐츠 수요가 많아졌었던 것 같습니다. 이후 참여정부는 문화적 마인드가 특별히 있었다기보다는 DJ 정부를 이어 버전업된 정도였던 듯합니다. MB 정부 때는 한식의 국제화가 모든 문화적 이슈를 잡아먹을 만큼 강조되어 다른 것이 떠오르지 않네요. MB나 박근혜 정부는 이전의 보수 정당들이 그랬든 공연 등 클래시컬한 쪽과 원만한 관계가 있었던 반면 대중문화 쪽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꾸준히 간섭과 탄압 이야기가 비어져 나왔는데, 특히 영화 쪽은 부산영화제 등으로 내내 시끄러웠고 광주 비엔날레 등의 문제 등이 나오더니 블랙리스트로 결정적으로 터져나왔습니다. 정부3.0 슬로건과 상관 없이 이분들은 진흥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사실 정부가 민간을 쫓기도 벅찬 부분이 많습니다. 게임 사업 하시는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부 지원의 플랫폼 등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영화진흥위원회도 그렇고... 이런 정부의 사업들이 진흥도 아니고 간섭도 아니고, 결국 정부 정책을 강제 주입하는 역할만 남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진흥 발상 자체가 시대와 맞지 않는 옷이에요.
윤 DJ부터 MB정부까지 문화쪽에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는 슬로건을 제대로 찾지 못한 것에 비해 지난 정부가 ‘문화융성’이라는 타이틀을 걸었다는 것은 그나마 점수를 줄 만한 부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문화융성이 실체가 없는 것처럼 들리는 이유는 문화예술 분야의 각 분야에 대한 개별적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문화 또한 생산하는 사람들, 유통하는 사람들, 소비하는 사람들 세 주체가 있는데, 문화융성은 ‘생산자’ 측면만 주로 강조한 정책을 중심으로 하게 만드는 슬로건이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소비자,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에 대한 정책이 빠지게 된 것이 근본적으로 문제를 만드는 거 아닐까요.
조 문화융성이라는 단어가 왜 나왔을까도 역으로 추론하게 됩니다. 문화체육 쪽이 만만하니까 이번 최순실 게이트에 깊이 연관된 거잖아요. 처음부터 이용할 생각이 아니었더라도 결과적으로는... 국가가 문화를 주도하고 대대적으로 후원하는 주체가 되면서 또 문화라는 것이 금방 결과로 나오는 것이 없기 때문에, 없어도 되기 때문에 이용당한 것이죠.
윤 계량화되는 부분이 아니니까 숟가락을 넣었다 뺐다 해도 표시가 안 나니까요. 돈이 된다는 생각을 했었겠죠.
K.김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나 김대중 정부의 ‘신지식인’이나 다소 어색한 표현이긴 한데, 사실 그 실체는 지식재산, 지적재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자동차나 선박을 만들어 수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역수지의 최대 무기는 지적재산인 것으로 밝혀지고 있죠. 마음껏 개발하고 놀고 창작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을 창조경제로 이해했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가진 게 많이 없다보니 사람들이 가진 머리, 재능 같은 것을 통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 수출하고 우리의 재산을 만들어 내야 할 필요가 더 크죠.
J.김 먹고 마시고 노는 것에 정당한 가치를 부여하자는 것, 소프트웨어 중심의 사회가 되는 것 다 맞는 방향입니다. 최순실이 문화쪽에 손을 댄 것도 이 부분이 돈이 된다는 인식이 확산되었기 때문이겠죠.
윤 예전에 제가 신문사에 입사할 때만 해도 기자들이 제일 가고 싶어하는 부서가 정치부이고 그 다음이 경제부였어요. 문화부는 제일 꺼리던 곳이었는데, 제가 그만둘 때 쯤에는 그 위상이 많이 바뀌어 있었죠.
J.김 기회도 많고, 가치부여도 클 수 있는 곳이죠.
K.김 그런 동시에 가치측정 개념이 다른 곳입니다. 그림 하나의 가격이 천만원이었다가 바로 다음에 일억원이 된다 해도 별 문제제기가 안 되는 곳이죠.
J.김 제조업이라면 캔버스 1호가 천원이나 될까요? 캔버스 대신 금으로 판을 만들어도 백여만원이면 될 것 같은데, 박서보나 이우환이라면 천만원이 넘을 수도 있겠죠. 연금술을 넘는 가치를 만들어 내는 곳이 문화와 예술인 거죠.
윤 국민을 보호하는 것 외에 풍요롭고 행복하게 해 주고자 하는 정부의 의지, 그런 점에서 문화를 산업화시켜 재화를 생산하고자 하는 것은 이해하겠지만 간과하고 있는 것을 지적하고 싶어요. 길게 보아서 그 커뮤니티,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 역량을 제고하는 것의 중요성은 경제적인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봅니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 문화가 융성했던 시절은 세종 때 잠시, 그리고 영정조 때였고 한참 후 지금에서야 그런 시절을 만나게 된 셈입니다. 사람들이 여유가 되고 이제 누리고 창조할 때가 되어서죠. 실제로 주변국에 영향을 준 시기는 지금이 처음이 아닌가 싶어요. 누가 활짝 잘 열어주기만 하면 더 뻗어나갈 수 있습니다. 생산과 유통은 경쟁이 필요한 분야이므로 놓아두어야 그 경쟁력이 살아납니다. 경쟁을 잘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정부의 할 일입니다. 문화적 간접자본을 갖춰주는 것이죠.
조 미술을 국가가 간섭하고 주도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강점기 때가 나오죠. 당시 조선미술전람회를 한국인들은 총독부전람회 라고도 불렀지요. 이렇게 관이 주도해서 미술을 이끌었고, 또 개화라는 이름으로 많은 폭력적인 행위가 자행되었죠. 해방 후 조선미전은 대한민국미술전람회로 이어지는 등 관 주도의 정책이 해방 이후에도 이어졌습니다. 이후 제3공화국에서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것이어서, 문화는 정치적 역할을 하게 되었구요.
J.김 문화라는 것은 잉여력이 생기고 쌓여서 나오는 것이지 정부가 주도해서 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세공된 화려함은 고려에서, 재화가 집중된 지방토호들이 있을 때 더욱 화려하게 나타났죠. 조선에서는 물론 사상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경제적 집중이 덜하니 화려한 문화가 나오지 못합니다. 국가 시스템이 강제해서 훌륭한 문화 예술이 나올 수 있었다면 가장 강제력이 강했던 쿠바나 구 소련 등에서 나왔겠죠. 결과적으로는 지도층의 선명한 이념을 본받는 문화적 결과물은 사료적 가치 외에는 철저히 무시당하죠. 민족기록화 같은 경우처럼. 관료들이 만들어서 나간 제도들은 시장에서 반발과 비웃음을 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미 우리 내부의 역량이 커진 만큼 시장의 기능으로 조정되는 경우가 많아요. 관리와 지도도 그 내부에서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고, 정부는 인프라를 제대로 만들어주는 역할을 해야합니다.
윤 각종 진흥법들이 많은데 없앴으면 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생산자가 철저히 경쟁할 수 있고 유통의 룰을 공정하게 만들어주기만 하면 됩니다.
K.김 필요한 것은 사안이 터질 때마다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최상위법인 헌법이나 기본적인 법률들로 예술의 자유를 지키고 저작권을 보호하고 불공정 경쟁 안 하고 부당한 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공정한 거래를 통해 정당한 대가를 거둘 수 있다는 믿음이 있고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여 창작 욕구를 진작시켜야 합니다. 블랙리스트 대책이라면서 <예술가권익보장법>을 또 제정하겠다고 하는데, 헌법상, 국가공무원법상 당연하게 지켜야 할 것을 자신들이 위반해 놓고 수습책으로 또다시 특별법을 제정하겠다는 눈가리고 아웅식 발상을 한 셈이죠. 얼마 전 제정된 예술인 복지법과 겹치는 부분도 많습니다.
윤 불필요하고 공정하지 않은 법입니다.
K.김 정부는 스스로 예술가들에게 공정한 대우를 해주는 모범이 되어야 하는데, 아직도 정부 또는 지자체 사업에서 예술가나 학생들에게 공공디자인과 문화행사 등에 재능기부를 강요하고 무료임을 당연시 합니다. 이일 저일에 오라가라 시키고 또 예술가로서 제대로 대우해주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도라산 벽화 건이 있었죠. 도라산 역에 정부(통일부) 요청으로 한 예술가가 대규모 벽화 작업을 진행했는데, 애초에 벽화를 의뢰했던 정부(통일부)가 예술가의 동의 없이 무단으로 철거해 소송까지 간 사건이었죠. 바뀐 것은 정권뿐이었습니다. 예술의 가치나 수준 같은 것은 논외로 하고 내용을 가지고 정권이 바뀌면서 세금이 들어간 작품을 그것도 저작자의 인격권은 완전히 무시된 채 마음대로 철거하고 훼손해 버렸다는 것에서 예술에 대한 인식이 너무 다름을 느낍니다.
조 도라산 벽화는 작가에게 설명도 없이 공무원이 일방적으로 폐기한 것이죠.
J.김 정부 눈높이가 딱 그 정도죠. 작품이나 문화 인프라로 생각하기보다 거리의 페인트 무늬 정도로 생각하는 거죠.
K.김 정부의 창작 관련 사업에서의 계약서를 본 적이 있는데, 건설 하도급 용역 표준 계약서를 가져다 쓴 듯 내용이 삭막하기 이를 데 없었어요. 공사 마감 기일처럼 작품 완성일이 하루 넘을 때 마다 지체상금이 얼마고, 계약 조건을 위배했을 경우 위약금이 세 배고 등등.
조 문화재의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문화재 보존 수리 회사가 문을 닫은 경우를 본 적 있었는데, 이유를 여쭤보니, 작업을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많은 시간을 들여 꼼꼼히 해야 하는 용역이라 결국 위약금을 다 물고 문을 닫았다고 하시더군요.
K.김 공적자금이 들어간 경우 모든 저작권과 소유권이 국가에 귀속되도록 하고 있어요. 국내 작가들은 계약서를 잘 안 보시고, 보시더라도 딱히 이의제기를 못하는 상황인 듯합니다. 외국 작가들은 계약서의 내용에 민감하여 문구 하나하나도 살펴보고 수정요청을 하기도 합니다. 변호사나 에이전트가 맡아서 하든 작가가 직접 하든 작가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충분합니다. 계약서 보완 수정에 한 달씩 걸리기도 합니다. 예전에 한 정부 산하기관에서 외국 작가들에게 우리 정부 용약 계약서를 영어로 번역해서 보내줬더니 ‘이게 뭐냐’고 해서 전시가 통째로 무산될 위기에 처한 적도 있었어요.
윤 장래에 예술가가 될 학생들을 대상으로 법률교육을 하는 것도 정부에서 해야 할 인프라 사업 중 하나가 될 수 있겠네요.
K.김 예술인복지재단에서 그런 예술인 교육 사업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법률상담, 노무상담, 저작권 계약에 대한 교육사업 같은 것들 학교에 공문 보내서 특강 형태로 진행하는데, 시간이 짧은 데다 학부생들은 필요성을 잘 못 느끼는 듯합니다. 지적 재산도 다른 재산과 똑같다는 사실을 어릴 때부터 잘 교육해야 합니다. 서양과 달리 권리 의식이나 저작권 개념도 취약한데다 우리에게는 계약 문화가 잘 발달해 있지 않아서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대중문화 쪽도 마찬가지인데 유일하게 드라마 작가들은 스스로 잘 뭉쳐서 일방적으로 당하는 계약을 하지 않도록 하고 있죠. 그러고 보면 길드의 중요성도 생각하게 됩니다.
윤 이전에도 몇 번 이야기 나온 바이지만, 문화부가 직접 사업을 하려는 경향을 버렸으면 합니다. 예를 들어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경매데이터베이스 사이트를 만들었는데, 이런 일은 민간에서 하고 필요하면 일부 지원해 주는 것이 맞습니다. 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유망한 공예작가의 작품을 진흥원 직영의 전시장과 온라인샵에서 직접 판매하고 일반 화랑들보다 좋은 수익률을 보장해주는 이런 일들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민간의 경쟁력이나 자생력을 망가뜨리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조 연구재단의 예를 들여다보는 것도 참고가 될 만합니다. 저술, 번역, 논문 등 연구자들을 후원하고 잘 된 연구는 전체적으로 충분히 설명하는 기회를 갖고 확산사업을 합니다. 공정한 후원이 될 수 있는 것은 적절한 심사자 풀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율성을 인정하는 이러한 시스템 적용을 고려했으면 해요.
J.김 각자 자신의 이익에 따라 충분히 활동할 수 있게 해주면 됩니다. 제품의 안정성이나 권한이 필요해질 것이고 그를 위해 민간에서 필요한 시스템을 만들어나갈 겁니다. 금전거래가 수반되는 경우라면 기존의 거래에 적용되는 법을 준수하면 되는 거죠. 무슨 일이 터지기만 하면 대증요법으로 위원회 만들고 진흥법 만드는 뻘짓은 이제 그만 했으면 해요.
조 현재 있는 법률이나 제도도 검토하여 필요없거나 저해되는 것은 폐기해야 합니다. 영정이나 동상을 만드는 것도 제3공화국 때 만들어진 영정동상건립법을 따라야 하는데, 그에 따르면 역사 인물은 표준 영정 한 가지를 정해서 그를 따라야 합니다. 사실 세종대왕 얼굴을 누가 봤나요. 뭐가 맞다고 할 수 없는 것인데도 말이죠. 이러다보니 기존에 신사임당 표준영정이 있는데 오만원권에는 그걸 적용하지 못하고 다른 영정을 제작해 넣어 법을 지키지 못한 셈이 되었고, 유관순은 새로운 사진이 발견되면서 또 다른 영정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사실에 입각한 초라한 이순신보다는 현재의 근사한 갑옷의 이순신이 자긍심을 높이는 데는 더 나을 수도 있죠. 영정동상심의위원회 자체도 영정을 그리시는 분이 심의위원회에 포함되기도 하는 등 모순되는 점이 많습니다. 모든 이미지를 생산하는 것은 이미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 목적의 문제이지 하나로 규정할 수는 없죠. 결론적으로 시대에 맞지 않는 이상한 법들은 없애는 방향으로 논의를 해나갔으면 좋겠어요.
윤 입법취지가 좋은 법들이 많으니 독소조항 일부를 제외하면 개선, 발전될 가능성이 있죠. 저는 지난 번에도 얘기했든 당장 안 되더라도 국립박물관을 축소하는 문제를 우선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수준의 박물관이 ‘국립’이라는 이름으로 유지되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사실 이런 개선들은 이해 관계가 엇갈린 것들이 많아서 단기간 내에 이루기 불가능한 것도 압니다. 당장의 부작용을 고려하면서 천천히 개선해나가는 합리적 방법을 찾아내야 합니다.
K.김 두 가지 원칙을 지키면 될 것 같습니다. 첫째, 관 주도로 무얼 하겠다는 생각을 버리자. 둘째, 단기적 성과를 바라면 안 된다는 것. 박근혜 정부가 시작되고 나서 문화융성사업 10대 과제를 하나씩 X표 해가면서 해치우는 느낌인데, 미술감정인 양성사업이나 카탈로그레조네 사업 같은 것을 단기일 내에 해결할 수는 없는 것이죠. 물론 정책 수행자들은 이 사업 결과물을 당장 디스플레이하고 싶겠지만 참아야 합니다. 지원사업을 시작했다는 데에 가치를 두었으면 좋겠어요. 이제 시작이니 이제 민간에 맡겨놓고 연구하고 싶어하는 연구자들은 성과에 따라 지원금을 주는 방향이면 좋겠습니다. 문화 선진국이 그렇듯 지원은 하되 거리를 두고 간섭하지 않는 ‘팔걸이 원칙’을 지키도록. 사실 문화예술 분야는 특히 비인기 분야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부분이 많으니 지원은 반드시 필요한데, 지원해 줬으니 당장 성과 내라고 하면 안 됩니다. 조급증을 버리는 게 중요합니다.
조 책임회피용으로 설립된 위원회나 제정된 법률은 없애는 방향으로 가야 하고, 각 분야에서 훌륭한 전문가들이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J.김 근 3천년 이내 가장 잘 살고 잉여력이 많이 쌓여 있는 시기입니다. 사이즈 작고 인력 풀 작고 그래서 뭘 하든 반관반민이 되는 구조이긴 하지만 정부에서 리드해서 ‘저 산으로 가자’ 하는 시기는 아니라고 봅니다. 민간의 역량을 키워야죠.
조 문화의 자생성을 키우는 일, 그리고 국민의 세금 후원 등은 당연한데, 관리 감독, 지시하는 역할을 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문화 예술에 대한 청사진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나의 정부, 5년 이내에, 가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으로.
K.김 새로운 법을 자꾸 만들지 말고, 국가공무원으로서 중립의 의무 지키고, 헌법에 나와 있는 표현의 자유, 예술의 자유 등 기본권을 수호하고... 무엇보다 공무원 스스로 자기 규율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수장이 바뀌었다고 해서 갑자기 헌법 안 지켜도 되나요. 예술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다짐은 좋지만 그걸 지키자고 법을 다시 만드는 것은 우스운 일입니다. 헌법을 지키지 못한 것을 반성하면 되죠. 또 공정한 자유경쟁을 할 수 있게 도와야 합니다. 작가들 얘기를 들어보면 공모전에 출품하면 창작물을 뺏길 수 있다는 공포가 대단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공모전에 작품을 내면 저작권, 소유권 다 뺏기고, 수상에서 제외된 출품작 아이디어 베께서 주최측이 활용한다는 피해의식이 엄청납니다. 창작하는 순간 빼앗길 것 같은 공포감이 있다면 창작의지를 저하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공정한 룰을 만드는 것, 창작하면 보호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게 중요합니다. 관행 등을 개선하고 보호해 주고, 예술의 특수성을 반영한 계약서를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계약서는 약관 같은 동의서가 아니라 동등한 당사자들이 서로 협의하여 조건을 맞춰가는 합의의 결과물입니다. 그 문화 만들어가는 데 정부가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창작자들이 가진 지식지산을 유체 재산과 똑같은 가치로 인정해주어야 합니다.
J.김 누가 새 정부의 키를 쥐게 될지 모르겠지만. 새 정부는 부동산, 건물 등의 하드웨어 집착증을 버리고, 위인설관爲人設官이 얼기설기 계속되고 옥상옥의 진흥법들 군더더기 장식들을 거둬내야 합니다. 내부를 응시해야 할 때입니다. 지금 우리 문화예술에 대한 생산과 소비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술인복지법보다는 실질적 지원 효과 있는 대책을 더 고민해 봐야 합니다. 정치인들 공무원들 당장 자기 이력서 채우는 뒷배경으로만 문화예술 정책을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윤 문화와 예술이 어떤 의미인지 되새기는 기회가 되기도 했으면서 각론에 들어서 어느 정도 방향은 제시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각 후보들이 정책을 발표할 텐데, 우리가 미술계에서만큼은 워치독이 되어서 지켜보겠습니다. 공약을 더 생각하고 신경써서 내고 다듬기를 당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