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3. 1
정준모, 최열, 조은정, 김진녕, 캐슬린 E. 김, 윤철규
윤철규(이하 윤) 삼일절, 휴일인데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날이고 또 우리나라가 혼란의 와중이니 정신차리고 제대로 길을 가도록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주제는 작년 하반기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입법예고한 ‘미술품 유통에 관한 법률안’에 대한 것이어서, 특별히 예술과 법 분야에서 도움 말씀을 주실 캐슬린 김 변호사께서 와 주셨습니다. 이 법안의 내용, 만들어지게 된 배경이나 취지 등을 잘 알고 계신 정 선생께서 정리를 좀 해주시죠.
정준모(이하 정) 사실 근래에 나온 미술품 유통관련 법안을 보고 매우 놀랐습니다. 이런 법률의 제정을 처음 제안했던 때는 지금으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속칭 ‘미술품양도소득세’ 도입이 논의되면서 미술계에서는 공공재이자 문화적 재화인 미술품을 경제적 관점에서만 다루려는 조세당국과 도입여부를 다투는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당시 정부는 미술시장을 마치 세금포탈이나 음성자본이 흘러드는 그런 곳으로 인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술시장의 신뢰성, 투명도를 높여보자는 생각에서 거론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저를 포함한 몇몇 사람들이 미술품과 문화재 유통관리에 대해 법률화하자는 제안을 내놓았었는데 당시에는 유야무야되고 관심도 두지 않더니 근래의 위작사건 등등이 불거지면서 재론되기 시작하더니 그때 취지와는 엄청나게 다른 차이가 많은 법률안이 나와서 매우 놀랐습니다.
사실 ‘미술시장’이라고 하면 워낙 범주가 넓습니다. 하지만 현재 화랑협회회원 화랑 등 나름대로 공신력을 갖춘 화랑에서 그림이 미술품이 거래되는 경우 위작이 거래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설혹 있었다 하더라도 사고 판 거래당사자들끼리 합의에 의해 반환되고 보상해주고하면서 스스로 정리가 되지요. 이런 것을 자정능력이라면 이라고 할 텐데. 문제는 이렇듯 제도권 내에서 거래되는 경우 외에, 소위 나까마나 핸드폰 화랑이라고 하는 제도권 밖의 시장에서 거래되거나 황학동 풍물시장 같은 곳에서 미술품이라고 하는 것들이 거래되고 경우 진위 문제 등이 불거지면 이것이 미술시장 전체의 신뢰와 결부되어 미술계 전체가 욕을 먹고 범죄집단취급을 당하고 마치 마피아처럼 미술시장에서 암약을 하는 조직이 있는 것처럼 오해가 생깁니다. 사실 이러한 제도권 밖의 거래로 인한 말썽은 사실 그림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된 시장이 아닌 암시장에서 물건을 사는 것과 같은 이친데 이들이 산 것이 그 가치와 진위도 분명하지 않은 그림이라는 형식의 물건이라는 점에서 미술계의 일로 오인되고 미술계 전체가 욕을먹는 상황이 되다보니까.
미술품 거래를 좀 더 투명하게 하고 제도권으로 최대한 많이 끌어들여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관련법 제정을 생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주요내용으로는 화랑을 등록, 허가제로 하고 그 조건으로서 그림을 거래할 때 매매계약서와 보증서, 소장이력서(Provenance) 등등의 구비서류를 갖추도록 하자는 것이 주 내용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한 작품이 거래될 때 매매와 관련된 기록이 계속 따라다닐 수 있고, 이것이 진위 문제가 생겼을 때 그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죠. 이력서 등을 발행하기 위해서는 대상작품에 대한 조사연구, 정리, 기록하는 일이 필요하고, 부동산 중개사처럼 이를 수행할 미술품 및 문화재 중개사제도를 도입해서 화랑이나 문화재상을 운영하는 운영자가 그것을 따거나 자격을 갖춘 사람을 고용하도록 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런 규정에 대해 논의가 계속되던 와중에, 근래 들어 커다란 미술품 진위 문제로 인한 싸움이 알려지고 사회적으로 이슈화되면서 이를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미술품 유통에 관한 법률안’을 들고 나왔는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오히려 미술시장의 투명성과 선진화관련내용이 아니라 미술품 감정에 올인 한 듯한 느낌의 유통법이 아니라 감정법이 되어버린 느낌입니다.
입법예고된 ‘미술품 유통에 관한 법률안’ 요지
1. 화랑업을 하려면 문화체육관광부에 등록하고 지원할 미술작가 명단을 등록해야 한다.
결격사유가 생기면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영업정지를 명할 수 있다.
2. 경매업은 조건을 갖춘 업체에 한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허가가 필요하다.
3. 기타 미술품 판매업을 하고자 하면 문화체육관광부에 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결격사유가 생기면 장관이 신고를 말소하거나 영업정지를 명할 수 있다.
4. 이들 유통업자들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계약서와 미술품 보증서를 작성하여 구매자에게 교부하여야 한다.(일정 가격 이상 의무)
5. 유통업자는 미술품 보증서에 갈음하여 미술품 감정업 등록을 한 자가 작성한 미술품 감정서를 교부할 수 있다.
6.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미술품유통통합전산망을 운영하고 유통업자가 거래한 미술품에 관한 정보를 게재하도록 지원할 수 있다. 구축, 운영, 가입 등은 문화체육관광부령으로 정한다.
7. 미술품 유통업자는 이해관계 충돌을 방지하고 유통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협약체결에 성실히 임해야 하고, 이를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산하에 ‘미술시장상생위윈회’를 둔다.
8. 위작 판명시 유통업자가 보증 책임을 부인하거나 제한하는 규정은 무효이다.
9. 유통업자가 위작 미술품을 유통하여 작가 또는 구매자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고의 또는 과실 없음을 입증하지 못하면 책임을 면할 수 없다.
10. 미술품 감정업을 하고자 하는 자는 문화체육관광부장관에게 등록하여야 한다. 결격사유에는 등록 취소 및 영업정지를 명할 수 있다.
11. 감정업자가 고의 또는 과실로 허위로 진위감정을 하거나 허위 사실을 감정 서류에 기록하여 제3자에게 손해를 발생하게 했을 때는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12. 미술품의 가치 및 진위 판정을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산하에 ‘국립미술품감정연구원’을 설립한다.
13.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미술품 유통 및 감정 지원업무를 전담하는 기관을 지정할 수 있다. 결격사유가 생기면 지정 취소 및 업무 정지할 수 있다.
‘법률’로 문제 해결을 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
윤 거래할 때 계약서를 갖춰야 한다거나 보증서를 마련하는 것이나 이런 일들은 사실 그 업계의 크레딧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일들이잖아요? 사실 이런 것들은 화랑협회에서 기준안을 만들어 권장사항 정도로 진행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이는데, 이를 좀 무리하게 입법하고자 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정 화랑협회는 사실 80년대부터 자체에 기준이 될 감정서 및 표준계약서 양식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걸 사용하는 화랑도 있고 쓰지 않는 곳도 있고... 미술품 거래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은 대개 화랑협회에 소속된 곳이 아니라 답십리, 황학동, 여타 이런저런 작은 동네의 거래에서 생기는 겁니다. 그래서 그곳에서도 미술품이나 문화재를 중계 또는 매매하려면 이런 서류를 필수적으로 갖추라는 의도였지요.
윤 콩나물이나 두부 같으면 먹는 사람이 많고 불합리한 거래를 공권력으로 제한하는 것이 이해되지만, 사실 미술품 거래는 매일 일어나는 일도 아니고 대부분의 사람들과 관계도 없고 한데 자율에 맡기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정 저도 기본적으로는 자율로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무슨 일을 하든 미술시장이 불투명하다는 인상 때문에 일이 진행되지 못하거나 억울한 이야기를 많이 듣게 돼요. 불투명한 거래 관행을 줄이고 비 제도권 미술거래를 제도권으로 끌어들이는 일이 필요하다고 판단되어 중개사 얘기도 나오고, 그러다보니 국가 공인의 미술품 중개사 자격증도 포함하는 법률안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죠.
조은정(이하 조) 부동산을 예로 들면 예전에 동네 할아버지들의 복덕방에서 여러 유형으로 거래되던 것이 중개인 자격증제도가 강화되면서 몇 십년 만에 전문적인 부동산중개사무소로 변화되었죠. 손자에게 시험보게 하고 하는 혼란들도 많았지만 이제 중개인 자격증 제도는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제 부동산 시장이 워낙 커져서 미국처럼 법률가들도 부동산 거래에 발을 들여놓겠다고 하는 등 서로 생존권을 위한 싸움이 일기도 하죠. 어쨌든 여전히 부동산이 거래되는 다양한 방식들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법 체제 안에서 자세하게 규제하고 다루는 것은 어렵습니다. 부동산도 그러한데 하물며 작디 작은 미술시장이라면... 세금 제도 관련된 것이 아니라면 그렇게까지 자세하게 규제하고자 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음성적인 거래에서 문제가 많이 일어난다고는 하지만 결국 몇십만원짜리 거래가 사회적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유명 작가의 큰 단위 거래가 이슈가 되는 것이기도 하구요.
정 생각보다 핸드폰 화랑이라고들 하는, 인사동 또는 황학동이나 삼각지 등등의 나까마 거래에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중섭, 박수근 등의 고가에 거래되는 작가들의 그림을 몇 십만원 몇 백만원이라는 터무니없이 싼 가격에 사놓고는, 문제가 생기면 우르르 미술계와 미술시장과 관련된 사람들이 방조자나 협력자인 것처럼 몰아가는 것이 문제지요.
조 그렇다고 해도 너무 많은 규제를 담은 법률안으로 이를 고치고자 하는 것은 합당해 보이지 않습니다.
정 저도 지금 나온 문화부의 법안은 지나치게 많은 규제를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미술계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 즉 불량하고 음흉하고 뭔가 깨끗하지 못한 집단이라는 시선을 스스로 해결하고자 음지에서 거래되는 것들을 양지로 끌어올리려 했던 것인데, 결과적 현재의 법안은 이런 처음의 취지와 생각과는 거리가 먼 미술시장이나 미술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무언가 쫓기듯 법을 위한 법을 만들었다는 생각입니다.
윤 문화부에서 법률안 제정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위작문제가 사회적으로 불거지니 어떻게든 유통에 관해 법률적인 제재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거고, 그럼에도 허점이 많았던 거라고 보면 되겠네요.
캐슬린 김(이하 K.김) 초기 법률적 규제 필요성 얘기에 정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신 의견이 있었고, 이에 더해서 화랑과 경매사의 이해관계 문제(즉 한국처럼 작은 시장에서 경매회사가 경매업과 화랑업을 겸업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1차 시장과 2차 시장의 혼재에 관한 문제)때문에 겸업 금지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초기에 미술시장 문제에 대해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의견들은 있었지만 법을 만들자는 얘기가 바로 나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문화부에서 뉴욕주의 문화예술법 등을 참고하신 듯한데 지금의 법안은 뉴욕 문화예술법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저는 계속해서 법안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쪽인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질서를 근간으로하는 국가에서 정부가 시장질서 및 유통에 일일이 직접적 개입을 한다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현재 정부가 유통에 개입해야 하는 사안은 국가안전보장과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한 경우, 즉 식품 및 의약품 등과 같이 국민의 건강과 안전에 관련되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거나 토지 등 모든 국민과 직접 관련된 경우에 국한되어야 합니다. 이때에도 본질적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여서는 안 됩니다. 이 외에는 유통에 개입하지 않습니다. 한국 미술품 시장은 콜렉터가 1천여명 정도, 그 중 거래가 자주 이루어지는 분들은 오백 명이나 될까요? 큰 거래를 하는 사람들은 백 명도 채 되지 않는 작은 시장인데 정부가 개입하려 하는 것은 위헌적이고 굉장히 엉뚱한 발상입니다. 금이나 다이아몬드, 주류 등도 가짜가 판매되지만 개입하지 않습니다. 미술시장보다 훨씬 고가의 큰 시장인데도 말입니다. 무언가 지원하고자 하는 프로젝트가 있으면 정부가 철학을 가지고 정책으로 지원하면 될 것을, 꼭 법적 근거를 만들려고 하는 좋지 않은 습관이 있어요. 한국의 공무원 제도 특성상 본인들이 어쩔 수 없이 무엇인가 잘못됐을 때 큰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되지 않으려다 보니 생긴 경향이 아닐까 싶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미술시장과 유통의 문제에 대한 주요 쟁점은 ‘(경매회사) 겸업 금지’였는데 이우환, 천경자 위작 논란이 전개되면서 상황이 급변되었습니다. 사실 두 위작 사건들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성도 없는데 말이죠. 이런 혼란에는 언론의 책임도 큽니다. 마치 두 개의 사건이 미술시장 전체에 만연된 것처럼 보도하고, 한국미술계는 위작을 유통시키고, 탈세와 뇌물용으로 예술품을 사고 파는 음흉한 집단으로 몰고갑니다. 위작이든 탈세든 뇌물이든 위법적 행위를 하는 측은 분명히 존재합니다만, 하나의 사건이 터질 때마다 마치 미술계 전체에 대한 문제인 것처럼 자극적인 제목과 내용의 언론보도들이 반복되다보니 평소 미술에 관심도 없던 사람들이 ‘다 도둑놈들’이니 하는 댓글을 달게 만들죠.
이 법이 쓸모가 없는 것이, 문제가 되는 사건을 처벌하거나 규제하는 것은 다 현행법으로 커버가 됩니다. 위작이 나오는 것이 마치 처벌 기준이 없어서 처벌하지 못하는 것처럼 생각하게 만들지만, 다른 분야의 사기 사건과 마찬가지로 처벌할 수 있죠.
조 위작범이 사실 특별히 다뤄야 하는 사회 교란 악질범은 아니잖아요ㅎㅎ.
윤 미술품중개사 자격증이 필요하다면 화랑협회 같은 곳에서 미술품중개사 자격증을 발행하면 별 문제 없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정 세상이 미술계와 미술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이 오죽 답답하면 법 만들 생각까지 했겠습니까. 우리나라 자격증 제도 중에서 사설 자격증은 별로 권위가 없어요. 그런데 국가 자격증제도를 만들면 사실상 협회에 그 운영을 위임해 주기 때문에 큰 차이가 없더라도 권위가 생기죠. 사실 국가자격증도 관련단체나 기관에 위임해서 운영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윤 법을 만들고자 하기 전에 협회에 이런저런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책을 요청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돼요. 정말 소수의 사람들이 관여하게 될 일이고.
K.김 상품 하나를 사더라도 소비자들은 브랜드 가치와 품질, 구매처의 신뢰도 등을 따져보고 구매를 합니다. 하물며 고가의 예술품은 더더욱 그래야 하지요. 진품보증서나 프로비넌스같은 서류가 구비되어 있는지, 판매자는 합법적이고 정상적인 영업을 하는 사람인지, 위작일 가능성은 없는지 꼼꼼히 따져 보고 구매하여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믿을 만하지 못한 상황에서 미술품이 거래가 되고 그게 문제가 되었을 때는 기본적으로 구매자 역시 책임지는 것이 맞습니다.
김진녕(이하 J.김) 어떤 계기로 일반인이 미술품을 샀는데 손해를 봤다, 그럴 위험이 있는 경우에 제도권으로 어떻게 해서든 끌어들여 법의 우산을 쓸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자 고려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할 방법 중 하나이긴 합니다. 부동산 거래와 마찬가지로요.
정 쉽게 얘기하면 나까마도 자격증 만들어주자는 얘기죠. 그래서 세금내고 정당하게 떳떳하게 벌어먹고 살아라. 뭐 그런.
K.김 자격증 제도를 만든다고 해도, 자격증 없는 거래는 생기게 마련입니다.
정 물론 그렇지요. 하지만 법 또는 공식적인 제도 하에서 거래되었는데도 문제가 생기면 책임 소재가 분명해지니까요. 그 외의 것은 미술계의 책임이라고 할 수 없지요. 믿을 만한 시장을 두고 암시장에서 산 물건에 대해 A/S를 안 해 준다고 할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암시장이나 비제도권 시장에서 사인 간에 이루어진 거래에 대해 미술계가 미술시장이 그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은 문제가 많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외국화랑들이 들어오고 외국의 컬렉터들과의 거래도 늘어나면서 미술품 거래의 관행이 글로벌스탠다드에 적응해가면서 미술계가 자발적으로 개선하고 있고, 새로운 시스템들을 도입하고 있는 상황인데, 언론은 화랑들이 거래를 조작하는 집단인 것처럼 보도하고 세상은 이것을 그대로 믿는 미술계와 미술시장에 대한 인식의 정도가 너무 낮다는 것이 사실 답답했지요.
K.김 처음 문제와 법률안을 제안하셨을 때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느리긴 하지만 어쨌든 국내 미술품의 글로벌 유통이 많아지다보니 화랑들이 자성한 점도 있구요. 위작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미술계 전체가 들썩들썩 하고 사회의 관심을 받는 다는 것은, 어찌보면 미술시장이 그만큼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규모가 크고 오래된 미술시장이 미국과 유럽에서 위작이 그만큼 많이 나오고 있잖아요. 재산적 가치가 있는 작품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는 것은 (우리 예술이 발전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시그널이기도 합니다. 토지거래든 신기술이든 어떤 분야든 돈이 모이는 곳에 사기가 없는 곳은 없습니다. 가치가 있기 때문에 사기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죠. 다만, 다른 긍정적인 모습은 잘 보여주지 않으면서 무슨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미술계와 미술시장 전반적인 분위기를 사기꾼들의 모임처럼 몰아가는 언론과 기자들이 좀 더 애정을 가지고 진지하게 미술계를 바라보고 보도하는 것도 중요해 보입니다.
정부가 미술품 감정을 지휘한다?
J.김 정부가 나서면 표준계약서 정도만 제안하고 계도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법안에 대한 반대 의견을 살펴보니, 작품 오인에 대한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부분도 큰 것 같습니다.
K.김 감정협회 등에서 그런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데, 일부 수정해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이 법안은 위헌적이고 (특히 감정협회 입장에서는) 위험한 내용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통과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정 중요한 문제 중 하나가 작품 진위를 감정하는 것을 국가가 국립감정평가원을 만들어 해결하겠다고 한 발상입니다. 중요한 이슈는 빠지고 이렇게 되니, 유통법이 아니라 감정법이라고 해야 할 만큼 이 법안이 더 우스꽝스럽게 되어버렸습니다. 중개사제도를 만들고 제도권 밖의 거래를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고자 했던 처음의 목적이 사라지고 말이죠.
윤 그리고 미술품 유통법 앞에 ‘근현대’라고 밝히든지 해야지, 옛날 미술품들은 다루지 않는 거잖아요. 그 부분도 잘못됐네요. 조선시대 회화나 고려청자 파는 것은 이 법으로 다루지 못하는 거잖아요?
조 개인이 가지고 있는 옛날 물건들을 열심히 노력해서 문화재 보물로 만든 다음에 높은 가격으로 거래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쪽도 상당히 문제가 많이 있죠.
정 처음 시작할 때는 ‘미술품 및 문화재’를 대상으로 시작한 것이었는데, 문화재는 또 문화재청이 따로 소관하고 있다 보니 분리되어 이 법에서는 빠져있습니다. 고려불화가 미술품이냐 문화재냐 또 같은 작품이 문화재매매업으로 등록된 골동상에서 거래되었느냐 화랑에서 거래되었느냐에 따라 법적용이 달라집니다. 사실 문화재와 미술품은 한 뿌리나 마찬가지인데 그것을 매매하고 유통하는 것을 관장하는 정부부처가 각기 다르다고 해서 이를 별도로 취급하고 각기 다른 법률아래 둔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윤 문제되는 것 중에 경매회사의 화랑 겸업금지 부분도 법률안까지 가지 않아도 행정명령 등으로 얼마든지 조정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국내에 돈 번다하는 경매회사라면 두엇 밖에 안 되는데, 국회 동원하여 입법한다는 거 웃기는 일입니다.
J.김 분야마다 따로 법을 만드는 것은 어불성설이죠. 작품이력서 표준계약서 두 가지 정도만 정부에서 제안하고, 감정에 대한 문제는 협회에서 따로 얘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국가에서 미술시장을 통제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을 뿐
정 한국화랑협회 자체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허가받은 법인체입니다. 지도 권장사항으로 문화부에서 공문 보내서 해결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정부가 할 일은 제도권 밖의 거래, 유통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중점을 두어야 할 터인데. 평소에 일을 토의하고 협조하면서 잘 해왔으면 불거지지 않을 문제들이 커져버린 면이 있고, 그래서 가래로 막을 일을 불도저로 막으려 하게 된 거죠. 현재 가지고 있는 권한이나 수단으로도 충분하게 미술시장을 지도감독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K.김 그렇다는 것은 법을 만들어도 해결이 안 될 수도 있다는 방증이죠.
최열(이하 최) 10년 전 최초 법안이 만들어지던 때의 취지를 함께 생각해서 혼란스러운데, 지금의 상황과 법안만 들여다보면, 이 법안의 기본적 목적이 국민의 문화생활과 미술시장의 발전을 위한 것이라면 그 목적에 맞는지만을 따져 보면 됩니다. 국가 정책으로 할 수 있는 일들 예를 들어 세금제도의 개선이라든가 지원책이라든가, 그런 부분을 따져보고 법안이 필요하면 제정하면 되죠. 다시 말해 기업을 지원한다는 의도로 제정하는 법은 세제혜택이라든지 규제완화 쪽이 핵심이거든요. 그렇다면 미술시장 활성화법의 핵심은 바로 그 혜택, 규제 완화여야 한단 말입니다. 표준계약서 같은 제도도 중요하겠지만 어떻게 유통이 활발히 진행되고 한국 미술이 발전할 수 있도록 지지와 후원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중요한데, 이 법안을 살펴보면 그런 부분 언급은 전혀 없고 처음부터 끝까지 문화체육관광부가 모든 것을 통제하겠다는 법일 뿐입니다. 독재 정권도 이렇게까지 법안으로 통제하는 일을 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저번 모임에서 국립미술관 법인화법에서도 그랬는데, 여기는 더 심합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문화체육관광부령’으로 등등의 말이 한 페이지에 대여섯번씩 나옵니다. 문화부 관료들이 뭐든지 자기들 놀이터를 만들려고 하다 못해 미술 시장을 가지고도 자기네들 맘대로 하겠다는 것밖에 안 돼요. 애매모호한 거는 문화체육관광부 시행령으로 해결하겠다고 하고 나중에 자기네 맘대로 하도록 깔아두고... 특히 미술시장 활성화법안에다가 뚱딴지같이 국가미술감정원이라는 반민간, 반시장 기관을 끼워넣었죠. 그런 걸 설립해서 문화관광부가 미술품 감정까지 좌지우지하겠다는 건 참으로 경이로운 상상력입니다. 감정을 유통이라는 이름 아래 국가가 주도하겠다고 하고 자기 맘대로 화랑들, 시장을 마음대로 주물럭거리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어요.
J.김 가치사슬의 핵심에 공권력이 최단시간에 최단경로로 개입할 수 있는 길을 제도화하겠다는 것이지요.
최 매번 문화부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데, 문화부 관료들의 대오각성이 필요합니다. 다시는 이런 식의 발상이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그야말로 겸허하게 지원하는 심부름꾼의 자세가 필요하지요.
조 급작스런 미술시장 발전 때문에 구매자 보호 조치라든가 하는 전례가 없었고, 해결책을 급히 만들다보니 생기는 문제였던 듯합니다.
K.김 그러한 상황에서도 ‘대책’이 필요할 뿐이지 ‘입법’이 필요한 건 아니었습니다.
조 그 상황을 문제 삼아 한 쪽에서 권력 강화의 핑계, 수단으로 삼아 법안을 만들게 된 것이 가장 큰 문제네요. 미술시장 내에서 화랑협회 등의 집단이 더 다양하게 등장하고 자정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무조건적인 규제가 앞서기 전에.
정 다시 말하지만,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이런 법안을 생각하고 제안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미술계에 몸담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예비 범죄자 취급을 받는 경우가 많았아요. 이런 사회적 인식 때문에, 미술관의 발전을 위해 미술품 기증에 세제 혜택을 주자는 주장을 하고 미술품으로 새금을 대납할 수 있도록 하고자 정부당국에 제안하고 협의를 할 때도 ‘미술계가 불투명한데 세제혜택까지’ 라는 식의 태도로 접근해와 어려움이 많았고 지금도 이런 주장이 수용되지 않고 있는 가장 큰 원인입니다. 그래서 국민일반과 조세당국자 그리고 국회의원등등이 그런 오해를 풀고 미술계의 발전을 위해 어떻게 하면 그런 오해가 풀릴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오해를 풀어 미술품 기증이나 물납 등의 제도를 도입해 보자는 취지에서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시스템을 갖추자는 의미에서 법안을 주장하게 된 거죠.
투명한 거래, 작품 기부에 세제 혜택-한국 미술 발전을 위한 캠페인
K.김 미술계에 깊이 몸담고 계셔서 그런 문제를 크게 느끼시는 것은 이해됩니다. 하지만 여론이라는 것은 다른 분야에도 비슷하게 적용될 때가 많아요. 검찰 다 나쁜 놈들, 변호사 다 도둑놈들(웃음).... 오해는 안타깝지만 법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계속 주장하는 바는 바로 시장의 자정기능에 기대야 한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어렵다면 외부 충격과 생존을 위한 경쟁을 통해서 해결되야 할 것입니다. 마침 한국 미술이 해외로도 진출하기 시작하고, 해외 갤러리도 한국 시장에 들어오고, 국제아트페어는 갈수록 늘어가는 추세입니다. 우리 화랑들도 선진 미술시장과 경쟁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고 변화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떤 작가의 유사한 작품을 국내와 해외 유명 갤러리에서 비슷한 가격에 살 수 있다면 더 신뢰할 수 있는 갤러리에서 사겠죠. 가격 차이가 나는데 리스크를 감당하더라도 저렴한 곳에서 사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컬렉터의 선택이겠구요. 지금은 예전과 많이 달라져서 국내의 화랑들도 서류와 보증의 필요성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물건을 팔기 위해서라도 바뀌게 마련이죠. 계약은 당사자간의 거래이고 정부 개입은 불가하며 다만 가이드라인 정도는 제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계약서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내용, 즉 저작권이나 저작인격권, 정보공개의무, 정산 시기, 회계, 운송 및 보험, 책임 소재 등등의 사항을 넣도록 홍보, 교육하구요.
최 예전 80년대에 화랑에서 일할 때를 돌이켜 생각해 보면, 계약서가 상호간에 이익이 되도록 해야 하는데 화랑에서 작가들과 작성하는 계약서의 경우 아무래도 화랑 측에 유리하게 작성하게 마련이죠. 작가는 불리한 계약이라고 하더라도 계약 자체가 반가워서 그에 따르게 되구요. 자본주의에서 당연한 시장논리이지만, 어떤 허용치를 넘어설 때는 국가가 개입해야할 필요는 있겠지요.
K.김 그 때문에 문화부가 나서서 창작자 입장에서의 표준계약서를 만들기 시작한 겁니다. 협상과 계약이라는 것은 사실 대등한 지위에서 하는 것이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하고 서면계약 문화가 부재하고, 불공정 관행이 횡행하다 보니 최소한의 기준이나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협의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입니다.
J.김 부동산거래의 경우에는 등기부등본같이 부동산에 딸려 있는 레퍼런스가 있잖아요. 미술품도 어떤 근거 없이 작품 실물 만으로 판단하는 것보다 거래이력서라든가 보증서 등이 정착되어 작품과 함께 따라다닐 수 있도록 사는 사람도 계약서와 함께 그런 레퍼런스를 요구하고 제도가 정착이 되면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듯합니다.
정 관행이 되어가고 있는 과정이죠. 미술시장이 오래 발전 되어 온 프랑스 등의 나라도 몇 백년간 다듬어져 온 것이 관행으로 자리잡은 것이죠. 선진화라는 미명하에 무리하지 않고 순리에 맡기는 게 좋겠습니다.
K.김 또 하나의 문제는 안목 감정을 하는 감정인에게 손해배상의 책임을 법안에 명시하고, 여기에 대해 (진작이라는) 입증 책임을 묻는다는 것입니다. 법원에서 민사상 해결하여야 할 일을 특별법으로 규정하는 것도 문제고, 입증 책임을 안목 감정인에게 묻는다는 것은 ‘안목감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정 법안을 작성한 측에서 미술품의 진위 감정, 시가 감정과 미술시장의 생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듯합니다.
최 유통에 관한 법이 필요 있다 없다를 넘어서서 현재의 이 법안은 없어져야 할 쓰레기입니다. 다시 주장하지만 유통 투명화와 활성화를 위한 방안을, 법이 필요하다면 법 정신으로 돌아가 새로 완벽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유통 시장에 대해 정부가 어떻게 기여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는, 겸손하고 심부름꾼 같은 자세로 임했으면 해요.
정 문화부 측에서 미술품 기증에 대해 세제혜택 주는 제도를 도입하려 하는 등 많이 노력하고는 있습니다. 그런데 미술계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적 분위기를 이겨내지 못합니다.
J.김 거래 관행이 투명하게 제대로 정착되도록 하는 게 중요하고, 진위, 가격 감정 등에 신뢰성이 형성되도록 하는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이 확산되도록 정부가 도와줄 수 있지만, 연극 대본에 지문으로 지시하듯이 거래 고리마다 정부가 개입하는 방식은 아니어야겠죠.
조 미술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말하자면 치정사건 같은 스캔들일 뿐일 수도 있습니다.
윤 법안이 답이 아니라면 어떤 대안으로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를 중심으로 한 마디씩 부탁드립니다.
정 우선, “모든 화랑들이 그림 거래에 따라다닐 서류들을 제도화하자. 화랑협회에서 앞장서자. 화랑은 신고제로 하자.”
윤 문화부에서 “미술품을 살 때에는 계약서와 보증서를 확인하세요”라는 홍보, 캠페인을 해 주었으면 좋겠네요.
K.김 시장 발전을 위해서라도 “기부금 세제 해택 캠페인”과 “투명한 미술품 거래 캠페인”을 벌이는 것이 좋겠습니다. 국회 법사위에서 미술계에 대한 안좋은 인식 때문에 세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입법 로비 등을 통해서라도 왜 그러한 법안이 필요한지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윤 금융감독원에서 보이스피싱 캠페인하듯이 문화부에서도...
K.김 전 국민에 광고할 필요도 없을 듯해요. 각 갤러리에 비치하거나 미술잡지 광고 정도여도 충분합니다.
J.김 도자, 공예나 미술관련 페어에서 작은 접시나 소품을 살 때도 보증서가 딸려갈 수 있도록 계도했으면 좋겠어요.
조 맞아요. 페스티벌 등에 가서 소품을 종종 사게 되는데, 작가의 간단한 보증서라도 함께 받을 수 있다면 아주 좋을 것 같습니다.
정 입법과정에 필요한 비용으로 그림을 사고파는 요령,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서류 등을 홍보하는 소책자를 만들 수도 있겠죠.
K.김 지방아트페어마다 부스하나 만들어서 저작권 교육도 하고, 작가와 구매자 모두에게 제도권에서 매매 행위가 일어나도록 계도해야 합니다. 계약서나 보증서가 없이 작품을 사는 것은 뭔가 찜찜하고 불안하도록 말이죠.
윤 그런 시스템이 지속되면 분명 학습효과가 있습니다.
K.김 보증서가 없으면 2차 시장으로 넘어오지 못하게 되고, 보호받지 못하면 제도권 밖의 거래는 저절로 줄어들 겁니다.
정 지금도 많이 나아진 상태죠. 관행화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문제니까.
조 자유경쟁 체제에서 유통에 관해 법으로 규제할 만한 일이 아닌 것은 명확해진 듯합니다. 협회 등에서 할 일이니 미술 시장 내에서 좀더 자신들의 권익 신장을 위해서라도 기초에 충실하셔야 할 듯합니다. 홍보를 강화하고 판매 투명성을 제고하시길 바랍니다.
J.김 문화의 정수를 꽃피우자는 취지로 많은 지원이 따르게 되는데, 재단법인화나 유통법 같은 해결책보다는 미술시장 저변이 살아나고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어 순수미술 시장이 살아날 수 있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거래 이력제가 정착되면 자연스럽게 될 일인데, 갑자기 디테일한 제재가 들어가고 시장이 이를 받쳐주지 못하면 스텝이 더 꼬일 뿐입니다.
K.김 이 작은 시장에 정부 규제가 필요한가, 그 정도의 합의가 있었는가를 생각하면 입법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10여년 전에 비해 미술시장의 자정능력이 커지고 외부충격 등으로 시장형태가 갖춰가고 있어요. 태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장에서 문제가 생겨나고 해결되는 과정 중에 무리하게 입법을 추진하니 부작용이 생겨납니다. 특히 감정의 문제에 대해 그 무거운 손해배상 입증 책임을 지운다면 누가 안목 감정을 하겠다고 나서겠습니까. 안목 감정과 가치 감정의 차이에 대한 이해조차 부족한 상황인 듯합니다. 전 세계 어디에도 안목 감정에 대해 감정인 본인에게 입증 책임을 지우는 법은 없습니다. 해결책을 정리한다면, 시장의 자정작용+외부의 충격+정부 도움의 캠페인+서류/계약 문화의 정착 등이 이뤄지면서 가능할 듯합니다. 창작자 자신이 스스로 진품보증서 등을 발행해서 예술품이 유통될 때 마지막 순간까지 그 서류도 함께 유통되도록 계도해야 합니다. 화랑이 보증하는 거래 서류도 차례로 첨부되고 말이죠. 그렇게 될 때 위작 문제는 절반 이상 해결될 겁니다. 새로 만들어지는 법이 없더라도 위작의 문제는 사문서 위조, 사기죄, 민사소송 등 얼마든지 현재의 법 안에서 처벌하고 해결할 수 있습니다. 경매사의 약관이 소비자에게 불공정하도록 되어있다면 약관법에 따라 약관의 내용을 조정하여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습니다. 위생, 안전 및 공공복리 등 전국민적 사안이 아니니 이 작은 시장에 개입하려 하시기보다는 지혜로운 지원 방식을 고민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정 이런 법안이 만들어지고 논의 되는 것에 대해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미술인들이 다 이해당사자인데 정작 미술인들에게서 무관심하게 방치되는 게 문제의 큰 원인입니다. 생존권이 달린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말이죠. 사실 이 법안의 초기에 아주 신중하게 화랑업과 경매업의 겸업금지 또는 일정지분이상 참여할 수 없도록 하는 조항이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미술계의 주장은 슬그머니 사라졌어요.
아무튼 이렇게 미술동네의 생존권 뿐 만 아니라 문화적 예술적 의미를 훼손시키는 일들이 생겨나고 있는 데 대해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우리 미술계 모든 적폐의 원인은 미술계 구성원의 무관심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최 내부의 원인을 지적해 주셨는데, 어느 분야나 내부에 못된 사람들이 많죠. 보통 가진 사람들입니다. 화랑도, 작가도.... 문화체육관광부도 완전히 재구성해서 축구팀 감독인양 문화계를 완벽히 통제 관리하려는 인식을 바꿔야 합니다. 근본적으로 토대를 구축하도록 돕는 지지와 지원 기구라는 마인드로 모든 것을 전환해야 합니다. 민간 자율과 자정, 도덕적 각성, 상거래 물리적 각성 등은 물론 필요하구요.
윤 관료들이 모든 것을 통제하고자 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죠. 미술인 스스로 관심 갖고 책임을 가지고 계도, 홍보해서 나아가면 법은 불필요하지요. 미술계를 위해, 국민들의 문화와 미술 향유를 위해 효율적이고 지혜로운 지원이 필요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