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열, 조은정, 김진녕
조은정(이하 조) 그러면 이제 2016년 미술계에 있었던 여러 가지 사건들에 대해 되짚어볼까요?
김진녕(이하 김) 우선 올해 초에 있었던 국립중앙박물관장의 갑작스런 경질 사건이 떠오르네요.
최열(이하 최) 전시와 연관되어 재작년에 국립현대미술관 정형민 관장이 해임되었던 사건도 지나고 보니 김종덕 문체부 장관에 의한 농단 안에서 해석될 수 있더군요. 국립중앙박물관의 김영나 관장의 경우는 확실히 이번 국정농단과 관련하여 당했다는 게 드러난 경우고, 정형민 관장은 인사문제 핑계로 변명할 시간도 없이, 충분한 소명이나 과정 없이 경질되었죠. 그 바람에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자리가 일 년씩 비어있게 되었고 외국인 관장이 그 자리에 앉는 해프닝까지 일어나게 됐죠.
ⓒ경향신문
김 박근혜 정권이 처음 등장했을 때의 예상대로 자기 검열이라든가 여러 문제가 그동안 불거져 나왔고, 3년이 지나니 자기기만에 기반한 여러 사건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온 것이 올해가 된 듯합니다.
조 올 한해 전시는 좋은 것들이 많이 떠오르는데, 미술계에 일어난 일들은 나쁜 일들이 많았습니다. 충격적인 것은 문화예술계의 블랙리스트 사건과 문화예술, 특히 미술계 내부 성희롱 사건이었어요. 블랙리스트와 성추행 문제가 전혀 다른 사건이기는 하지만 둘 다 권력과 폭력에 관련된 문제인 것 같아요. 반성할 점과 분노할 점이 함께 있었던 일들이 많았어요.
김 블랙리스트는 세월호 시국선언한 사람들, 박원순, 문재인 지지를 선언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작성됐다고 하죠. 블랙리스트 존재가 밝혀진 다음에 블랙리스트 작성자로 지목된 김기춘, 모철민, 서병수 등이 특검에 고발되었습니다.
* 처음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도마 위에 오른 것은 10월 10일 문화체육관광부에 대한 국정감사장에서 도종환 의원에 의해서다. 도종환 의원은 문화예술위원회 회의록을 공개하면서 정부가 지원하지 않기로 한 예술인들의 명단인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고 주장했고, 이에 대해 문화부 조윤선 장관은 블랙리스트 존재 사실을 부인했다. 하지만, 청와대가 세월호 시국선언 참여자 등이 포함된 9천437명의 예술인 이름이 담긴 '블랙리스트'를 문화부로 전달했다는 보도가 이어지면서 논란이 크게 확산됐다.
이 블랙리스트에는 2015년 5월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 촉구 선언'에 서명한 문화인 594명, 2014년 6월 '세월호 시국 선언'에 참여한 문학인 754명,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지지 선언'에 참여한 예술인 6,517명, 2014년 서울시장 선거 때 '박원순 후보 지지 선언'에 참여한 1,608명의 명단이 적혀 있다고 한다.
실제로 작성 시점 이후 예술계 곳곳에서 검열을 의심케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우수작품 제작지원 사업에 선정된 박근형 연출의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가 지원금 포기 종용을 받았다는 폭로가 나왔고, 이윤택 연출가의 희곡 '꽃을 바치는 시간'이 심사 1위를 받고도 지원작 선정에서 탈락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문화연대와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을 비롯한 12개 문화예술단체는 11월 12일 오전 서울 서초구 특검 사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을 받고 있는 김기춘을 수사하라"고 촉구했다. 문화단체들은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송광용·모철민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서병수 부산시장 등 9명도 김 전 실장과 같은 혐의로 특검에 고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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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블랙리스트라는 것 자체가 원론적으로 시대를 역행하는 것입니다. 작성된 거 자체에도 문제가 있어 보이구요. 이를테면 홍성담 작가는 블랙리스트에 들어가 있지도 않아요. 박근혜가 대통령 후보였을 때도 각을 예리하게 세우고 밖으로 드러나게 비판적이었는데. 서울시립미술관 철거 사건도 그렇고... 사실 현재 작업을 하지 않는, 사진 작가이긴 하지만 현재는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든가 그런 사람들도 이름이 들어가 있어요. 9천여 명을 그냥 쓸어모은 거죠. 박근혜 정권의 성격을 보여주는 일이에요. 불이익을 실제로 당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김 연극판이 작은 곳이잖아요. 연출자 박근형 씨가 작품을 올릴 때마다 캔슬되어서 여러 번 고발하기도 했었어요. 정권의 역주행성을 보여주는 한심한 일입니다.
성희롱 문제의 경우는 미술계에 국한해서 보자면, 블로그에 쓴 글이 문제된 모 비평가, 일민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의 큐레이터의 성추행이 문제가 되었었고 국립현대미술관의 경우는 곧 인사에 반영했죠. 한동안 트위터에서 문화예술계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일이 지속되었는데, 그렇게 많을 줄은 몰랐습니다.
최 성추행이나 성희롱 문제가 드러났을 때, 가해자가 사과를 하고 일이 그냥 마무리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게 이해가 안 됩니다. 수사가 이뤄지도록 하고 정도에 따라 기소를 해야 하는데, 문학계, 미술계가 그게 아직 안 되는 모양입니다.
김 성폭력에 대한 친고죄는 폐지됐지만 아직 피해자에 대한 의심이라든가 해서 가해자를 철저히 수사하는 데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또 내부자의 범죄에 대해 이중적인 잣대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더 어려워 보입니다. 잘못한 일이기는 하지만, 우리 단체, 기관에 먹칠을 한 저 놈.. 같은 분위기가 되는 거,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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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폭로하는 작가들을 보면 거의 젊은 여성작가들이에요. 누적되어서 오랜 기간 피해를 입은 중견 작가들은 오히려 그저 바라보고만 있다고 합니다. 이유를 분석해 보면, 젊은 작가들은 잃을게 적지만 중견들은 잃을게 많아서 겁을 내어 당당하게 폭로하지 못하는 것도 한 이유가 될 듯합니다. 올해 김영란법이 시행되기도 했는데, 저는 그 법도 완전히 옳다고 볼 수 없었어요. 그 법이 부패를 막는다기보다 힘 없는 자가 힘 있는 자에게 3만원이든 5만원이든 쓰는 게 당연하다는 얘기 같다는 말입니다. 야당들은 그 법을 통과시켜놓고 스스로 잘했다고 뿌듯해하는 모양인데, 만 원이든 일 원이든 힘 있는 자가 금품을 갈취하면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부패를 인정하고 관대하게 보는 것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사건인 것 같습니다. 성희롱 문제도, 무심결에라도 했으면 처벌해야 맞습니다. 의도가 그렇지 않았다는 둥 촉망받는 사람인데 안 됐다는 둥 따질 문제가 아닙니다. 남성 중심의 미술계이기 때문에 생겨나는 문제들인 듯해요.
조 미술계에서 활동하는 여성으로서 여러 가지 소문을 듣게 됩니다. 종종 “아니, 그랬는데 그걸 그냥 놔둬?” 하고 분해하다가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으메 무기력감을 느끼게 되죠. 올해는 특히 공공기관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분노가 모아지고, 공론화될 수 있었던 거죠. 스스로 물러나는 게 아니라 해임되고 적절한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용감한 몇몇 여성들이 젠틸레스키처럼.... 극소수의 사람들만 드러나고 솜방망이도 안 되는 처벌 받거나 처벌없이 지나가지 않도록 모두가 용감해졌으면 합니다.
김 또래에 의해 집단 성폭행이 이뤄졌던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이 일어난지 벌써 10여 년이 되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 지역사회가 대처하는 방법을 보면, 지금 대한민국 서울, 국립 기관에서 벌어지고 있는 성희롱 혐의자들에 의한 풍경과 비슷한 점이 많다는 생각도 듭니다. 명쾌하게 책임을 가르지 못하고 유야무야.
조 사회전반적으로 여성이 수탈 대상이고, 성의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죠.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도덕적인 타락의 길을 걷고 있고, 양심이나 염치는 과거의 덕목이 되어가죠. 하지만 예술이란 인간의 자유를 담보로 하는 영역인데, 적어도 어떻게 동료 예술가를 존중하지 않을 수 있는지 분노하게 됩니다.
김 이론 쪽이 안전하냐 하면 그건 또 아닌 것 같아요. 다만 예술장르가 성에 개방적인 면이 있다는 정도라고 할까요. 음대, 체대 교수들 또한 학생들에게 그런 짓을 저질러도 다소 너그러운 게 아닌가 싶긴 합니다.
최 블랙리스트와 성희롱 문제, 2016년에 드러난 우리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입니다. 모철민, 용호성 씨 등 특검에 고발된 이름들은 그간 다양한 문화예술정책들을 주물러서 여기저기 이름이 많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문화정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그런 부분에서 문제가 있음이 밝혀진다면 이 사람들은 퇴직을 시키거나 처벌해야 하고, 그들이 수행해왔던 정책들은 꼼꼼히 따져서 폐기할 건 폐기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김 용호성 씨는 뉴욕 한국문화원장으로 내정되어 있다가 얼마 전에 차은택 관계로 발령이 취소됐다가 영국의 한국문화원장으로 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모철민 주프랑스 대사는 외교부에서 활동한 사람이 아닌데도 외교적으로 중요한 지역의 대사로 임명되어 말이 많았습니다.
조 올해 한불수교 130주년이었죠. 파리의 한불수교 130년 행사에 갔었는데 너무 초라했습니다. 예산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하는데, 갑작스레 VIP가 방문해서 그쪽 비용으로 넘어가 잘렸다는 이야기도 있었어요. 2016년은 그런 해였네요. 우리 안에 존중받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 타자들이 많았습니다. 미술, 예술이라는 것은 역사적 연면함 속에 소중한 것의 가치를 일깨우는 장르인데, 그 속에서 여성, 약한 이들을 억압하고 타자화해 온 것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제 자정해야 할 때가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최 2016년은 덕수궁의 좋은 전시 이야기로 시작해서 민망하고 부끄러운 이야기로 끝나게 되었네요. 박근혜는 국회에서 탄핵의결을 당했고. 근본적으로 부패 자체의 척결 캠페인을 계속해야 할 시점이고, 인권문제나 정치사회적 모든 문제를 개인의 윤리, 집단의 윤리, 도덕과 부패와 연관시켜 각 분야에서 일이 진행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문체부는 완벽하게 부서를 없앤다는 각오로 쇄신해야 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예산을 많이 따냈다고 자랑할 게 아니라 그 예산을 어디에 쓰느냐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공동체의 여러 가지 이해와 요구, 시대정신 맞게 하되, 2016년 지금 당면한 자신들의 문제를 미술관 자체 프로그램에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 한편으로 우리가 지난 해에 모여 이야기한 것 중에 용산기지 활용에 대해 언급했던 때가 있었는데, 긍정적으로 해결되어 좋았습니다.
이제 공공미술관 난립에 대해 한번 더 걱정해야 할 때인 듯합니다. 세종시에 미술관 콤플렉스가 생긴다고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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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인천시립 뮤지엄파크도 있죠.
김 부디 디오라마나 밀랍박물관 같은 곳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시스템은 갖춰지지 않는데 신규건물 지어내듯이 마구 찍어내면 안 되죠. 올해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체크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임기 내에 부동산 투자하는 일 없도록.
조 수고 많으셨습니다. 내년에는 미술계에 즐거운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