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노암(성균관대 겸임교수)
1. 미술문화 속의 미술시장
미술 문화의 활성화 문제와 미술시장의 활성화는 같은 문제는 아니다. 미술의 문화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의 관계를 고려해보면 미술시장 활성화 문제는 미술문화 전체의 활성화의 일부로 볼 수 있다. 사회가 과거에 비해 경제적 가치가 점차 중시되는 경향과 함께 미술작품을 하나의 상품으로 다뤄야 하는 요구가 날로 커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미술전공자들이 증가하면서(전공자들이 모두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미술시장 활성화 문제는 긴급한 사안으로 제기되고 있다. 2000년 대 중반 미술시장 활황의 경험과 영향으로 경제적 가치로서 미술을 바라보는 시각이 일반화되었고, 미술작품을 교환가치로 다루게 되면서 과거처럼 미적, 윤리적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일반적으로 공공영역에서 미술문화 발전(활성화)를 위해 논의되고 추진된 정책들은 대부분 창작지원과 창작인프라 중심이었다. 근래 들어서는 큐레이터와 비평가를 비롯한 매개자 지원 프로그램이 시도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공공영역의 정책은 미술시장의 확대와 활성화를 위한 소비자가 아닌 관객 또는 감상자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소수의 민간 미술애호가나 투자자를 제외하고는 미술시장의 실제 큰 투자자는 정부와 기업들이다. 그런데 제 불황이 반복되면서 기업들의 미술투자는 위축되고 그에 따라서 정부의 역할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급속하게 증가한 창작자와 매개자들이 활동할 수 있는 미술시장이 열악한 상황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미술시장문제를 풀기위해서는 창작자와 매개자와 관객을 공급과 유통과 소비로 번역하여 다뤄야 한다. 우리는 주제(미술시장)에 집중하기 위해 미술의 경제적 가치 또는 시장가치를 중심으로 다뤄야하기 때문이다. 경제학에서 보는 경제주체는 기업, 정부, 그리고 가계(개인, 가정)이다. 이들 경제주체가 지속적으로 작품을 구입하는(수요) 것이 미술시장을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만든다. 따라서 정부나 비영리기관 등 공공영역에서 시장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또한 정부는 민간주체와 달리 가치문제가 이윤추구로 바뀌어야 하는 문제에 있어서 한계가 있다. 정부가 기업과 가계처럼 이윤을 목적으로 행위 할 수 없으니 말이다. 공공주체는 미술시장 활성화를 위한 계기를 마련한다거나 격려를 한다거나 또는 미술은행이나 문화예술위원회나 예술경영지원센터를 통해 정부가 투여하는 공공자금을 통해 일종의 마중물 역할에 그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어떻게 기획하고 운영하느냐에 따라서 미술시장이 선순화 구조 속에서 활성화 되는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다. 관건은 누가, 언제, 어떻게, 그리고 어떤 규모로 마중물을 투여할 것인가이다.
일반적으로 이 경제주체들 가운데 기업과 가계를 합친 민간의 소비(수요)가 시장에 끼치는 영향이 가장 큰 주체이다. 따라서 이들 기업과 가계가 미술시장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투자지출을 늘릴 수 있는 기대심리를 형성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술품은 일반적인 재화와는 다른 미적, 문화적 가치를 갖고 있기 때문에 미술시장 활성화의 어려움이 있다. 미술품이라는 재화의 특성은 일종의 장기적인 투자의 대상으로서 자산가치의 등락이 미술시장 활성화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구입한 미술작품을 장기간 소유하고 있을 경우 그 작품의 가치가 상승하는 것이 기대될 때 미술시장에 대한 신뢰가 형성된다. 또한 그 작품을 급하게 현금이 필요할 때 큰 손실 없이 현금화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것들이 선순환 할 때 미술시장 활성화(정상화)를 기대할 수 있다.
2. 미술품과 미술시장에 대한 인식의 변화
우리가 미술시장의 활성화의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시장문제가 중요한 이슈라는 점과 미술시장은 이미 존재하고 있으면 나(창작자)와 우리(미술계 또는 미술문화전체)에게 중요한 문제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미술시장은 우리의 의지나 소망 또는 미적이념과 상관없이 작동하고 있다. 미술시장이 창작자들의 삶과 열정에 중요한 영향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미술시장의 문제는 미술보다는 시장이 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미술가들의 창작활동은 일종의 상수와 같아서 미술시장의 변동의 영향을 받지만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나 현실, 국가가 시장이 도저히 활성화될 수 없는 전쟁과 기아와 같은 시기에도 미술가들의 창작활동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불가피하게도 더 이상 가계부(돈과 경제)를 생각하지 않고는 미술을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자본주의가 문화예술계에 내면화되면서 자연스럽게 시장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미술작품은 소비자가 소비할 수 있는 소비재로서 콘텐츠와 브랜드로 이해되는 상품으로서 고가의 시장이 지닌 특성을 닮았다. 일반적으로 고가의 상품시장은 그것을 욕망하고 구입할 수 있는 소비자가 그 시장(미술시장)을 결정한다고 볼 수 있다. 공공주체의 정책의지만으로 변화할 수 있는 시장이 아니다. 결국 앞서 언급했듯 미술시장 활성화란 경제주체인 기업과 가계(일반 시민들)가 미술품을 구매하기 위해 지갑을 열어야 해결되는 것이다. 정부와 기업이 지속적으로 선의에 의해 구입해온 방식으로는 더 이상 증가하는 미술가들과 미술문화를 소비하는 데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왜냐하면 공공성에 바탕 한 시장 활성화를 위한 정책과 활동은 시장논리가 아니라 공적 가치에 따른 논리에 따르기 때문이다. 미술을 내면화하여 하나의 상품으로 익명의 개인이 구입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소비의 욕망을 어떻게 부양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 정부의 미술시장 활성화 정책의 비전이자 기본 골격을 만들어야 한다. 지자체 또한 마찬가지이다. 미술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중앙정부는 물론 각 지자체의 사정에 맞는 속도와 규모와 순서가 사려 깊게 다뤄지고 구체적인 정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앞서 말했듯 미술시장이 문제는 미술문화 전체의 문제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미술시장문제는 중요한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또한 시급한 사안으로 다뤄지게 되었다. 문광부 산하 예술경영지원 센터의 미술시장 정보화 사업이나 미술장터 사업, 문화예술위원회나 지자체 문화재단 창작지원 항목에서 ‘환류’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 지자체 마다 미술문화 활성화의 일환으로 미술시장 활성화를 위해 중요한 정책문제에 포함시키면서 아트페어나 경매 등 민간영역에서 다뤄지는 시장문제에 본격적으로 개입하는 것 등은 이러한 변화와 관련된다.
3. 예술경영지원센터를 통한 정부의 미술시장 활성화 정책들
정부의 미술시장 활성화 정책을 추진하는 실행기관은 많지만 최근 대표적인 기관은 예술경영지원센터이다. 문광부는 매년 80억원에 달하는 미술문화 및 시장 활성화에 예산을 집중하고 있고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이 사업을 맡고 있다. 따라서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사업을 살펴보면 미술시장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어떻게 인식하고 있고 또 어떤 정책을 기획 운영하는지 대채로 확인할 수 있다. 미술시장활성화를 위해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수립 운영하는 정책들은 5가지 정도 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국미술시장정보시스탬>으로 한국 미술시장 정보시스템(K-ARTMARKET) 서비스를 통해 미술시장동향, 가격정보, 작가정보 등 각종 시장정보관련 자료를 통해 데이터 기반의 객관적인 미술시장 분석 정보와 미술작가, 화랑을 위한 홍보 채널을 제공 한다.
<미술품 해외시장 개척지원>은 역량 있는 국내 화랑의 해외 아트페어 참가 지원을 통해 한국미술의 해외 판로 개척하도록 지원하고, 국내 주요 아트페어를 중심으로 한국이 아시아 미술 비즈니스의 장으로 재도약할 수 있도록 지원 한다. 구체적으로는 한국 현대미술의 글로벌 프로모션을 위한 국제적 미술 행사 개최해외 아트페어 참가 지원(부스전시 지원)과 참여 작가의 60% 이상이 국내작가이며, 동시에 참여 작품의 60% 이상이 국내작가의 작품인 프로젝트를 우선 지원한다.
<작가 미술장터 개설지원>은 작가들의 미술품 판로 개척을 지원하기 위해 전시장, 공공시설, 유휴 시설, 문화예술 거리 등에 미술장터 개설을 지원한다. 사업 참여 단체(자) 공모ㆍ심의를 통해 지원금 차등 지원하고 미술시장 진입장벽이 높은 작가들의 미술품 판로개척 지원하며 장터 개설 공간을 지원하여 작가 및 기획자들의 사업 진입 장벽을 완화하고 판매 활성화 촉진한다. 미술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소장할 수 있는 기회 제공으로 국민의 미술문화 향유 및 미술품 소장문화 확산 유도한다.
<우리동네 아트페어>는 지역 중심의 아트페어 지원을 통해 지역 청년작가, 기획자 발굴 및 지역주민과 소통의 장 마련한다. 공모‧심의를 통해 지역 청년작가 중심의 아트페어 차등 지원하고 ‘문화가 있는 날’과 연계된 소규모 아트페어를 지원하여 지역주민과 소통의 장 마련한다.
마지막으로 <미술품감정기반 구축 사업>은 미술생태계 투명화와 한국미술 진흥을 위한 국내 미술품 감정기반 구축 지원한다. 구체적인 운영방안으로는 현장에 필요한 기초자료, 전문자료 및 전문인력 제공을 통한 미술품 감정기반 구축하고 미술사적 가치가 있는 작가연구 지원 및 자료 구축하며 미술품 감정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 및 국내·외 네트워크 구축한다.
이런 정책들은 오랫동안 미술전문가들이 주장해 왔던 것들이라 새롭다 할 수 없다. 물론 이 정책들이 미술현장의 의견을 수렴하고 모두가 만족할 수 있다거나 이상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정부의 인식과 노력에 대해서는 긍정적이며 고무적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단기목표와 빠른 효과를 위해 급조되어 열리는 아트페어들이 창작자들과 컬랙터들로 부터 외면 받으며 제자리를 잡지 못하는 현실을 보면 정부의 정책이 실제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 충분한 인력과 예산을 집중하는 지속가능한 의지와 노력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취지와 정책도 최초 발의 당시의 비전과 목표를 의지를 갖고 지속적으로 수행해 나가지 않는다면 또 일정한 기간을 진득하게 기다리며 미술에 대한 일반 시민(소비자)의 관심과 신뢰를 회복하고 확대하지 않는 한 미술시장은 주춤거리고 방향을 잃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