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진녕
평창대관령음악제에 등장한 이명박
클래식 음악계와는 서울시향 정명훈 영입으로 인연
지난 8월3일 오후 7시 반,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의 알펜시아 콘서트홀.
음악회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린 직후 공연장 앞쪽 무대 옆 출입문이 열리면서 한무더기의 일행이 쏟아져 들어왔다. 객석이 잠시 술렁였다. 낯익은 얼굴이 그 일행에 섞여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그의 처 김윤옥씨와 경호원, 행사관계자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온 것이다. 최근 롯데그룹과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검찰 수사가 이어지면서 이 전 대통령의 동향에 대한 미디어의 보도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의 음악회장 나들이는 관심을 모을만한 사안이었다. 롯데그룹의 비자금 조성이나 용처, 대우조선해양 비리가 이 전 대통령의 재임시절과 겹치기 때문이다.
세간의 이런 관심이나 미디어의 보도와는 무관하게 이명박 전 대통령은 무심하고 표안한 표정이었다. 그의 행사장 입장에는 평창대관령음악제(옛 대관령국제음악제)의 공동음악감독인 첼리스트 정명화씨와 그의 남편 구삼열씨가 함께 했다. 또 다른 공동 음악 감독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씨는 이날 프로그램 1부 출연자여서인지 영접에는 나서지 않았다.
지난 8월8일까지 이어진 제13회 평창대관령음악제는 ‘B B B자로…’라는 주제로 성이 B로 시작하는 바흐, 베토벤, 브람스, 불레즈, 베르그 등 모두 26명의 ‘Mr.B’의 클래식 작품으로 무대를 꾸몄다. 이 전 대통령이 참가한 이날 프로그램은 저명연주가시리즈8로 올해 음악제 중 가장 먼저 티켓이 매진된 공연이었다. 평창대관령음악제의 공동음악감독이자 국내에서 고정 팬이 가장 많은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가 무대에 서는 유일한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이다. 이날 정경화는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와 함께 1부 마지막 순서로 무대에 올라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3번 D단조를 연주했다. 연주가 끝난 뒤 정경화는 그 특유의 손으로 그리는 커다란 하트를 객석을 향해 ‘발사’했지만 이 전 대통령 내외에 대한 별도의 소개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명화 정경화 감독은 유명인사가 평창대관령음악제에 참석한 경우 콘서트 중간에 소개한 적이 있다.
지난 2010년 9월 정명화·정경화 자매가 음악제 감독으로 취임하고 정명화·정경화 감독 체제에서 처음 치르는 2011년 7월30일 8회 대관령국제음악제 ‘저명연주가시리즈3’ 공연에 홍라희 리움 관장이 참가한 적이 있다.
그날 정경화, 정명화 공동 감독은 공연 두 번째 프로그램 시작 직전 무대에 올라 그날 공연에 손열음이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에 연주할 스타인웨이 그랜드 피아노가 홍 관장의 기증품임을 알리고 객석의 홍 관장을 소개한 적이 있다. 통상 음악제에 대한 기업의 지원은 음악제 관련 포스터나 책자에 표시하는데 홍 관장의 경우 정 자매와의 친분도 있고 직접 공연 현장에 참여했기에 정 자매가 공연장에서 직접 홍 관장의 기부를 소개하며 감사를 표한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평창대관령음악제 나들이는 자발적인 참여인지 주최 측의 초대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음악제 홍보 담당자는 “누구의 초청으로 온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전직 대통령이니만큼 음악당에서의 예우는 필요
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따져보면 이 전 대통령과 평창대관령음악제와 연결 고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02년 서울시장에 취임한 이 전 대통령은 서울문화재단을 만들어 문화계와의 연결 고리를 만든 뒤 2005년 정명훈 지휘자를 서울시향 예술고문으로 영입해 서울시향의 변혁에 시동을 걸었고 이후 정명훈 상임지휘자 체제에서 서울시향의 도약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문화쪽에서 거둔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자리잡았다.
정명훈 지휘자와 정명화·정경화 자매는 오누이간이다.
정 자매가 강효 전임 감독의 후임으로 대관령국제음악제 감독에 취임한다는 게 외부에 알려진 것은 2010년 7월 7회 대관령음악제 전후였다. 대관령음악제의 주최자는 강원도와 강원문화재단으로 음악 감독 교체의 결재권자는 결국 지방정부라는 얘기다. 당시 대통령은 이명박이었고 강원도지사로 3선째 연임하고 있는 김진선 역시 대통령과 같은 당적이었다.
하지만 그해 6월 지방선거에서 김진선이 낙마하고 야당 후보인 이광재가 당선된 뒤 7월1일 도지사에 취임했다. 당시 음악계에선 강효 전임 감독이 평소 “적어도 음악제는 10년은 공들여야… ”라고 자주 말했던 점에 비추어 대관령음악제의 급작스런 감독 교체에 대해 놀라워 했다. 더구나 지방 선거 직후부터 신임 도지사의 직무 정지설이 나돌던 시기에 전격적으로 이뤄진 감독 교체라 그 배경에 관심이 쏠렸다. 결국 이광재 당시 도지사는 2011년 1월 낙마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평창대관령음악제 나들이도 한국 음악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정씨 가족과의 이런 인연을 따져보면 뜬금없는 나들이는 아닐 것이다.
음악회 1부 순서가 끝나고 중간 휴식 시간이 되고 로비에 나선 이 전 대통령은 예상치 못했던 관객들의 환대에 기뻤던지 밝은 웃음을 지었다. 그에게 사진 촬영을 부탁하는 줄이 길게 이어졌고 그는 휴식 시간 내내 촬영에 응했다.
연주회가 끝난 뒤 로비에서의 연장 ‘사인회’는 이뤄지지 않았다. 들어올 때처럼 연주회장 앞문으로 퇴장해 연주자 전용통로를 이용해 건물 밖으로 나간 뒤 그의 전용차량인 에쿠스와 경호차량 등 4대에 나눠탄 일행은 숙소인 용평리조트의 별채형 콘도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