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측메뉴타이틀
  • 한국미술 전시리뷰
  • 공예 전시리뷰
  • 한국미술 도서리뷰
  • 미술계 이야기
  • On View
  • 학술논문 브리핑
타이틀
  • [미술계雜담] 근대적 문화정책을 벗어나기 위해서
  • 3304      

2016년 4월18일
정준모, 조은정, 김진녕, 윤철규.

윤철규(이하 윤)  지난 주, SmartK 사이트의 모바일 페이지가 새로 오픈하는 기쁜 일이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이뤄지는 이야기가 좀더 많은 분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면서 이야기를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우리 사회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다양한 장르간 구분 없이 통합되는 분위기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한 분위기에서 역설적으로 새롭게 주목되는 것이 문화 분야인데요. 여가가 늘어나고 다양해진 커뮤니티 내에 어떤 동질성을 만들어 내는 데에 문화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문화를 다루는 정책이 어떤 방향이어야 할지 심도 있게 생각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여러분들과 그동안 계속 함께 해 왔는데요. 문화 정책 집행의 포스트인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자리를 별 전문성 없이 아무나 갈 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하지 말고, 처음부터 정책 전반을 좌우할 러닝메이트 처럼 중요하게 생각해야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간의 문화 정책은 사회를 변화시킬 만큼의 큰 역할을 하지 못했어요. 박정희 정권 때는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라도 했었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참여정부  때 마저도 이렇다 할 방향을 제시하지는 못한 느낌입니다. 미술 쪽에서는 미술관이 늘어나고 향유 기회가 늘어난 정도라고 봐야 될 듯합니다. 계속해서 예산은 늘어나고 낭비가 이어지고 이제는 그런 방식이 한계에 봉착했어요. 이제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좀더 적극적인 방향을 제시해야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사회 전반적인 많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공동체 아이덴티티인데 이는 문화적 동질성에서 나오는 것이죠. 점점 강력해지는 중국과 이미 아이덴티티를 확고하게 가져가고 있는 일본 사이에서 우리가 어떤 문화적 아이덴티티를 가져야 하는지 점검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정준모(이하 정)  전세계적으로 그렇기는 하지만 대한민국이 전환기에 도달했다고 봅니다. 고도성장 시대, 수출 주도의 경제로 그렇게 먹고 살아온, 경제성장률이 높은 국가였고, 삼십년 전만 해도 꿈에도 그려보지 못했던 위상의 세계적인 국가가 되었지만, 문제는 이제 그런 성장은 멈추었고 저성장에 고령화 시대에 들어왔다는 엄청난 변화를 맞아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대한민국 모든 정책이 고도성장에 맞춰져 왔다면 이제는 저성장 시대에 맞는 정책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문화융성 정책을 편다고 하면서 무한정 퍼주기 식으로 진행되는데, 어떤 문화들을 어떻게 향유하도록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적어 보입니다. 대중문화든 뭐든 문화라는 말만 붙일 수 있으면 공짜로 누릴 수 있도록 해주는 데에 예산을 씁니다. 문화 수혜의 폭을 넓히는 것이 다가 아닌데 문화의 기능과 질적 향상을 위한 쪽보다는 하향평준화되는 경향을 보이는 거죠. 질을 높이자는 건지 폭을 넓히자는 건지 문화정책이 어떤 방향인지조차 모르겠어요. 그때그때 필요한 것처럼 보이는 것에 땜질식으로 운영되는 대증적인 요법은 정책이라고 할 수 없죠. 문화정책의 이념, 철학, 기조를 잘 모르겠어요. 문화예술 정책을 포함해서 대한민국의 모든 국가 정책이 저성장 고령화 시대에 맞춰야합니다. 시혜적, 무상복지 차원의 접근은 우려스러운 면이 있습니다. 

조은정(이하 조)  문화예술 국가정책은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정책 기조에 따라 변해 왔습니다. 1,2 공화국 시기에는 문화영역에 관심을 가질 형편이 못 되었고, 3,4 공화국에 이르면 경제발전이 가장 중요한 지상과제였지만 어쨌거나 ‘문화예술진흥법’이 생겨나고 관주도의 문화정책이 진행되었습니다. 5공화국은 기본이념이 ‘선진조국창조’ 였던 만큼, ‘새 시대 새 역사 창조에 기여할’ 자주적 창조적인 민족문화 계발을 앞세웠습니다. 이전보다는 문화예술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문화기반시설 확충이 급속도로 진행되었죠. 6공화국 들어 노태우 정권 때는 독립된 ‘문화부’가 생겨나고 문화의 생활화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예술의 전당 완공도 이 때입니다. YS 문민정부 때는 <신한국 문화창달 5개년 계획>을 발표하고 정보화촉진기본법을 제공했고, DJ 국민의정부 때는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않는다’는 원칙 하에 ‘문화의 힘으로 제2의 건국을 이루자’는 지향점을 앞세웠습니다. 문화산업에 대한 지원이 강화된 시점도 이때부터입니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는 ‘자율, 참여, 분권’ 그리고 선택과 집중의 지원을 강조했습니다. 중앙과 지방간의 격차 해소가 주된 목표 중의 하나였습니다. MB정부 때는 실용주의 원칙에 입각해서 다양한 정책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현 정부는 “국민행복과 국가발전이 선순환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대”를 비전으로 하면서, 국정운영을 위한 4대 국정 기조 중 ‘문화융성’이 포함될 정도로 문화가 강조되었죠. 박근혜정부가 “문화융성을 위한 10개 과제”로 선정한 것을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문화재정 2% 문화기본법 ②생활문화공간 조성 ③문화참여 기회, 문화격차 해소 ④문화다양성 증진 ⑤예술인지원 ⑥문화유산보존강화 ⑦인문정신 문화 진흥 ⑧콘텐츠산업 육성 ⑨고부가 관광 실현 ⑩스포츠 활성화


김진녕(이하 김)  두 분 말씀처럼 실제적으로 문화부가, 아니 문화가 우리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제한적인 생각밖에는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경제 성장 중 오십 퍼센트 이상은 중공업, 자동차, 화학 분야에서 얻어지고 있어요. 그 비율은 미미하지만 컨텐츠 산업 같은 것들이 검색어 등을 많이 차지하고 사람들 인식이 바뀌는 정도의 수준이죠. 연예인 몇 명이 큰돈을 번다고 그것이 국부(國富)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드라마나 대중음악 같은 것을 통한 ‘한국’이라는 브랜드 가치는 적어도 아시안 마켓에서는 무시할 수 없게 됐습니다. 아모레퍼시픽 주가가 100만원이 넘는 황제주가 된 것도 컨텐츠 산업이 있어서 가능했던 거죠. 시세이도가 일본의 컨텐츠 산업을 업고 세계적인 브랜드가 되었듯이요. 
  한국 문화의 브랜드 가치는 한식전도사 같은 정부계 프로그램 만으로 높아지게 되는 건 아니죠. 한국 문화유산, 클래식의 장르를 축적시키는 작업 즉 한국적인 것이 과연 무엇이냐, 한국문화에 대한 이슈를 제기하고 문제점을 타개해 나가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소위 하위 컬처라고 부르는 것들, 드라마나 게임 같은 것들이 문화 퇴적층이 되고, 그것을 배경으로 스토리, 문화 미디어 산업 등 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다양한 발전이 가능하도록 문화예술에 대한 큰 비전을 이쪽 진영에서 제기하는 두 가지 방향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컨텐츠 산업 덕에 화장품이나 식품도 그 덕을 보고 있다고는 하지만, 어쩌다 성공하는 것에 열광하고 환호하기만 한다는 것이 걱정입니다.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야 할 때죠. 과학이나 산업에서만  R&D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문화예술 쪽에도 연구 및 개발이 필요한데, 너무 준비가 안 되어 있습니다.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가 없으면서 노벨상이 왜 안나오냐고 기대하는 것과 비슷해요. 예술에 대한 기본 플랫폼이 없으니 응용을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컨텐츠도 잘 나오지 않죠. 베이스를 구축하는 데 더 힘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요. 그나마 경제적인 여력이 있을 때 말입니다. 컨텐츠 기반을 구축하는 데에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이죠. 앞으로 우리 사회는 노인 부양도 해야 하고, 경제성장은 더 이상 안 되고, 여력이 없는 시기가 오고 있습니다. 늘 경각심을 가지고 컨텐츠 개발하고 원천소스를 가지고 연구해야 합니다. 새로운 것을 찾으려는 노력이 어렵기는 하다지만, 우리는 뭐 하나 성공하면 비슷한 아류작이 따라 나오기만 해요. 내가 내 발등 찍고 깎아먹는 악순환이 되는 거죠. 그런 것을 조절하고 리드해 주는 것이 문화정책이라고 봅니다.

 문화를 콘텐츠산업으로 접근하는 정책이 펼쳐지면서 실지로는 문화의 역량이 불균형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원소스멀티유즈에 따라 경제적 지표로 문화를 판단하게 되었다는 거죠. 실지로 한식, 한복, 불고기, 한글과 같은 것들도 문화콘텐츠라는 개념으로 정리되고 접근되었죠. 

 한국음식이 세계 최고네, 어떤 배우가 중국 대륙을 제패했네, 이런 것이 주요 이슈가 될 것이 아니라, 저 사람들이 문화적 감수성, 호기심을 느꼈다면 우리도 세계와 만날 수 있는 플랫폼 같은 것을 만들어서 우리뿐만 아니라 외국인도 소통할 수 있는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야 하죠. 머물러있으면 발전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문자박물관 만들자고 하자는 것이 아니라. 가상의 지식체계에 문화적 감수성 나누는 열린 마인드의 플랫폼이 무엇일지 연구하고 제시하려고 노력해야죠. 기존의 부동산 업자 같은 공무원들처럼 임기 내에 시설을 하겠다 말겠다 할 것이 아니라. 이슈를 쌓아가야 합니다.

 국민들도 어느 정도 문화를 스포츠로 생각하는 데 물들어 있어요. 외국 사람들이 김치나 불고기에 환호한다고 좋아하고 확인하려 하고... 우리가 햄버거 속에 불고기 넣고 맛있게 즐기고 함께 즐길 수 있는 것들을 개발하면 되죠. 다문화 정책에서 며느리에게 한국문화 전통과 생활양식을 가르치려고만 하는 것도 우스워요. 어머니와 남편에게 베트남 역사와 문화를 가르치고 친구들도 알도록 하는 교육도 똑같이 중요합니다. 문화라는 것은 서로 교류하고 통섭해야 자원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이죠. 

 정책 담당자나 정치가들은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 좀더 큰 시각을 국민에게 제시할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본 정책이 명확하면 교육은 어느 정도 저절로 이뤄질 겁니다. 이에 더해 언론도 바뀌어야 하고 매개하는 시스템, 기관 등을 제어할 수 있도록 분명한 그림을 보여주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외국인 노동자가 갑자기 늘면서 막연하게 포비아적 반응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림동 같은 곳 분위기가 독특하기는 하지만 무조건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한 지역에 우즈벡에서 온 엄마들이 많이 있다면 우즈벡 문화센터 등을 만들어 지역별 특색을 만들어도 됩니다. 지린성에 가면 함경도향토회관 같은 것들이 있듯이. 수세적 입장을 취하지 말고 역으로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 동남아, 중앙아시아 등의 접점을 넓히는 문화자원의 강점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일본에 병합되어 강점기를 겪으면서 문화적 약탈 말살정책을 겪었던 피해의식 때문에 우리 문화로 세계를 깔아서 과시하려는 경향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문화패권주의는 이 시대에는 버려야하는 가치죠.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인 것 같아요. 실지로 조사에 따르면 사주에 의한 폭행이 백인에 대해서보다 유색인에 대해서 더 많다고 합니다. 인종차별이 우리 안에도 있는 것이고 그것 또한 타자의 경험을 통해 재생산된 것이지요. 

 유학생이나 이민자 입장에서는 현지 사람들에게 무시당한다는 느낌이 들면 피가 거꾸로 솟게 되죠. 외국에서 온 사람들에게 동질감이 아닌 반감을 심어주는 것은 사회가 건전하게 발전하는 데에 큰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어요. 지역별로 다문화를 특화시켜서, 예를 들어 동대문에 몽고, 러시아 역사문화관 같은 것을 세워서 여기에 사는 이민자를 포함한 국민들 외에 외국에서 오는 방문객에게도 긍정적인 문화 영향을 준다면 좋을 듯합니다.

 다문화 이슈를 통해서 문화라는 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접근할 것인가의 자세를 얘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나치게 근대국가 시절의 문화제국주의적 발상으로 문화를 다루고 있지는 않은지 경계해야 하고, 정책적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문화적으로 다문화 사회를 어떻게 해석하고 대안을 낼 것인가가 중요한데, 문화부가 그런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너무 가시화 하는 사업에 집중하다보니 스텝이 꼬이게 되는 거죠.

 실지로 이제는 다문화라고 말할 것도 없이 우리 문화의 특징이 될 것입니다. 단일민족의 신화가 깨진 현재, 국내에서 진행되는 모든 문화적 상황을 모두 우리의 문화라고 인정할 때가 다가온거지요.

 소비자 입장에서 거꾸로 생각하면 그림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뉴욕이나 런던 도쿄 등을 돌아다닐 때 어떤 문화적 경험을 할지 컬처맵을 짜서 계획을 하잖아요. 지하철을 타고 이렇게 이동하려면 숙소는 이쪽에서 잡아야지 등등. 그런데 동남아를 다닐 때는 저만해도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그곳에도 당연히 종교시설 역사문화적 장소와 흔적이 있을 텐데, 그런 식으로 접근하지 않게 되죠. 외국인이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생각할 때 어떻게 접근하도록 하면 좋을까요? 쇼핑? 고궁? 지적 문화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만한 것들이 있을까요? 드라마 촬영지만 개발해서 잘 되는 것도 아니고, 다양한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도록 오픈 마인드로 관광 인프라, 서비스 산업 인프라 등 다양한 측면에서 접근 가능하고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는 것들을 개발해내야 합니다. 


 정책 목표가 무엇인지를 먼저 확실히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수립된 정책 목표는 말뿐이고, 한 부처 내에서도 각각 다른 목적으로 사업을 해나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정책 목표가 분명치 않고 설득력을 지니고 있지 못하니 하부조직으로서 그것을 수행하는 기관과 국민들은 이게 도대체, 어느 방향인지 알 수가 없죠. 박정희 대통령 때는 적어도 분명한 목적인 “민족문화창달”이 있었고 그에 따라 추진된 정책사업들이 있었습니다. 21세기 초 지금은 물론 민족문화 개념은 공동체라는 개념으로 바뀌어야 하고 문화가 어떤 위상을 가지고 있고 왜 어떤 발전이 필요한지를 고민하여 그 역할에 맞는 문화정책을 세우는 과정이 명확하게 이해될 수 있어야 해요. 그러나 아직도 민족문화창달 시절, 문화예술진흥법 만들던 시절에 묶여 있습니다. 최근 들어서 진흥법들이 무지하게 많이 생겼어요. 공예문화진흥법, 문학진흥법 등등. 이런 식의 진부한 정책 수립이 과연 효과가 있을까요. 전면적으로 뒤집어 생각해 봐야 합니다.

 어느 정도의 문화 딜레이 현상이 있는 것 같습니다. 며칠 전 국립무용단 “향연”을 봤는데 한국 전통춤 버라이어티 같이 태평무 종묘제례악 등 12가지가 모듬으로 된 쇼였어요. 그런데, 이게 조선왕실의 춤추던 재인이 왜정시대에 먹고 살기 위해 무당 춤에 왕과 왕비의 옷을 입고 기방에서 추던, 요정 손님들에게 보여주던 춤이 포함되어 있어요. 한 오십 년 정도 딜레이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죠. 너무 엄숙해지고 전통이 박제된 느낌이었어요. 사실 공연 시장에서 전통 춤이 도태되고 무형문화재 등으로 남아 있는데, 50년 전에 리노베이션 된 모습 그대로 발전하지 못하고 굳어버린 거죠. 한식은 강남한정식처럼 코스로 맛보는 쇼가 되고... 코발트 블루, 디즈니 컬러, 화려한 조명의 한복 패션쇼... 80년대에는 서양식으로 발전시켜 보려는 노력으로 그런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지만, 이게 그냥 유지되다 보니 죽어버렸습니다. 지키고만 있으면 이런 문화지체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문화는 자생적인 것인데 공공의 힘 즉 국가나 문화부에서 원하는 모습으로 이끌어가려는 과정에서 생긴 부작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범적인 예를 제시할 수는 잇지만 모두 그 곳으로 몰고 가면 결국 불균형한 문화의 상태가 되고 말 것입니다.   

 지역 균형발전을 얘기하곤 하지만, 경제와 문화간의 비균형도 문제입니다. 적절하게 균형감각을 가지고 있었다면 사회갈등을 치유하고 봉합하는 데 비용이 덜 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각종지원 관련된 정책 중에 문화예술인복지 정책에 대해 저는 반대 입장입니다. 소설가들이 살기 어려우면 소설이 더 많이 팔리게 하고 사람들이 소설을 더 많이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돈을 주어 연명하게 하는 것보다 나을 거라는 측면에서. 

 문화라는 것은 계량화할 수 없는 가치가 중요한 부분인데 계량적으로 접근하면 오류가 생깁니다. 문학이나 미술계가 어렵다고 어려운 쪽에 돈을 주는 정책은 누가 못합니까. 또 돈 받으면 누가 싫어합니까. 하지만 그런 정책은 장기적으로 자생력을 없애고 고사하게 만들죠.  

 아마추어 화가라도 인사동 가서 대관 전시 두 번 정도만 하면 프로 화가로 인정받는데, 이렇게 하고 문화예술인으로 복지재단에 등록해서 돈 받으면 예산이 줄줄 새게 되죠. 눈에 훤해요. 이런 옛날 방식의 쉬운 정책을 벗어나서 진짜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받고 향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2011년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씨가 단칸방에서 죽었을 때 그해 11월 예술인복지법, 일명 최고은법이 순식간에 생겼죠. 사건 하나 생기고 나니 별다른 고민없이 즉각 법안 만들어졌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예요. 위헌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이상한 법입니다.

 바우처를 발행해 줄 것이 아니라. 극작가, 화가 등이 놀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어줘야 하는 것이죠.

 지반침하를 유도하는 정책이라고 해야겠죠.

 삼각지 같은 곳에 가 보면, 이곳이 미술계의 주안공단이나 남동공단 같은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초심자 아마추어 화가부터 홍대 교수까지 표구나 액자 제작을 맡기고 작은 그림을 사가기도 합니다. 무명 화가들에게 그림을 배우러 오는 사람들도 있구요. 회화나 서에 등 미술을 매개로 많은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서 돌아가는, 다양한 단면을 보여주죠. 모든 부문에 그런 것들이 쌓여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자체의 생태계로 살아 움직이고 돌아가는 모습 말입니다.

 어머나, 삼각지 미술동네 얘기를 들으니 엣생각이 나네요. 예전의 삼각지는 용산에 주둔한 미군을 상대로 한 초상화가 많던 곳으로 기억해요. 더불어 복제화도 많았지요. 물론 화구를 사러 그곳에 가야만 했지만 어린 제게 그곳은 아주 이질적인  장소였어요.

 정부 정책에서도 선순환구조를 만든다는 언급이 나오는데, 문화예술계만큼은 개입하면 할수록 선순환구조를 깨는 모양새가 됩니다. 뿌리고 쓰는 돈은 많아졌는데 남는 것이 없게 됩니다.

 박정희 정권 시절을 생각하면, 권율장군 사당이나 여주 세종대왕기념관 같은 곳의 기와집을 콘크리트로 지었잖아요. 관이 주도한 문화는 그런 모양새가 되어 갑니다. 

 그 당시 관제 주도 건축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지금이라고 특별히 나아진 거는 잘 모르겠어요. 세종문화회관 앞 지날 때마다 그 없이 살 때 대단하긴 했다는 생각이 들긴 해요. 국립극장, 김수근의 자유센터 등등, 시대적인 문화의 표징 같은 것들이죠. 

 세종문화회관 외벽 비천상 부조나 국립극장 1층 배흘림기둥 같은 것을 보면, 그 당시 이렇게 전통에 대한 강박에 시달렸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서양건축을 한국건축으로 만들기 과제. 

 그게 민족문화창달 리프로덕트 목표였던 거죠.
먼 미래에서 보았을 때, 21세기 경인지방에 살았던 우리의 문화를 상징할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63빌딩, 롯데타워, 삼성 강남 콤플렉스 등등이 있을 테지만 한국 디자이너에게 원청을 안 주죠.

 과도기여서 벌이지는 현상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가진 좋은 것들을 알아보는 눈이 아직 없어요. 얼마 전만 해도 금호아트홀에서 2만원이면 볼 수 있었던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좋은 공연에 민망할 정도로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쇼팽 콩쿠르에서 상 받았다고 하니까 난리가 났습니다. 콩쿠르 1등하기 전에 피아노를 못 쳤었던 것도 아닌데. 우리 문화 자산에 대해 우리는 잘 모르고, 외국사람들이 좋다고 하면 더 뜨게 되는 거죠. 과도하게 외국에서 보는 평가를 중요하게 여겨요.

 자신이 없어서 그렇죠. 외부시선 의존증 같이.

 문화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에도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이 외부의 시선에 있으니까.  

 자존감을 높여주는 정책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자존감이 없으니 나비축제 인기 있으면 여기저기 오만 곤충 축제 열고.

 문화예술회관 짓기 경쟁하고.

 군포 바로 옆에 산본이 있는데 각각 똑같은 문화예술회관을 가지고 있어요. 양질의 공연, 문화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을까요? 경기문화재단 연간 예산이 1억도 안되는데.... 지방 문화예술회관들 컨텐츠가 없어서 놀고 있는 곳이 많아요. 저렴한 것들을 문화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문화복지가 확대된 것처럼 홍보하고, 공연도 전부 떠돌이 상업적 기획사들의 것으로 채우고... 단양으로 떠나 밀밭을 가꾸는 극단이 왜 생겼겠습니까. 어차피 서울에도 관객은 없고, 문예진흥기금으로 연명하며 연극하고 싶지 않다는 자존심 때문인 거죠.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자생 시스템을 갖추는 데에, 동기부여하는 데에 돈을 써야 합니다. 무조건 퍼주는 정책 안 됩니다. 


 우리 문화예산이 적지 않습니다. 일본 보다도 많은 셈이에요. 

 군단위까지 문예회관 이제는 배고픈 거 채우고 푸닥거리는 했다고 보고, 이제 쓸데 없는 일들은 그만두고, 특색있는 것에 세금을 썼으면 좋겠습니다. 벽화 붐도 이제 다 경험했고. 얼마나 무의미한지 알게 되었잖아요. 만약 의욕이 있다면 작가가 1년간 머무를 수 있는 도미토리를 제공하고 의무적으로 전시회를 가지고 하나씩 작품이 쌓여 간다면... 이런 식의 발상이 중요한 듯합니다. 

 만약 연중무휴로 실내악 공연 할 수 있는 곳을 만든다면 어떨 것 같아요? 아무리 외진 곳이라도 우리나라 유일의 실내악 공연장이 될 수 있어요. 그렇게 되면 마을의 정체성도 달라질 거고. 잘 되면 오만 데 다 따라할지도 모르지만.....(웃음)

 얘기하다 보니 다시금 큰 그림을 그리게 되곤 하네요. 우리는 미술 쪽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니, 미술 관련 정책에 적용될만한 구체적으로 아이디어를 내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더 해봅시다. 그러면 우리가 원하는 바람직한 목표가 뭔지도 명확해지고, 시뮬레이션을 해서 장단점도 체크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SmartK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14 00:18

  

SNS 댓글

최근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