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18일
황정수,최열,윤철규
윤철규(이하 윤) 제가 일하는 동네 얘기입니다만, 요 며칠 아침마다 동네가 시끄럽습니다. 한 가게의 세입자가 집주인이 ‘나가라고 한다’며 앰프를 가져다놓고 ‘나갈 수 없다’고 시위 중인 겁니다. 어제는 집주인 쪽에서 부른 철거 직원들이 가게 유리창을 부수는 일이 일어나 서로 사진을 찍고 경찰차가 오고 큰 난리(?)가 났습니다. 자세한 얘기를 들은 것은 아니지만 주인은 주인대로 세입자는 세입자대로 모두 할 말이 있겠지요. 그런데 우리 사회를 보면 매사가 이런 식으로 극단적인 충돌을 거쳐야 문제가 해결되니 안타깝다는 생각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일은 비단 우리 주변 뿐아니라 미술계에서도 일어나고 있는데 시끄럽기만 할 뿐 좀처럼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모처럼 참석해주신 황 선생님께서 ‘최근 미술계의 5대 사건’이라고 말씀해주셨는데 시끄러운 사건 연발입니다. 이 일들을 보면 보면 모두 양쪽에 당사자들이 있어 제각기의 주장을 펴고 있어, 친하다고 해서 한쪽 말만을 들을 수도 없는 형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말 이런 갈등, 이해 상충의 문제에 대해서 극단적 처방, 방법 이외에제3의 해결방식은 없는가. 그런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면 제3의 시각, 즉 보는 방법을 달리해서 문제를 이해하는 방법은 없는가. 안타깝고 한편으로는 한심한 생각도 드는 문제들에 대해 얘기를 나눠보고자 오늘 이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사건1. 훈민정음 해례본
국보급 문화재인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은 2008년 처음 공개되었으나 소유권을 둘러싸고 민, 형사상의 소송을 겪어 오면서 행방조차 제대로 확인할 수 없는 상태이다. 들리는 말에는 국보 제 제70호인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본과 같은 판본이지만 상태가 좋으며 간송본에 없는 후대의 주석이 달려 있어 학술적 가치가 높다는 말이 있다.
사건2. 증도가자 진위문제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주장되고 있는 ‘증도가자’ 활자의 공개 이후 ‘이것이 위조된 것이다 아니다’라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분야의 전문가는 물론 국가 기관까지 개입돼 있어 논란의 결말 여부에 따라 어느 한쪽의 치명적 타격을 입을 것이란 점도 예상된다. 달리 만일 논란중의 금속활자가 증도가자로 최종 판명되면 세계에서 가장 앞선 금속활자가 된다.
사건3. 이우환 위작
2012년 한 위조기술자가 100억대의 이우환 작품을 위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이후 아직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 경찰은 현재도 위작품 유통에 관련된 수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한다. 한 주간지의 특집기사에는 익명처리를 통해 제작자와 유통자의 이름이 언급되고도 있다. 이에 따라 한국미술품감정협회는 이우환 작품에 대해 극도로 신중한 입장으로 작품 감정을 진행중이기도하다. 들리는 말에는 2000년대초 작가 본인이 현대화랑과 공간화랑에 자신의 작품 감정에 관한 권한을 위임했다고 하지만 이들이 위작 사건에 대해 언론에 이렇다 할 언급을 한 적은 없다.
사건4. 천경자 사망과 위작 문제 재현
근황이 궁금했던 천경자 화백의 사망 소식이 미국에서 전해지면서 과거 천 화백이 자신의 작품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작품의 진위여부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언론에 소개된 유족 측에는 작고 직전까지 천 화백을 직접 모신 것으로 알려진 큰 딸이 빠져 있어 의아한 인상인데 그 위에 과거의 위작시비가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사건5. 함평 추사박물관 건립 관련 의혹
전남도교육청과 전남 함평군이 추사김정희박물관을 짓기로 합의했으나 작품기증 사례비와 건립비예산 출처를 두고 잡음이 잇따르고 있다. 함평군은 안백순 이헌서예관 관장에게 추사 작품 69점을 기증받기로 하고 감정가로 제시된 204억원의 작품에 대한 사례비를 35억 지급하기로 책정했으나 군의회, 지방 언론 등에서 타당성, 적정성 문제 등을 제기하고 있다.
황정수(이하 황) 이 다섯 가지 사건들은 찾아오는 손님마다 제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 마디씩 물어보십니다. 사건이 하루 지나 하나씩 터지고 그 방면도 참 다양합니다.
윤 해례본, 증도가자 등의 문제는 몇 년째 끌고 있는데, 이런 문제에 대해 해결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는 사회 자체가 오히려 안타까울 정도입니다. 행정학에서는 ‘세상에는 모두를 만족시키는 정책을 없다’는 말이 있다는데 요즘 일을 보면 A 아니면 B, 두 쪽으로 나뉘어 버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제3의 길 모색은 없는가 답답합니다. 거기다가 많은 권위자, 전문가들까지 연루되어 대립하고 있으니 해결되더라도 누군가는 큰 상처를 받게 되고 권위가 손상될까봐 걱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거 아닌지 생각들 정도입니다.
추사박물관 건
최열(이하 최) 함평 추사박물관 관련해서 먼저 이야기를 해 보면, 기증이라는 형태로 작품을 판매하는 경우가 가끔 있었죠.
윤 사실상 기증에 약간의 사례를 하곤 하는데, 언론데 소개된 관례를 보면 국립이 30% 정도이고 2010년 제정된 군립미술관운영조례에는 10% 정도로 정해져 있습니다. 문제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조례를 수정해 수준을 올리려고 한다는 것이에요. 또 이번 추사작품 평가액은 69점에 204억원으로 상당히 높게 잡혀 있다는 점도 문제라고 볼 수 있겠죠.
최 현재 사례비로 35억 책정된 상태라고 하는데, 실제로 파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받는 셈일 겁니다.
황 10%를 받으면 20억 정도가 되겠죠. 그 지역에서 인맥이 있는 분이기도 하지만, 10% 주기로 했던 것에 조례를 바꿔 20%까지 가능하게 했고, 액수가 35억이 되면서 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 사실 더 큰 문제는 가격평가를 공정하게 했는지 하는 점일 겁니다. 진위평가와는 별개로 가격 평가는 기관이나 개인별로 차이가 있을 최수 있어 복수, 3배수 등 다양한 검증 과정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윤 기증이라는 것은 원론적으로 어느 정도 성공한 사람이 지역 사회에 보답, 기여, 공헌하기 위한 목적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런 점에서 높이 평가해주는 것일 텐데 이렇게 비즈니스 차원에서 접근하면 안 되는 것 같은데요.
최 추사가 함평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부터 따져야 합니다. 함평에는 신남일 의병장 같은 유명한 사람이 있으니 그런 인물의 기념관부터 건립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다른 것 건너뛰고 추사박물관을 짓겠다는 발상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관료든 교육자들이든 벌 받아야 합니다. 도대체 왜 함평에 추사박물관을 짓습니까? 유배 갈 때 그곳을 지나가서? 말도 안 되는 것이죠. 이런 유사한 사례들이 김창열, 이우환 미술관 등 여러 곳에 많은데, 국가의 공공성이 무너지는 거예요. 김창열 작품을 기증했다고 김창열 미술관을 짓는 인과관계가 왜 생기나요? 기증을 한 것에 끝나야죠. 작품 몇 개 받았다고 국민 세금으로 몇 백억을 들여 건물을 짓고 매년 몇 억씩 세금이 들여 운영하고.. 물론 화가 자신이 짓고 운영하면 칭찬할 만한 일이죠. 국민들의 소중한 세금이 현재 생존하여 돈을 어마어마하게 버는 작가와 거기 빌붙어 사는 화랑들의 돈벌이를 도와주는 데 쓰이는 셈인 거잖아요. 추사박물관도 비슷합니다.
윤 모델로 삼는다고 하는 미국, 유럽의 화가 이름을 달고 있는 미술관, 박물관은 대개 유족들이 생가 등을 지방자치단체에 기증하면서 기념관으로 만들어지는 경우입니다.
황 이번 일 같은 경우, 함평이 굉장히 작은 곳이고 접근성이 떨어지는데도 불구하고, 나비축제에 오는 사람들이 많으니 또다른 볼거리를 만들어보자 한다는 상당히 비문화적인 발상이에요.
최 지금 추진되고 있는 이런 잘못된 일들은, 책임자가 사죄하고 백지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럽도 생존작가 이름으로 국민세금을 들여 미술관건립을 해주는 일은 극소수죠. 사후에 전반적으로 공감대가 형성되고 국가적으로 평가받는 경우에 국민세금으로 하는 것입니다.
황 얼마 전 다른 일로 일대를 가면서 함평을 가 보았습니다. 이제 나비축제도 끝나서 오는 관광객도 없고 현지의 군민들도 거의 오지 않아 사람이 전시에는 관람객이 한 명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 지역에서 사는 분들이 이런 일들을 가치 있고 훌륭하다 생각할까요. 함평여중고 교육부지 기금으로 건물이 지어진다는 것인데, 교육발전에 지역발전에 어떤 도움이 될까요. 지역의 발전을 위한 것이라면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고 문화와 어울리는가 하는 것도 재고해서 결정해야죠.
천경자 미인도 사건
윤 천경자 미인도 사건은 유족 측에서 감정이 민감해져 누구라도 가족의사와 반하는 것에는 사자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하는 상황입니다. 위작에 관한 문제보다도 근대미술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큰 화가가 과연 말년을 어떻게 보냈는가 하는 점이 국민들이 알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는데, 언론에서 과거의 일을 꺼내들면서 다시 잠시 시끄러웠죠.
황 천경자 사망 관련해서는, 우리 문화예술계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예술인에 대해 관심이 의외로 적고 관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거에는 유명했지만 현재 활동이 없는 분에 대해서는 관심이 뚝 끊기는 경우가 많아요. 특정 몇몇 분들, 즉 작품 가격이 비싼 사람에 대한 관심은 지나치게 많고 말이죠. 동시대 사람에 대해 생존 여부조차 모르는 현실이 조금 아쉽습니다. 천경자라고 하면 가장 유명하고 대표적인 사람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근황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게 충격적이죠.
윤 사회가 영속성을 지니려면, 그 사회를 풍족하게 만들어준 나이든 사람에 대한 예우가 있어야 하죠. 미술에 있어서도 그런 역할에 대한 예우는 존재해야 합니다.
황 한묵 선생님이 100살이 넘으셨고, 장리석 선생님이 100살, 김병기 선생님이 100살이십니다. 이분들이 모두 살아계시는데, 다들 관심이 없어요. 몰년을 모르는 작가들도 많고.....
윤 일본에는 말년에 흐지부지된 작가들에 대한 책이 따로 있더군요.
황 저명한 경지에 있었지만 이제는 잊혀진 분들 많습니다. 그러한 경우 삶이 고달프죠. 작품이 많이 팔리지 않고 본인이 소장하고 있는데 처치 곤란인 경우도 많습니다.
최 천경자 유작시비 재현은 소모적이고 무의미한 일이라고 여겨집니다. 그 작품은 천경자를 평가하는 데 큰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대표작 반열에 끼어야 하는 작품도 아니고. 뭔가 평가를 달리 할 수도 있는 결정적인 작품이라면 사회적 대가를 치르더라도 해결해야 하지만 그런 정도라고 보이진 않아요.
황 반 고흐는 유사한 작품이 많아 그 진위를 완벽히 따지지 못하는 경우에 논란이 되는 것도 같이 전시를 하기도 하고, 의견을 발표하기도 하는데, 우리는 이런 논란이 되었을 때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흘러 버린다는 느낌이 듭니다.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 폭넓어졌으면 좋겠어요. 논란의 상황으로 남아 있어도 괜찮을 수도 있고.
이우환 위작 사건
윤 인사동에 얘기가 돌아다닌 지는 몇 년이 되었죠. 경찰 수사도 했었다고 하고.. 어찌 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최 천경자 사건과 다른 점은, 작가가 자신의 작품이 맞다고 하는 데도 주위에서 ‘아니지 않느냐’고 말하는 상황이죠. 명예 훼손과 관련될 수도 있어서 조심해야죠.
황 논란이 되는 지점은 작품의 진위 문제가 생겼을 때 작가가 판가름하는 것이 옳은지 감정기구가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인지....
윤 일본에서는 주요 화가의 그림에 대한 진위문제는 각 화가들 자신이 하거나 해당작가가 진위문제 감정을 맡긴 곳에서 대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족이 다루지 못할 경우는 수제자에게 맡긴다든가... 작가 개인에게 맡겨진 셈이고 동경미술구락부 같은 곳에 상설 감정기구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케이스마다 그 분야 전문가들을 모아서 참고 의견을 제시하는 정도로 하죠.
황 이우환 선생의 작품 가격이 가장 높고 찾는 사람도 많다보니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주로 일본에서 활동했으니 일본의 경우처럼 한국에서 감정에 대한 것을 현대화랑과 공간화랑에 넘겨준 것 같습니다. 그로 인해 문제가 생겨나는 것이, 현재 어마어마하게 많은 작품이 팔린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작품의 진위에 대해 궁금증이 생길 수 있고, 한국에서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 감정기구에서는 감정을 할 수 없는 것으로 되고...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것이죠...
윤 생존 작가의 경우는 진위 문제가 생기면 본인이 해결하는 게 원칙이죠. 작가가 모두 ‘맞는다’고 하면 그만입니다. 작품이 너무 많아 작품가격이 내려가는 것도 결국은 작가 책임될 테니까요.
최 19세기, 근대 시기까지만 해도 작가 스스로 작품을 창작해내는 오리지널리티, 신체성, 직접성 등이 있었지만 20세기 뒤샹 이후로는 본인의 손으로 직접 작품을 만들어내지 않아도 작품의 진품성은 얼마든지 보유할 수 있죠. 작가는 단지 아이디어를 내는 역할을 하고 공장에서 만들어내고... 이우환 작가 자체가 현대 컨템퍼러리 작가잖아요. 남들이 그린 건데 내가 내거라고 규정하든 어쨌든 그것은 이우환의 것이 되는 거죠.
황 현재 모노크롬 대부분의 작가들 하종현, 박서보 등등도 직접 그리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 그러니 본인이 진품이라고 얘기하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죠. 이 이우환 논란도 의미 없다고 봐요. 재산상 손해를 보는 사람도 없을 테고. 많은 사람들이 많은 작품을 가짜라고 주장하고 나섰을 때라면 사회적 파문이 있을 수 있지만. 호사가들의 말들일 뿐입니다.
증도가자 진위 사건
최 증도가자 활자의 경우는 진위 여부를 떠나 이것이 학술적인 논의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이니, 장기간 논란이 계속되더라고 의미가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황 다만 학문적 풍토는 생각해 봐야 되긴 해요. 누구든 자신에게 유리한 주장을 굽힘없이 끝까지 밀고나가기만 할 것인지, 공개적으로 오픈하고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해야 하는지. 과정에서 문제가 없지는 않아요.
윤 고미술계 관행 중 안 좋은 점이 이번 일을 조장했다는 측면이 있습니다. 미공개작이 손에 들어오면 대개는 관련 분야의 학자를 하나 끼고 폐쇄적으로 다루면서 언론을 끼고 ‘팡’ 하고 크게 한번 터뜨립니다. 그렇게 되면서 유물이든 작품이든 가격을 올라가 갑니다. 고미술계에서는 이런 일을 오랫동안 되풀이해 왔습니다. 그 과정에는 우리가 바라는 대로 치밀하게 학술적으로 검증할 기회가 충분히 포함됐다고 보기 힘듭니다. 증도가자가 국보급이라고 하면 처음 에 이것을 알게 된 학자가 자신 이외의 전문가들과 연구팀을 구성해 공동 프로젝트로 진행되어야 했던 것이 아닐까요. 독점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학문적 욕심도 있긴 하겠지만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면 석연치 않은 점이 있을 수 있어요. 오래된 관행에서 빚어진 일 때문에 첫 단추는 잘못되었지만 수습하는 과정에서 이제 각 방면의 연구자들이 달라붙어 연구, 조사중이니 잘 진행되길 바랍니다.
황 현재 논의의 중심에는 서지학자가 서 있는데 새로 나온 유물은 사실 금속유물이니 이것을 다룰 수 있는 학자 의견이 보충돼야 합니다. 서지학자가 문헌을 다루는 것과 금속 유물을 다루는 것은 매우 다른 분야죠. 문화재 중 감정 문제 가장 어려운 게 금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위적으로 변조할 수 있는 점이 크기 때문에 불상, 공예품 등도 다 판단이 어렵습니다. 출처도 명확하지 않아서...
윤 직지보다 백년 앞선다면 국보급인데 말이죠. 문화재연구소 등이 공동으로 했어야 합니다. 희귀성에 피해를 입을까봐 그런 건지...
황 업적주의 때문이겠죠. 활자 개수가 백여 개라고 하는데. 현재 국과수에서 상황을 분석해서 발표한 것까지는 좋은데, 사실상 백 개가 넘는 것들이 한 번에 나온 게 아니라고 합니다. 경우가 다양해서 이제는 그중에 어떤 것은 맞지만 어떤 것은 아니라는 둥 혼란스러운 상황입니다.
윤 시작이야 잘못되었지만 학술단체, 연구기관이 달라붙어서 조사 중이니 국민은 연구결과 조사 발표를 지켜볼 수밖에 없습니다. 고려시대부터 여태껏 묻혀 있었던 것이니, 올해 알려지나 내년에 알려지나 큰 상관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겠지요.
황 요즘 참 발견되는 것이 너무 많아요.
최 추사 작품도 비내리듯이 새 작품들이 쏟아져요, 근래에. 뭔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황 추사작품 진위의 문제 가운데 임모와 관련된 것이 많은데 참 까다로워요. 조선시대에는 임모(臨模)라는 것을 통해 원본을 최대한 근사치로 떠내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추사 작품이라고 등장하는 것들 중 많은 것이 임모작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현대에 와서 만들어진 가짜라기 보다는요. 뚜렷한 증거들이 등장해도 많은 사람들이 진품으로 여기고 싶어 하니 점점 작품 수가 많아지는 거죠.
훈민정음 해례본
윤 마지막으로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볼까요. 이게 사실인 것으로 확정되어 나온다면 국가적인 경사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몇 년 째 사람들의 욕심 때문인지 어지러운 상황에 의해 제대로 빛을 못 보고 있어 안타까워요.
황 다른 사건과 달리 이것은 국가적 차원에서 생각해야 할 큰 문제입니다. 대한민국이 자랑할,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한글 아닙니까. 국민들 대다수가 국보를 다시 편성한다면 훈민정음 해례본이 되어야 한다고 얘기하는 상황에서 등장했는데, 국가적 차원의 옳은 행위가 이뤄지지 않고 장사치가 연루된 사기 사건으로 다뤄지다니... 귀중한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예우가 아닙니다. 만일 다른 앞선 나라들에서 이런 일이 생겼다면 같은 상황이 만들어졌을까. 자기반성하게 됩니다.
윤 소장자가 천억을 달라는 주장을 했다는데...
황 가지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귀중한 문화재를 가지고 있음에도 1년간 옥살이를 했으니 그에 대한 분노가 있었던 것 같아요. 문화재청에서 이를 발표하면서 그 가치가 1조원이라고 얘기한 바 있으니, 기증할테니 그 10분의 1인 천억 원을 달라, 이렇게 된 것이죠. 사실이라고 보면 우리나라의 최고 문화재가 천억도 안 될까 생각하게 되죠. 얼마 전 모딜리아니 그림 한점도 1,980억 원에 팔렸는데 말입니다.
윤 국제사회에 알려지면 어떤 반응이 있을까요? 사실 서양에서 마그나카르타 같은 정도의 중요성이 있다고 본다면 말입니다.
황 만일 이게 천 억이라고 한다면 단일 품목으로는 큰돈이기는 하지만 나라에서 문화재를 사들이는 데 드는 돈으로 그렇게 많은 돈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중국은 자국 문화재를 많은 돈을 들여 국가에서 매입하고 있어요. 만약 다른 나라에서 발견됐다면, 혹은 다른 나라 거부가 사들인다고 하면 어떤 파장이 올까요. 국내에 하나 있었던 간송본 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일 수도 있는데 그것조차 학자들이 볼 수 없는 상황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 것인가 국가에서 나서서 고려해야 하는 일입니다.
최 소장자의 문제가 있건 없건 그 물건을 천억을 주고서라도 국가가 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많은 모딜리아니 작품 중 한 점이 천구백억원인데, OECD 가입국인 한국이 저 중요한 것을 사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뇨. 1조원이라도 주고 사야 맞습니다.
황 천억 요구한다 했을 때 잘됐다 싶었어요(웃음). 일반인들에게는 큰 것 같지만 나라의 보물을 사들일 때는 무리한 것은 아닙니다. 그 말이 나왔을 때 얼른 샀으면 좋겠어요. 만일 이렇게 끌다가 망실된다면 국가의 책임이 상당히 큰 것입니다.
윤 사회 전체적인 역량이 부족해 보여요. 정부 주변에 원로 학자, 전문가들이 포진되어 있고, 그 사람들이 문화재청 등 자문을 해주고 있을 텐데....
최 문화관광부 장관이 할 일이 바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문화예술관련 행정수장으로서 이런 작품을 1조라도 주고 사야 한다고 각 부서를 설득하고 다녀야 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장, 담당 학예사. 문화재청장 이런 이들도 책임감을 갖고 목소리를 높여야 하구요. 삼성 같은 곳이 나섰다면 바로 샀을 거라는 생각마저 들어요.
황 제 예상이지만 리움의 경우는 간송과 대비했을 때 부족했던 이런 문화유산을 소장하고 싶을 겁니다. 나라의 눈치가 보여서 안 움직이지.... 이것이 리움으로 간다면 리움 위상이 얼마나 높아지겠습니까. 훈민정음 해례본이 박물관에 있다는 것은 ‘모나리자’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죠. 이게 만약 리움에 가게 되면, 국박에는 없는데 리움과 간송이 가지고 있는 셈이 되는 거죠. 상징적으로라도 국박에 가야 맞아요. 나라의 체면이 걸린 일입니다.
윤 새롭달가 다르달까 하는 시각으로 보니 복잡한 일들의 또 다른 측면들이 보이네요. 개인은 욕심을 버리고, 국가는 해야 할 일들을 제대로 하고, 대의를 위해 큰 그림을 보면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바쁘신 가운데 시간 내주시고 의견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