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 : 최열 정준모 조은정 윤철규
일시 : 2015. 9. 22 월 10:00-
윤철규(이하 윤) 명절 전 바쁘신데 뵙자고 했는데, 긴급 제안이 하나 있어서입니다. 요즘 국감도 열리고 있지만, 정책적인 미스에서 시작되어 잘못되는 일이 너무도 많은 것 같습니다. 저희가 그동안 미술계 내에 엉켜있는 문제에 이야기를 많이 나눠왔지만 국가의 문화예술 정책에 대해 현장에서 느끼는 바를 좀 더 심도 있게 이야기를 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정준모 선생님의 제안도 있고 해서 말이죠. 나름대로 한국이라는 나라가 세계 속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가 있는 만큼 문화정책도 그에 뒤따르는 모습 보였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할까요. 문화예술 정책 전반에 대해 토의함으로써 입안과 집행하는 쪽에서 참고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문화예술 정책들을 점검하고 가능하다면 바람직한 대안을 얘기하는 자리를 순차적으로 가져봤으면 합니다.
정준모(이하 정) 취지에 대해 보충설명을 하자면... 문화예술계, 미술계에 드러나는 여러 가지 현상들을 보면서 우리는 비분강개할 때도 있고 어이없을 때도 있고, 간혹 박수칠 때도 있죠. 왜 이건 이렇게 되고 저건 저렇게 돌아가는가 하는 얘기들을 합리적으로 이끌어내서 대한민국 시각문화의 정책에 대해 나름대로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우리의 책무, 해야 할 일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정책에 대해 말을 하면 좋은 얘기들을 해도 불평불만자들의 투덜거림으로 들리기 때문에 다방면으로 깊이 있게 얘기하면서 대안도 고민한다면 그저 불평불만이라고 여겨지진 않겠지요. 우리들이 그동안 이야기해 온 것들이 다소 불평불만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저는 비판을 위한 비판이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나름대로 합리적 근거가 있었고 대안도 제시하려고 노력했지만, 명징하게 정리가 되지 않고 그저 코너 제목처럼, 잡담처럼 흘러가는 얘기가 되어버린 건 아닌지 안타까워요. 내용이 진지한데 이런 진정성 있는 문제 제기가 외면당하는 것도 같고..... 기왕 시간 내서 이야기하는 거니까 이번 기회에 한국의 문화정책을 전반적으로 돌이켜보고 순서대로 문제점을 적시하고 토론해서, 의미있는 정책 대안 방향을 제시했으면 합니다.
윤 그동안 해온 우리 좌담회, 미술계雜담이 여러 주제를 다뤘지만, 각 주제마다 미술정책의 결과, 현상으로써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부분이 드러난 경우가 많았죠. 정책이 미술계 문제점들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보신 듯합니다.
최열(이하 최) 정책 컨셉이 없는 사람이 장관이면, 우아하거나 진지하거나 어떤 말을 해도, 대안을 제시한다해도 마이동풍일 거고, 그건 도리가 없겠죠. 다만 이 ‘잡담’은 우리에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는 의미로, 그러한 가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 정책 마인드에 대한 말씀이신데, 여러 분야가 그렇지만 특히 문화 정책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을 먼저 세워놓고 일을 하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당장 9월 부분적으로 개방한 광주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무엇을 목표로 해서 어떤 문화적 전략 속에서 그런 결과를 얻었는지, 분명치 않은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사안에 대해 비판하고 방향제시한다고 해도 정책에 대한 개념이 없는 사람들한테 얘기해 봐야 소용이 없겠죠. 매번 사건이 있을 때마다 한 마디씩 하고 말 게 아니라 이런 얘기들을 정리를 하고 현실에 적용될 수 있게 더 노력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설렁탕의 맛을 얘기하면서 그 위의 파만 가지고 얘기할 것이 아니라 사골과 물, 솥단지, 불에 대한 얘기를 해야 되는 것처럼요.
윤 우리나라의 문화 관련 예산은 다른 나라에 비해 적지 않은 편입니다. 그런데 그 귀한 예산을 가져다 쓰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을 가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돈을 쓰더라도 좀더 효과적으로 썼으면 좋겠습니다. 얼마전 중국 전승기념식을 대대적으로 열기도 했는데, 과거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 중국의 영향이 한국에 절대적이던 시절을 떠올릴 정도로 중국의 존재가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일본도 자기 세력 구축에 여념이 없는 상태에서 한국이 정치적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어떤 아이덴티티로 그 사이에서 버틸 수 있을까가 점점 중요해질 겁니다. 장기적 비전과 그에 따른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겠죠. 그 내에서 정책들이 나와야 하는데, 그 많은 돈을 가져다 술술 풀기만 하고... 미래에는 문화예산 자체가 줄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이 정책을 재조정해 보고 어떤 것이 문화정책의 목표인가 논의해볼 만한 적기라고 봅니다.
최 예산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전체 예산 중 문화 예산이 1퍼센트가 되어야 한다는 등의 말은 근거가 모호합니다. 문화 정책 방향이 올바르다면 방법도 올바르게 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겠죠. 늘 생각하고 말해왔던 것처럼,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산업으로 보자면 도로, 항만, 전기 등의 기간산업을 만드는 일입니다. 국민 세금은 그렇게 쓰여야 하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에 대해 직접적으로 국가가 지원해 주는 것은 범죄행위입니다. 문화 쪽에서도 마찬가지로 창작자에게 직접 지원해 주는 형태로 국민 세금을 사용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문화예술 인프라 구축에 세금을 써야죠. 현재 단체나 개인 프로젝트, 작가 작업 등에 지원비를 마구 대어주면서 국민세금을 낭비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인이나 집단이 한 일에 대해서는 사후지원을 해서 잘한 일을 지지하는 모양새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것이 문화정책 기조가 되어 예산이 책정되어야 하는데 현재는 자본주의 공동체를 배반하는 마인드로 나아가고 있어요.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 거슬러 올라가면 박정희 때부터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때 문화예술진흥법, 문화예술진흥원 같은 것들이 만들어졌죠. 그 때가 정부주도의 경제 성장기였던 것처럼, 여력이 없을 때니 문화도 다른 분야도 거의 정부지원과 주도로 발전을 해가는 분위기였습니다. 민족기록화 사업 등 마셜 플랜에서 따온 지원책도 있었고.... 88올림픽 이후 사회에 큰 변화가 오게 되고, 문화에는 민족적 아이덴티티와 글로벌화라는 양면적인 화두가 떠올라요. 이러한 딜레마 안에서 정책이 세워졌습니다. 문화예술예산이 1%든 10%든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인데.... 내 몸을 위해 보약을 먹을지, 운동을 할지, 눈깔사탕을 사먹을지 결정을 해야 하는 거죠. 눈깔사탕을 사먹으면 당장은 맛있어도 건강을 해칠 게 분명하잖아요. 무엇을 위해 돈을 쓸까가 정책이 되어야 하는데 그냥 돈을 어디에 쓸까 둘러보고 결정할 뿐이에요. 목적, 목표가 분명치 않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박정희 정권에는 “민족문화창달”이라는 분명한 기조가 있기는 했잖아요. 새마을운동은 “잘살아보세”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분명했고. 지금 수없이 많은 캐치프레이즈가 부처마다 동네마다 있기는 하죠. 문화부는 문화융성을 하겠다고 하는데 문화융성이라는 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확실한 목표와 꼴, 어젠다, 미션이 정리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다변화, 다문화 사회가 되어가고 국민소득이 선진국에 반열에 들어서려 하고 있으니 문화정책도 선진국형으로 바뀌어야만, 삼만불, 오만불 시대를 열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조은정(이하 조) 우리에게 문화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1960년대에 문교부가 문화공보부가 바뀐 것으로 ‘문화’가 대외선전용으로 전락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65년 지방문화조성법이 생기면서 문화는 지방 국정 홍보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결국 국가가 ‘문화를 진흥한다’는 명목 하에 자금을 가지고 국정을 홍보하게 된 셈입니다. 국가 홍보 차원에서 문화 기금을 써 왔던 경향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물론 세종문화회관 건립이나 대규모 행사 주관, 문화부 재출범 등의 과정을 지나기는 했지요. 하지만 여전히 교육과 문화 양대 산맥 중에서 문화는 ‘문화관광’, ‘문화체육’ 이런 식으로 여겨져 온 것을 보면, 대한민국이 문화를 무엇으로 규정하고 있는가를 얘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문화산업 개념을 받아들여 와서 영화 한편 자동차 몇 대 등으로 비교하기도 했지만 고용창출 등을 생각하면 꼭 그렇게 단순비교 할 것도 아니죠. 허구의 숫자들 속에서 문화의 힘 등을 냉정하게 짚고 넘어가 보고 싶습니다. 기간산업처럼 근본으로 자리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논의해야 한다고 봅니다.
정 1960년대 공보 업무가 문화와 묶일 때의 가장 큰 이유는, 당시 해외에서의 북한과의 체제 대결에서 한국이 상대적으로 홍보가 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해외에 부채춤 공연을 간다든가 하면서 문화를 공보 업무에 써먹기 시작했죠. 기본적으로 깔려 있었던 것은 “민족문화”라는 개념이었어요. 이후 창비가 등장하고 “민족문화”라는 것이 참여문인들에게 더 많이 사용되기는 했지만.
조 그건 이데올로기적인 것이었죠.
정 어떤 이데올로기건 간에 “민족문화”라는 용어를 함께 썼습니다. 지금은 민족문화라는 공유점은 없어졌다고 봐야죠.
조 이제는 “민족문화”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습니다.
정 사라지고 달라졌는데 대체할 세력을 안 만들어서 공중에 붕 떠버렸다고나 할까요.
조 천박한 자본주의와 결합된 상업적 문화만 남고......
윤 중국의 영향에서 놓였다가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겪고, 지금 다시 중국의 득세를 지켜보고 있는데, 돌이켜보면 그 사이의 기간 동안 우리는 미국 문화의 영향을 압도적으로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까 말했던 것처럼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고 우리의 아이덴티티를 지키기 위해서는 여력이 있을 때 빨리 한국의 독자 문화를 만들어내고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지원할 시기입니다. 경제가 점점 위축되고 문화예산이 줄고 있는데 더 늦어지면 안 될 것 같아요.
정 앞으로는 사회가 변화하면서 복지예산이 증가할 테고, 문화예산이 그쪽으로 빠질 수밖에 없어요.
윤 ‘시민문화’라도 좋고 ‘한반도의 문화’라도 좋고, 다른 여러 문화공동체와 동등한 어떤 컬러를 보여주고, 어떤 의미를 드러내고 하는 일들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정책이 조정이 되어서 바탕을 깔아주는 역할을 수행해야죠.
최 민족에 대해 좀더 이야기할까 합니다. 1980년대 이후 서구 지식인들에게는 새로운 지식 패러다임이 필요해졌습니다.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고 사회주의 국가가 몰락하는 과정에서 팍스아메리카나의 물결이 전지구적으로 확산됩니다. 그 전단계로 제3세계론이 서구자본주의에 맞서게 되기도 했죠. 서구는 사회주의 전선 등이 흐트러지면서 무기력화되었고,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로 통합하는 과정이 필요하게 됩니다. 거기에서 나오는 철학적 패러다임으로서 민족 패러다임 비판이 등장합니다. 민족을 비판함으로써 저개발국가나 사회주의 국가를 부수고 파편화시켜나갔습니다. 진보지식인들이 거기에 앞장섰죠. 진보 쪽에서 ‘민족은 반역이다’라고 라면서 민족을 파괴하면서 동시에 서구에 추종하여 거기 편입되는 상황을 가속화시킵니다. 즉 90년대 진보주의자들이 박정희의 ‘민족문화 창달’을 파시즘과 연결시켜 ‘민족’ 개념을 부정하는 독재 반민주 전선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공동체 개념이 희석되고 파괴되었죠. 민족과 관계없이. 수 천 수 만 년, 종족에서 확장되어 이곳에서 살아온 공동체의 문화적 아이덴티티를 파괴하고 서구를 추종하는 세력으로 근본을 바꾸는 작업을 한 것입니다.
조 광복 이후 살아남기 위한 합리적인 방법으로 민족문화창달을 꿈꿔왔는데 어느 순간 정세 속에서 정치에 이용되고, 민족문화 창달을 위한 작업들이 정권에 충성하는 모습으로 비춰졌기 때문에 공교롭게 그렇게 된 면이 있습니다. 순수한 개념 만으로 더 넓게 생각하지 못한 상황에서. 정치적으로 이용되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들을 극복하고 이제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 따져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정 어느 것이나 득과 실 양면이 있지만 따질 것은 따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짚어야 할 부분은 첫 번째, 우리나라 문화정책이 지금까지는 국가주도형, 말하자면 사회주의형이 었다는 부분입니다. 자본주의 대한민국과 배치되는. 두 번째, 이제는 개발도상국 때 그랬듯이 백성이 우매하여 관료가 주도해야 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백성이 깨어있어 그들을 지도할 때입니다. 소득수준도 그렇고 그에 맞는 문화정책이 있어야 합니다. 세 번째, 이제 노령화사회로 들어가면 분명히 많은 재원이 복지로 가게 되고 문화예산이 줄어드는 상황이 올 것입니다. 문화정책 전환기의 문화정책에 대해 이야기해야 합니다. 이 세 가지 현상은 당분간은 계속될 거예요. 네 사람이 별로 영향력은 없지만 지속적으로 이어나가서 하나의 발언으로 묶어두면 정책 전환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해 봅니다.
조 저는 문화와 함께 교육도 논의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문화 활동이 개인 차원으로 많이 이동되었는데, 경제적인 상황에 따라 양극화가 일어나 부유한 아이들은 문화를 많이 향유하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과거보다도 문화를 더 접하지 못하게 되었어요. 문화도 그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것이니까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최 실천 기조로서의 ‘민족문화 창달’이 더 이상 맞지 않게 된 이때 전환기에 처한 문화 개념을 떠올려 본다면, 지금 현단계에서는 종족 공동체의 정체성을 문화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결국 국가 단위의 공동체가 되겠죠. 좌익, 우익, 파쇼 제국신민이 생각하는 민족 개념을 “공동체”로 다시 녹여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윤 유럽에서도 EU로 인해 여러 민족이 한 울타리 안에 묶이게 되면서 이런 문제가 많이 제기됩니다. 독일 같은 경우는 ‘독일 영토 내에서는 누구나 동질의 복지 문화를 누려야 한다’는 개념의 ‘헌법공동체’를 얘기합니다. 인종적, 종교적 차별 없이. 저도 공감합니다. 다른 나라는 외국에서 온 아이들은 수업료를 더 내야 하지만 일본은 같은 비용으로 동일한 교육을 받을 수 있어요. 다문화사회가 되면서 모두를 고려한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개념으로 공통의 헌법적인 가치를 공유한다는 공동체 헌법적인 개념이 필요해졌습니다.
정 옛날 국가간 교역이나 이동이 적던 시절과 달리 지금은 국경이 사라져가는 사회가 되었죠. 같은 헌법의 영역의 공동체에 동의합니다. 문화정책을 새롭게 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가 하나 더 생기는 셈입니다. 한국사회도 다문화 다민족 국가가 되어가는데, 외국인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곳이 게토화되는 등의 문제가 많이 드러납니다. 문화가 이런 문제들의 해결책으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문화라는 것은 마치 물처럼 흘러들어가서 틈을 메꿔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간극을 크게 느끼지 않고 채워낼 수 있다는 점입니다. 무조건 진흥을 하면 된다, 융성을 하면 된다 할 것이 아니라, 뭘 할 건가. 나와 우리에게 어떤 변화가 생길 건지를 고민하는 정책이 되어야합니다.
오늘은 프롤로그 형식으로. 왜 문화정책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가를 이야기하는 정도로 마무리하고 이후 논의할 내용들을 정리했으면 좋겠어요.
조 문화 전반에 대해 이야기하게 될까요? 아니면 미술에 한해서?
윤 어차피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미술 정책을 중심으로 문화예술정책에 대해 얘기하게 될 듯 하네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앞으로 이야기할 주제를 정리하고 공유한 후에 이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