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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주리가 보는 세상] #3 마음의 저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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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마다 나는 대동강 물을 팔아먹었다는 봉이 ‘김 선달’을 생각한다. 그야말로 세상의 좋은 물들을 병에 담아 파는 생수 산업의 원조가 아닐까? 

내가 개인전을 함으로써 맨 처음 화가로 불리기 시작한 1981년, 그 때는 대한민국에 저작권이라는 단어가 없었다. 누군가 내 그림이미지로 달력을 만들면 달력 몇 개 받고 거꾸로 고맙다는 인사를 했던 시절이었다. 저작권의 시대란 예술이 제대로 대접받는 시대를 의미한다. 

그럼에도 아직은 그 의미와 파장이 혼돈스럽다. 요즘 사진작가 리차드 프린스의 저작권 분쟁이 한참 논란 중이다. 리챠드 프린스는 많은 이들이 인터넷에 올리는 인스타그램들 중 재미있는 것들을 뽑아  사진을 다시 찍고 약간의 자기 스타일로 변형을 하는 컨셉으로 작품을 만들어 자기 사인을 헤서 구만불이 팔았다한다. 이에 화가 난 인스타그램을 올린 일반인 취미 사진가는 자기 사진을 조금 변형한 리차드 프린스의 사진을 그대로 뽑아 구백 불에 떨이로 팔았다. 이에 저작권 논란이 일고 법정은 사진작가 ‘리챠드 프린스’의 편을 들어주었다. 

이유인즉슨 사진 작가는 자신의 컨셉으로 남의 사진을 변형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으니까 저작권에 위반되는 것이 아니며, 그 똑 같은 사진을 그대로 싸게 판 취미 사진가는 저작권 위반에 해당된다는 것이었다. 사실 저작권을 문제 삼으려면  현대미술은 그 대부분을 아프리카미술이나 세상의 원시미술들에 그 빚을 지고 있다. 피카소도 모딜리아니도 자코메티도 위대한 아프리카 원시미술에 저작권료를 내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리챠드 프린스의 저작권 논란의 예에 의하면 아프리카 미술을 재해석한 현대 미술가들은 적어도 저작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 

자신만의 예술적 시각으로 재해석했기 때문이다. 익명의 위대한 원시 예술가들은 고대벽화나 건축물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지 않았다. 그것들은 다 신에게 받쳐진 겸허하고 절실한 제물이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생겨난 이후로 모든 예술품이 상업화되면서부터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생기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제 어떤 인쇄물도 작가의 허락 없이 이루어질 수 없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가끔 나는 이래도 되는 것 일까 하는 의구심에 빠질 때가 종종 있다.  

2003년 인사동 노화랑에서 ‘안경에 관한 명상’ 전을 열었을 때 일이다. 전시가 끝나고 어느 중학교 미술 교사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았다. 학생들에게 집에서 돌아다니는 안경 하나씩을 가져오라 해서 그림을 그리게 하고 그 안경들을 백호 크기 캔버스에 다 붙여놓으니 그럴듯한 작품이 되었다했다. 그 컨셉으로 중학교 미술교과서에 ‘안경에 그림을 그려봅시다.’ 라는 주제를 실으려하는데 허락해 주십사하는 내용이었다. 듣는 순간 나는 왠지 불편했다. 왜 많은 학생이 굳이 안경에 그림을 그려야하는 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나로서는 몇 십 년간 안경을 수집해왔고, 그 안경들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80년대 말 동유럽 여행길에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가득 쌓여있는 유태인들의 안경을 보면서 세상에서 가장 슬픈 20세기 최고의 설치미술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오랜 세월 그냥 좋아서 수집해온 안경들에 그림을 그리면서 나는 이 세상에 이유 없는 행위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 수집한 안경들로 작품을 하게 되리라고는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솔직히 나는 미술 교과서에 ‘안경에 그림을 그려봅시다.’라는 주제로 내 아이디어가 도용되는 게 싫어서 단박에 거절했다. 그리고 몇 년 뒤 미술 교과서에 내 허락 없이 그 주제가 실린 걸 보게 되었다. 참 불쾌했다. 

내 안경작업에 어느 네티즌이 달은 댓글을 보면서 더 불쾌했다. “중학교 아이들도 하는 이러 작업을 화가가 하다니 실망이다.” 차라리 그 미술교사한테 허락을 했더라면 ‘황주리 안경 그림에 아이디어를 얻은 미술시간’ 쯤으로 교과서에 실렸을 것이 아닌가? 적어도 내 안경그림을 싣고 그 옆에 학생들의 안경그림을 싣는 게  옳지 않을까? 섬세하고 예민한 예술가들은 오늘도 매순간 상처받는다. 상처를 준 사람들은 그게 왜 상처를 주는 지도 모르면서 하는 일이다. 저작권이란 이 섬세한 예술가들을 보호해주는 법이다. 하지만 위의 경우 저작권에 위반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섬세한 예술가들에 대한 예의쯤이라고 해두자. 그러니까 나는 법적인 저작권이 굳이 아니더라도 예술가의 마음의 저작권을 허용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뭐가 맞는 건지 누가 옳은 건지 헛갈리는 어수선한 세상이다. 때로 어느 작가가 먼저 한 작업을 더 유명한 누군가가 자신의 작업 스타일로 만들면 더 유명한 작가의 작업으로 인정받게 된다. 하긴 모든 발명품들도 그렇지 않을까? 말하자면 운 좋은 사람이 이기는 거다. 

마음의 저작권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서 나는 2008년 교육방송 테마 기행 차 떠났던 스리랑카여행을 떠올린다. 수많은 불상들을 보면서 나는 그 때만해도 그 불상들이 내 작업과 무슨 연관이 있을지 생각지도 못했다. 그 뒤 라오스와 캄보디아와 베트남을 여행하면서 거꾸로 우리나라의 부처상들도 제대로 돌아보게 되었다. 우리보물 반가사유상은 그 유례가 없는 독창적인 불상이라는 것도 세상의 불상들을 구경하면서 알게 되었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에 가면 천불 상 박물관이 있다. 천분의 불상들의 얼굴은 옛날 옛적 그 지역의 농민들의 얼굴들을 조각한 것이라 했다. 그 온화한 인간적인 얼굴들에 나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후 나는 내 자신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현대적 불상들을 그리는 중이다. 그러면서 앙코르와트에서 만난 그 천불 상들에게 마음의 저작권을 빚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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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황주리
평단과 미술시장에서 인정받는 몇 안 되는 화가이며, 유려한 문체로 ‘날씨가 너무 좋아요.’ ‘세월’ ‘땅을 밟고 하는 사랑은 언제나 흙이 묻었다.’등의 산문집과 그림 소설 ‘그리고 사랑은‘ 등을 펴냈다. 기발한 상상력과 눈부신 색채로 가득 찬 그의 그림은 관람자에게 강렬한 기억을 남긴다. 그것은 한 번 뿐인,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우리들의 삶의 순간들에 관한  고독한 일기인 동시에 다정한 편지이다. 


황주리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14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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