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열, 정준모, 조은정, 윤철규
2015년 8월 13일 목요일 10am
윤철규(이하 윤) 여름이 절정을 지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가을이 전시의 계절이라고 했었는데, 요즘은 주 고객이 학생층이다 보니 여름방학이 주요 시즌이 되었지요. 여름방학이 종반으로 치닫는 가운데 오늘은 지난 2015년의 주요 전시를 중간점검 해 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전시들을 가볍게 얘기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어떠셨나요?
정준모(이하 정) 많은 사람들이 호응을 보여줬던 전시 중에 <프리다 칼로>전(소마미술관) 이 떠오릅니다. 전시 자체에 대해서는 만족한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전 세계를 순회하는 전시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었던 것이구요. 작품을 소장한 베르겔 재단에 대해서는 훌륭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부부가 자신들이 가진 수많은 작품들 중 세계적으로 유명한 것들은 메트로폴리탄 등 큰 미술관에 기증을 했어요. 그리고 이렇게 남은 칼로와 리베라의 작품 그리고 멕시코 현대 작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된 소장품 대여를 해 생기는 수익으로는 멕시코 작가들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뜻이 본받을 만합니다. 어쨌든 규모있는 전시들이 체험산업화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 씁쓸합니다.
윤 다른 곳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미술계에서도 상반기 전시들은 메르스 때문에 타격을 많이 입었다고 합니다. DDP에서 열리고 있는 간송문화 네 번째 <매란국죽> 전시의 경우, 주제 자체가 파퓰러하지 않은 것이기는 했지만 오픈 직후 메르스의 영향으로 사람이 거의 안 왔다고 합니다. 현재는 8월30일까지로 잡혀있는데 연장하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을 정도예요.
정 DDP <박수근> 전이나 서울시립에서 열린 지드래곤 전시도 메르스의 타격을 많이 입었죠. 지드래곤 전시의 경우 긍정적 부정적인 시각이 교차하는 가운데, 하필 오픈 때에 많이 방문했을 중국의 관광객들이 줄면서 조용하게 넘어가기도 했죠.
최열(이하 최) 봄에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오픈한 <허영만> 만화전도 메르스 영향으로 큰 주목을 받지 못했어요.
조은정(이하 조) 한편으로는 메르스 때문에 전시 정체성이나 질이 관람여부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확인하기도 했어요. 정말 메르스를 뚫고 이 전시를 볼 것인가 말 것인가하는 기준으로 절대로 안 볼 전시들을 털어낼 수 있었거든요. 제가 갔던 어떤 전시에서는 무료 관람객 두 명이 전체 전시를 보는데 미안할 정도였어요. <프리다 칼로>전은 메르스가 한참인데도 불구하고 소마미술관 생긴 이후 드물게 주말 관람객이 줄을 서서 볼 정도로 인기가 있는 전시였음이 드러났습니다. 방송에서 계속 노출이 되면 꼭 봐야 되는 전시처럼 세뇌되는 경우도 있죠. <로스코> 전(한가람미술관)도 그렇고....
정 이래저래 입소문 덕분이기도 했구요.
최 메르스를 뚫고 굳이 성공했다고 한다면 <박수근> 전이 그 경우라고 봅니다.
정 ‘박수근’ ‘이중섭’은 미술계의 ‘벤허’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예전에는 영화관에서 뭐 할 게 없으면 ‘벤허’를 상영하곤 했잖아요. 언제든 기본은 달성하는. 거기에 간송이 붙어서 좀더 효과적이었죠.
윤 테마파크 중 디즈니랜드가 재방문객 비율이 높다던데.... 봤었지만 또 가보고 싶게 만드는 것이 박수근, 이중섭 전인 것 같습니다.
정 제가 <프리다 칼로> 전에 갔던 날은 주부들이 많았어요. 가장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있는 분들이어서 그런지. 지방에서도 단체로 오기도 했다고 하고.... 50대 넘는 분들이 많아서 그런지 예전에 티비에서 봤다고 저와 사진찍어달라는 분도 계시고(웃음).
윤 일본 같은 경우 50대에 미술관에 어정거리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우리나라는 꽤 많은 편이에요.
정 일본은 아직 종신고용 체제가 남아 있어 백발이 되어야 은퇴하잖아요. 우리는 빠르면 40대에도 은퇴하고 그래서 남녀를 막론하고 50대에 낮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요.
조 메르스라는 악재를 만나서 다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그중에 선전한 것을 꼽자면 국립중앙박물관의 <발원> 전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 호림박물관의 도자 전시도 좋았어요.
윤 현재 호림박물관 신사분관에서 열리고 있는 <편병> 전도 볼만 할 것이고.. 이화여대박물관의 <백자> 전도 기대가 됩니다.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분관에서 열린 <김종학 컬렉션>도 괜찮았습니다. 건물 자체가 근대 문화재로 목가구 등 전시 작품들과 잘 어울렸어요.
정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열리고 있는 <세밀가귀> 전에서는 그동안 야나기 무네요시가 만들어 놓은 한국미술에 대한 이미지, 즉 대강대강 만들고 무덤덤한 듯한 인상을 뒤집었다고 생각해요.
조 말씀하신 것처럼 ‘야나기의 민예관을 극복’한다는 것이 실제로 전시의도에 드러나 있었습니다. 굳이 그러한 ‘극복’ 운운을 드러낸 것은 다소 촌스러운 감이 없지 않았지만, 한국적 미가 그런 것이 다가 아니다라고 하는 문제제기는 성공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었던 점은 미술관의 위용이라고 할까요, 엄청난 양과 질의 나전칠기 함을 전시하여 한눈에 양식과 시대를 비교할 수 있게 해 놓았던 것입니다. 전세계에서 이들을 모아올 수 있었던 것은 삼성의 힘이라고 해야겠죠. 또 다른 하나는, 우리가 늘 ‘우리의 무엇이 아름다운가’에 대해 얘기하는데, 개화기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의 언급을 보면 조선에 예술은 없다고도 하지만 다만 나전칠기와 목가구의 대단함에 대해서는 공통적으로 찬양한 것을 볼 수 있어요. 캐비닛 스트리트라고 하면서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이 모두 들르는 장소에 대해 기록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해외에 소장된 나전칠기 목가구의 컬렉션들을 보면서 그러한 기록의 현장을 본 느낌입니다. 그들이 보는 조선은 이런 거였겠구나 하는. 우리가 먼 옛날의 유물을 보면서 국제적 정세 속에서의 우리나라를 떠올리고, 지금 이 시간에 어떻게 전시를 만들어내서 보여주고 있는가의 태도에 대한 반성, 전망,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다는 면에서 굉장히 좋았습니다. 공예적 언어와 회화적 틀을 끼워맞춘 것처럼 조금 어색한 느낌이 없지는 않았지만요.
윤 리움 이야기가 나왔으니 호암미술관의 <수호의 염원> 전에 대한 얘기도 한마디 하고 넘어갈까요. 어찌 보면 이 시기에 이런 기획을 한다는 것이 미술관을 발전시킨 창업자 2세에 대한 기도의 마음이라고 읽을 수도 있을 듯합니다. 아까 잠시 언급되었던 <간송문화- 매란국죽> 전시의 경우 특별히 전란을 거치면서 물에 빠졌던 삼청첩을 보수하여 처음으로 전체를 다 보여주고 있어 반드시 봐야하는 전시입니다. 조선 중기의 삼청첩은 당시 주요 문장가,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의 그림, 글씨 잘 쓰는 사람의 글씨를 모은 중요한 작품으로, 그간 보여줄 수 있는 쪽수가 서너 쪽밖에 안 되었는데 보물이나 국보로 지정이 안 되어 간송에서 직접 수리비를 다 대고 보존처리를 해서 공개한 것입니다.
최 사군자전은 간송의 전시 30년 간 몇 차례 해 왔지만, 지사와 군자의 기개가 무너진 시대에, 또 보화각 밖으로 장소를 옮겨서 열렸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어요. 국립 기관이 아니라 시내 한복판의 DDP에서, 나이든 분만 보고 계신 게 아니라 방학을 맞은 젊은이들도 함께 말이죠. 전과는 달리 젊은 사람들이 제법 눈에 많이 띄었고 메르스 때문에 관객 동원에 실패했다고 하지만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의미와 가치는 분명히 있고, 칭찬받아 마땅하다고 봅니다. 처음에는 간송 소장품을 서울시에 상업적으로 지어진 공간에 내놓는다는 것에 부정적인 시각도 있었는데, 네 번째 기획이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좋게 평가하게 됩니다.
조 전통적인 매란국죽 명품을 보여주고 디지털 인터랙티브 시스템으로 그림 안에 자신의 모습이 보이게 한다는 등 해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도록 노력했습니다. 관객들은 참여하는 걸 좋아하고, 분명히 보화각에서는 불가능했던 것들이 DDP에서 가능해진 것은 맞습니다. 젊은 사람들의 흥미유발을 위해, 또 현대적 해석을 위한 매개로서 디지털아트를 이용했다는 것이 간송으로서는 새로운 방식으로 보여준 셈이죠. 나름 재미있었습니다.
정 한편으로는 ‘간송 너마저도’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웃음). ‘디지털’에 집착하고 관객이 참여하는 걸 좋아한다고 그런 요소를 전시에 넣는데 좀 과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통파전시도 있어야죠.
조 간송이 DDP로 내려온 것이 대중화의 의미가 있으니까요.
윤 간송의 외출에 대한 평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조 좀더 덧붙인다면 전시장 안내원들이 지나치게 동선을 제한하고 이리가라 저리가라해서 감상하는 데 불편했던 점은 있었어요.
정 요즘 전시장 지킴이들이 파쇼적인 경우가 많아요. 작품을 보다가 돌아가 다시 보려고 하면 뭐라고 한 마디하고, 설명을 들으라고 지시하기도 합니다. 한국인들이 결정 장애가 많아 남의 의견을 들어야만 한다고들 하지만 좀 지나친 것 같습니다.
조 관람객이 많을 때는 이해가 되지만....
정 도슨트도 너무 가르치려고 들어서 눈살이 찌푸려집니다. 주입식 교육을 가장 창의적으로 보아야 할 전시장에서 받아야 하다니... 도슨트의 설명을 듣지 않고 지나가면 매우 싫어하고.
조 저같은 아줌마는 옷을 잘 차려입고 가지 않으면 하대받는 경우도 있어요.
정 전시를 하면서 국민을 계몽하려 하는 경향이 강해졌어요. 블록버스터 전시는 여름에 보통 이뤄지고, 학년이 바뀌는 겨울은 방학숙제를 잘 안 내주니 또 잘 안 됩니다. 체험학습, 열린 교육 하면서 ‘체험산업’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생겨나서 자리를 잡았죠. 키자니아 같은 것들... 그런데 체험학습이라는 것이 사회적 기반으로 이뤄지지 않고 상업성이 강한 산업으로 이뤄지니 본래 취지를 잃어가는 것 같습니다.
조 다른 나라 미술관에 가면 누구나 자유롭게 그곳에서 제공되는 예술적인 체험을 할 수 있어요. 우리나라도 그런 것들이 제공되긴 하는데 빠르게 신청하는 엄마들의 손에 의해 점령당해버리죠.
정 체험이라는 것이 ‘창조’적인 것이 되어야 하는데 산업화되어버린 체험화를 통해서는 그저 ‘확인’하는 데 그칠 뿐이에요. 여전히 멘탈과 행동은 주입식으로. 왜 하는지는 모르고 나를 따르라.... 차제에 문화정책 차원에서 이런 체험 위주의 전시 교육에 대해 논의했으면 좋겠어요.
조 음악회 같은 경우는 7세이하 아동 입장을 금지하는 경우가 많은데 전시회 같은 경우는 오히려 더 체험을 장려하는 편이긴 하죠. 미술의 교육이 디지털로 인터랙티브하게 된다면서... 필요한 사전 교육 없이 직접 부딪히게 하는.
정 구구단 안 배우고 인수분해하는 식 아닐까요.
조 저는 다른 나라 미술관에서 아이들에 대한 교육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관심있게 보곤 했습니다. 피카소 뮤지엄 같은 경우, 유아들은 그 그림 안에서 삼각형 사각형 도형을 찾도록 한다든가 단순하게 보고. 초등학생들은 따라 그리도록 하고, 중고등학교 아이들은 그에 대해 토론한다든가 하여 단계적으로 깊이를 가지도록 합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미술, 전시, 미술관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요. 농담처럼 중국이나 한국 아이들 외에 다른 나라 애들은 미술관에서 뛰어다니는 걸 못 봤다고 말하곤 하죠.
정 공익기관이라면 수용 가능한 의견이지만. 기업이 들어와 이윤을 내기 위한 전시라면 불가능합니다. 보통 전시가 삼십만이 들어야 삼십억의 투자금을 뽑을 수 있게 되니 무조건 많이 들어와야 합니다. 국공립미술관들이 예산을 들여 좋은 전시를 해서 시민들에게 제공해야 하는데 사업자들이 하는 블록버스터 전시에 밀리다보니 전시의 상업성이 더 눈에 띄는 것 같습니다. 로스코 전시만 해도, 전시 홍보 문구에 ‘세계에서 제일 비싼 그림’ 어쩌구 하는 것을 보고 기함을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국공립이 하드웨어만 갖고 집만 지킬 게 아니라, 제대로 문화예술에 대한 교육을 하고, 관람에 대한 욕구를 충족하도록 제대로 하는 것이 먼저가 되어야 합니다. 기업이 돈을 들여 전시를 하고 이익을 내고자 하다보니 입장료도 너무 비싸집니다. 나라 세금으로 짓고 세금으로 운영하는 미술관들이 대관이나 해주고 있고 자체적으로 전람회를 기획하지 않고 있습니다. 본인들은 장소임대료, 집세 챙겼으니 경영을 잘 했다고 스스로 평가할지도 모릅니다. 공공재로서의 문화예술기관은 흑자 경영을 했다고 잘한 것이 아닙니다. 경영목적 달성은 목적 달성이 될 수 없고, 우선 국민들의 문화 향수와 문화교육에 목적을 둬야 합니다.
최 지난해에 인사동에서 열렸던 <박수근 탄생 100주년 기념전>은 물량공세일 뿐이어서 실망스러웠습니다. 화랑에서 무작위로 하는 기획전이 그런 한계를 보일 때가 많은데 이제는 지양, 성찰의 대상이죠. 이번 <국민화가 박수근> 전은 중앙일보와 함께 한 것이었는데 굉장히 걸작을 잘 이끌어냈고, 힘 있는 화랑이 전면에 드러나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수량은 많지 않았지만 시기별로 정리가 잘 되어 있어서 보기 좋았구요.
정 잘 쓴 소설처럼 기승전결이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 있었죠. 딱 부러지게 부연설명 없이 끝나 좋았습니다.
최 그런 전시를 국공립미술관에서 해야 합니다. 근대 최고의 작가들이 1910년대에 즐비합니다. 그런데 제대로 된 회고전을 못했어요. 이번 <이쾌대> 전으로 조금 상쇄되긴 했지만... 상대적으로 양구군립미술관의 박수근전은 엉망입니다. 하드웨어는 너무 훌륭한데... 예산 부족으로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지만 탄신 100주년 기념사업회 같은 어마어마한 조직을 꾸며놓고 용두사미가 되었어요. 내년의 이중섭 100주년도 벌써 걱정입니다.
조 박수근 DDP 전시는 말씀하신 대로 기대보다 좋아서 놀랐습니다. 연구자로서 일목요연하게 학습을 하게 되는 그런 점에서 더욱 말이죠. 결국 우리나라 현재 전시의 성공 여부는 홍보와 연관이 되는 건 아닌지 반성하게 되네요.
정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쾌대> 전이 인상적입니다. 이제는 미술사 속에서도 상당히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도록에 실린 논문들을 보면, 여기 계신 최열 선생 글도 있는데, 대부분 미술사에서 앞으로 이러한 연구들이 필요하다 느낄 정도로 좋았습니다. 도록에 실린 작품사진이 어두웠던 것은 매우 아쉬웠어요.
최 <이쾌대> 전은 오래 준비한 전시였기 때문에 가능했어요. 담당 학예사도 새로운 자료들을 많이 찾아냈습니다. 도록에 실린 논문들은 제국미술학교 관련한 섬세한 글, 이쾌대의 성북회화연구소에 대한 것 등 신선하고 깊이 있어 좋았습니다.
윤 도록 얘기에 첨언을 하자면, 국립춘천박물관이 강원도 지역에 대한 테마전시를 이어가고 있는데 이번에 특히 <관동팔경 삼척죽서루> 전 도록이 잘 만들어졌다는 얘기를 하고 싶네요. 국립광주박물관에서 지난해 열렸던 <공재 윤두서> 전시 도록도 좋았는데 말이죠. 요즘 지방에서 좋은 전시와 훌륭한 전시 도록이 만들어지는 예가 많은데 아주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정 지방의 국립박물관은 순수한 지방박물관이라고 보기가 어렵긴 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영향이 크니까요. 솔직히 도립박물관이나 지방 기관의 운영, 연구 실적 등을 봤을 때 결국은 중앙의 역량이 중요한 것 아닌가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런 점에서는 여타의 공립박물관들을 국립으로 전환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대로 못하니 하는 말입니다.
조 중앙, 지방정부의 문제라기보다는 인력의 문제라고 해야겠죠.
정 지방의 국립박물관의 경우 중앙에서 순환 근무를 가게 되어 가능해진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 나름대로 직업적 안정성이 있고 그것에 대한 상응하는 책임감도 따르게 마련이구요.
최 다시 <이쾌대> 전 이야기를 좀 해보자면, 덕수궁관 1층을 이쾌대 전으로 하고 2층은 45년~50년 시기의 근현대전시를 했는데 상대적으로 2층 전시가 너무 약해서 1층 이쾌대가 더 빛났던 것이 재미있었어요.
정 2층 전시는 시기도 시기려니와 당시 미술의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으로만 꾸미자면 빈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 미술사에서 해방공간 6.25전후가 공동화되었다고도 할 수 있어요. 50년대 초반 부산에서 그려진 것이 좀 있지만 말입니다. 굳이 부족한 소장품을 가지고 왜 전시를 만들었는지... 광복 70주년이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조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광복 70주년 기념 북한 전시도 좀 생뚱맞은 느낌이 있습니다.
최 서울시립의 북한미술 전시는 아직 못 봤지만, 광복 70주년을 테마로 하는 발상은 좋아도 북한 미술을 전시하는 맥락은 조금 이해가 안 됩니다. 광복 70년을 맞아 근본적인 미술사 흐름을 짚어줄 만도 한데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미술관으로서.
조 세계시장에서 한국 미술이 주목받는 테마가 있다면 민중미술, 케이팝, 분단 상황과 북한 정도가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선택된 것이 아닐지 추측해봅니다. 제 생각도 광복 70주년이라고 하면 역사적 관점 아래서의 반성, 통합, 내부적 시선, 객관적 통찰을 가지고 시도될 만한 전시가 있을 거라 생각되는데 말입니다. 전시도 그냥 보여주고 마는 것이 아니잖아요. 전시를 기획하는 것에도 태도가 드러나야 됩니다.
정 그간 미술관들이 이슈나 시류 등에 너무 휩쓸려 가는 면이 있었어요.
조 국립현대미술관도 마찬가지로 해줘야 할 역할을 다 못하고 있죠. 그 좋은 장소와 건물을 잘 활용하고 있지 못합니다.
정 큐레이팅이 제대로 된 전람회가 필요한데, 방은 너무 많고, 일 년 이내에 기획된 것들이 많고...
조 새로 관장을 인선한다고 하니, 그 전에 조직을 재정비하는 기회로 삼자고 다시 한 번 간곡히 요청해봅니다.
정 책임운영기관, 법인화 문제 같은 것이 해결되지 못한 상태에서 조직이 붕 뜬 채로 몇 년입니다. 그것부터 해결되어야 하겠죠. 정부 정책이 셋업되지 못한 상태에서 관장 탓만 할 게 아닙니다.
조 국공립미술관의 정체성에 대해 미술계 전체 논의가 필요해요.
정 논의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아마 다들 이해관계가 걸려서 효율적으로 얘기가 안 되는 것일 겁니다.
최 전시와 관련해서... 민간 사립미술관 박물관도 공공성이 있지만 사립미술관들은 무엇을 하든지간에 다양하게 잘 해주길 바랄 뿐이고, 국공립의 경우는 국민세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공공성을 강화하는 전시를 고민을 많이 해서 진행해야 합니다. 탄생 100주년을 지나면서 박수근 전이 결국 민간에서만 이뤄지고 마는 것은 국립 미술관들이 책임을 방기하는 것입니다. 서울시립은 안정된 관장이 오래 하고 있어 비교적 낫지만 국립현대미술관은 난파선의 꼴을 보이고 있습니다. 개관전 이래 서울관의 전시가 계속 헤매고 있는데, 책임운영 기관 문제와 직결된 것이라고 봐야겠죠. 서울관과 과천관의 학예직제가 분리되어 있고, 합리적으로 운영되지 못하고. 행정자치부 인사 관계자가 전횡을 하고 있습니다. 박수근, 매란국죽, 세밀가귀, 조선백자전 등은 국공립에서 먼저 했어야 하는 것이죠.
정 양구군립미술관의 박수근 전과 DDP 박수근 전시를 비교해 보면, 양구시민의 돈과 국고 지원, 정식 큐레이터가 근무하여 진행한 양구군립의 전시보다 전문 큐레이터 하나 없는 중앙일보와 DDP의 전시가 더 낫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갑니다. 문제는 역량이지 자본이 아닙니다. 국공립미술관의 큐레이터들이 강한 직업 윤리의식을 가져야 해요. 내가 이 직장에서 밥값은 하고 있나 늘 생각해야 합니다.
조 국공립 전시가 우리 기대에 못 미치고 사설에서 하는 것들보다 못하다고 생각했을 때는 배신감마저 느껴집니다. 이유가 뭘까. 수장이 없다는 것? 미술관이나 미술계 내부에만 문제를 둘 수는 없고, 행정관리 시스템을 우선 고민해야 합니다. 지금 상황이라면 누가 수장이 되든 표류가 지속될 거예요.
최 사실 3년 임기동안 할 수 있는 게 없죠.
윤 말복에 상반기 주요 전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결국 정책적인 면을 걱정하면서 끝을 맺게 되었네요. 전시 하나하나가 사실 개별적 미술관의 행사라고만 볼 수는 없습니다. 사회적 현상을 만들어내거나 반영하거나 하게 되죠. 전시에 대하여 돌이켜보고, 바라는 바를 말하고, 좋은 전시를 칭찬하고 아쉬운 점을 이야기하다보면 미술문화가 다양하게 펼쳐지고 발전하는 데에 작은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 주제를 더욱더 발전시켜 이야기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