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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주리가 보는 세상] #2 그림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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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박성남은 자신의 나이 열아홉 살에 돌아가신 아버지 박수근 화백에게 아버지 그림이 너무 좋다는 말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게 한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살아생전 아버지 그림을 인정한 사람은 다섯 명이 채 되지 않았다고. 그림 경기가 나쁜 요즘, 국전에 떨어져 몇날 며칠 술 마시며 불행해했던 위대한 화가 박수근을 생각한다. 내 그림을 제일 처음 사준 분은 지금은 고인이 된 진화랑 대표 ‘유위진’ 여사다. 자신이 그린 그림을 누군가 돈을 주고 산 첫 경험은 화가라면 누구나 잊을 수 없는 경험이리라. 지금 생각하니 참 고마운 일인데, 그 때는 철이 없어 고마운 줄도 몰랐다. 사람들은 어떤 그림이 세상에서 제일 비싼가에 관심을 기울이지만, 실은 나는 비싼 그림이 꼭 훌륭한 그림이라는 확신은 들지 않는다. 작가의 운과 시장의 흐름이 만나 매겨지는 그림 값, 박수근과 고흐는 가난하게 살다 죽었으나 사후 그들의 그림은 만질 수도 없는 고가의 그림이 되었다. 몇 백 년 뒤 누구의 그림이 비싸질지 누가 알랴. 

재능 기부 차 페루여행을 가서 그림을 가르치며 만난 한 소녀의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싶은 걸 맘대로 그려보라 했더니 한 소녀가 내 얼굴을 그렸다. 잘 그렸다싶어 10불을 주고 그림을 샀다. 내 초상을 그린 페루 소녀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 집이 가난해서 돈을 주느냐고 물었다. 나는 스물다섯 살에 처음 그림을 팔았지만, 너는 열두 살에 처음 그림을 파는 거라고 답해주었다. 그 애는 환하게 웃으며 자신도 커서 화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 애가 화가가 될지 아닐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내 얼굴을 그린 페루소녀는 한국에서 온 나를 기억해줄까? 내가 그림을 처음 사 준 그분을 늘 기억하듯이. 문득 그림이란 고마운 사람을 위해 그린 아름다운 선물이던 스무 살이 그리워진다. 나는 가끔 악몽을 꾼다. 
전쟁이 나서 세상이 잿더미가 되면 화가나 그림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아무 소용없는 일이리라. 요즘은 엄청나게 싸게 팔리기도 하는 그림 경매 탓에 정상적인 그림 값에 오해가 생기곤 한다. 인터넷이 너무도 빨리 업데이트 되는지라 어제 밤 경매에 그 그림이 얼마에 팔렸는지 금세 뜨기 마련이다. 주요화랑들의 개입에 따라 경매가는 움직이기 일쑤다. 그게 현대 자본주의 시장의 힘이자 악덕이다.

그림을 좋아해서 돈을 모아 그림을 사고 싶은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다. 그게 얼마든 당신이 첫 눈에 반한 그런 그림을 사라. 같은 화가가 그렸다 해도 똑같은 그림은 세상에 없다. 같은 작가의 그림이라 해도 다 다른 값을 지닌다. 나는 그 값의 정당함이 정말 옳은지는 모르겠다. 지금 이 시대 아무리 비싼 그림 값의 화가가 백 년 뒤 현재 많은 사람이 알아주지 않은 화가의 그림 값보다 더 비쌀 거라는 확신을 나는 정말 할 수가 없다. 생전에 단 두 점의 그림을 팔았던 ‘빈센트 반 고흐’를, 가난했던 ‘이중섭’과 ‘박수근’을 기억하라.


황주리 <자화상>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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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황주리
평단과 미술시장에서 인정받는 몇 안 되는 화가이며, 유려한 문체로 ‘날씨가 너무 좋아요.’ ‘세월’ ‘땅을 밟고 하는 사랑은 언제나 흙이 묻었다.’등의 산문집과 그림 소설 ‘그리고 사랑은‘ 등을 펴냈다. 기발한 상상력과 눈부신 색채로 가득 찬 그의 그림은 관람자에게 강렬한 기억을 남긴다. 그것은 한 번 뿐인,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우리들의 삶의 순간들에 관한  고독한 일기인 동시에 다정한 편지이다. 


황주리(화가)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14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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