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회 일시 : 2월4일
참석 : 김상엽 최열 황정수 윤철규
김상엽 편 | 경인문화사 | 3840쪽 | 발행일 2015년 1월 19일 초판 1쇄
1922년 설립된 ‘경성미술구락부(京城美術俱樂部)’는 당시 조선(한국) 최초이자 유일의 미술품 경매회사로서 우리나라 미술시장사와 미술품 유통의 근대화에 중요한 몫을 담당한 바 있습니다. 경성미술구락부에서 발간한 경매도록에는 당시 경매시장에서 유통된 우리나라 미술품 사진과 목록이 수록되어 있는데, 현재 이 경매도록들이 공식적으로 모여져 보관되거나 찾아볼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경성미술구락부 전경. 1942년 개축 후.
지난 1월19일 발간된 『한국근대미술시장사자료집』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서 광복이후, 1950년대에 이르는 기간 동안 간행된 경성미술구락부의 경매도록과 기타 전시회 도록, 기념 도록, 회칙 등 미술시장과 관련된 자료 70여종을 모아 영인하고 편집한 책입니다. 이 자료집에 사진으로 수록된 작품은 3,160점, 목록은 15,980점에 이르며, 우리나라 미술시장 관계 최초의 자료집으로서 이로써 근대 미술의 유통과 흐름을 개관할 수 있는 기초자료를 갖게 되었습니다. 주요 자료집의 발간에 즈음하여 편저자와 함께 근대미술과 시장사와 관련 자료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가졌습니다.(편집자)
윤철규(이하 윤) 미술과 미술시장의 관계에 대해서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겠습니다만, 크게 보아 순기능과 역기능이 모두 있게 됩니다. 고미술의 경우에는 시장을 통해 재평가되기도 하고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도 합니다. 사실 미술시장의 기록에 대해서는 그동안 소홀했던 부분이 없지 않습니다. 최근 들어 경매시장이 외형적으로 성장하면서 작품이 가지고 있는 이력에 주목하게 되었는데, 김상엽 선생님께서 일제 강점기 경매도록을 영인하고 자료를 정리한 『한국근대미술시장사 자료집』 이 이번에 출판되면서 여러 모로 관심을 끌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중요한 책이 나왔으니 좀더 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신간리뷰가 아닌 방담 형식을 빌어 다른 분들의 말씀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이 책이 가진 의미, 교훈 등을 나눴으면 합니다. 우선 저자와 출판사가 이러한 큰 일을 해낸 것에 대해 박수를 보냅니다. 대단한 일을 하셨습니다.
김상엽(이하 김) 일제 강점기의 경매도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나서 이 책이 나오기 까지 20년이 걸린 셈이네요. 제가 석사논문 쓸 무렵인 1991년의 일인데, 일제강점기 도록이라고 하면 선교사들이 만든 책이나 이왕직 총독부 관찬사료만 있는 줄 알았다가 경매도록을 보고 나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이 경매도록들을 잘 갈무리하고 인쇄해서 제본한다면 도움이 될 듯해서 20년 동안 모아 온 것입니다. 어느 정도 모았다고 생각했을 때 마침 황정수 선생님과 김영복 선생님 등등을 뵙고 홍선표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글씨와 그림 작품의 경매 기록만 모아서 『경매된 서화』(김상엽•황정수 편, 시공아트, 2005)를 냈는데, 도자기나 공예품, 조각 작품도 경매 목록에 많았기 때문에 아쉬웠죠. 또, 『경매된 서화』 내에 있었을지도 모르는 오류를 원형 책을 보여드림으로써 수정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윤 이번 책이 『경매된 서화』에 이어 일제 강점기 미술시장에 대한 두 번째 책이 되었네요.
김 굳이 제목을 ‘한국근대미술시장사 자료집’이라고 한 것은 우리 미술시장이 조선, 일제 강점기, 광복을 거쳐 계속 이어 내려온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또 편집 중에 마침 해방 후인 47, 48, 49년 경매도록을 입수하게 되어 5권에 추가해서 넣었다는 것도 의미가 큽니다. 당시 해방 후에도 경성미술구락부가 있었던 같은 장소에서 경매가 열렸더군요.
윤 『경매된 서화』가 나온 이후 고미술의 연구에 정말 큰 도움이 되었죠.
황정수(이하 황) 『경매된 서화』의 재판을 못 내고 절판되어서 아쉬워요. 의외로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는데 말입니다. 이 작업은 미술품의 족보를 만드는 작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조선시대까지 미술품들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김광국 등 몇몇 유명한 수장가의 기록 정도만 남아있을 뿐이죠. 본격적 기록이라고 할 만한 것은 일제강점기가 처음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속되지 못한 면이 있지만 그나마 이러한 기록이 남아있다는 것이 중요한 자료로서 의미가 깊죠. 미술공부를 하면서 책의 중요성 절감합니다. 실제 한국 고미술 작품이 많이 남아있지 않아 연구에 부족함이 많다고들 하는데, 사진으로만 남아있는 작품들을 추가해서 본다면 연구의 대상이 될 만한 작품수가 상당히 늘어나게 됩니다. 따라서 이러한 경매도록 자체가 각 작가 및 시대에 대한 연구 범위를 넓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죠. 더군다나 상당수가 누구 손에 있는지 없어졌는지 알 수 없는 작품의 사진들이라 더욱 가치가 있습니다.
<청화백자양각진사철채난국초충문병(靑華白磁陽刻辰砂鐵彩蘭菊草蟲文甁)>,
18세기 후기, 높이 41.7㎝, 국보 제294호, 간송미술관.
『故森悟一氏遺愛品 書畵幷ニ朝鮮陶器賣立』 도자 도 1, 京城美術俱樂部,
1936年 11月 22日(日), 『한국근대미술시장사자료집』 1권 594쪽
1936년 11월 경성미술구락부에서 개최된 저축은행 두취(頭取: 은행장)을 지낸 ‘고 모리 고이치(森悟一)의 유애품(遺愛品) 경매회’에서 간송 전형필은 거금 1만 5천원(현재 45억 상당)으로 일본인 대수장가들을 물리치고 국보 제294호 <청화백자양각진사철채난국초충문병>을 구입하였다. 구전과 기록으로만 알려지던 간송 및 여러 수장가의 활동을 『한국근대미술시장사자료집』(1권 594쪽)을 통해 실물로 확인할 수 있다.
최열(이하 최) 근대미술사 공부를 하면서 당시의 제도나 시장 쪽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한국근대미술의 역사: 1800~1945 한국미술사사전』 (1998) 책을 쓰면서 화단, 미술가들의 조직, 미술관련 제도, 작품 창작의 역사 등을 이야기하며 미술시장 즉 미술 작품이 어떻게 움직이는지가 중요하게 다뤄질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죠. 수요가 있고 그에 공급이 따라가게 되니 당연히 중요한데 미술시장이나 경매 등의 부분에 대해서는 무지했습니다. 경성미술구락부가 있어 경매가 있었구나 하는 정도고, 현장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당시의 신문이나 잡지 등을 통해 2차적으로 알게 되는 수준이었습니다. 도록 등의 구체적인 부분을 90년대 후반 당시 알고 있었다면 제 책도 더 풍부해졌을 수 있는데, 김상엽 선생이 이런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이후 2005년 『경매된 서화』가 나오면서 제 책이 보강되어야 할 가장 큰 이유가 되었습니다.
윤 미술 시장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 당시의 화단과 미술계가 어떻게 움직였나를 보여주고 있죠.
최 근대의 미술사에서 한 분야가 덩어리로 빠져 있는 셈이니 합쳐져야 된다는 것이죠. 자료로서 가치가 매우 큽니다.
황 문학 쪽에서는 20년 전부터도 ‘수용 미학’이라고 해서 작품을 생산하는 측과 수용하는 측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어 왔습니다. 미술 쪽에서는 그에 비해 많이 뒤처진 상황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김 저는 당시 최열 선생님의 『한국근대미술의 역사』 책을 보면서 굉장히 용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미술시장사를 공부한다고 했을 때 학계의 시선은 다소 차가웠던 기억이 나네요.
윤 최근에 워렌 코헨Warren Cohen이 쓴 ‘동아시아 미술과 미국문화East Asian Art and American Culture’라는 논문을 보았는데, 1876년에 열린 필라델피아 만국박람회 때 미국인들이 일본 미술을 통해 일본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사실에 대해 서술하고 있더군요. 그 이전에는 동양 사람들을 깔보던 사람들이 몇 백만 관람객이 일본미술을 보고 나서 일본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합니다. 시장의 순기능이라고 할까요. 일제 강점기 때도 마찬가지로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 예술품을 좋아하고 많이 사간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들이 우리의 미술품을 좋아했다면 적어도 그 사람들은 함부로 조선 사람들을 깔보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술품이나 작가론에 치중할 것이 아니라 시장도 보아야 그 시대의 미술과 문화를 알 수 있습니다. 연구논문이 나올 여지가 많습니다.
최 실제로 미술사에서 근대적 의미가 짧다 보니 확정되어 있는 작품들만 진품으로 보고 그것만 연구대상으로 삼는 습관이 없지 않습니다. 근래에 들은 이야기로 추론해 봤을 때 미술사학자들이 미술시장과 밀착되어 있는 경우도 많았어요. 그런데도 강단에서는 제자들에게 미술시장에 대한 연구를 비하하는 분위기를 전파했는지 미스터리 같습니다. 근래 들어서는 상대적으로 젊은 석박사 논문 쓰는 친구들이 경매시장 등을 연구하는 경우가 꽤 있어 좀더 자유로워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윤 자료집을 죽 넘겨보면 일제 강점기 때 시장에 나온 조선 후기의 회화 작품 중 현재 심사정 작품이 가장 많은 것이 눈에 띕니다. 겸재 정선이 아니라. 이런 것만 보더라도 당시의 평가 기준을 알 수 있죠. 지금은 현재보다 겸재가 두 배 이상의 가치로 평가되는 것과는 상이하죠.
<김홍도 자화상>, 27.5×43㎝, 평양미술박물관
『府內古經堂所藏品賣立目錄』 도 40 ‘檀園肖像’, 京城美術俱樂部 발행,
1941年 6月 8日(日), 『한국근대미술시장사자료집』 3권 95쪽
구한말 내관(內官) 출신의 대수장가 고경당 이병직(1896-1973)의 경매회에 출품된 <김홍도 자화상>은 일본을 거쳐 평양미술박물관으로 전해지게 되었다.
황 현재 심사정이 가장 많고 다음에는 겸재, 단원 김홍도가 그 다음을 잇고 있죠. 서화를 합치면 추사 김정희 작품도 많구요. 그 네 사람이 가장 많이 다뤄진 작가인데, 작가에 대한 선호도 문제나 전하는 작품의 양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당시에 주도적이었던 일본 사람들은 심사정의 세련된 감각을 좋아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김명국, 한시각의 그림이 그 당시부터 부각된 측면도 보이는데, 그 두 분은 한일관계에 중요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양쪽에서 다 좋아했죠.
김 근역서화징을 번역하신 권우 홍찬유 선생님의 옛날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는데, 현재가 겸재보다 훨씬 비쌌다고 하더군요.
황 전해지는 도록에 가격이 적힌 경우가 더러 있는데 우리 생각과 많은 차이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작가 간의 차이는 지금보다 적다고 봐야할 듯합니다.
김 일제 강점기 때 간송이 만 오천원에 낙찰받았다든가 하는 예가 있지만 예외적인 것입니다. 50년대의 것은 낙찰가가 씌어 있어 그나마 유추 근거가 있습니다.
최 정수영, 윤제홍 등의 화가의 경우 제가 보기에는 미술사적으로 이분들이 중요한데 시장에서 당시 어떻게 평가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지금은 주요 작가들과 큰 차이가 나는데 그 이유도 궁금하구요. 시장에서의 가격과 미술의 가치 평가가 미세한 차이는 있더라도 큰 흐름에서는 함께 간다고 생각합니다. 문헌상으로 세키노 다다시(關野貞)가 뭐라 그랬다 고유섭이 뭐라 그랬다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장에서 어떻게 평가되었는가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장에 대한 연구가 미술사에서의 가치평가와 관련한 연구들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봅니다.
황 일제 강점기에 미술품 경매가 진행되기 전까지는 조선 말기에 청과 교유하면서 항구별로 미술시장이 형성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다만 실제 어떤 시장이 형성되었는지, 정말 미술시장이 형성되었는지 관광 상품을 사고파는 단순한 상행위였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미술품이 작품으로서 제대로 대접받은 시장은 아마도 경성미술구락부의 경매가 제대로 된 첫 시장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경매도록을 살펴보다 보면 압도적으로 일본사람들이 매매하는 건이 많습니다. 한국 사람은 이병직, 박창훈 정도. 이름을 안 밝힌 경우도 있었겠지만 일본사람이 관계해서 우리 미술을 판매한 게 대부분이라 아쉽습니다. 이 때 나온 작품의 수준이 상당히 높은데 일본인들에 의해 상행위가 이뤄지고 거기서 판매된 작품이 일본으로 갔을 정황도 많아서.... 역사는 되돌이킬 수 없는 것이지만, 우리 역사만큼이나 미술품의 여정이 가슴 아픈 측면이 있죠.
김 6권에 해제를 완역하고 색인을 만들어서 넣었습니다. 일본사람 특유의 섬세함 꼼꼼함이 드러나는데, 주주가 누구고 변동이 어떻게 되었고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도한 결과는 아니지만, 이 자료집으로 인해 일본으로 건너간 작품들에 대해 일본 사람들이 자기 물건의 족보를 알게 되어 작품을 밖으로 내놓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그런 역할을 하면 좋겠어요.
최 색인이 잘 되어 있어 무척 좋습니다. 인터넷 검색은 아는 정보만 찾아보게 되지만 색인은 모르는 정보까지 포괄적으로 헤아리는 데 중요하죠. 사전을 보는 것처럼요. 우연히 찾으려던 자료의 앞, 뒤의 것들을 발견하는 굉장한 장점이 있습니다. 또 강세황은 두 군데 나왔는데 남계우는 열 군데 나왔다고 하면 정보의 전체적인 맥락 등을 한 눈에 볼 수도 있습니다.
(좌)<청산백운도>, 178×104㎝, 개인 (우) <청산백운도> 오른쪽 상단 공간에 추가된 글씨(“靑山峩峩 白雲悠悠”)와 인장
『故小宮先生遺愛品書畵骨董賣立』 도 19 ‘趙孟頫 設色高士喚琴’, 京城美術俱樂部 발행, 1936年 10月 11日(日),
『한국근대미술시장사자료집』 3권 547쪽
궁내부 차관을 지낸 고미야(小宮)의 경매회 당시에는 조맹부의 것이었다가 후일 누군가에 의해 글씨와 인장이 첨가된 후 안견의 작품으로 둔갑되었지만 경매도록으로 인해 진실이 밝혀졌다.
김 색인 작업이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전체 목록을 다 쳐서 그것만 300페이지가 넘어 한 권이 되겠기에 찾아보기 색인으로 대신하고 전체 목록은 빼게 되었는데, 색인 작업이 전체 목록 작업보다 더 힘들었습니다.
황 요즘 시선과 다른 점들을 알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영향력 있고 꽤 훌륭했던 작가 중에 지운영이 있는데, 굉장히 앞서간 미술 인식을 가지고 있었고 후배들에게 영향을 많이 끼치기도 했습니다. 김옥균을 암살하려 했다 하여 묻힌 면도 있는데 재평가되는 계기가 필요합니다.
윤 영인본 나오게 된 계기가 백순기 선생이 가지고 있던 도록 덕분이라고 하셨나요? 관련자료가 어디엔가 더 있을 텐데 가지고 계신 분이 있다면 연락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김 박은순 선생님과 함께 사진을 찍기 위해 기자촌의 백순기 선생님 댁에 갔을 때 처음 본 것입니다. 수장품들이 가득한 재미있는 방에서 책 몇 권을 꺼내오셨을 때 깜짝 놀라게 되었죠. 일제 시대의 도판이 든 귀한 그 도록들을 자료화하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에 경매도록들을 찾는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옥션단의 김영복 대표님, 황정수 선생님을 만나고 여러 자료들을 모았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은 이 근대미술사자료집을 인쇄하기 한 달 전에 또 한 권을 찾았어요. 그런 류의 자료가 또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증보편이 더 나올 수 있죠. 이 기사를 보시는 분이 계시다면 한국미술정보개발원에 알려주시면 하시라도 출동하겠습니다(일동 웃음). 자료를 만들 수 있는 고귀한 기회를 주세요.
마당에서 바라 본 백순기 선생님 댁, 지금은 은평뉴타운이 되어 헐렸다.
최 미술사를 가능하게 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데, 화상들을 포함하여 현장 자체도 구성 요소에 포함됩니다. 동시대 미술과 과거의 미술이 존재하게 하고 유통되게 하는... 그런 현장의 움직임을 제외한다면 최종 단계인 박물관 소장품만 연구하겠다는 셈이 됩니다. 결국 그러한 위대한 작품들도 사람들 손에 전해지고 거래되면서 그 과정을 거쳐 올라간 것임을 인지하고 있어야 하죠. 작품을 감정하고 진위를 파악하는 것도 시장 바닥부터 알아야 안목이 열리는 것이고 말입니다.
황 일제 강점기가 백여 년 전이라고 했을 때는 얼마 되지 않은 느낌이지만 그 때만 해도 상업적 목적으로 가품(假品)을 만들던 시대가 아니라서 생각보다 가품이 많지 않습니다. 따라서 작품의 진위를 논의할 때 당시의 사진자료가 아주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전래된 과정을 보면 진품이 아니라야 아닐 수 없는 것들이 있죠. 새롭게 나온 도자나 공예 작품 것을 볼 때도 당시의 유사한 작품들을 비교하여 가치를 매길 수 있습니다.
최 이 자체로도 어마어마한 기록입니다. 이렇게 1차적으로 상품으로 움직였던 기록들은 박물관이나 조선총독부 도록 등 선별된 것이 아니라서 더 보편적이고 풍부한 작품을 포함하고 있게 됩니다.
황 또 우리나라 작품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본과 중국 작품도 있어서 당시 국내에서 유통된 동시대 3국의 작품을 넓은 시야에서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인기 있었던 일본 근대 작가들의 작품으로 시대 분위기를 짐작할 수도 있습니다.
최 희망이라면 많은 도서관에서 이 책을 구입했으면 하는 것입니다. 국가가 지원하는 방법도 있죠. 우수도서로 선별하여 일정 권수를 사서 도서관이나 박물관에 배포한다든가... 이런 것을 계기로 국립 기관에서 큰 관심을 기울이고 근대 자료화에 힘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합니다. 이러한 일들을 개인이 하는 게 3류 국가죠.
황 지금이라도 일제 강점기 이후 각 작품에 대한 기록을 남겨 후대가 도움을 받을 수 있게, 작품의 역사성을 높일 수 있게끔 하는 일이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윤 모처럼 좋은 책이 나와 시장은 물론 학계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많이 팔려서 2쇄에 들어갔으면 바래봅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