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3일 오후 5시 / 정준모 최열 윤철규
지난 1월 29일, 고양시 킨텍스 전시장 한켠에서 <유럽에서 들려주는 북한 미술전>이라는 이름의 전시가 개막되었습니다. 이 행사의 주관은 네덜란드의 “스프링타임 아트Springtime Art”라는 미술재단으로 경영자인 프란스 브뢰르센Frans Broersen씨가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하여 수집한 2,000여 점의 북한 작품 중 150여 점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작품은 주로 산수, 풍경화와 인물화를 중심으로 하며 정치적인 내용을 담은 작품은 전혀 없습니다. 정창모, 선우영 등 알려진 작가를 포함하여 70여 명 작가의 작품을 포함하고 있는 전시를 둘러보고 미술계의 세 분이 북한 미술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윤철규(이하 윤) AFP연합의 기사를 보니, 이 네덜란드 사람은 1991년 소비에트 연방 그림으로 재미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2005년부터 북한에 들어가기 시작했고 일곱 차례 정도 왔다갔다하면서 그림을 사들인 것 같습니다. 컬렉션을 하긴 했지만 장기적 투자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그림들을 팔기 위해 소개하는 것이라는 한계를 먼저 짚어두겠습니다. 한동안 북한 미술이 보여지는 기회가 뜸했던지라 이 기회에 북한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 보고자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북한 미술이 남한에 소개된 적은 종종 있었지요?
정준모(이하 정) 북한미술 전시는 꽤 많았는데 최근 잠잠한 편이었죠. 1회 광주비엔날레 때도 북한 미술이 공개되었었죠. 정치적으로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많다가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 보기 힘들어졌습니다. 노무현 정부 때 북한 프로파간다 미술 전람회를 하려고 했는데 무산된 적이 있었고, 6․25때 북한에 와서 그림을 가르쳤던 레핀 학교 교수 출신인 변월룡 전람회를 하려다가 못했던 기억도 나네요. 변월룡은 북한에 귀화를 거부한 탓에 북한 정부에서 곱게 보지 않는 화가라서 북한과의 관계 때문에 조심스러웠던 것도 있었습니다. 시도는 많이 했었죠. 96년에는 러시아리얼리즘 거장 일리야 레핀 전시회를 하기도 했구요. 북한미술을 소개하려 할 때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사실 진품이냐를 확인하는 문제가 되었습니다. 또 북한에서는 미술의 역할이 분명하고 우리와는 회화 작품, 예술에 대한 개념이 다르니 그런 점들도 어려웠구요. 반대로 우리나라 이두식, 이종상 선생님이 94년에 코리아통일미술전이라고 북한에 가서 그리기도 했습니다.
윤 이번 전시는 예전의 북한미술 전람회와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북한미술을 단순히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통일이 되면 좋은 투자가 될 수 있다는 접근이죠. 서울에 오기 전에 리투아니아에서 전시하기도 했다고 하네요.
정 북한이 워낙 폐쇄적이고 개발되지 않은 곳이라서 투자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종종 있죠, 짐 로저스 같은 사람들.... 네덜란드 우표상인 빌헬름 반 에일이라는 사람은 북한 우표를 수집하기도 하고 북한을 오가면서 북한 그림을 많이 수집한 것으로 압니다. 서신왕래가 자유롭지가 않아서 북한 우표는 희소성이 있다고 해요. 렘브란트 그림 같은 것들을 북한 작가들에게 보여주고 그런 그림이 들어간 우표를 주문제작하기도 하고 기념우표 시리즈를 만들었다는 것이죠. 지구상에 이런 그림이 얼마 안 남았다고 하며 사회주의 리얼리즘 그림, 프로파간다 미술을 2500점 정도 사들였다고 합니다. 오늘 전시에는 그런 그림들이 없었죠. 그 사람이 나에게 그 그림들을 사라고 하기도 했어요.
윤 최근 들리는 말에 의하면 중국을 통해서 북한 포스터를 컬렉팅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2007넌 무렵 파리 경매회사에서 북한 포스터 경매를 한 적도 있어요. 1000유로~2000유로 정도 했던 것 같습니다.,
정 이제 다양한 북한 미술을 제대로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은 있습니다. 남북한 해빙 되면서는 실향민을 위한 그림이 많이 와서 지역 풍경을 그린 그림들이 홈쇼핑 채널에 나오기도 했었어요. 근대미술이 인기를 조금 끌게 되면서 이쾌대, 김관호 그림 등이 시중에 나오기도 했습니다.
최열(이하 최) 80년대 민중미술운동은 통일운동이 결합되어 있었죠. 그 당시 잘 알려지지 않았던 북한 미술에 대한 자료를 구해 연구한 적이 있습니다. 자료들 중 일부는 통일부, 안기부 이런 쪽에서 가지고 있던 당시 비밀로 처리되어 있던 문서들이었습니다. 북한에서 입수된 역대 북한의 전시도록 같은 것들도 포함되어 있었어요. 한편으로는 북한 작품에 대한 글인데 북한 쪽에서 작성된 글은 없으니. 남한 정부에서 북한미술에 대해 생산한 글들을 구해서 보았습니다. 기관의 위탁을 받아 이일, 윤명로 등이 쓴 논문들이 있었습니다. 비선에서 흘러나오는 이적표현물인 주체미학 등의 책들도 있었죠. 조선미술사 현대편이라든가. 이런 다양한 방향의 자료들을 연결시켜보니 해방이후 북한미술의 모습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습니다.
슬라이드를 가지고 대학가를 돌며 북한미술을 소개하기도 했었고, 당시는 일간지는 불가능해서 대학신문에 글을 쓰고 도판을 싣는 일들을 했습니다. 미술평론가, 미술사가로서 자료를 묶어서 남한과 북한의 현대미술의 흐름, 미학 특성 등을 다시 나름대로 재구성해서 발표했었죠. 80년대가 끝나고 작업이 중단되었다가... 내가 할 일은 아닌 것 같아 관심을 끊었습니다. 이후 시대가 바뀌어 90년대가 되니 북한의 예술에 대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의 기관에서 공식적으로 요청해서 출판을 하게 되었죠. 학술적인 측면과 이데올로기 공세 면도 있구요. 이후에 북한 미술 애호가는 아니지만 그걸로 돈을 벌고 싶어하는 투자가의 요청으로 함께 북한미술을 보기 위해 심양에 가기도 했습니다. 노신미술학교 로비에 북한미술이 걸려 있는 것들을 보기도 했죠.
남한에서 북한의 미술을 보는 것은 이렇듯 자본의 투자 개념, 적을 알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차원, 그와 전혀 반대로 남북의 이질성 극복을 위해 공부하고 소개하는 맥락 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정 노신미술학교 복도에서 봤었던 북한미술은 어떤 풍이었습니까?
최 프로파간다적인 것과 일반 풍경 등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정밀하고 매끄럽다는 인상이었습니다. 실력이 좋았습니다.
윤 중국사람들이 요즘 미술 시장에 관심이 많은데, 2013년 무렵부터 북한그림이 경매 물품으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투자할 가치가 있는 대상이라고 여겨지고 있는 것이죠.
최 오늘 본 그림은 다음 세대 그림들이죠. 선우영, 정창모 등 몇 명은 옛날 사람들이 섞여 있고..., 지금은 그분들 붓끝이 풀려 있는 느낌이지만 옛날 그 작가들의 그림은 아주 밀도가 있었습니다.
윤 국내에서 보지 못한 테크닉이 많죠, 사회주의 리얼리즘 그림들이 이번에 들어오진 않았지만 그래도 다른 모습을 볼 수는 있습니다. 지금 이 그림들은 처음부터 시장을 겨냥한 그림이라고 보아야 할 듯해요.
선우영 작
최 국가 규모에서 지지하는 미술은 북한이나 남한이나 같다고 생각해요. 미술잡지에 나오는 현대미술 컨템포러리 화가들이나 조금 다른 모습이지, 그 바로 아래에는 남한도 팔기 위해 그리는 그림들이 있기는 마찬가지라고 보여져요.
정 실용적인 회화, 장식을 위한 회화들이죠.
최 국전 이후 대한민국미술대전을 지배하는 미술을 보면 다 저렇습니다. 각 지역미술협회전을 보아도 그렇구요. 결국 그게 일반 대중적 미술이죠. 남한 자본주의 극히 적은 수, 컨텀퍼러리 미술의 흐름을 따라가는 정도이구요.
정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그림은 한 미국 작가의 적당한 가격의 그림이라고 해요. 즐길 수 있는 그림이 인기가 많은 거죠.
최 현대의 민화라고 해야 할까요.
윤 지역적 희귀성이 있고. 늘 볼 수 있는 것이 아닌 색다른 테크닉을 볼 수 있어 좀더 눈길이 가는 것이죠.
최 해외 수출용으로 그려진 그림으로 봐야 할 겁니다.
윤 AFP 기사를 보면, 이 컬렉터가 작가의 집에 직접 찾아가서 받아오기도 했다고 하고, 비키니 입은 여자 그림 등은 북한 내에서는 전시가 불가하다 해요. 이 작품들 대부분은 해외시장용이라고 보는 것이 맞겠습니다.
최 우리도 80년대까지 미술시장이 출렁대기 전까지는 화가가 자신의 작품을 판매한다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화가 수 자체도 지금보다 훨씬 적었구요. 북한의 경우 80년대 이전까지는 국가에서 월급을 받는 상황이어서 우리와 달랐겠지만 그 이후는 상황이 어려워졌을 것입니다. 우리도 그 시기가 지나면서 박수근 등 스타작가들이 나오고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들어서게 되었죠. 우리 미술시장이 이렇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닙니다.
정 96년경 북한에서 정식 수입이 시작되었는데, 그런 그림들은 소위 ‘이적성이 없는’ 풍경화류였어요. 진짜 북한 미술의 모습은 어떤지 궁금했는데 누군가 우이동 통일문화연구소인가에 가면 있다고 해서 찾아가 열 몇 점의 북한 그림을 본 적이 있어요. 그 외에 로테르담 미술관에서 북한미술전을 했을 때 가 본 적도 있고.. 그림들을 보니 진짜 북한미술 전람회를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북한에서는 명작으로 일컬어지는, 예를 들어 김정숙이 말 타고 있는 거대한 초상화 같은 것은 학교 수업 시간에 그리고 또 그리고 해서 같은 그림이 수없이 많기도 하고, 군대 내의 창작소, 철도국 내의 화가부 등도 있어요. 그 시기의 어린이들은 모두 볼이 통통한 비슷한 모습이고. 그때 본 그림들에는 작가명과 제목 같은 것들이 그림에 다 적혀 있었는데 오늘 전시의 그림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았어요. 이런 전시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윤 오늘 전시의 도록에는 아무런 작가 설명도 없고, 달랑 화가명만 적혀 있어요. 하지만 북한 그림을 몇 년 만에 보다보니 새로운 느낌이 들기는 합니다.
정 나름대로 재미있죠.
최 이런 것을 엄격히 시장에서 승부를 봐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화랑들이 자신들의 시선으로 유통시장을 보고 판단해야죠. 북한 미술은 지레 안 된다고 생각한 점도 분명 있을 거예요. 화랑들은 이익과 관련이 있으니 어렵다 치더라도 국공립 미술관에서 장기 프로젝트를 가지고 근대미술전 시리즈처럼 조각, 공예, 포스터 이런 것을 연차적으로 제대로 한번 북한미술을 다룰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전시로 북한 미술이 잘못 알려지고 파편화되면서 소모적인 일들이 과도하게 발생되는 것은 잘못된 거죠.
정 북한미술에 대해 과도하게 거부감을 가질 필요도 없다고 봅니다. 통일시대를 대비하자고 하는데, 그런 취지에서 북한 사람들의 정서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해요. 이적성이다 뭐다 이런 얘기 하는데 좀 시대착오적인 게 아닌가 싶어요. 평균소득 2만불인 나라의 국민들이 북한의 미술품을 보고 선동되는 사람들이 있겠는가 말입니다. 좀더 자신있고 개방적으로 갈 필요가 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기댈 것이 아니라 파주나 문산, 포천 같은 지역에 민족미술관 공예나 생활용품 박물관 등을 여는 방안도 좋을 듯해요.
최 개성공단같은 형식을 빌어 공예미술관을 해도 좋겠어요.
윤 정보가 많이 공개되고 논의도 자유롭게 이뤄진다면, 한 외국인이 출처도 모르는 그림들을 가져와서 투자대상 된다고 얘기하는 것을 듣는 것보다는 나은 방법이 훨씬 더 많이 있을 것 같습니다. 희귀성, 투자가치 이런 얘기보다 더 깊이 있게, 북한의 미술을 입체적으로 말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다양한 내용을 볼 수 있도록 하고, 시장 기능에 맡겨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 대한민국이 아직 계몽주의 시대, 근대국가인 건 아니잖아요. 무지한 백성을 계도하려 하고 못 보게 막고 하는 것은 이제 지난 시대의 유물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