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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계雜담] 2014 갑오년 한해, 미술계 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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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17일(수) 10시 최열 조은정 권근영 윤철규

윤철규(이하 윤)  오랜만에 뵙네요. 반갑습니다. 벌써 2014년 한해가 다 지나서 미술계를 결산할 때가 왔습니다. 올 한해 미술계에는 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돌이켜 볼까 합니다. 주요 전시, 사건, 미술정책, 시장 등등 분야별로 생각나는 대로 편히 이야기해 보는 자리를 가져보겠습니다. 

조은정(이하 조)  각각 제일 중요한 일이었다고 생각되는 일부터 얘기해 볼까요? 저는 광주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에서 보였던 각종 파행이 큰 사건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른 한 가지는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미술이 아닌 건축이 상을 받은 것이 컸어요. 학생들의 논문도 작품에서 공간이나 건축 방향이 많아졌습니다.

권근영(이하 권)  간송미술관 소장품의 첫 외출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의 개관이 떠오르네요. 

최열(이하 최)  국립현대미술관과 관련된 이슈, 그리고 시장에서 극사실주의가 물러나고 새롭게 미니멀 작품들이 등장한 것을 들 수 있겠습니다.

 저는 국립중앙박물관의 테마전시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면 합니다. 작년의 청자전에 이어 올해 청화전시가 있었는데, 주요 테마전의 깊이에 대한 평가도 간단히 했으면 해요. 
사건부터 시작한다면 광주비엔날레로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요?

 광주비엔날레 20주년 특별전 <달콤한 이슬-1980 그 후>를 둘러싼 파행이 문제였는데, 사실 <세월오월>의 작가 홍성담은 외국의 어느 매체에서 세계를 뒤흔든 사상가 100인 중 한 사람으로 선정되기까지 하는 우스운 상황이 되었죠.
 


   ‘세월오월’ 건은 작가의 공명심, 큐레이터의 관료화, 지자체 단체장 교체와 임기를 같이 하는 문화 사업의 문제 등이 맞물린 촌극이었죠. 
 
 사실 작품만으로 본다면 <세월오월>은 그다지 특별한 것은 아니었는데, 일의 진행과정에서 엉킨 면이 많았습니다. 당시 광주시립미술관에 특강 때문에 내려갔다가 작업 중인 작품을 보기도 했는데, 작가와 친분도 있었던 신임 광주시장이 두어 차례 왔었다고 합니다. 이를 검열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사전에 큐레이터와 시 측에서 드나들게 되면서 타협선이 만들어지게 된 거죠. 시가 청와대의 눈치를 보며 우왕좌왕 하는 사이에 작가는 약간은 즐긴 듯이 방치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광주비엔날레가 20주년을 맞아 점차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비엔날레로 자리잡으면서 그동안의 노력을 이어갈 수 있도록 앞으로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지 논의하는 장이 되어야 할 시점이었는데, 그 사건으로 인해 그런 발전적인 논의는 사라져버렸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동안 광주비엔날레가 외부 큐레이터의 영입 등의 이유로 폐쇄적이 되어 어떻게 운영, 진행되는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면이 있는데, 이번에 그래도 그 건으로 주목받기는 했지요. 비엔날레 재단 조직의 운영 상황들도 밝혀지구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이 정치적으로 수렴된다는 점입니다. 결국 정치권력이 개입된 셈인데, 비엔날레는 어디가고 홍성담만 토픽이 되어버렸어요.

 외신을 보면 광주비엔날레는 90년 이후 만들어진 비엔날레 중 그나마 자리를 잡은 걸로 보는 시선이 많습니다. 주목받는 큐레이터들이 커리어를 쌓는 포인트가 되기도 했잖아요. 해외에서의 입지라든가 앞으로의 방향등을 점검해 보는 자리였는데 묻혀버렸어요.. 

 사전에 준비된 상황을 생각하면 논의라는 것이 제대로 될 수 있었을까 의심스럽긴 합니다. 운영하는 입장에서 광주비엔날레의 현실과 비전을 공론화해서 도약하기를 바랐을까 싶기도 하구요. 20년을 돌아보는 다양한 행사라든가 국제적 규모로 주목받을 수 있도록 했어야 하는데 그런 면은 약했습니다. 

  유럽에서 태동한 비엔날레가 90년대 후반 들어 다른 지역으로도 확산되면서 비엔날레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이 무렵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생긴 광주 비엔날레가 지금까지 행사를 지속해 온 것은 의미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비엔날레는 전문적 국제 미술행사인 한편 지자체의 도시 마케팅의 일환이기도 합니다. 이번에 20주년을 맞아 사전 행사를 크게 하다가 일을 치르게 됐는데, 외부 사람들은 ‘세월오월’이 공개된 것이 사전 행사인지 비엔날레 본 전시인지 잘 알지도 못하고,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부산 비엔날레도 감독 선정 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져 작가들이 보이콧을 하는 등 갈등이 있었죠. 국내 양대 비엔날레의 문제가 밖에서 보기에는 찻잔 속의 태풍 같은 모습이었을 수도 있어요. 그렇다면 무엇을 위한 갈등이었을까 싶습니다. 갈등이 있었다면 그것을 더 나아지는 계기로 삼아야 할텐데 말이죠. 올해를 돌아보는 이 자리에서 더 걱정인 것은 2016년, 즉 다음의 비엔날레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하는 겁니다. 지자체들마다 비엔날레를 열고, 부대행사로 아트페어를 추가하며 그 덩치를 키워 나가고 있는 추세에요. 그럼에도 사후 평가에서는 관람객 수 이상의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고, 미술계 내에서는 ‘고만고만한 비엔날레, 식상하다’하는 분위기고요. 

 왜 꼭 ‘비엔날레’를 해야 하는지 물었더니, 그렇게 해야 예산이 책정되기 쉽다는 의견도 있더군요. 구조적인 문제가 존재해요.

 지자체 입장에서는 흔한 지역행사와 차원이 다른 문화적 행사를 열고 싶고, 미술관을 짓거나 하는 일은 건축비도 그렇고 시간도 많이 걸려 임기 내에 결과를 얻을 수 없으니... 비엔날레만큼 효과 있는 것이 많지 않겠죠. 대구와 부산이 이우환 미술관 때문에 경쟁했던 예도 있고 말이죠. 

 작가가 자신의 재산으로 미술관을 짓는 거야 뭐랄 사람이 없지만, 국민 세금으로 살아있는 작가의 이름으로 된 미술관을 짓는 것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킵니다. 현역 작가 미술관을 지역사회와 국가적 합의 없이 지자체 세금으로 짓는 거는 일종의 폭력 같은 것이 됩니다.

 사실 대구 이우환과 그친구들 미술관의 경우 작가가 원했다기보다 지자체에서 요청한 것이라고 했죠. 

 전(前) 시장이 원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화예술뿐 아니라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단체장이 바뀌면 산하기관 수장들이 바뀌는 것이 당연해졌어요. 이러니 책임지는 사람이 없게 됩니다. 장기적으로 해야 할 일들인데도.

 작가들이 시와 이야기해서 서로 얻는 게 있으니 작가이름의 시립미술관을 짓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경우도 지자체가 강화되면서 그 안에서 생겨난 문화예술정책의 문제로 귀결되네요. 

 타당성 조사가 있어야 하는데 그 부분이 부족합니다.

 작가는 작품을 기증하고, 지역 연고가 있고 그러면 지자체로서도 설득력을 가질 수 있죠.

 그러한 경우라도 저는 생존작가라면 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국민 세금을 자기 이름으로 쓰는 셈입니다.

 거기에 명예관장 역할을 맡는다든지 작가 개인 작업실이라든지 이런 이익이 그 작가에게 돌아가면 지역 단체나 다른 화가들과 마찰을 빚게 됩니다. 

 여전히 많은 지역 작가들이 개인전을 꿈꾸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세금으로 왜 다른 지역의 작가 이름의 시립미술관이 만들어지나 항의하게 되는 거죠. 또, 지자체에 미술관을 잘 지어놓은 경우도 그 유지관리가 힘들어서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담당자 보직이 바뀌어버리면 정책을 유지하기도 어렵구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의 경우도 서울시에서는 랜드마크가 필요해 자하 하디드라는 유명 건축가를 끌어온 것이쟎아요. 그 장소에 대해 전혀 모르고 와 보지도 않은 사람임에도요. 지역 미술관의 경우도 랜드마크를 필요로 하는 지자체와의 이가 맞아 떨어지면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이왕이면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 싶고요.   



 올해의 미술계 큰 사건인 DDP의 개관과 간송의 외출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겠네요. 기본적으로 간송의 그런 흐름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폐쇄된 성북동의 미술관에서 일 년에 두 차례 이 주 씩만 공개하고 나머지 기간은 비공개, 이런 상황에서 대중과 접촉 면적이 넓혀진 것이니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한편으로는 DDP에는 돈을 주고 가서 보고, 간송미술관의 정기전은 철저히 인터넷 예약제로 해서 예약을 안 하면 줄을 서도 못 보는 경우가 생겨 어르신들이 되돌아오기도 했죠. 역으로 ‘DDP에 가서 보라’는 것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지자체에서는 일단 DDP라는 랜드마크를 만들긴 했으나 채울 것이 준비되지 못했고, 간송미술관은 세대가 바뀌면서 그간의 은둔의 미술관 이미지를 세상이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간송미술관의 첫 외출이 DDP서 시작된 까닭이죠. 25만 관객이 들었다는데, 반 고흐전 같은 블록버스터 전시에 비하면 안타까운 수치이긴 합니다. 그러나 DDP 자체는 간송미술관 소장품전 외에 개관 첫 해 뭘 보여줬는지, 이 건물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전경


 서울의 디자인 정책에 대해 잠시 이야기하자면, ‘디자인 서울’ 때문에 보도에서 시각장애인용 점자 보도블럭이 사라지고 있다고 해 놀란 적이 있습니다. 디자인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하는 건데. 어떻게 그런 발상을 할 수 있는지 놀랍습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최근 최열 선생님의 새 점자 책 <옛그림 따라 걷는 제주길>이 제주점자도서관에서 점자책으로 나왔죠. 미술책으로는 첫 점자책이라고 합니다. 미술계에서도 시각장애인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생각지 못했는데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출판 얘기가 나왔으니 올해의 미술계 출간물에 대한 이야기도 해볼까요? 

 이규현 기자의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100>이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고 재판을 찍기도 했습니다. 5만원이라는 싸지 않은 가격인데, 인기있는 미술도서의 흐름이 변화된 양상을 보이는 듯합니다. 그간의 교양서의 인기가 시들해질 수 있어요.
 
  그간 미술 관련 단행본 시장은 명화를 말랑말랑하게 소개해 주는 그림 에세이류가 중심이었고, 주 소비자층은 서른 전후 여성이었습니다. 이같은 책은 시중에 이미 많이 나와 있어요.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100』의 인기는 미술책의 또다른 시장을 보여줬습니다. 그 새로움의 가능성은 현대 미술과 시장의 만남, 화집에 대한 수요, 미술책 선물 시장 등입니다. 은행 PB들이 고객에게 선물하기 위해 많이 구입했다고도 하더군요. 예컨대 로버트 파커가 선택한 와인책이라든가, 현대 미술 시장에서 핫한 그림을 소개하는 서적은 비슷한 시장, 비슷한 고객을 갖고 있는 듯합니다. 

 미술 출판의 새로운 줄기라고 해야겠죠.

 <추사집> 다시 펴낸 것도 좋았고,  <현재 심사정>도 있었습니다. 최열 선생님의 <이중섭 평전>도 올해를 대표하는 미술계 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정준모 선생님의 <한국미술, 전쟁을 그리다>도 좋았습니다. 


 한국미술계에 깊이 있는 연구가 종종 나오는데, 일반인들이 전문서를 보기에는 버겁고 그렇다고 마냥 에세이를 볼 수는 없죠. 심화된 미술서적들이 나왔으면 합니다. 

 에세이를 많이 읽다보면 한 단계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루시안 프로이드, 데이빗 호크니 인터뷰집 같은 것들도 호응이 좋았습니다. 한편으로 올해를 강타한 책은 ‘비밀의 화원’이라는 성인을 위한 색칠공부책의 인기가 특이한 현상이죠. 유사 이래 소비가 가장 적은 시대라고 하는데, 카페에 모여서 가볍게 색칠공부하면서 소일하는 경향으로 나타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새로운 감각의 카페나 상점이 거리를 장악해 나가고 있습니다. 파리나 뉴욕 같은 느낌을 받는 곳도 많아서, 그러한 시각 경험들이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 문화적인 취향을 제공하기도 하죠. 문화 융성이라고 까지 할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단계에 이른 것 같다는 느낌은 듭니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이번 부모 세대들처럼 한 푼 두 푼 모아 집을 산다거나, 취직해 결혼해 아이 둘쯤 낳고 산다거나 하는 평범한 기대조차 어렵습니다. 패스트 리빙의 인기, 작은 방이나 카페를 자신만의 공간으로 갖는 것은 이 기대 감소 시대의 작은 징후랄까요. 

 우리네 옛 생활문화는 개방적이었다가 일제 시기 등을 거치며 폐쇄적이 되었죠. 사회적 변화의 반영인데, 프랑스가 살롱문화가 카페문화로 바뀌면서 논의의 장이 된 것처럼 우리도 긍정적인 변화를 맞았으면 좋겠습니다. 

 일반인들의 공간이 그간의 시각적인 경험들로 인해 그간 많이 달라졌는데, 최근 제도권의 전시는 그것을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 느낌입니다. 관람객들은 이제 디스플레이가 잘 되었는지를 챙겨보는 것 같아요. 전시 내용물 뿐만 아니라 공간 전체를 감상하는 거죠.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디스플레이를 전문적으로 하는 친구들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올해 청화백자전을 야심차게 했는데 디스플레이가 영국 어느 박물관의 짝퉁같이, 15~16세기 이슬람 도자기의 방 같이 보여서 아쉬웠어요. 

 DDP 간송 전시도 신경을 많이 썼다고 들었는데 전시공간 디자인 수준은 아직 아쉽습니다. 

 이제 올해 비엔날레에서 상을 탔던 건축 이야기로 넘어갈까요? 건축 비엔날레는 사실 내부적으로도 미술 쪽에 비해 신경을 많이 쓰지 못했다고 합니다. 한국이 주목받을 수 있는 주제를 생각하다보니 분단 상황이 주요 테마가 되었고 아카이브를 효과적으로 적용해서, 다른 작품들과는 크게 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엔날레가 일종의 대회라는 인식이 있다면 일종의 전략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미술계가 반성의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비엔날레 출품과 관련해서는 관료와 밀착한 미술계 일부 인물들이라든가, 그런 보이지 않는 맥락이 있는데, 대안이 있을까요?

 베니스 비엔날레를 95년부터 참여하면서 그간 종종 특별상은 있었지만 황금사자상은 처음이죠. 한국관 같은 규모에서는 참여 자체가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죠. 올림픽처럼 국가대표로 참여하면서 어떤 한국성을 보여줄까 고민하면서 분단국가의 정체성을 보여줄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제는 조금 달라졌을 거 같아요. 어떤 현실을 직시하고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그러면 이제 올해 있었던 미술전시에 대해 돌이켜볼까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는 생각보다 굵직한 전시가 없었어요. 오히려 덕수궁관 근대전과 모란디 전이 굉장히 크고 좋았고. 서울관은 문제가 되었던 개관전(시대정신) 이후 쉬린 네샤트전 정도 외에는... 

 내년에 기대해볼만 하지 않을까요? 조금 걱정스러운 점은 관장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관장 직위해제라는 역사상 큰 사건이 있었죠. 내년 1월까지가 임기인데 경미한 사안으로 잘렸으니... 문화부 장관이 홍대출신으로 바뀌면서 생긴 일이라는 것이 공교로운 점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인데 이런 일을 임명권자인 장관이 너무 가볍게 처리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취임한지 두 달 밖에 안되는 장관이 미술계를 너무 가볍고 쉽게 여기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게다가 웃기는 측면도 있는데요, 극단적으로 말하면 홍대와 서울대 싸움으로 보여질 수 있죠. 서울관 팀장을 관장도 모르게 채용하기도 하고..

 서울시립미술관도 관장이 학예연구부장을 직접 뽑은 것이 아닙니다. 비슷한 경우죠. 

 국립현대미술관의 경우는 관장 문제 외에도 학예사 수와 계약직 문제가 남습니다. 계약 연장은 한 상태라고는 하나 법인화의 문제와 정규직 문제를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직업의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책임있는 전시를 기획하기 어렵죠.

  한편으로는 신분이 보장된 정규직원인 큐레이터가 비정규직인 직원들보다 일의 양이나 열정이 적은 것을 보고 놀란 적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국립현대미술관의 법인화를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학예사가 부지런하고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도록, 관장이 가져온 주제를 받아 전시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책임지고 전시를 기획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 네 개 관으로 볼륨은 늘어났는데 그에 맞춰 발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6개월, 1년 단위로 계약 연장하면서 일하는 친구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관료들의 눈치를 보는 일 뿐이죠.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법인화 뒤에 모든 직원의 임기를 장기간 계약직, 그러니까 5~10년 계약으로 전환한다든가 하는 방안이 고려되야 한다고 봅니다. 


 이제 미술시장의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죠. 단색화 경향이 나타나는데, 잘 팔리고 있나요?

 잘 팔리지 않는데, 새로운 상품을 개발해 낸 거죠. 극사실주의 그림들이 지난 15년간 화상들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었는데 이제 퇴조하면서 새로운 상품 필요해진 것이죠. 자본의 기본 속성이라고 할까요. 그 자체가 어떻다고 얘기하긴 이르지만 극사실주의가 미술사적 가치를 담보하고 있지 못한 상태에서 투자가 몰렸고 아무도 경고 하지 않았죠. 이런 식으로 미술품의 유행을 만들어내면 자본이 결국 미술계에 등을 돌리게 될 겁니다. 미니멀이 신상품으로 개발이 되어 전면에 깔리고 있는데. 그간의 미술시장에 대한 비판적 반성이 먼저 있어야 하고, 미니멀한 작품의  조형적 가치 등 엄격한 논의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 없이 오직 화상들의 손에 의해 자본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자본을 등 돌리게 만드는 악순환이 될 거라고 경고하는 바입니다. 지금 150억으로 김환기 작품 열 점을 사 놓으면 10년 뒤에 천 오백억 이상 되겠지만, 같은 돈으로 신상품 미니멀을 천 오백 점 산다면 모두 쪽박이 될 겁니다.  

 시장의 생리상 단색화가 뜨는 과정에 권력 문제가 들어 있습니다. 어떻게든 대표 주자를 만들어내야만 하는데, 현대에서 대표성을 띨 수 있는 민중미술은 시장성이 없고.... 그 속에서 어떻게 보면 시장에서 통용될 수 있는 내수용을 개발해 낸 것이 단색화 그룹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재등장을 유심히 지켜보면서 과거 단색화 그룹 등 기득권 미술이 해 온 역사가 어떻게 다시 등장하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들 스스로 저항이라는 옷을 입으면서 침묵은 저항의 다른 이름이라는 등의 논리로 실제 저항했던 미술을 무화시키기도 했습니다. 미술의 역사를 정리할 때도 일방적 수정의 관점으로 진행되었고... 

 어디에 저항했다는 건지 알 수가 없네요. 미니멀 작가들이 전쟁과 분단 이후 전제주의, 독재정권에 맞서지 않았고 오히려 조화로운 관계를 지속해 온 것으로 보이는데다가 또한 1980년대에는 민주화운동과 적대적인 관계를 맺어 왔었으니까 그 미니멀 작가들이 ‘저항’한 대상은 아마도 민주화세력 또는 피억압대중이겠지요. ‘저항’이란 말을 신중하고 무겁게 사용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싶습니다. 

 상당 부분 담론을 생성하는 의견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시장 그 자체의 논리로 나타났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시장이 미술계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점점 커지는 것은 분명한데... 시장과 미술 문제에 대해 언젠가 한번 심도 있게 다뤄봐야 할 것 같습니다. 금년 한해 여러 일이 많았으나 올해에 일어난 일들도 잘 매듭지어지지 못하고 벌려놓아진 채로 새 한해를 맞는 느낌이어서 아쉽습니다. 

 늘 연말에 지난 한해를 아쉬워하고 새로운 것을 소망하게 되죠. 그런데 미술의 정치성, 경제 논리에 의한 영향 등을 생각해 보면 내년도 그다지 밝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가장 위기일 때가 기회라는 생각을 가지고, 미술이 무엇인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겠다는 개인적 다짐을 해 봅니다. 한해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SmartK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14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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